| 뉴욕이라는 문명세계의 최대파라다이스 속에 예술이라는 한 장으만으로도 뉴욕이기 때문에 생성되고 사라질 수 있는 뉴욕의 힘.. 그자체가 들어있다. 뉴욕 뉴욕 뉴욕!! 이책안에서의 사색에선 한국에서의 미숙아적인 행정들이 비교되었던건 물론이거니와 더더욱 더 중요한것은 발전될 수 있느냐 지향하기만 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 될터다. 뉴욕미술의 발견에서는 정말 책속에 뉴욕이 들어있다,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이 아니.. 그 이상될 수 있을까를 상상조차 하기 힘들정도로 엄청난 스케일을 안고 있었다. 현대 미술시장의 더이상 '센세이션할 것 없는' 지루함을 뉴요커들이 어떠한 방안으로 새롭게 사람들을 자극시키는가. 저자는 오랜동안의 기간은 아니지만 뉴욕안에서 그들의 겉잡을 수 없는 뛰어난 예지력과 발견들, 욕망과 거짓, 뛰어난 구성들이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연실 탄성이다. 객관적인 시선이 조금 부족한 것이 흠이지만 그런 경험을 겪을 엄두 조차 못내는자들에게는 더 없는 용기가 되어주는 책이다. 미술행정계 쪽으로 계시는분들이나 국내 큐레이터들의 교양지침서가 되어야 될 것이다. 아닐한 국내의 '더이상 재미없는' 예술시장을 대중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선 미술계 스스로의 콧대를 잘라내야 할 것이다. 왜 모든 작가들이 뉴욕을 희망하며 뉴욕을 가기위해 애를 쓰나? 어째서 작가의 발전적 모습을 기대하며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딜러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제대로된 예술의 발전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알고싶다면, 우물안에서 사다리가 필요하다면, 세계적으로 나아갈 권유가 필요하다면 뉴욕미술의 발견을 추천한다. |
|
_nancy Lang이라는 아낙이 미술판을 어떻게 읽고 어떤 방법으로 ''떴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yong과 나눈 이야기에서, 그 여인네를 ‘작품의 깊이 없이 어떻게 뜨는지 알기 때문에 뜬 사람’으로 이야기를 했기에, 당사자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저 어떤 대명사처럼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때문에 소문자로 표기); 그 대화에서 나는 그녀의 재주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옹호했었다. 반면에 yong은 나와는 의견을 조금 달리하며, 예술적 깊이 없이는 긴 생명력도 없다는 것을 강조했던 것 같다.
_이 책의 저자 말대로라면, 작금의 예술판이라함은 그야말로 헐리우드이다. 예술가를 후원(먹이고 입혀줄테니 돈 되는 예술품만 만들어다오)해주는 ‘딜러’가 있고, 그렇게 ‘뜬’ 예술가(실은 ‘아트스타’)는 각종 매체에 출몰하며 패션모델처럼 굴고, 딜러에게 수십만불의 작품 제작비를 요구하고, 구겐하임 같은 메이져 미술관에서 전시라도 갖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작품 가격이 껑충 뛰는 것이고, 그렇게 자신이 모은 작품 가격을 올리기 위해 미술관에 전시를 부탁하는 하는 컬렉터들도 있고...어쩐지 그것은 제작-상영-흥행 등으로 이뤄지는 헐리우드의 시스템 또는 락스타나 스포츠스타(미국의 경우)의 경우와 크게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
_작품의 깊이라는 것에 대해서; 매튜 바니matthew barney를 들자. 그가 ‘떴다는’ 사실을 차치하고 그의 작품만을 본다면, 뭐랄까,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거북함이다. 그정도로 인상을 파고드는 uncanny한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재능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적어도 나에겐.)
_하지만 매튜 바니가 뉴욕 미술관과 컬렉터와 딜러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떴으며’, 그 또한 판을 읽는 법을 잘 알아 저렇게(!) 스타성 짙은 퍼포먼스를 하고 다닌다는 점을 무어라 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거꾸로, 그가 굉장히 못생기고(작금의 미술판 행태로썬 예술가 중요한 ‘자질’ 중 하나)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캐치하지 못하고, 그렇게 딜러의 후원을 얻어내지 못했다면? 그럼에도 갱장한 예술가로 그는 남을까? 언젠가는? 반 고흐처럼? 22세기의 미술사가들이 자신의 작품들을 먼지 속에서 꺼내 미술책에 실어주기를 무덤 속에서 기다릴까?
_‘nancy lang스러운 스킬’은 어쩌면 작품성과는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작품 나름의 깊이는 작가가 자신의 양심을 걸고, (그리고 재능을 걸고) 보증해야할 부분이며, 그것을 ‘먹히게’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다른 종류의 스킬이 요구되는 것이다. 지금의 세대는 누가누가 원근법 잘 써먹나를 시합하던 르네상스 시대가 아니다. 하나로 통합된 사조나 의식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언어는 더 이상 부연설명을 하지 않고, 오히려 능동적으로 작품을 ‘만든다’. (라고는 하지만 매튜바니의 그런 이상야릇한 느낌을 다들 비슷하게 받는다는 것, ‘동시대의 비슷한 눈‘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보아야할까, 빗대볼 기준을 찾은 것에 ’기뻐해야‘할까)
_훌쩍 떠나버린 랭보처럼, 주류의 이해를 거부하던 인상주의자들처럼, 그런 ‘예술가의 보헤미어니즘’이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 뭐 그렇게 슬퍼할 것은 없다. 생각해보면, <시녀들>에서 벨라스케스가 그림에 직접 등장해 관람자를 겁도 없이 띡 쳐다보기 전 까지만 해도, 예술가란 그저 ‘기술자’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은 헤게모니가 원하는 이미지를 생산해주는 ‘기능공’들이었다는 것이다. ‘공예가’라고 한다면 과분한 시기도 있었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아트는 패션이다”(심보선)이라고 정의되는 시대에, 예술가가 락스타나 헐리우드배우가 되지 말란 것도 없다. 조금은 덤덤히 받아들일 필요도 있는 것.
_그런데,
“우리 미술계에서도 재능있는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시장을 겨냥한 치밀한 전략과 지원으로 국제적인 작가를 배출해야 한다.”
이 글을 보는 순간, 마치 신문 경제면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들어, 오싹해져 버렸다.
snake''s foot_
_뉴욕의 딜러라는, 어쩐지 <경매장 가는길="">의 저자와 비슷한 판에서 몸담고 있는 저자인지라, 조금은 <경매장...>스러운 수준을 지닌 책으로 대하며 책장을 열었던 것이 사실인데; 아니, 전혀, 이 책은 옹골차다. 저자의 자료 분석은 꽤나 심도 있고, 갤러리, 경매장, 미술관과 ‘아트스타들(바스키아, 제프 쿤즈, 매튜바니)’로 이뤄진 챕터 구성은 꽤나 곁가지 없이 단단하다. ‘판’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전한다는 점에서,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에서 충족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답을 가뿐하게(허나 실상은 꽤나 무겁지만)해준 책. [인상깊은구절] _cut&paste “지루한 자본주의 사회는 자신의 귀를 잘라야만 했던 고흐의 깊은 고독과 절망마저 엔터테인먼트의 하나로 여기는지 모른다. 바스키아는 당대 사회가 원했던 퇴폐적인 이미지와 엔터테이너로서의 아트 스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마음 여린 젊음이였다는 생각이 든다...심각함이나 무거움에는 병적인 거부감을 보이는 오늘날의 미국 사회가 아트스타에게 요구하는 이미지는 바스키아의 이미지보다 한층 더 강화된 무엇인 것 같다.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아트스타가 되려면 여전히 퇴폐적이고 비범하고 기상천외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무거운 듯 가벼워야 하고, 심각한 듯 유머러스하며, 시니컬한 동시에 성적 매력이 넘쳐야만 할 것 같다.”예술가여>경매장...>경매장>시녀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