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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처음 주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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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평범한 어린아이들은 엄마가 외출할 때면 따라가고 싶어한다. 엄마 손을 잡고 문 밖에 나서면 온 세상이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만약 뜻대로 엄마를 따라 나가지 못하는 경우엔 그에 따른 보상을 기다리게 된다. 다시 말해,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집을 잘 보고 있으면 나중에 맛있는 음식이나, 장난감, 혹은 새 옷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정확히 기억해 낼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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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평범한 어린아이들은 엄마가 외출할 때면 따라가고 싶어한다. 엄마 손을 잡고 문 밖에 나서면 온 세상이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만약 뜻대로 엄마를 따라 나가지 못하는 경우엔 그에 따른 보상을 기다리게 된다. 다시 말해,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집을 잘 보고 있으면 나중에 맛있는 음식이나, 장난감, 혹은 새 옷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정확히 기억해 낼 수는 없지만, 내가 엄마에게 『소공녀』를 받았던 것도 비슷한 ‘보상’이 아니었나 싶다. 그 때『서유기』, 『수호지』도 함께 받았지만, 제일 먼저『소공녀』에 손이 갔던 것은, 가장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 권 모두 요즘 나오는 공주 시리즈의 동화책과는 달리, 여러 색깔로 치장된 그림으로 가득하기는 커녕, 세로쓰기에 종이도 누렇게 색이 바랜 오래된 책이었지만, 나는 그날 밤 바로 그 책을 다 읽어버렸다. 그때는 다 읽은 후에도, 나는 ‘소공녀’가 무슨 뜻인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마도 ‘공주’나 ‘소녀’의 다른 뜻이겠거니 했었다. 중간에 스케치 같은 작은 그림이 있기는 했지만, 소공녀 세라에 대한 묘사가 워낙 자세했기 때문에 난 작가가 묘사하는 장면들과, 작품 안에서 상상력이 풍부한 공주인 세라가 상상하는 장면을 모두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이 작품은 홀아버지 아래서 물질적으로 아무 부족함 없이 자란 세라가 속물 투성이의 교사와 동급생이 있는 기숙사 여학교에 입학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아버지의 다이아몬드 광산 사업이 실패하자 졸지에 하녀로 전락해버리지만, 우여곡절 끝에 만난 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다시 행복해진다는 얘기다. 그 당시에는 세라가 너무 부러웠고, 불쌍했고, 다시 부러워졌었다. 다락방에 사는 생쥐들을 멜치세덱 가족으로 부르면서 음식을 나눠주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실제로 거리 한 구석을 달려가는 시커먼 쥐를 보기 전까지는 쥐가 귀엽다고만 생각했을 정도였다. 세라가 상상했던 멋진 저녁이 정말 실현되는 것을 보고, 엄마가 늦게 돌아오실 때면 같은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난 그 이후로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철들고 다시 본 소공녀와 소공녀를 둘러싼 환경을 어릴 적 모습과 사뭇 달랐다. 실제로 작품 안에서 세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동냥을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공주같이 지내던 시절에 시중을 들게 했던 베키와 계속해서 공주-시녀의 관계를 맺고 지낸다. 또한 원전에서는 세라가 겪은 어려움들이 좀더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다고 하지만, 동화 번역은 완역을 찾아보기 힘들어서(실제로 이 작품은 국내에 완역본이 없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한층 더 화려하게 치장된 소공녀만을 바라보게 된다. 실제로 내가 따라했던 상상들은 허황된 것이었다. 세라의 상상은 항상 ‘따뜻한 난로가 있고, 나는 어느 나라의 공주님이 되어…’식의 공주병 같은 상상이었기 때문에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힘들었다. 그리고 작품 안에서 세라와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미워했었다. 왜냐면 이 작품은 평면적인 인물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착하고 똑똑한 세라, 배운 것은 없어도 착한 베키, 여리고 둔하지만 귀여운 아멘가드, 속물인 민틴 교사, 전형적인 못된 아이 레비니아의 성격은 절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생각할 여유를 작품 속에서 찾을 수는 없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잊게 하고, 주인공의 반대 인물은 끝까지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못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은 TV미니시리즈나 주말연속극에서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사용되는 흔한 수법이다. 게다가 돈 때문에 대접 받고, 돈이 없어서 천대 받은 세라에게 작가가 제시한 궁극의 해결책은 ‘다시 부자가 되는 것’뿐이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어린 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책들이 철들고 나면 황당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그 책을 소중하게 여겼던 내가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는데, 이 책이 그 중에 하나이다. 전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 나는 어린 아이들이 읽는 동화라도 이렇게 현실감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다 자라서도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하거나, 많은 실패를 통해서 자기 생각을 힘들게 고쳐야 할 것이다. 심지어는 자기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악역을 맡은 인물들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a 2003.12.1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