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의 2003년 개정판이다. 1991년 6월에 나온 이 책은 당시 문학지망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반년만에 4쇄를 찍었고, 나는 그 때 이 책을 산 수많은 문학지망생 중에 한 명이었다. 뿐만 아니다. 줄 치며 읽고 또 읽고, 전상국 선생님 말씀대로 습작하고 습작하다 개정판까지 사 읽었다. 당시는 예스 블로그 안 하던 시절이라 이 책 리뷰가 여기에 없다.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인데, 내 현실 책장에는 꽂혀 있는데 사이버 서재에는 있지 않은 것이 아쉬워 생각난 김에 몇 자 적는다.
이 책은 좀 올드한 느낌은 있다. 고교 국어 혹은 문학 참고서처럼 1인칭 관찰자 시점이 주는 효과,,,, 이런 설명도 있을 정도니까. 게다가 이 책에 예로 든 소설은 요즘 문학지망생들에게는 거의 <혈의 누>나 <무정>같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시 내게 이 책은 최고였다. 지금은 소설 아닌 다른 글을 쓰고 있지만, 이 책에서 배운 아우트라인 잡는 법 등은 지금도 매우 유용하다. '자기 몸에 맞는, 자신의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그런 무엇을 찾아 써야 한다(43쪽)''자신의 장기가 있는 쪽에서 이야기를 풀어라. 이것이야말로 구상 단계에서 당신이 결정적으로 써먹어야 할 요령이다. 이미 '무엇을 쓸 것인가'에서 가장 잘 아는, 절실한 것을 써야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장기가 있는 쪽에서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는 것도 그것과 문맥을 같이하는 말이다(83쪽)'아아, 내가 소설을 포기하고 계몽사 전집을 거쳐 역사 배경 이야기로 빠진 것은 선생님의 가르침에 너무 충실했던 것이던가? 하하.
당신에게는 열등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남다른 노력이 소설 쓰기로 나타났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열등한 어떤 문제로 인해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이제 당신은 그 상처를 무기로 삼아야 한다. 그 상처는 오직 당신만이 잘 아는 문제로서 그 이야기라면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잖은가. 부모를 일찍 잃은 아이가 자립심이 강하고 매사에 도전적이듯 당신은 소설 쓰는 일을 통해 당신을 괴롭혀온 그 열등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상상력을 통해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맺힌 것 풀기가 아니겠는가. - 본문 52쪽에서 인용
91년도 책을 보니 이 대목에 줄 쳐 둔 것이 보인다. 새삼, 울컥하고 뭐가 올라온다. 아직,,,, 맺혀 있구나.
결론을 요약해 적는다면, 나는 그동안 내가 읽은 소설 작법에 관한 책 중 이 책이 가장 좋았다. 글쓰며 사는 삶에 대한 책으로는 나탈리 골드만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전체적인 책 쓰는 과정에 대한 책이라면 임승수 작가의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가 좋았고. 다 피부에 와닿는 조언을 해 주는 책이었다.
(참, 전상국 선생님은 예전부터 소설 쓸 때 음흉한 남자인물의 웃음을 ㅎㅎㅎ 라고 자음 하나만으로 처리하셨다. 당시 읽으면서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2000년대 들어와 문자, 이메일 등에서 그런 표현을 많이 본다. 이분, 미래를 내다보신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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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에는 똑같은 책 2권이 있다. 그 책의 제목이 「소설창작강의」 라는 책이다. 소설가인 전상국 선생님이 쓴 책인데 어쩌다가 2권이 나에게 있는지는 모르겠다. 두 권을 모르고 산건지 아니 면 한권은 선물로 누구에게 받은 건지. 아니면 한 권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할 생각으로 샀는데 안 준 건지. 지금은 도통 모를 일이 되어버렸다. 처음에 사 놓고는 쪼금 읽다가 다른 책 읽다가 그냥 방치한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데 3일 걸렸다. 소설 창작에 대한 이론서라서 그런지 내용이 어려웠다. 읽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요즘에는 소설쓰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되어 주는 책뿐만이 아니라 글쓰기 전반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는 상태이다. 그 중에는 도움이 되는 책들도 많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들도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몇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글 쓰는 일은 노닥거리면서 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꼭 등단하는 길이 하나만 있지는 않다는 점 등이다. 전에 신춘문예에 당선이라도 되어보겠다고 글을 보낸 적 있었다. 큰 봉투를 사서, 우체국에 가서 붙이던 그 때. 하지만 결과는 내 인생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춘문예접수일자 며칠 전에 대충 써서 보낸 글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대체 이런 용기는 어디서 나왔던 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지금은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말 쓰고 싶을 때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책을 읽고는 리뷰를 쓰는 정도로 글쓰기연습을 하는 정도랄까. 그 이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춘문예 같은 건 생각하고 있지도 않고 있지요. 흐 흐~. 소설을 왜 쓰려고 하는 것일까? 나는 정말 소설이든 글이든 왜 쓰려고 했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건 다른 사람에 비해서 못난 저의 콤플렉스 때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지금도 그 콤플렉스는 저의 양분을 먹고 살아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회생활 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지금은 책을 읽고 리뷰를 쓰거나 가끔 일기를 쓰는 정도입니다만. 전에는 무엇인가 쓰려고 많은 노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소설은 아니고 수필 정도랄까. 글을 쓰는 데 제일 힘든 건 역시나 습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습작하는 방법에 대해서 잘 모르다보니 아직 소설을 쓰는 건 꿈도 못 꾸고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꼭 써보고 싶은 것도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작가 지망생들이 가져야 할 습작과정의 정신 자세에 대해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번 미쳐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이나 써 볼까 하는 그런 건방진 생각을 버리고 ‘이것’과 결판을 내야 한다는 작심으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저것 눈치 보지 말고 외곬으로 밀고 나가는 뚝심만이 작가가 되기까지의 그 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다고 봅니다. 소설에 대한 보다 겸허한 자세만이 작가가 되기까지의 그 울분, 그 절망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문학병은 그 열로만 치유할 수 있습니다. 미쳐야 합니다. 치열하게 달라붙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열심히 읽고 부지런히 써보는 그런 일에 치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미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일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제대로 미칠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보여 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도 미치고 싶습니다. 글 쓰는 게 그래도 재미있으니까. 전에 방송대학 다닐 때 국문과 동아리에서 선생님을 뵌 적이 있었다. 같이 산에도 올라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때 생각이 난다. 지금은 건강히 잘 계시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