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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였던가. 글도 못쓰는 주제에 문예창작부에 들어 백일장도 가끔 나갔었고 초등학교 때부터 특별활동은 모두 글쓰기에 관련된 것이었다. (뭐..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상 그 활동은 매우 미미했지만.) 고등학교 때는 시화전에 두어개의 작품(?)을 제출해서 축제 때 뻔뻔스럽게 내놓기도 했었다.
이렇게 꽤나 긴 시간 관심을 가져왔지만 역시 글 쓰는 것은 내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특히나 감성적인 글을 쓰는 것은 이젠 왠지 내 적성에 맞지 않는 건가 라는 좌절감을 맛보는 중이다. 그러니 산문이 아닌 시는 절대 범접하지 못할 분야로 느껴질 수 밖에.
기억난다. 언젠가 학교 교지에 얼굴도 모르는 3학년 선배가 썼던 글을 읽으며 홀로 감탄했던 일이. 시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도 멋을 내고자 꽤나 폼을 잡았던 시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내가 감탄했었던 것은 문자로 선명한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 고래, 피아노 등이 등장했던 시로 기억하는데 아직도 내 머릿속엔 선명한 색깔들이 번뜩번뜩 지나간다. 아마도 내가 절대 쓰지 못할 종류의 글이기 때문에 감탄했던 것 같다.
간만에 시집을 한 권 읽었다. 사실 무릎을 칠만큼, 가슴을 울릴만큼 좋았던 시는 없었지만, 그래도 시인은 시인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
나는 세상을 너무 자세히 보려 했던 모양이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어딘가로 번져가는 중이기에 수묵 같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기에
'봄날' 中
저는 흘러, 이 숲의 끝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이끌고 가는 어둠의 심연, 제가 얼마나 헤매야 그곳에 닿겠습니까 당신은 왜 저에게 형형한 밤 새의 눈을 주지 않고 지칠 줄 모르는 그리움의 두 발을 주셨습니까
'숲' 中
내가 가장 싫어하는 (요즘) 시는 껄렁껄렁한 인텔리의 모습으로 자조적으로 되뇌이다 끝나버리는 종류의 시인데 다행히 이 시인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이 시인의 대표작인 '빙폭' 연작도 꽤나 괜찮았지만 내게 가장 좋았던 시는 따로 있었다.
고드름 이영광
햇살에 베인 처마 끝이 미닫이를 두 쪽으로 갈라놓고 있다 소한 바람이 입가의 술냄새를 닦아주고 간다 물인 줄 알고 마신 술 알고 보니 불이었다 불타버린 나의 내부 식은 재 날리는 벌판의 모래 언덕의 모래 침대에 누워 창밖을 본다
문득, 거대한 짐승의 뱃속에서 하룻밤 쉬었다는 생각이 든다 주렁주렁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들 티라노의, 단검 같은 이빨 같은 고드름들은 누군가 나에게 겨눈 창끝 같기도 하고 간밤 내가 그에게 드러낸 적의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고드름들은 뾰족한 끝에서부터 한방울씩 녹아내리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용서하고 있다 이제야 누군가에게 용서받고 있다
비록 살아가는 것이 번져가는 것임을 봄날에 느꼈다고 토로하고 있지만 직선 위에서 떨고 있는 이 시인은 왠지 겨울의 시인 같다는 느낌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