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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수학’이라는
제목도 그렇지만(원제가 ‘존재의 수학’이다), ‘인간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이라는 부제, 혹은 광고에 혹했다.
도대체 수학으로 인간 존재를 증명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그러나 『존재의 수학』이라는
책은 ‘게임 이론’에 관한 책이다. 저자의 말에서부터 게임 이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게임 이론은 이미
적지 않은 책에서 다루고 있다. 그 게임 이론은 수학, 경제학, 사회학, 진화론, 심리학
등에 적용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 책이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오스트리아
사람답게) 비트겐슈타인까지 연결함으로써 ‘언어’와 ‘존재’ 문제까지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연결점은, 나에겐 그다지
뚜렷하지 않지만 말이다.
게임 이론이라고 하면
대체로 파스칼의 확률이나 죄수의 딜레마에서부터 시작하지만(물론 이 책도 그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은 물과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둘러싼 논쟁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차이라는 경제학의 원리다. 또 하나 형식적으로 특이한 점을 더 들자면 각 장(chapter)이 연극이나 영화의 무대처럼 시기와 장소를 한정짓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시간의 돈이다’라는
제목을 붙인 5장은 ‘필라델피아, 1746~/암스테르담, 1636~37’이라고 되어 있다(시기와 장소를 보면 짐작할 수 있지만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필라델피아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도시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게임 이론은 그다지 심화 수준까지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 게임 이론과 관련한 인물들의 언어로 얘기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폰 노이만이니, 내시, 앨버트 터커 등이 등장해서 그들의 언어로 얘기하도록 한다. 그래서
그런 이론이 등장하는 장면은 목격할 수 있지만(다분히 연극적인 장치다),
사실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다. 즉, 폰 노이만은
동료 수학자를 납득시키고 있지, 독자를 이해시키고 있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어렵게
쓴 수학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형식 때문에, 혹은 이 책을
원래 소비할 대상(이를 테면 독일어권의 독서 인구)의 수준
때문에 조금 신경 써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학을 통해서 인문학적 성찰을 할 수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어도 이 책을 읽는 의미는 충분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