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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호 참사, 유족 슬픔에 허덕일 때 선주는 부를 쌓았다
이태원 참사 사고, 세월호 침몰 사고, 남영호 침몰 사고 이 세 가지 사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는 점이다. 담당 경찰, 해경 등이 대응 매뉴얼을 숙지하고 재빠르게 대응했다면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할 수도 있었던 사고들이다. 남영호 침몰 사건을 자세히 알기 위해 『재난을 묻다 : 반복된 참사 꺼내온 기억, 대한민국 재난연대기』를 사뒀지만, 책 내용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읽는 걸 주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를 지켜보고 지금 용기를 내지 않으면 평생 못 읽을 것이라는 생각에 꺼내 읽었다. 책은 세월호 3주기를 맞아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의 재난참사기억프로젝트팀이 남영호 침몰참사,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의집 화재참사,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춘천 봉사활동 산사태참사, 여수국가산단 대림산업 폭발참사, 태안 해병대 캠프참사, 장성효사랑요양병원 화재참사 등 7건의 재난참사를 기록했다. 책은 우리 기억 속에 사라져가고 있는 재난참사 7건의 경위와 기록물에 담긴 사고 원인부터 희생자 유가족과 사고 책임자, 정치인, 가까스로 구출된 사람들의 증언 등을 재구성한 내용이다. 생존자와 희생자 유족 등을 직접 취재해 사건을 기록한 부분을 읽다 보면 소설보다 훨씬 큰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참사 이후 정부의 무능하고 부패한 모습을 지적하는 대목에선 촌철살인의 비수를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재난을 묻다』는 첫 번째 참사로 남영호 침몰 사건을 다룬다. 남영호는 1970년 12월 15일 저녁 9시40분 서귀포항을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중 다음날 새벽 1시20분께 전남 여수시 소리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는 사고를 당했다. 300명이 넘는 승객이 사망했고 12명의 생존자만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당시 해경과 정부는 사고가난 것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사고가 발생한 지 10시간이 넘었지만 구조에도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 해경의 SOS 타전 또한 무시해, 구조활동을 할 수 있었음에도 구조활동을 하지 않았다. 또한 사고 소식이 전해진 것도 사고 다음날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외신 보도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언론사는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지 않고 일본으로 국제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는 기록을 읽으면서, 사고에 대응할 매뉴얼도 없었고 대응 할 의지가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읽을수록 화가 나고 답답한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다.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 얼마나 힘겹게 읽었는지 모른다. “선주는 그때 이후에 더 재벌이 돼버렸어. 더 큰 배를 가졌고, 주유소도 있었고, 그 아들은 공업사를 가지고 횟집도 운영하고 또 서귀포에서 한자리해 먹었어. 어마어마하게 잘 살았죠.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냔 말이죠.” - P51 중에서... 남영호 침몰 사고의 사망자 대부분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가장이 많았는데, 남영호 침몰사고의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아픔과 분노를 제대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독재권력의 폭력에 두려움이 컸고 당장에 먹고사는 일이 시급했다. “또 하나 간절한 유족들의 바람은 이런 원통한 일이 없게끔 정부가 확고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더불어 어떤 참사에서든 정부가 잘못한 건 인정하고 사과하고, 필요한 건 배상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다. 이는 한 사건의 실체에 다가서고 망각이 아닌 기억을 지렛대 삼아 시대의 가치를 바꿀 때만이 비로소 가능하다.” -P58 중에서... 이 책을 통해 남영호 유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세월호 참사와 똑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고의 원인부터 정부의 대응까지도 놀랍도록 똑같아 읽을수록 소름이 돋았다. 이건 재난을 겪고도 사회가 배운 것이 없었다는 걸 말해준다. 반복되는 재난의 고리가 끊어지기를 바라며 책장을 덮는다. 재난을 묻다/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312쪽/서해문집/13,500원/2017년 04월 10일 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