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한다는 건 뭘까. 오랫만에 <검은 사제들>을 다시 보는데 불현듯이 이 질문이 떠올랐다. 주인공 사제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소녀의 구마의식을 한다. 대사로도 나오듯이 선을 넘으면서 까지 신부들은 헌신한다. 구마에 성공하여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이며, 어떤 보상도 없을 것인데 말이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여기쯤이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손해보면서, 남의 생명을 돕는 일. 내가 죽을 수 있음을 사제들은 안다. 아니 내가 죽는 것도 죽는 거지만, 나의 희생이 악령들린 소녀를 살린다는 보장도 없다. 뿐만 아니라, 살해를 했다는 오해와 법의 처벌까지 기다리고 있다. 이제 나의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일만 남았다. 하나님이 나의 진심을 알아 주신다면. 그것으로, 그것만으로 충분함을 믿고서 주인공은 끝까지 달린다. 구마의식의 시작이 믿음 이었듯이, 악령 퇴치의 끝도 믿음이 관건 이었다. ![]() <검은 사제들>은 보이지 않는 영들의 대결을 그린 영화지만, 구체적인 사건의 전개를 현실적으로 그렸다. 뜬구름 잡는 영화가 아니라, 악령과 성령이 치열하게 싸우는 이야기로 이번에 나에게 다가 왔다. <파묘>를 얼마전에 다시 봤는데, 오락적인 장르물로써의 재미가 뚜렷 했다. 장재현의 데뷔작인 <검은 사제들>은 재감상하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느낌이 있다. 나는 <검은 사제들>에 한 표. 최민식보다 김윤석 캐릭터에 훨씬 더 애정이 간다. ![]() 우리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걸 바라지 않는다. 자기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많이 하는 건, 그와 친구가 되는 길이지만 이용당할 가능성도 높이는 일이다. 자신을 방어하지 않고 타인들에게 개방하는 삶의 태도는 그 자체로 위험이다. 철벽을 치고, 단단히 방어를 하며 사는 건 분명 안전할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서로에게 장벽을 세우고 대하는 삶은 얼마나 삭막할까. 타인이 단지 두 부류, 즉 내편 아니면 적이라고 규정하는 사회는 얼마나 각박 할까. <검은 사제들>은 그저 영화 한편이고, 어쩌면 판타지 이지만. 엔딩에서 가슴이 촉촉해지는 나를 발견함이, 아직 나에게도 드라이하지 않은 꿈이 있음을 알게 해 줬다. ![]() 며칠 전. 마다가스카르에서 선교사 두분이 강도의 피습을 받고 돌아가셨다는 뉴스에 눈물이 흘렀다. 자신을 노출시키기를 기꺼이 자처하며, 영혼의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제와 목사님들을 생각 했다. 글쓴이 아슬란 for Narn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