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네의 일기>는 어린시절부터 여러 번 읽어왔던 책 중의 하나인데, 정말 오랫만에 읽게 된 보물창고의 <<안네의 일기>>는 학창시절 읽었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에는 안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유대 인 박해를 피해 은신처에 숨어 감옥과도 같은 생활을 하게 된 부분에 치중해서 읽게 되었다면, 이번에는 은둔 생활 외에도 안네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가족과 갈등을 겪게 되고, 페터와의 풋풋한 사랑을 느끼게 되는 성장 과정과 절망 속에서 미래를 꿈꾸는 희망을 눈여게 보게 되었다. |
|
어릴 적 읽었던 <<안네의 일기>>와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동안 나는 자랐고 그만큼 부모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사회의 부조리도 알게 되었으며 정치적인,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해 어른이 된 나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다가온 <<안네의 일기>>는 더욱 크다. |
|
세계인들이 꾸준히~많이 읽고 있는 책은 바로 <성경>이라고 합니다. 그 뒤를 이어 이슬람의 경전, 마오쩌둥의 어록, 세익스피어의 작품, 반지의 제왕과 추리 작가 크리스티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쟁쟁한 작품들과 함께 나란히 견주어지는 책이 바로 <안네의 일기>입니다. <안네의 일기>는 한번쯤 읽어봤을 클래식 고전의 하나입니다. 어린 소녀가 전쟁의 두려움 속에서 겪은 일상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 많은 독자들이 그 소녀가 겪었을 두려움을 함께 나누고 싶고, 전쟁과 평화를 언급하기 좋은 예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린이가 읽을 수 있게 구성한 <안네의 일기>가 여러곳에서 출판되어 많이 읽어봤겠지만 보물창고의 <안네의 일기>는 안네의 순수한 마음과 사춘기 소녀의 갈등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해지도록 완역본으로 출간하였습니다. 어른이 되고 다시 읽어보는 <안네의 일기>는 읽는 내내 안타까움이 전해져 또다른 느낌을 주는 독서 시간이었습니다.
1942년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은신처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고 이 좁은 공간에서의 생활은 1944년 8월 1일까지 이어집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아야만 했던 정치적, 시대적 배경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어느날 갑자기 따뜻한 집과 친구들과의 활기 넘치던 학교를 뒤로 하고 좁은 공간에서 시간별로 움직여야 하는 그런 생활은 사춘기 소녀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일이었을 겁니다. 더구나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섞여 산다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참 견디기 힘든 인내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안네는 그 좁은 은신처의 생활을 때론 어른스럽게, 때론 투정을 부리듯 일기장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안네의 일기>를 떠올리면 잔혹한 전쟁의 두려움에서도 꼿꼿하게 자신을 세운 모습을 기억하곤 합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은둔생활은 녹녹치 않습니다. 가족간의 갈등, 오랜 은신 생활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외로움, 좌절감, 살아남기 위해 견뎌야했던 불결한 생활환경등 밖에서 혼란스러운 전쟁과 함께 안네는 자신이 겪어야 하는 혼란함. 즉 사춘기의 질풍노도를 함께 겪어냈기 때문에 독자들의 안타까움은 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안네는 이성에 대해 눈을 뜹니다. 그 복잡한 생활속에서 무슨 사랑의 감정이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춘기의 여정은 당연한 성장통이죠. 안네의 불안한 은신처 생활은 이 성장통으로 잠시 분홍빛을 밝히기도 합니다.
1944년 7월. 안네는 전쟁이 끝날 듯한 상황에 들뜹니다. 하지만 조심스러움도 여전합니다. 행여 끝나지 않을 전쟁을 한가지 뉴스로 너무 크게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라며 스스로 다독이기도 합니다. 은신처의 생활은 안네의 생각을 무척 어른스럽게 바꿔놓았던 겁니다.
하지만 이런 바램도 허무하게 안네의 일기는 1944년 8월 1일을 마지막으로 끝이납니다. 은신처가 밀고로 발각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수용소에 갇힙니다. 병으로 죽고, 충격으로 죽고, 마지막 생존자 안네의 아버지 손에는 안네의 일기장만이 남겨집니다. 딸아이가 그토록 원했던 작가의 꿈을 아버지는 그녀의 일기장으로 이루어줍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그녀의 일기는 안타깝고, 슬프게, 때론 눈물과 함께 미소짓는 그런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읽혀집니다.
정말 오랫만에 읽은 <안네의 일기>입니다. 엄마라는 타이틀을 짊어지고 있어서인지, 여린 소녀의 발버둥치든 그 감성을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담담하게 읽어가는 딸아이보다 엄마가 더 눈물을 흘렸습니다.
좁은 수용소의 생활을 잘 견뎠었구나..그래도 살아남았었다..라는 말은 위로가 되질 않습니다. 글 속에 남아있는 안네에게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시간, 그 시절을 고스란히 보고 기록으로 남겼다는 자체만으로도 독자들이 <안네의 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
|
내게도 일기장에 이름을 붙이던 시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였던가... 처음 '안네의 일기'를 읽고 안네를 따라 그랬던 기억이 난다. 다만 내 일기장의 이름은 몇 번 바뀌었었다. 처음엔 '키티'처럼 마음 속의 친구로 시작되었지만, 정말 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상대의 이름을 지닌 때도 있었다. 그 어떤 때이든 일기장은 나를 담아주었다. 그 때... 세상은 너무나 불합리하고, 어른들은 모두 비겁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으며, 막 품기 시작한 꿈은 너무나 멀고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았던 그 때...... 내가 말하고 내가 듣던 밤들 속에 일기는 '나' 자신이면서 '나' 이상의 존재였다. 그리고, 유일하게 '한번 내뱉은 말도 주워담을 수 있는 곳'이었다. 여기 안네처럼, 나도 여러번 '내가 전에 왜 그랬었지? 어떻게 됐었나 봐. 잊어줘.'하고 말했고 그러면, 그 전의 어린 나는 용서되었고 이해되어졌다.
내가 안네와 비슷한 나이였을 때 읽었던 '안네의 일기'를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읽으며 가끔은 웃고 가끔은 설레면서도, 계속 슬펐다. 말할 수 없이...... 이 총명하고 용기있는 소녀가 어떻게 세상을 떠나게 되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모든 반짝임이 아팠다. 특히, 안네의 일기에서 그 시절의 내가 보일 때...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음에서 오는 고독감, 엄마에게 사랑을 느낄 수 없다는 이유로 비교적 딱딱하다고 느껴지는 호칭인 '어머니'를 사용하는, 그 시기 특유의 단호하면서도 유치함, 세상에서 잊히고 마는 인생을 살지 않겠다는 결의와 확신, 어른들의 어리석음과 무분별함에 대한 분노에 불타올라, 그냥 읽어도 빛의 속도로 휘갈겨 써 내려갔음이 분명한 페이지들...... 나와 비슷한 시간들을 지냈던 이 생기넘치는 소녀가 여전히 또 영원히 '소녀'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겨졌음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녀가 안타까워질수록, 사랑스러워질수록 이 잔혹한 세계가, 전쟁이, 인간이 증오스러워진다. 어떤 정의인가? 어떤 명분인가? 이 소녀의 자유와 숨결을 빼앗을 만한 것은?
2년이라는 시간을 하늘 한번 마음껏 바라보지 못했던, 그저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고 세상을 바라보고 젊음을 만끽하고 내가 자유로운 사실을 깨닫고 싶었던,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간절했던 안네...
그러나, 그 아이의 저녁기도는 이러했다. "선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세상에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
지금도 이 세계 곳곳에선 어른들의 탐욕 탓에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이 굶주리고 아프고 죽어간다. 또다른 안네들... 수만의 안네들... 그리고 지금도, 그 아이들의 눈망울은 반짝인다. 작은 손길 하나에, 목마름을 축여주는 물 한 모금에 기뻐한다. 아이들은 이 처참한 순간에도 "선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움"을 본다. 믿는다. 왜냐하면... 그들 자체가 선하고 소중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일기 속 안네는 우리에게 흑백의 '영원한 소녀'로 남았지만, 또다른 안네들은 자라서 어른이 된 모습들을 보고 싶다. 그렇게.... 안네의 그 믿음을 우리 모두가 가지게 되기를 소망한다. |
|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읽히는 책은 나름의 이유가 분명 있다. 안네의 읽기가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손에 들리는 이유가 뭘까? 솔직히 이번에 안네의 읽기를 읽으면서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많이 했기에 이런 물음을 던져볼 수 있었다. |
|
모순덩어리를 주제로 안네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끝나는 안네의 일기의 마지막 장을 넘긴다. |
|
안네는 알까? 자신이 외로웠던 만큼, 그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좁은 공간에서 8명이라는 인원이 부대껴 살아가다보면 같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남아있는 감정이라고는 서로에 대한 분노밖에 보여 줄 수 없는 순간말이다.
수다쟁이 안네, 말광량이 안네를 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그닥 곱지 않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안네는 엄마에게 조차 환영을 받지 못하고 반단 부부와 뒤셀 아저씨와도 싸우기 마련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어린 애라는 이유로 참아야 하는 안네는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어른들이 밉다. 13살 소녀의 눈에 비친 어른들은 이해심 많고 너그러운 모습이 아니라 자기 밖에 모르고 양보심 없는 욕심쟁이다. 칭찬보다는 비난과 꾸지람에 익숙한 어른들 속에서 안네는 이런 자신이 오히려 이상한 아이는 아닐까하고 고민한다. 죄책감과 자의식 속에서 시시때때로 마음이 바뀌는 안네를 지켜보기가 안쓰럽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을 상대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언니 마고트는 늘 모범생이고 반단 부부의 아들 페터는 가까이 하기엔 거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빠의 관심에 감사하고 엄마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어쩌다 마주하게 되는 자연과 푸른 하늘, 바람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지긋지긋한 은신처 생활 중에서도 자신과 가족들이 안전함에 대해 감사하고 감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친구! 바로 키티라는 자신만의 일기장을 가지게 됨으로써 안네는 그렇게 힘든 은신처 생활을 견뎌내는데.
하지만 그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최소한 내 생각과 감정을 이렇게 써내려 갈 수 있다는 거야. 그렇게라도 하지 못했다면 난 아마 숨 막혀 죽었을지도 몰라! -본문 235 쪽 부분 발췌
일기라는 대상을 통해 안네는 공포의 시간을 견딘다. 무료함과 지루함을 견디고 분노와 두려움을 견딘다. 안네에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 붓는 배설의 시간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시시각가 변해가는 안네의 마음을 들여보다 보면 사춘기 소녀의 절망과 행복을 만나게 된다. 엄청난 폭격 소리와 비행기 소리에 떨며 때로는 죽음 앞에서조차 초연해진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이 끝난 뒤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하며 마냥 행복해하는 귀여운 소녀를 본다.
왜 안네의 엄마는 안네에게 좀 따뜻하게 대해 주지 않았을까! 그녀의 딸이 얼마나 엄마의 사랑에 목마르고 굶주려 했는데 말이다. 하긴 안네 역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했고 엄마를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못했다. 인간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부모 자식 간에 어색한 거리감을 두게 된다면 글쎄!!!
내 아들은 내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지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안네의 일기가 2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 쓰여졌다는 특징이 있긴 하지만 그러한 이유를 떠나 사춘기 소녀를 만나는 부모의 입장에서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페터에게 느꼈던 감정으로 세상이 아름답기도 했던 안네는 끝내 자유의 순간을 보지 못 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만 극적으로 살아 남아 안네의 일기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지만 딸이 쓴 일기를 보고 얼마나 아픈 눈물을 흘렸을까 생각하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안네의 일기는 1944년 8월 1일 화요일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아직도 안네의 일기가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건 많은 사람들이 예쁜 웃음을 간직한 말괄량이 안네를 기억하고 그녀의 고민과 장난에 기꺼이 시간을 허락해 줄 용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
|
안네가 처음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은 열세 살 때다. 은둔 초창기 안네는 자기중심으로 사건과 사물을 보고 있다.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에게 다가오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쏟아 놓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 인간의 허영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히 이야기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는 더 많이 사랑 받고 칭찬을 받는 것에 대하여 힘겨워했다. 엄마의 사랑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엄마와의 갈등을 쉽게 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년이 지난 후 열다섯 살의 안네는 주변을 보다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보고 있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힘도 훨씬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은 계속 되고 은둔 생활도 계속 된다. 오랜 은둔 생활에서 오는 두려움과 불안은 긴장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보물창고 판에서는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다. 은신처에서 안네는 메일 페터를 보면서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또래로서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고 열다섯 살 무렵에는 페터를 이성으로 보기 시작한다. 보물창고 판에서는 많이 순화되어 있으나 문학사상사 판에서 안네가 혼자 상상하는 부분은 또 다르게 느껴진다. <<안네의 일기>>는 전쟁, 은신생활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좁은 공간에서 일상으로 부딪히는 사람들과의 갈등을 어떻게 풀고 있는가, 사춘기 소녀가 이성에 눈떠가는 과정을 눈여겨 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전에 내가 읽은 책에서 사춘기라는 큰 강을 건너는 안네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것을 보기가 힘들었다.
사실, 나는 <<안네의 일기>> 한 권을 거의 한 달간 보았다. 공부하는 책도 아니고 읽다가 재미없으면 집어 던지면 되지 미련스럽게 책을 잡고 있느냐고 누군가는 분명 말을 했을 것이다. 그랬다. 나도 책을 펼쳤다 덮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은 어려워서 어떤 책은 재미가 없어서 일기를 포기하곤 했다. 그런 내가 왜 새삼스레 이 <<안네의 일기>>는 이렇게 미련을 가지게 되었을까? 난 안네의 이야기를 네 번째 읽는다. 각기 다른 출판사의 다른 번역자의 글을 읽었다. <<안네의 일기>>라는 책을 읽고 가장 인상이 깊었던 책은 문학사상사에서 홍경호씨의 번역으로 나온 책이었다. 그 전까지 <<안네의 일기>>를 읽었을 때는 단순히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붙인 전쟁문학으로서의 일기였다. 그러다 문학사상사 판을 만나면서 <<안네의 일기>>가 단순히 전쟁문학만이 아닌 성장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보물창고에서 나온 <<안네의 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 책이 이렇게 어려운거였나?’ 였다. 전에는 별 어려움 없이 읽었던 책이었는데 이해가 안 되었다.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안네의 일기>>를 책장에서 빼왔다. 두 번째 들었던 생각은 ‘어떤 책을 원본으로 놓고 번역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이럴 때 다른 언어가 되는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 영어판이나 다른 언어로 된 책을 비교해서 보면 나름대로 이해의 폭이 커질테니까 말이다. 다른 언어판 <<안네의 일기>>를 볼 능력은 안 되고 나의 이해를 도와 줄 다른 책으로서 문학사상사의 <<안네의 일기>>를 나란히 두고 두 책을 견주어 가며 보게 되었다. 보물창고 판과 문학사상사 판 <<안네의 일기>>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보물창고 판은 구어체로 일기가 번역 되어 있고 문학사상사 판은 문어체로 일기가 번역 되어 있다. 구어체의 문장은 가벼운듯한 느낌이었고 문어체의 문장은 정중한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며 들었던 전체적인 느낌이 문체 탓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안네의 일기>>는 구어체 보다는 문어체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번역자의 작품으로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번역의 어려움이다. 전체적으로 어떤 번역이 더 좋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최지현씨의 번역이 더 잘 와 닿고 또 다른 데서는 홍경호 번역이 더 잘 와 닿았다. 번역의 문장으로 무리가 없다는 이유로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을 건너뛰고 번역한 듯한 느낌을 받은 부분이 많이 있었다. 아무튼 내게는 너무 어려운 책 읽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