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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황홀한 블랙 존 하비/윤영삼 위즈덤하우스/2017.4.3. sanbaram 우리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했었다. 흰옷을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인데 거기엔 이유가 있다. 다른 채색의 옷을 입기위해서는 염색하는 일부터 관리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흰옷과 검정, 그리고 염색하기 좋은 갈색 옷을 많이 입은 것 같다. 흰색과 검정색은 또한 죽음과 관계된 색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상가 집에서 주로 흰색 옷을 입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가 집에 갈 때 검은 색을 주로 입는다. 검은 색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이나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는 책이 <이토록 황홀한 블랙>이다. 저자는 소설가이자 비평가이며 케임브리지 대학 엠마누엘칼리지 종신교수이다. 우리가 입는 옷에 관련된 검은색의 역사를 정리한 『블랙패션의 문화사』도 출간되었다. <이토록 황홀한 블랙>은 더 완벽한 검은색의 역사를 서술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집필되었다고 한다. 색깔, 패션, 종교, 인류학, 예술을 넘나드는 서술방식으로 ‘주제의 범위와 밀도, 독창적인 관점과 정보의 양 측면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역작’이라는 평을 얻었다. 이 책에서는 검은 색과 빛은 어떤 관계인가, 우리가 검은 색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검은 색은 색깔인가 아닌가 하는 검은 색과 관련된 기본적인 쟁점들을 다룬다. 1장 태초의 검은 어둠, 2장 죽음과 공포의 색, 3장 성과 속, 불투명과 영원의 경계, 4장 세속적인 검은 색, 5장 어둠을 그린 카라바조와 램브란트, 6장 멜랑콜리 : 죄로 물든 색, 7장 흑색 피부에 대한 짙은 경멸, 8장 이면의 색, 의미의 전복, 9장 영국의 검은 시대 : 격렬한 불안의 색, 10장 여전히 반복되는 블랙의 역사. 등 10개의 주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다빈치는 검은색은 색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검은색은 다른 색깔을 돋보이게 만드는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검은색에 열광한 예술가들도 있었다. 프랑스의 화가 앙리 마티스는 ‘검은 색은 힘’이라고 표현했고,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검은색을 ‘색의 여왕’이라고 했으며,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는 ‘색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은 검은 색’이라고 말했다.(p.7) “기독교의 검은빛 세계는 아담, 케인, 함에서 멈추지 않는다. 악과 죄가 검은색이라면, 악마와 그들의 부하들도 타락한 이후 줄곧 검은색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4세기 <바나바의 편지>에서는 악마를 ‘검은 자’라고 지칭하며, 기독교 역사에 등장하는 온갖 악마들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검은 악마’라고 부른다.(p.122)” 성베네딕토의 일화를 생생하게 조각한 작품에서 그는 도깨비처럼 생긴 작은 악마에게 끌려 다니는 타락한 수도사를 회초리로 내려치는데, 그 악마 역시 검은 색이다. “전장에서 검은 깃발은 응징을 상징하기도 했지만 메시아를 상징하기도 했다. 최후의 심판의 날 구세주 마흐디가 동쪽에서 성스러운 군대를 이끌고 메카로 올 때에도 새까만 깃발을 휘날리며 온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무함마드의 남자 후손들은 검은 터번을 쓴다.(p.149)” 이슬람 세계에서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금기이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 흰 베일로 가려져 있다. 무함마드의 딸이자 알리의 아내인 파티마는 파란색 옷을 입고 뒤에 서 있는데, 무함마드처럼 얼굴을 흰 베일로 가리고 있고, 그 주위로 황금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는 쿠라이시족의 전통에 따라 검은 옷을 입고 초록색 터번을 둘렀다. 이후 초록색 터번은 메카 성지순례를 다녀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식으로 사용된다. “검은 옷이 유행을 휩쓸던 시기에 화단에서도 검은색이 급부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물꼬를 튼 사람이 바로 카라바조였으며, 그의 혁신은 빠르게 모방되어 퍼져나갔다.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로 157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가까운 카라바조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본명보다 자신이 태어난 마을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p.197)” 카라바조의 작품은 ‘키아로스쿠로’라는 미술용어의 전형적인 사례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키아로스쿠로는 이탈리아어 ‘밝다’와 ‘어둡다’의 합성어로 ‘명암법’이라고도 한다. 카라바조의 강렬한 명암대비 기법은 이후 회화, 조각, 사진, 영화 등 여러 예술 분야에서 무수히 모방되었다. 특히 루벤스를 통해 카라바조의 명암대비 화법은 네덜란드로 건너가 젊고 어두운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마침내 플랑드르와 이곳에서 가까운 홀랜드 지역에 ‘카라바지스티’라고 하는 화풍을 만들어 냈다. 더 젊고 더 독립적인 이 예술가들은 ‘키아로스쿠로’명암법을 한층 더 발전 시켰다.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 이전만 해도 아프리카인을 언급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인이 셰익스피어의 가장 유명한 두 희곡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을 맡으면서 아프리카는 셰익스피어에게, 또 그 시대 영국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영국인들이 노예무역에 나서기 전 아프리카인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보여준다.(p.285)”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검은색에 민감하다. 그의 비극에는 알 수 없는 어둠의 감각이 우리 몸을 옥죄듯 휘감고 있다. 그 느낌은 고대 그리스 비극보다 훨씬 강렬하다. “클레오파트라의 검은 피부는 단순히 햇볕에 그을린 것이 아니라, 태양신 포이보스의 끊임없이 불타는 욕정의 손길에 멍이 든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 등장한 소네트의 여인처럼 클레오파트라에게서도 거부할 수 없는 성적인 매력이 넘친다. 클레오파트라는 ‘매춘부’이자 ‘세 번이나 바람을 피운 음탕한 여자’이며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정부였다. 그녀는 늘 새로운 연인을 ‘호사스럽고 음탕하게 골라 뜨거운 시간’을 즐겼다.(p.288)”오늘날 과학에서는 검은 피부색이 멜라닌이라는 색소의 피부 보호기능 때문에 진화한 것으로 설명한다. 적도가 지나가는 아프리카, 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북부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렬한 태양복사열을 받는 곳으로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수십만 년에 걸쳐 진화를 통해 검은 색소가 피부 층에 침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유전적 계보학을 따질 때 아프리카인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원주민보다 유럽인과 유전적으로 훨씬 가깝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피부가 모두 까만 것은 각자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온 결과라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일깨워 준다. “역사적으로 검은 옷은 대개 반란자들, 또는 남들보다 불리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역경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이 주로 입었다. 중세에는 성직자들이 정부 관리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교회의 검은 옷이 ‘어둠의 시대’를 만들어 냈고, 16세기에는 급부상한 상인들과 유대인 공동체들이 주로 검은 옷을 입었으며, 19세기에는 새롭게 출현한 엔니지어들과 산업자본가들이 검은 옷을 입었다.(p.477)” 검은색은 이처럼 무겁고 신중하고 결연한 이미지를 주는 덕분에, 방탕한 엘리트 지배층을 뒤에서 면밀하게 감시하고 비판하고 전복하고자 하는 집단이 즐겨 입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20세기 여자들이 눈에 띄든 안 띄든 검은 옷을 즐겨 입었던 것은, 20세기가 남자들이 드리운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동등한 존재로서 권리를 찾기 위한 여자들의 투쟁의 시기였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옷이나 타일, 책, 체스보드에서 볼 수 있듯이 검은색과 흰색의 조합이 시각적으로 아주 잘 작동하는 이유는 아마도 대비는 강렬한 반면 빛의 파장은 똑같이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밝은 것을 우리는 하얗다고 하는데, 이는 스펙트럼상에서 색깔이 모두 합해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하얀색이라고 부르기 때문일 것이다.(p.539)” 죽음의 색깔은 서양에서 검은 색이지만 동양에서는 흰색이다. 서양에서 상복은 오랫동안 검은색, 새까만 색깔이었던 반면, 인도의 동쪽 지역에서는 대개 하얀색이다. 특히 여자가 그 색깔 옷을 입고 있을 때 사람들은 상복을 떠올린다. 런던의 젊은 여성이 새까만 옷을 입고 결혼식에 가기를 주저하듯이, 델리에서는 하얀 사리를 입고 결혼식에 가는 것은 결례가 된다. 아프리카에서도 하얀색은 죽음의 향기를 풍긴다고 저자는 말한다. 검은색은 과학적 설명 이전에 인류가 많이 활용해온 색이다. 또한 여러 가지 목적에 의해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시대에 따라 사용된 범위나 의미에 변화가 있었다. 흰색과 함께 사용하여 명암의 대비를 극대화 하는 색이기도 한 이 무채색에는 인류 문화가 깃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휘황찬란한 색채가 생활 곳곳에 스며든 현재도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검은 색의 매력은 인간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색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검은 색의 매력에 빠지도록 유도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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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황홀한 블랙 존 하비/윤영삼 위즈덤하우스/2017.4.3. sanbaram
우리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했었다. 흰옷을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인데 거기엔 이유가 있다. 다른 채색의 옷을 입기위해서는 염색하는 일부터 관리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흰옷과 검정, 그리고 염색하기 좋은 갈색 옷을 많이 입은 것 같다. 흰색과 검정색은 또한 죽음과 관계된 색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상가 집에서 주로 흰색 옷을 입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가 집에 갈 때 검은 색을 주로 입는다. 검은 색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이나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는 책이 <이토록 황홀한 블랙>이다. 저자는 소설가이자 비평가이며 케임브리지 대학 엠마누엘칼리지 종신교수이다. 우리가 입는 옷에 관련된 검은색의 역사를 정리한 『블랙패션의 문화사』도 출간되었다.
<이토록 황홀한 블랙>은 더 완벽한 검은색의 역사를 서술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집필되었다고 한다. 색깔, 패션, 종교, 인류학, 예술을 넘나드는 서술방식으로 ‘주제의 범위와 밀도, 독창적인 관점과 정보의 양 측면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역작’이라는 평을 얻었다. 이 책에서는 검은 색과 빛은 어떤 관계인가, 우리가 검은 색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검은 색은 색깔인가 아닌가 하는 검은 색과 관련된 기본적인 쟁점들을 다룬다. 1장 태초의 검은 어둠, 2장 죽음과 공포의 색, 3장 성과 속, 불투명과 영원의 경계, 4장 세속적인 검은 색, 5장 어둠을 그린 카라바조와 램브란트, 6장 멜랑콜리 : 죄로 물든 색, 7장 흑색 피부에 대한 짙은 경멸, 8장 이면의 색, 의미의 전복, 9장 영국의 검은 시대 : 격렬한 불안의 색, 10장 여전히 반복되는 블랙의 역사. 등 10개의 주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다빈치는 검은색은 색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검은색은 다른 색깔을 돋보이게 만드는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검은색에 열광한 예술가들도 있었다. 프랑스의 화가 앙리 마티스는 ‘검은 색은 힘’이라고 표현했고,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검은색을 ‘색의 여왕’이라고 했으며,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는 ‘색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은 검은 색’이라고 말했다.(p.7)
“기독교의 검은빛 세계는 아담, 케인, 함에서 멈추지 않는다. 악과 죄가 검은색이라면, 악마와 그들의 부하들도 타락한 이후 줄곧 검은색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4세기 <바나바의 편지>에서는 악마를 ‘검은 자’라고 지칭하며, 기독교 역사에 등장하는 온갖 악마들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검은 악마’라고 부른다.(p.122)” 성베네딕토의 일화를 생생하게 조각한 작품에서 그는 도깨비처럼 생긴 작은 악마에게 끌려 다니는 타락한 수도사를 회초리로 내려치는데, 그 악마 역시 검은 색이다.
“전장에서 검은 깃발은 응징을 상징하기도 했지만 메시아를 상징하기도 했다. 최후의 심판의 날 구세주 마흐디가 동쪽에서 성스러운 군대를 이끌고 메카로 올 때에도 새까만 깃발을 휘날리며 온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무함마드의 남자 후손들은 검은 터번을 쓴다.(p.149)” 이슬람 세계에서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금기이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 흰 베일로 가려져 있다. 무함마드의 딸이자 알리의 아내인 파티마는 파란색 옷을 입고 뒤에 서 있는데, 무함마드처럼 얼굴을 흰 베일로 가리고 있고, 그 주위로 황금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는 쿠라이시족의 전통에 따라 검은 옷을 입고 초록색 터번을 둘렀다. 이후 초록색 터번은 메카 성지순례를 다녀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식으로 사용된다.
“검은 옷이 유행을 휩쓸던 시기에 화단에서도 검은색이 급부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물꼬를 튼 사람이 바로 카라바조였으며, 그의 혁신은 빠르게 모방되어 퍼져나갔다.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로 157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가까운 카라바조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본명보다 자신이 태어난 마을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p.197)” 카라바조의 작품은 ‘키아로스쿠로’라는 미술용어의 전형적인 사례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키아로스쿠로는 이탈리아어 ‘밝다’와 ‘어둡다’의 합성어로 ‘명암법’이라고도 한다. 카라바조의 강렬한 명암대비 기법은 이후 회화, 조각, 사진, 영화 등 여러 예술 분야에서 무수히 모방되었다. 특히 루벤스를 통해 카라바조의 명암대비 화법은 네덜란드로 건너가 젊고 어두운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마침내 플랑드르와 이곳에서 가까운 홀랜드 지역에 ‘카라바지스티’라고 하는 화풍을 만들어 냈다. 더 젊고 더 독립적인 이 예술가들은 ‘키아로스쿠로’명암법을 한층 더 발전 시켰다.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 이전만 해도 아프리카인을 언급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인이 셰익스피어의 가장 유명한 두 희곡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을 맡으면서 아프리카는 셰익스피어에게, 또 그 시대 영국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영국인들이 노예무역에 나서기 전 아프리카인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보여준다.(p.285)”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검은색에 민감하다. 그의 비극에는 알 수 없는 어둠의 감각이 우리 몸을 옥죄듯 휘감고 있다. 그 느낌은 고대 그리스 비극보다 훨씬 강렬하다.
“클레오파트라의 검은 피부는 단순히 햇볕에 그을린 것이 아니라, 태양신 포이보스의 끊임없이 불타는 욕정의 손길에 멍이 든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 등장한 소네트의 여인처럼 클레오파트라에게서도 거부할 수 없는 성적인 매력이 넘친다. 클레오파트라는 ‘매춘부’이자 ‘세 번이나 바람을 피운 음탕한 여자’이며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정부였다. 그녀는 늘 새로운 연인을 ‘호사스럽고 음탕하게 골라 뜨거운 시간’을 즐겼다.(p.288)”오늘날 과학에서는 검은 피부색이 멜라닌이라는 색소의 피부 보호기능 때문에 진화한 것으로 설명한다. 적도가 지나가는 아프리카, 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북부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렬한 태양복사열을 받는 곳으로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수십만 년에 걸쳐 진화를 통해 검은 색소가 피부 층에 침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유전적 계보학을 따질 때 아프리카인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원주민보다 유럽인과 유전적으로 훨씬 가깝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피부가 모두 까만 것은 각자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온 결과라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일깨워 준다.
“역사적으로 검은 옷은 대개 반란자들, 또는 남들보다 불리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역경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이 주로 입었다. 중세에는 성직자들이 정부 관리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교회의 검은 옷이 ‘어둠의 시대’를 만들어 냈고, 16세기에는 급부상한 상인들과 유대인 공동체들이 주로 검은 옷을 입었으며, 19세기에는 새롭게 출현한 엔니지어들과 산업자본가들이 검은 옷을 입었다.(p.477)” 검은색은 이처럼 무겁고 신중하고 결연한 이미지를 주는 덕분에, 방탕한 엘리트 지배층을 뒤에서 면밀하게 감시하고 비판하고 전복하고자 하는 집단이 즐겨 입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20세기 여자들이 눈에 띄든 안 띄든 검은 옷을 즐겨 입었던 것은, 20세기가 남자들이 드리운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동등한 존재로서 권리를 찾기 위한 여자들의 투쟁의 시기였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옷이나 타일, 책, 체스보드에서 볼 수 있듯이 검은색과 흰색의 조합이 시각적으로 아주 잘 작동하는 이유는 아마도 대비는 강렬한 반면 빛의 파장은 똑같이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밝은 것을 우리는 하얗다고 하는데, 이는 스펙트럼상에서 색깔이 모두 합해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하얀색이라고 부르기 때문일 것이다.(p.539)” 죽음의 색깔은 서양에서 검은 색이지만 동양에서는 흰색이다. 서양에서 상복은 오랫동안 검은색, 새까만 색깔이었던 반면, 인도의 동쪽 지역에서는 대개 하얀색이다. 특히 여자가 그 색깔 옷을 입고 있을 때 사람들은 상복을 떠올린다. 런던의 젊은 여성이 새까만 옷을 입고 결혼식에 가기를 주저하듯이, 델리에서는 하얀 사리를 입고 결혼식에 가는 것은 결례가 된다. 아프리카에서도 하얀색은 죽음의 향기를 풍긴다고 저자는 말한다.
검은색은 과학적 설명 이전에 인류가 많이 활용해온 색이다. 또한 여러 가지 목적에 의해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시대에 따라 사용된 범위나 의미에 변화가 있었다. 흰색과 함께 사용하여 명암의 대비를 극대화 하는 색이기도 한 이 무채색에는 인류 문화가 깃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휘황찬란한 색채가 생활 곳곳에 스며든 현재도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검은 색의 매력은 인간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색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검은 색의 매력에 빠지도록 유도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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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책의 첫머리부터 인용하고 있는 것은 “검은색은
색이 아니다”라는 레오나드로 다 빈치의 글이다. 그럴 만했다. 가장 불투명하고,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색이 바로 검은색이다(그럼에도 그 색을 우리는 색이라 부른다). 그러나 역시 저자가 인용하고
있듯이 검은색을 힘이라 표현한 마티스라는 화가도 있고, 색의 여왕이라 칭한 르누아르도 있다. 또 어떤 화가는 가장 아름다운 색이 바로 검은색이라고도 했다. 검은색은
극단(極端)의 색이다.
존 하비는 검은색에 관한 역사를 쓰고 있다. 그 역사는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해서 현대에 이르고 있고, 문학과
그림, 패션, 그리고 종교 등에 걸치고 있다.
검은색의 이미지는 대체로 전 역사에 걸쳐 죽음과 공포 등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저자는 검은색의 역사를 ‘침략의 역사’에 비유하고 있다. 공포스러운
영역에 주로 머물러 있던 검은색이 점차 우리에게 친숙한 색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공포를 조금씩 점령해나갔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니, 내 앞에 바로 놓인 스마트폰의 케이스도 바로 검은색이다. 나는 왜
이 색을 선택했는가? 검은색이 단지 공포만을 상징한다 여겼으면 이 색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색채 감각에서 검은색을 아주 세련된 색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무척 높다. 비록
내 색채 감각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지만 말이다.
색이란 게 연속선상에 놓인 파장의 어느 범위를 가리키는 것인 만큼 어떤 색을 지칭했을 때 그 색이
가리키는 색이 하나가 아니다. 검은색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의미는 좀 다르다. 즉, 파란색이라고 했을 때의 그 파란색의
범위가 의미하는 것과 검은색이라고 했을 때 그 검은색의 범위가 의미하는 게 어쩐지 다르게 여겨진다. 파란색의
범위는 그 파란색의 종류가 다른 것 같지만, 검은색의 범위는 그 검은색에 다른 색이 침투한 정도를 의미하는
것 같다. 하얀색, 혹은 빛이 침투한 정도, 혹은 파란색이나 빨간색이 침투한 정도 등. 그러니 검은색은 깊이이고, 그러므로 심연(深淵)에
대한 욕망인 셈이다. 그러나 어쩌면 순수한 검은색은 없을 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 검은색의 역사가 단순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검은색을 자유자재로
다룬 카라바조, 베르메르나 렘브란트 같은 화가의 그림도 아니고, 검은색을
패션으로 반복적으로 사용해온 역사도 아니다. 바로 검은색의 피부에 대한 경멸의 역사가 가장 강렬하다. 기독교가 유럽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서 검은색 피부에 대한 인식에 변곡점이 생겼고, 또한 근대 이후 식민 시대를 거치면서 검은색 피부를 지닌 인간에 대한 지배를 당연시 여기기 위해 검은색에 대한
경멸이 공고화되었다. 그러나 검은색의 피부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피부에
존재하는 한 색소(멜라닌)의 정도에 따른 짙음의 정도만 다른
것을 특정 색깔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인간에 대한 경멸을 정당화해온 부끄러운 역사가 인간에게 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결국, 사람의 피부색을 갈색이라고 말하기보다 ‘붉다, 누렇다, 까맣다’고 묘사하는
것은 차별을 암묵적으로 의도하는 표현일 수 밖에 없다.” “’검둥이’라는 표현은 우리 내면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모두 꺼내 아프리카인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심리적 ‘불법투기’를 조장한다.”
그래서 사실은 이 책의 우리말 제목 “이토록 황홀한
블랙”은 이 암울한 역사를 제외해버리고 있기도 하다.
검은색의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검은색을 대하는 태도는 그때 그때 다르다.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저자는 그러한 색감에 대한 복잡미묘한 사회적 반응은 ‘문화만의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 느리고 거대한 리듬은 분열된 사회 안에서도 통합의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고 있다. 검은색, 이 단순해 보이는 색이 이처럼 풍부한 역사를 지니고 있고, 다양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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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황홀한 블랙>은 더 완벽한 검은색의 역사를 서술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집필되었다고 한다. 색깔, 패션, 종교, 인류학, 예술을 넘나드는 서술방식으로 ‘주제의 범위와 밀도, 독창적인 관점과 정보의 양 측면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역작’이라는 평을 얻었다. 이 책에서는 검은 색과 빛은 어떤 관계인가, 우리가 검은 색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검은 색은 색깔인가 아닌가 하는 검은 색과 관련된 기본적인 쟁점들을 다룬다. 1장 태초의 검은 어둠, 2장 죽음과 공포의 색, 3장 성과 속, 불투명과 영원의 경계, 4장 세속적인 검은 색, 5장 어둠을 그린 카라바조와 램브란트, 6장 멜랑콜리 : 죄로 물든 색, 7장 흑색 피부에 대한 짙은 경멸, 8장 이면의 색, 의미의 전복, 9장 영국의 검은 시대 : 격렬한 불안의 색, 10장 여전히 반복되는 블랙의 역사. 등 10개의 주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다빈치는 검은색은 색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검은색은 다른 색깔을 돋보이게 만드는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검은색에 열광한 예술가들도 있었다. 프랑스의 화가 앙리 마티스는 ‘검은 색은 힘’이라고 표현했고,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검은색을 ‘색의 여왕’이라고 했으며,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는 ‘색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은 검은 색’이라고 말했다.(p.7) “기독교의 검은빛 세계는 아담, 케인, 함에서 멈추지 않는다. 악과 죄가 검은색이라면, 악마와 그들의 부하들도 타락한 이후 줄곧 검은색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4세기 <바나바의 편지>에서는 악마를 ‘검은 자’라고 지칭하며, 기독교 역사에 등장하는 온갖 악마들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검은 악마’라고 부른다.(p.122)” 성베네딕토의 일화를 생생하게 조각한 작품에서 그는 도깨비처럼 생긴 작은 악마에게 끌려 다니는 타락한 수도사를 회초리로 내려치는데, 그 악마 역시 검은 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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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을 볼 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될까? 슬픔과 상실로 가득한 장례식장의 상복, 최신 전자기기를 감싸고 있는 모던함의 상징 등 생각해보면 전혀 하나의 이미지로 통일되지 않는다. 책 머리에 인용되는 “검은색은 색이 아니다”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정의처럼, 모든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은 일종의 어둠이라 할 수 있으며 빛의 파장으로 분류되는 색깔 스펙트럼에 안착할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새카만 물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완벽한 검은색이라 할 수 없다. 이처럼 완전한 색으로 정의될 수 없는 검은색의 모호한 특성은 시대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해석되어 하나의 도구이자 상징으로 활용되어 왔다.
이 책은 검은색의 탄생에서부터 각 역사와 문화 속에서 어떻게 변주되어 왔는지, 검은색의 역사를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통해서 패션, 종교, 인류학, 예술 등 다양한 맥락 속의 검은색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담으려 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검은색의 역사라니..궁금해져 읽어볼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포스터로 활용할 수 있는 표지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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