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샀을까. 어차피 뻔히 예상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샀지만. 난 고등학생이다. 학교를, 지독하게 다니기 싫어하는 아이다. 학교도 공부를 덜 하는(솔직히 말하면 일반계에 비해 엄청나게) 실업게 고등학생이다. 덕분에 성적은 상위권이다. 아예 안 하진 않았으니까 상위권. 실업계 고등학교의 대부분이 시험 전에 선생님들이 답을 찍어주시고, 학생들은 답을 외우고 시험을 본다. 그래서 시험 전에 선생님이 찍어주는 답 좀 외우는 걸로 좋은 성적이 나온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실업계 고교가 마찬가진걸로 안다.) 이런 실업계 고교를 다니면서, 1학년 때 반 1등도 한 번 했고, 장학금도 한 번 탔다. 2학년 되서는 반 4등을 했다가, 저번엔 14등 정도로 크게 떨어졌지만. 우리 학교의 아이들은 모두 인형이다. 아침에 밥먹고 책가방 챙기고 학교가서 하루 종일 억지로 의자에 앉아 있다가 집에가고. 다니진 않았지만 다른 실업계 고교의 아이들도 모두 마찬가질거다. 일반계 고교의 아이들은 반대로 움직이는 인형이겠지? 공부하는 인형. 모 시간은 3~4명을 빼고 모두 잔다. 그 3~4명도 수업을 듣는게 아니고 딴 생각을 하는 거지만.(그 시간 선생님이 옛날 분이라 수업방식이 장난아니게 지루하다.) 그 외의 시간도... 제대로 집중을 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체육 음악을 포함해 4개 정도 되나? (여담이지만, 우리고등학교는 서울에 있는데, 내가 입학했을 때 인근 실업계 고등학교 중에서 편법을 쓴 모 고등학교와 함께 유일하게 정원이 꽉차게 입학한 곳이었다. 우리 학교가 우리나라 최악의 학교인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학교와 마찬가지인 학교가 일이백개가 될 것이다.) 아, 3학년은 제대로 공부 하나? 아이들이 왜 컴퓨터 게임에 중독될까? 아이들이 왜 공부를 안 할까? 대한민국 아이들이 왜 아시아 이기주의 적인 생각 1위로 뽑혔을까? (만약 아직도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놈이 있다면 이빨을 뽑아주고 싶다.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비도덕성은 어른들의 생각 이상이다.) 기타 등등. 쓰잘데기 없는 여기만 늘어놓았는데... 어차피 기대도 안 했지만, 이 책을 보다가 덮었다. 이 작가가 다닌 학교와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완전히 딴 세상을 얘기하는 것 같아서. 어디, 은하계 너머의 멋진 학교를 다녔는가 보다. 근데 난 이 작가가 말하는 그런 학교를 다닌적, 결코 없다. 쓸데없는 넋두리, 맞지만. 참 학교가 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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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오가는 요즘에 새삼스레 ‘왜 학교에 가야 하나요?’라고 묻는 제목에 책의 내용이 무지 궁금했다.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뭔가 파격적인 내용을 기대했던 것이다.
이 책은 청소년문고이지만 사실 편지를 받는 토비아스는 청소년이 아니라 어린이이다. 삼촌은 토비아스가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친철하게 자신의 어린 시절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와 주변의 이야기들을 사례로 들면서 설명해나간다. 아이들의 학교에서도 늘 일어날만한 일들이지만 현상을 객관화시켜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결론은 교육학자답게 늘 너무나 바람직한 이야기들이다. 학교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면 읽어볼 만하다. 그러나 뭔가 신선한 해결책이나 도발적인 의견을 기대하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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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아이들도 학교라는 작은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시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면서 나도 서서히 아이들의 원활한 사회 적응을 위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통해 학교에 가기 전에 예행연습을 하게 될 테지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훨씬 엄격한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이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참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토비아스처럼 ‘왜 학교에 가야 하나요?’란 질문을 나에게 던지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
스물일곱 편의 편지로 구성된 이 책은 그런 아이의 질문에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답을 해주고 있었다. 이 책 덕 분에 난 나중에라도 우리 아이들이 ‘왜 학교에 가야 하나요?’란 질문을 할 때 ‘당연히’라든가, ‘누구나’라든가 라는 억지스러운 답을 안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 스스로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는 아이에게 완벽한 답을 줄 수는 없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아이에게 필요한 답은 충분히 해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다시 간절히 원하게 된 것은 나중에 우리 아이가 제발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사회로 내딛는 첫발에 해당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부족한 것도 많을 테고, 실수도 많이 하게 될 것이었다. 때때로 많은 잘못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 때문에 좌절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되게 만들어 주는 데에는 선생님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 선생님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아이들은 많은 영향을 받게 되니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아이에게 좋은 어머니이자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학교만 바라보며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학교가 아이에게 모든 것을 채워주길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것들과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채워줄 수 있는 학교 밖의 또 다른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토비아스의 삼촌처럼 아이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아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 주는 멋진 선생님이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던 그렇지 않던 아이로부터 아마 이 질문을 한 번 쯤을 받게 될 것이다. “왜 학교에 가야 하나요?”란 질문을. 그 때를 위해 이 책은 학교 입학을 앞둔 어머니들과 입학생 맞이를 앞둔 선생님들이 꼭 한번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머니와 선생님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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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녀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던진 많은 질문 중에 왜 학교에 가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자녀보다 제가 먼저 던진 질문 중의 하나였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 왜 가야 하는지 안가면 안되는건지.스스로에게 한번 쯤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질문을 던져주고 제 나름 대로 답을 말해주었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내가 말해준 답은 빙산의 일각이 었던 것 같아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이 책은 작가인 하르무트가 어린 조카인 토비아스에게 재미있는 에피스드를 곁들여 편지글 형식으로 토비아스가 궁금해 하는 점을 속시원히 써내려간게 여타 책 보다는 독특하다고 느꼈습니다. 총 스물여섯통의 끊이지 않는 맥락을 이어가며 토비아스에게 학교라는 총체적 의미를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주고 있어 우리 자녀들에게도 내용이 쉽게 다가가리라 믿어요. 작가가 세계 여러나라를 경험하면서 토비아스가 궁금해 하는 학교는 왜 가야 하는지 ? 왜 배워야 하는지?,학교가 나쁠수도 있다는 점,좋은 학교는 어떤 학교를 말하는가?,학교는 정말 필요 한가?라는 큰 주제를 바탕으로 광범위 하게 독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학교라는 의미는 여러뜻이 있겠지만 아프리카 학교에서는 어떤걸 배우는지 그들의 학교에서 배우는걸 통해 학교에 가는것이 왜 좋은지를 작가는 어린 토비아스를 설득력 있게 경험을 살려 설명해주네요. 아이들의 작은 사회를 이루는 학교는 학교를 가야만 하는 필요성은 조금은 알것 같지만 요즘현대사회처럼 그냥 의무적이니까 다닌다는 의식이 더 팽배한것 같아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학교의 문제점인 학교폭력이나 왕따,등 학교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도 콕 짚어 말해주니 이 책을 통해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바로 잡고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 볼 만한 과제를 제시해준 좋은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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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트무트 폰 헨티히 글 / 김혜경 옮김 / 비룡소
독일의 한 교육학자가 자신의 어린 조카가 우연히 ‘왜 학교에 가야 하나요?’라는 물음에 성심 성의껏 조카에게 16통의 편지와, 그의 부모들에게 보내는 1통의 편지글로 학교의 필요성과 개선점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아이들이 보기보다 우리나라의 극성 학부모님들께서 먼저 읽어두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비해 사회는 풍요로워지고, 사교육도 돈만 있으면 자유롭게 시킬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학교가 존재해야 하는가? 막상 아이는 학교규칙과 귀찮음으로 이렇게 물어본 것일 수도 있지만, 이 노학자는 아이에게 답장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주제를 깊이 다루고 있다. 물론 글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교육학자는 아이라고 해서 이 글을 이해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한명의 인격자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중도에서 그만 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학교의 잘못도 아니지만, 개인의 잘못도 아니다. 오히려 잘잘못을 가리자면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입시제도를 지닌 사회제도와 학교의 모습을 제대로 정립시키지 못한 국가의 잘못이다. 요즘은 다행히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대안학교도 세워지고 여러 단체에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다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교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자신들이 학교 교육을 받아왔으면서도 그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그렇게 부정할 수 있다는 것조차 학교에서 배운 것인데 말이다. 날로 날로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재택수업을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다. 학교는 수업을 받고, 성적을 매기고,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여러 명이서 함께 생활해가면서 서로의 충돌을 조율해 가며, 자신의 이기심을 억제하는 법도 배우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법도 배운다. ‘나’에게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가정’, ‘국가’, ‘세계’로 자신의 마음을 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학교는 우리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해서 집에서 알려주는 것보다 체계적으로 배우고, 많은 기자재를 이용해서 더 다양하게 현상을 이해하는 법도 배운다. 그런 점에서 요즘 고교평준화나 고교 등급제 같은 문제에 대한 나는 솔직히 반대의 입장을 조심스럽게 내민다. 고교 평준화나 고교 등급제는 모두 아이들을 학업적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있다. 학교는 학원과 달리 학습만을 평가하는 곳이 아니다. 지·덕·체의 조화로운 인간상은 단지 표어에 불과할 뿐인가? 교육은 태초에 특권층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아테네 학당에서 더 많은 시민들에게 학습할 기회를 주기 위해 학교가 생겨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모습을 보면 과연 국민을 위한 학교인가, 학부모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학원인가를 안타까운 모습으로 바라보게 된다. 학교의 진정한 존재목적은 학생들에게 골고루 지식을 나누 주고, 함께 공동체 생활을 배워나가는 데 있다. 그런데도 하향평준화라는 논리로 학교를 신자유주의의 올가미로 묶어두려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부디 이 책을 읽어보고, 매번 실패한 미국의 교육제도를 모방해 올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알맞은 학교모습을 재정립 해나가야 할 것이다. 미국의 몇 년 전 모습을 바짝 쫓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왜 이 독일의 노학자가 말하는 것은 귀담아 듣지 못할까? 그들은 교육학과 교육과정만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믿고 있다. 아이들을 가장 잘 가르치는 방법은 사랑과 관심과 이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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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교가기가 싫다고 자주이야기를 하는 초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가 먼저 한번 다 읽고 그 다음에 아이와 같이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한번 책을 읽을때 마다 책이 내 마음에 든다고 생각되는 책이 있다 올해 읽은 몇권의 책중에서 이책이 그렇다. 지금은 생각은 반쯤의 성공이라고하나 할까! 먼저 나의 소개를 먼저해야 할것 같다 나는 2학년 5살 두아이를 둔 아빠이다. 초등학교 2학년 녀석은 학교후 방과후를 다닌다. 방과후는 옛날에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동네 아이들과 모여서 노는것이다. 아이들끼리 공기,오징어등 놀이를 하고 논다. 학교에서는 공부로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그런 아이와 대화로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다가 보니 내가 설명해도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 그부분은 아이의 눈에 맞추어 대하여 줄수 밖에 없다 그 눈을 맞추기 위한 일보 전진에 성공한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반쯤의 성공이라는 이야기를 한것이다.
지금 생각이지만 아이와 편지 하나 하나를 읽으면서 아이의 생각 나의 생각을 맞추어 갈것이다 100%는 못해도 80%는 되지 않을까 하는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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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곧 사랑하는 - 이라는 기분 좋은 문구로 시작하는 이 하르트무트 폰 헨티히의 글은 서간체로 삼촌이 조카에게 학교 생활의 이점과 그 필요성에 대하여 요충하는 글이다. 삼촌과 조카 간의 따스한 사랑을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이 책의 논점은 '왜 학교에 가야 하나요?'라는 것이다. 아직 어린 조카가 학교에 가야 할 필요점을 파헤치고 물색할 때 우리의 자상한 삼촌은 매일 같이 편지를 쓰면서 학교에 가야만 하는 우리들의 진리를 일깨워 준다. 솔직히 말하여서 요즘 학교 가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 누가 있겠느냐마는 이 책을 읽고나면 한 번쯤은 자신의 학교와 학급 친구들이 뇌리를 스치기 마련이다. 하르트무트 폰 헨티히의 어린 생활과 아이들의 무수한 경험, 도전, 적응 생활 간에서 그들이 알아야 할 진정 학교 생활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