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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 나의 사상의 자유는 권리라는 믿음, 그러한 믿음이 보편화된 세상. 관용은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능력임을 믿어주는 세상. 그러한 세상을 만들고 유지하여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자 권리이고 신성한 의무이기도 하다. 나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듯, 다른이도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 타인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함께 투쟁할 수 있는 의지. 그것이 관용과 민주와 공화의 시대상이고 목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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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나이를 먹어갈 수록 감상이 달라지는 책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책이 '전태일 평전'이지요. 어렸을 적 전태일에 대해 배웠을때 저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저 옛날 이야기였을 뿐. 희미해진 기억 속의 저는 전태일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스물둘이 됐을때, 다시 한번 전태일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전태일 평전'을 붙잡고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책을 늦게 읽는 편도 아니지만 눈가에 자꾸 눈물이 고여서 책을 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몇페이지를 읽다가 쏟아지는 눈물에 책을 덮고 엉엉 울다가 다시 한번 책을 펴는 일을 몇차례 반복한 후에야 씁쓸한 마음으로 책을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태일 평전에 대한 저의 기억입니다.
어렸을 적 읽었던 전태일 평전과 스물두살에 읽었던 전태일 평전의 내용이 서로 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저의 태도일 것입니다.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었던 꼬마와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었던 청년, 그 둘의 차이는 꽤나 큰 것 같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읽으며 지난해 읽었던 전태일 평전이 떠올랐습니다. 지난해에 전태일과 동갑이었던 저는 이번에는 용케도 조피와 동갑이었습니다. 나와 같은 나이의 조피는 히틀러에 저항하는 운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내가 만약 그 상황에 처했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선뜻 긍정의 대답을 하지 못했고 제 마음이 대답을 거부한채 주저하는 동안 눈물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들이 육체적으로 대단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종이를 복사해 대학에 뿌렸을 뿐이니까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간단한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했을 정신적 고뇌를 생각해보면 눈물은 저절로 쏟아져 나옵니다. 등사기를 돌리는 동안, 히틀러에 저항하는 글귀를 대학 이곳저곳에 적는 동안 그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제 또래의 친구들이 그 일을 했습니다. 제 또래의 친구들이 사형장으로 향하며 "자유는 살아있다"라고 외쳤습니다. 만화영화 속 영웅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삶의 진리를 깨달은 종교적 절대자들이 아닙니다. 제 또래의 친구들이었습니다. 평범한, 제 또래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언젠가 태어날 제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아마도 그때쯤 저는 서른이 넘어있겠지요. 서른 즈음에 읽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꼬마인 제 아이가 이 책을 어떻게 접할 지도 궁금합니다.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언젠가 너도 한스와 조피의 나이가 됐을 때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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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방영된 재독작가 이미륵을 소개한 '압록강은 흐른다'란 드라마를 보면서 '쿠르트 후버'란 인물에대해 관심을 가지다 여러 경로로 자료를 찾아보다 알게 된 책이다. 드라마 내용 중 이미륵박사와 쿠르트 후버교수의 인연을 소개하며 1930년대 광기로 치닫는 나치독일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당시 뮌헨대학의 교수로 있던 쿠르트 후버는 음악,철학,심리학,사회학 등에 조예가 깊은 학자였다. 책 내용은 아니지만(영화 소피숄의 마지막 날들) 백장미단 활동으로 억울하게 붙잡힌 이들이 형식적으로 재판을 받는 과정이 나온다. 당시 판사로서 로란드 프리슬러란 인물이 등장하는데 전형적인 어용판사이다. 그에게는 법앞의 양심, 자유와 정의란 이름보다 오로지 히틀러에 의해 구상된 나치독일을 위해 법논리를 전개해가고 국가가 미쳐서 괴물이 되면 얼마나 무자비하고 가혹한지 알게 해주는 인물이다.
자유와 정의의 이름-한스 숄, 쇼피 숄 그리고 쿠르트 후버 또한,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으로 당대의 주류 시선이 바라보고 조롱했을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아마도 가슴 속 심연에서 울리는 '자유와 정의에 대한 부르짖음' , '역사의식' 그리고 '진실함에 대한 다가섬' 정도였을 것이다. 비슷한 역사를 가진 한국과 독일이기에 독일의 2차세계대전이후의 모습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고 바로 이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계속해서 우리들이 읽고 또 읽고 해야할 책이다. 이와 더불어 재독작가 이미륵을 다룬 S방송의 드라마도 보고 소피 숄을 주인공으로 다룬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도 함께 본다면 더욱더 풍성하게 이 책이 다루고자하는 역사의 교훈을 폭 넓게 인식하고 수용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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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고 쓴 것, 그것은 바로 많은 독일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에요. 단지 그들은 입 밖에 내서 말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랍니다.”
요약 。。。。。。。
히틀러 치하의 나찌 독일이라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시민들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투쟁했던 한 남매의 이야기를 기록한 이야기다. 저자인 잉에 숄은 자신의 두 동생인 한스와 조피의 이야기를 과장되지 않은 문체로 차분히 적어 내려간다.
1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독일 국민들은, 무능한 정부에 실망을 하고, 그들이 당하고 있는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을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강력한 정부를 갈망한다. 그렇게 탄생한 정부가 바로 히틀러 정부다.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 사람들은 히틀러를 보며 그런 기대를 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시대가 잘못 흘러가는 것을 눈치 챘다. 한스 숄은 그런 인물 중 한명이다. 어렸을 때부터 히틀러의 전체주의가 어떻게 개인의 인격을 말살하고, 획일을 강요하는지, 인간의 자유가 어떻게 억압되는지를 체험한 그는 대학생이 된 이제, 당당히 반체제 운동을 벌이는 투사가 된다.
사실 그가 한 일은 무력투쟁이나 테러, 요인암살과 같은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런 분야에 관해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한 의과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리 많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그가 한 것은 체제가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이었다. 물론 직접 나서서 군중 앞에서 외친 것은 아니었고,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거나, 한 밤중을 틈타 도시의 벽에 크게 ‘자유’를 쓴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불법적인 정부는 단지 ‘진실’만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협을 느끼는 법, 히틀러의 친위대는 한스와 그의 동생과 동료들을 체포했고, 역시나 불법적인 재판을 통해 그들을 살해하고 만다.
감상평 。。。。。。。
히틀러라는 한 사람의 미치광이로 인해 시작된 전쟁은 수 백 만 명의 사상사와 상상할 수 없는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남겼다. 독일은 전후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했고, 오랫동안 전쟁을 일으킨 나라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살아야만 했다. 어쩌면 그것은 오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국가가 치러야할 당연한 대가일 수도 있다.
그것은 단지 히틀러라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에게 정권을 맡긴 독일국민 전체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독일은 적어도 표면적으로 볼 때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것 같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나라, 유대인 대학살을 사죄하기 위한 기념관을 국가에서 운영하는 나라, 나찌의 상징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범죄가 되는 나라, 이런 나라가 독일이다.
떳떳하지 못한, 그래서 한 편으로는 숨기거나 왜곡시키고 싶은 유혹도 들 만한 과거지만, 그들은 결코 묻어두지 않는다. 이 책도 그런 일환이다. 다만 이 책에서는 단지 부끄러운 과거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작지만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과거가 있음을 보여준다. ‘백장미단’이라는 이름으로 나찌의 반인륜적이고 불법적인 정권에 대항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내용 말이다.
이런 책을 독일 중 고등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독일이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결코 그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에 대한 저항이야말로 진정으로 자랑스러운 일임을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우리 옆에 있는 섬나라와는 어쩌면 이렇게 천지차이일까. 식민지배가 조선의 경제를 발전시켰고, 위안부는 없었다고, 매년 패전기념일이 되면 최고 통치권자가 A급 전범들을 참배하러 가는 나라. 이게 일본이라는 비정상적인 나라의 현실이다. 어디 일본뿐이랴. 불법적으로 정권을 탈취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억누르며 독재정치를 했던 전직 대통령, 쿠데타를 일으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전직 대통령을 찬양하며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우리나라에는 버젓이 살아 있다. 아니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목소리를 높여대지 않는다.
이야말로 히틀러 정권이 1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쓰러진 독일경제를 되살린 현명한 통치자였다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책을 읽고 나면 독일의 철저한 자기반성의 모습과 일본과 한국의 극우파들의 후안무치한 두꺼운 얼굴이 대조되어 씁쓸한 기분마저 든다.
우리나라의 중 고등학생들에게도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책. 생각보다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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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 2차대전이란 독일에서 히틀러로 인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전쟁이라고 생각만 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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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히틀러의 나치 치하에서 독일 청년들의 저항 단체였던 백장미단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가담자 한스와 조피 숄의 누이인 잉에 숄이 지은 것입니다. 저자는 사전(재판전)에 몰랐던 것이기에 아주 사실적인 이야기가 간단하게 소개됩니다. 1947년에 독일정부가 교재로 지정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1946년 경에 쓰여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활동은 6차례의 전단 살포가 전부이지만 강조된 것을 보면, 독일 내의 히틀러나 나치에 대한 다른 저항은 별로 없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말미에 별도로 소개된 암살시도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여러차례 영화로도 제작된 것이지요. 10여 년간의 기간에 이 정도라면 별 저항이 없었다 고 말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유신체제하에서는 더 짧은 기간 동안 더 심한 반발이 있지 않았던가요? 아직까지도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데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