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너서 프랜즌은 미국적 색체가 강한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정서에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읽다보니 모든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어서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하루에 다 읽었다. 버글런드 부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인간 정서인 부부, 부모자식, 형제자매, 친구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갈등, 분노 , 아픔, 상처, 이해, 화해, 용서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에 이질감을 느끼 못했던 것 같다. 미치 한편의 가족 드라마를 보는 느낌을 가졌다. 미국 정치에서 보수적인 공화당과 진보적인 민주당의 이념적 대립, 개인의 자유와 사회저의 간의 조화, 미국의 해외 군사 개입과 그 명분, 자유 시장 경제와 혼경보호 등 굵직한 거대 담론의 주제들을 폭넓게 다루고 잇다. 지금 이땅에서도 보수 대 진보, 성장과 분배, 경제발전과 환경보호, 미국의 요청에 따른 군대 파견과 그 명분 등의 사회적 이슈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만큼 낯설지 않다.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은 분명 눈부시게 찬란한 축복이나,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자유의 이면에는 자유로운 선택에 따른 결과에 본인이 온전히 책임을 져야한다는 엄연한 사실이 있음을 우리는 쉽게 잊으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질량은 자유를 행사하는 데서 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의 질량과 비례한다고 말하고 있다. 패티 버글런드는 중년의 위기를 겪으면서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는 전업주부이다. 작품의 상당 부분은 자서전을 써보라는 정신과 의사의 권유를 받은 패티가 자기 삶을 돌아보는 자서전을 쓰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런 형식을 빌린 부분들은 패티의 불완전한 정신세계를 나타내려고 작가가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패티와 월터 버글런드는 오래된 도시 세인트폴에 선구자들 같은 부부였다. 빈민가를 고급화하는 사람들이었고, 실용적인 부모였으며, 자연 식품 세대에겐 급진적인 존재였다. 패티는 이웃들에게 이상적인 이웃이었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어디서 재활용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지역 경찰들이 실제로 일을 하게끔 만드는 주부였다. 그녀는 샘이 날 정도로 완벽한 엄마였고, 월터가 꿈꾸던 여인이었다. 자연보호협회에서 일하는, 완전히 가정적인 남자 월터와 함께, 전업주부인 패티는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제 몫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천년이 시작되고 나서 버글런드 가족은 미스터리한 존재가 되었다. 10대 아들 조이는 왜 공화당을 지지하는 옆집 가족과 함께 살려고 들어갔을까? 월터는 왜 석탄 회사들과 관련된 일을 하기로 결정했을까? 월터의 대학 때 단짝 친구이자 라이벌이던 유명 록커 리처드 캐츠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무엇보다도 패티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배리어 가의 샛별 같은 존재이던 그녀는 왜 이웃들 앞에서 평정을 잃고 분노의 화신이 된 것인가? 소설은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월터가 멸종 위기에 처한 새를 보호하기 위한 서식지를 만들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동안, 패티와 리처드의 과거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올라 가정을 위협하고, 월터가 믿어온 진실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