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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이라고 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무서워 적들이 침입을 못한다는 우스갯이야기까지 떠돌았다. 넘치는 에너지를 털어낼 곳이라고는 오로지 교과서와 문제집 뿐이니 그럴 법도 하다. 고인물이 썩듯 아이들의 마음 또한 썩어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조금 예민한 친구들이 반응했다. 그들을 세상은 ‘문제아’라 칭했다. 올곧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곤 했지만 낙인이 그보다 더 컸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또 다른 상처를 입기도 했다.
저자는 사진을 매개로 그런 아이들과 만났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있는 장소를 찾아가 아이들의 손에 카메라를 쥐어줬다. 기술적인 방법을 강의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가 아이들에게 털어놓은 건 사진 찍는 방법이 아니었다. 평소 눈여겨 보지 않았던 세상을 정성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세상과 대화하다 보면 이제껏 자신이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세상의 매력에 눈 뜨게 되리라는 게 그녀의 지론이었다. ADHD에 버금갈 정도로 집중력 결여를 호소하는 아이들이 요즘 넘친다. 하물며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지닌 아이들이 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줄까 의구심이 일었다. 지금이야 자유에 조금의 제약이 있지만, 휴대폰과 인터넷에 익숙한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나의 생각은 틀렸다. 아이들은 단 한 순간도 손에서 카메라를 내려놓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흩어진 아이들은 제약된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시선을 세상에 입혀 나갔다. 돌이, 풀이, 나무가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늘 그 자리에 존재했을 터임에도 아이들의 사진 속에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저자는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로도 향했다. 쉽지는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요즘 날이 부쩍 더워져서 그런지 사진이 마음에 쏙 들었다. 파도가 너울거리는 풍경 속 아이들의 모습은 태초에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존재인 것마냥 자연스러웠다.
아이들이 찍은 사진은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도착한 액자에 직접 찍은 사진을 끼워넣고, 제 작품이 걸리기에 좋은 위치를 가리키는 아이들이 손가락은 행복을 향하고 있었다. 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아이도 있었을 것이요, 어쩌면 그 조차도 듣지 못한 채 그저 외로워하기 바빴던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겐 전시가 결코 작은 성취가 아니었다. 제 사진을 봐줄 또래친구가, 선생님이, 면회 한 번 와 주지 않지만 여전히 그들에겐 기댈 곳인 부모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세 살 때 헤어져 이름과 얼굴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제 어머니를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는 그 목소리가 진심임을 이제 알겠다. 처음부터 문제아가 되기 위해 태어난 아이는 아무도 없음을.
책은 사실 2012년에 처음 출판됐다. 이런 시도가 흔치 않아서인지 출판 이후 꾸준한 관심을 받았다. 아이 못지 않게 여린 마음을 지닌 어른들이 주로 이 책을 읽었을 듯하다. 사진을 찍고 글을 써 블로그에 올리면서 내가 바란 것 또한 누군가의 관심이었다. 모두가 서로의 관심을 그리워하면서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외롭고 아파하고 있다는 게 이 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던 게 아닌지 싶다.
어느 시점부터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명확친 않으나 누구도 날 아이취급 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세상살이에 서툴다. 업무를 추진할 때 실수가 잦고, 사람을 대할 때 어찌할 바를 몰라 주춤거린다. 그런 나에게도 사진이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되어주었단 생각이 든다. 한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 지냈던 카메라를 꺼내 든다. 덥지만, 그래서 더더욱 사진 찍기 좋은 계절 같다. 귀를 파고 드는 청량한 매미소리까지도 사진에 담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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