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5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7.0
  • 50대 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작가가 생각하는 '단어', 그 존재의 의미. 배수아 소설집 '올빼미의 없음'
"작가가 생각하는 '단어', 그 존재의 의미. 배수아 소설집 '올빼미의 없음'" 내용보기
소설가 배수아. 1993년 데뷔 이후 공무원과 소설가라는 두가지 직업을 오가면서 글을 썼던 그녀는 간섭받지 않고 글에 몰두해 보기 위해 2001년 직장을 그만두고 독일로 떠난 후 3~4개월씩 체류하면서 작품을 써 왔으며, 그 곳에서 발견한 작가 야콥 하인의 첫 번째 소설 '나의 첫 번째 티셔츠'를 번역하기도 했다. 독특한 문체와 색깔로 열혈 독자군을 거느려 왔던 그녀는 이제 사
"작가가 생각하는 '단어', 그 존재의 의미. 배수아 소설집 '올빼미의 없음'" 내용보기

소설가 배수아. 1993년 데뷔 이후 공무원과 소설가라는 두가지 직업을 오가면서 글을 썼던 그녀는 간섭받지 않고 글에 몰두해 보기 위해 2001년 직장을 그만두고 독일로 떠난 후 3~4개월씩 체류하면서 작품을 써 왔으며, 그 곳에서 발견한 작가 야콥 하인의 첫 번째 소설 '나의 첫 번째 티셔츠'를 번역하기도 했다. 독특한 문체와 색깔로 열혈 독자군을 거느려 왔던 그녀는 이제 사유하는 문장의 힘으로 새로운 독자들과도 만나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소개되고 있었다.

 

취미로 글을 쓴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문학적 엄숙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그래서 그의 문장은 당혹스럽고 생경하며 파격적이다. 배수아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온하고 불순한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한결같이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늦된 아이들이며 주로 스무살 안팎의 주변적 존재이다. 이들은 사회규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진화를 거부하는 인물이며 '스스로 선택한' 이상한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신세대적 일상을 파고들며 신세대적 일상에 숨어 있는 존재의 어둠과 불안, 삶의 이중적 풍경에 대한 감각적 묘사로 일관하다. 체험과 사실성이 강조되던 우리 문학사에서 배수아는 은폐된 존재의 어둠을 탐사하며 독특한 개성을 갖춘 신세대 작가로 성장해왔고, 이제는 미적 성숙의 단계를 완성해가고 있다.

 

책을 집어들고 찾아본 소개글을 통해 나에게 전해진 소설가 배수아의 이미지는.. '난해하다' 였다. 은폐된 존재의 어둠을 탐사하는 작가.. 일단 집어든 책이 장편이 아닌 소설집인 탓에 막연히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작가 소개글이 난해하다고 느껴진건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어차피 문학적인 작품들이라면 난해하고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일단 책장을 넘기긴 하는데 거참..ㅡ.ㅡ

 

2004년부터 2009년에 걸쳐 여러 문예지를 통해 발표된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배수아 작가의 소설집 '올빼미의 없음'은 저자의 6번째 소설집이다.

저자 특유의 생생한 감각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빼어나고 유려한 문장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몽환적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특히 관념과 물리, 사물과 사람의 마음이 닿는 곳에다가 '공명하는 감각'을 틔우는 우주적 상상력은 물론, 인생에 대한 뛰어난 예지력을 맛볼 수 있다. 나아가 심미적이고 정신주의적 단독자라고 할 만한 자아를 품은 채 꿈처럼 다가오는 낯선 호흡을 느끼게 된다.

 

보이지 않음, 그리고 그 단어, 없음. 사각거리는 발소리 하나 없이 천지는 고요한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없음'이란 무시무시한 환각의 체험. 없음이란 무엇인가, 없음이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리고 없음이란 도대체 왜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표제작 '올빼미의 없음'을 포함해 양의 첫눈, 올빼미, 북역, 무종, 빠리 거리의 점잖은 입맞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밤이 염세적이다.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이 책은.. 처음 작가의 소개글을 봤을때 느낌 그대로 난해했다. 책의 뒷부분에는 해설이 담겨있었다는 게 일반적인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어려운 작품이라는 뜻일테니, 뭐.. 나만 이렇게 받아들일 거라는 생각은 안해도 된다는게 유일한 위안거리다ㅡㅡ.. 이 책의 느낌을 단어로 표현하자면 몽환적..이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하고 불확실..하다고 표현하기도 뭔가 어색해 표현이 쉽지는 않다.

 

내가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각각의 단편들에서 찾아낼 수 있었던 공통점, 그러니까 배수아 작가의 문체나 구성에 대한 특징을 알 수 있었던 건 두가지 정도였다. 하나는 쉼표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문장의 호흡 길게 이어나가는 경우와 짤막한 구절을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해 빠른 긴장감을 유도하는 문장들이 작품마다 적절하게 교차하면서 배치되어 있었다는 것. 물론 쉼표를 사용해 호흡이 길어지는 듯 보이던 문장들 안에서도 그 쉼표를 아주 짤막한 구절마다 사용해 속도감을 높이고 있긴 했지만.

 

다른하나는 어떤 상황에 대한 혹은 상황과 관계없는 언어를 구성하고 있는 '단어'에 대한 고찰이 각 작품마다 빠짐없이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단어'에 대한 고찰은 위쪽에 담아둔 문장들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작가는 꿈, 마음을 사로잡는다, 기억, 분실, 사실, 슬픔 등 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단어들에 대해 작가 나름대로의 위치와 의미를 작품 안에 어울리게 담아두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책의 제목에도 포함되어 있던 '없음'이라는 단어는 몇몇 단편에서 여러가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죽음'과 동의어로도, '부재'의 의미로도. 가장 흥미로웠던 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는 '없음'이 도대체 왜 있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는 부분이었다.

 

'현실'의 부재, '나'의 부재 등으로 쉽게 전달되는 '없음'이란 단어의 '부재'의 의미는 작품들 안에서 '생명'의 부재, '기억'의 부재, '있음'의 부재, '행복'의 부재등 확장된다. 실제로 존재하거나 나타나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 '없음'이라는 단어. 간단하게 말해서 '춥다'라는 단어는 열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단어인데 아무렇지 않게 춥다는 상태가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들.

 

작가 배수아가 이 책안에 담아둔 이 단어의 여러가지 의미들은 단어를 무심히 사용하기만 하는 우리들이 한번 더 언어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각각의 단편마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달랐을테지만, 그걸 집어내려다가는 괜한 지루함때문에 책읽기를 중단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예 눈에 띄는 것들에 집중해 작품을 읽었더니.. 결국은 정말 마음대로 읽은 것 밖에 되지 않은 것 같아, 좀 아쉽다ㅡ.ㅜ..

 


l******i 2012.01.21.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역설의 미학
"역설의 미학" 내용보기
쉽지 않은 읽기의 과정이었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마치 견고한 성과도 같아서 그 안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 작품을 과연 소설로 보아도 무방한가? <올빼미의 없음>을 읽으며 나는 그녀에게 문자는 사고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깊이의 한없음을 이해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적잖은 침묵 그리고 시간이었다. 굳이 그녀의 작
"역설의 미학" 내용보기
 

쉽지 않은 읽기의 과정이었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마치 견고한 성과도 같아서 그 안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 작품을 과연 소설로 보아도 무방한가? <올빼미의 없음>을 읽으며 나는 그녀에게 문자는 사고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깊이의 한없음을 이해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적잖은 침묵 그리고 시간이었다.

굳이 그녀의 작품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몽환’을 고를 듯하다. 그녀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현재에 머무르기 위해 과거에 의존하는 방식을 택한다. 복잡한 심상들이 전개되지만 모든 감정은 과거 한때에 고착되어 있기에, 전적으로 그(녀)들을 지배하지 못한다. 현재와 과거의 괴리가 생성하는 불안한(?) 기류는 작품이 끝나는 그 시점까지도 주인공들의 회상이 지속되기에 멎질 않는다. 하지만 이를 전적으로 불쾌하다고만은 할 수가 없으니, 사고의 기저에는 제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인물들의 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민이 없다면 존재의 가치도 없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의 시도는 알고 보면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과도 같다.

책의 제목으로도 선정된 ‘올빼미의 없음’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었다. 글의 초반부에 제시되는 빌레펠트는 독일의 한 도시이다. 영국도 그러하지만 독일 역시, 분단의 역사를 안고 있기 때문인지 난 이 도시의 이름을 들었을 때 우중충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의 선택에 의해 삶을 잃은 전나무로부터 출발한 저자의 기록은,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향해 흐른다. 큰 사건의 굴곡은 없으나 깊이를 짐작하기 힘든 내면을 기술한 이 작품은 의식의 흐름을 좇아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의 글을 썼던 제임스 조이스를 연상케 한다. 산 자와 죽은 자, 그 사이에 놓인 거스를 수 없는 무언가를 통해 화자는 상실이라는 묘한 감정을 구체화한다. 하지만 그 노력의 끝에 존재하는 것은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죽음’을 이미 경험한 그대, 영혼의 고통이자 곧 육체의 고통인 그 경험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제대로 그려낼 수 없는 무언가란 사실의 깨달음뿐이다.

그렇다면 진정 인간은 제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 수 없단 말인가. 작품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는 이 질문에 대한 회의적인(?) 답변과도 같았다. 김씨의 부인이 썼다는 이 희곡은 실패작이었다. 초반에 기획은 즉흥성에 기대어 이루어졌다. 방 안에서 진행되는 하루는 시작과 끝이 모호했다. 누군가에게는 아침인 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점심 혹은 저녁이었다. 방의 불이 꺼지면 그것은 곧 죽음이었고, 그 죽음이 언제 자신을 찾아올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어떤 방은 아무도 찾지 않았고 어떤 방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앉았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 애초부터 이 작품은 실패로 끝날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를 진정 실패로 몰고 간 원인은 따로 있었다. 불확정성을 통제하려는 작가의 시도가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의 삶에는 근원을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슬픔이, 혼란이 존재한다. 이 모든 감정들은 거부라는 게 불가능한 우리 자신의 것이다. 세상과 닮은꼴을 하고 있는 방에 규칙성을 부여하려는 작가의 시도가 행해지는 그 순간 작품은 현실과의 연결고리가 끊긴 희곡으로 전락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듯, 언제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어야 한다고, 마치 신의 영역에 도전했다 혼쭐이 난 것 마냥 시도는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마냥 우중충하지만은 않은 게 그녀의 세상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있기에 삶은 완성되고 의미를 갖는다. 이루어질 수 없는 무언가의 존재 덕분에 꿈은 이루고자 하는 욕망의 성질을 띤다. 이와 같은 역설이 곧 이 작품을 이끄는 힘이자 우리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작가는 꿈을 통해 현실을 말했고, 허무를 통해 존재를 드러냈다. 참으로 실험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마냥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삶을 갈망하며 죽음을 향해 걷고 있지 않은가!

q*****2 2010.06.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