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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역사를 펼치기 위해서 작가는 시간과 여행을 얼마나 해야할까 아니 혹독한 제살을 깎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은 단순히 만들어진 책을 보는것이 아니라 작가의 피와 살을 먹는다고 할수 있다. 그리고 역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막막한 느낌이다. 그저 보이는게 다가 아니라 그뒤를 보면 볼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하나씩 툭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역사서는 그저 호기심이었다면 이번은 완전 제대로 만났다. 물론 역사에 관심도 없었지만 간혹 방송을 통해 우리의 알려진 역사에 덧붙여진 사실을 보는건 좋았다. 남의 나라 역사까지 알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세계의 흐름을 보면 중국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수있다. 우리의 역사서에는 분명 중국대륙을 차지하던 시절도 있었으니 이번에는 과연 관심을 가지고 그 여행으로 중국이 어떤 문화를 전수했는지 알수있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1434이라는 숫자의 비밀은 바로 이내용과 긴밀한 관련이 있었다. 1434년 중국의 정화 원정단이 유렵에 진출하면서 천문학, 수학, 지리학, 군사무기, 인쇄술등 다양한 문명이 전파된 사실을 진실로 말해준다. 우선 종 이를 발명한곳도 중국이다. 중국후한의 채륜이 발명하고 현대에서 쓰고 있는 초지법과 같다고 한다. 종이가 유럽에 알려 지기전에는 종이에 가장 가까운 파피루스가 널리 쓰여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쓰고 있는 종이도 중국에서 빌려온 기술이 라는 점이다. 정화의 함대가 유럽에 퍼트린 문명을 글로만 표현한 것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서도 보여주고 있다. "마드리드 고사본에 기록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톱니바퀴" 그림을 보는 순간 아하고 탄식이 나왔다. 뒤로 갈수록 최초의 발명가라 고 알고 있었던 것이 하나둘 껍질을 벗는 느낌이라고 할까.
책에 수록된 내용을 일일히 나열할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특히 주목할점은 "르네상스인들의 1434년 전후의 활동과 업 적이라는 부분이었다. 그냥 지나칠수 없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유럽이 앞선문명을 가지고 있으리라 했는데 오히려 그들이 중국의 영향을 받아다는 점이 신비로웠다. 진실과 허구사이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라는 위험한 생각도 해 보고 그들은 왜 마치 자신이 최초로 발견한쳑 했는지 알수 없다는 점이다. 이처럼 1년도 아닌 몇년의 결과물이 일반독자 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온든 역사는 역시 재미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쓰고 있는 문명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집 중적인 생각을 할수 있을까. 뒤바뀐 운명의 바퀴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다. 한마디로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식이라고 할까. 궁금한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궁금증을 유발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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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눈은 여러가지 사건들로 인해 만들어지고, 또 결정되어진다. 중국의 남북이 해로를 통해 연결되어 상해가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것은 몽골시대부터였다고 한다. 낙타를 이용한 소구묘의 교역에 비해 8세기 후반 송나라에서 사용된 300톤급 다우선 한척은 600마리의 낙타등짐과 500~600명의 선원을 한꺼번에 실어 나를 수 있었다. 근대세계는 서구문명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우리는 서구문명에서 과학기술, 자본주의, 산업주의 등을 떠올린다. 이 과정은 보편성을 띠고 있으며 그것은 '근대화'라는 중심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대화가 곧 서구화라는 등식이 한동안 널리 퍼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한 세기를 마감하는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서구문명에 대한 불신의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서구 팽창의 역사적 경로를 되짚어보는 것도 근대화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서구세계는 다른 지역보다 우월하지 않았다. 이미 8세기 이래 유럽은 3개 대륙에 걸쳐 대제국을 이룩한 이슬람 세계에 포위되어 있었다. 학창시절 세계사시잔에 명나라 초기, 정화가 대 선단을 이끌고 아프리까 동해안 까지 다녀왔다는 간단한 내용을 접하고 난 후 이들의 대 항해는 곧 기억에서 사라졌었다.
이 책을 읽기전에 먼저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라는 제목의책을 읽는다면 더 이해하기 쉬울것 같다. 책은 기존의 서양 중심의 세계사에서 무시되어온 1421년 중국 정화선단의 대 항해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저자는 '1434'의 저자이기도 한 영국 해군 장교 출신 개빈 멘지스다. 저자는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에서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은 콜럼버스가 아니었고 마젤란의 세계 일주도 '역사상 최초'가 아니었으며 실제 '최초 발견'은 명나라의 정화함대에 의해서였다고 주장한다. 중국인들이 인도양 항해에 그치지 않고 희망봉을 돌아서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북극해로 북상해서 유라시아 대륙 북부해안을 빙돌아서 호주를 찍고 태평양을 횡단했으며 심지어는 남극까지 탐험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한 저자는 콜럼버스와 마젤란은 정화 함대가 만든 지도를 갖고 대항해에 나섰다고 주장하며 당대 세계 최강이었던 명나라와 세계를 향해 나아간 정화함대를 통해 중국은 세계를 발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421년 항해당시 중국은 가장 잘나갔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 거대한 자금성을 짓고 여러 중동국가들에게 조공을 받으며 전세계 무역권을 휘어잡았던 당시 중국은 그당시 유럽권에 있던 모든 국가들의 힘을 합친것과 비등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 였다고 전한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명제는 여전히 상식으로 통한다. 그러나 이 상식엔 두 가지 편견과 하나의 무지가 들어 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으로 ‘발견’했다는 주장은 지극히 유럽 중심주의적인 편견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밟기 전에 이미 그곳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신대륙’이라는 명칭 또한 그 자체가 편견이다. 거기에는 정복자들을 위한 개척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은 15세기초 명나라의 이야기로 부터 시작한다. 당시 중국은 자금성, 명13릉, 천단 등을 한꺼번에 건설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정화의 선단에 필요한 2천여척의 배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이렇듯 앞부분에서는 세계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함대를 건조하고 식량을 마련한 2년 동안의 준비과정을 살펴본다. 정화의 함대는 이미 알려진 세계의 모든 나라를 방문해야했다. 그러므로 아마 엄청난 규모의 준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책에는 중국인들이 별의 위치를 정해 이를 항해에 이용하는 방법이나 베네치아나 피렌츠등 당시 번성했던 유럽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서는 저자의 강한 주장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1434년에 있었던 중국과 유럽 사이의 방대한 지식의 전달과정이다. 그 방대한 지식은 수천 년에 걸쳐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르네상스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문명이 부활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 같은 유럽중심적 역사관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 찾아온 것이다. 물론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이 르네상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유럽에 전래된 중국의 지적 자본이 르네상스를 불러 일으킨 불꽃이었다고 본다.(p.15)
이 책 '1434'는 읽는이로 하여금 마치 실제로 탐험하듯이 작성한 내용으로 인해 몰입의 깊이가 틀리게 느껴진 책이다. 그런 이면에는 저자의 열정적인 탐구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것 같다. 저자는 1차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도 정화 함대의 세계 항해를 입증할 만한 사료와 유적,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는 14년 동안 무려 140여 개국, 900곳 이상의 문서보관소, 도서관, 박물관, 과학연구소, 중세 후기의 주요 항구 등을 답사했다고 한다. 저자는 위성항법이 개발되기 전, 자와 컴퍼스를 대고 별을 보며 항로를 그려내던 시절부터 영국 해군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래서 옛 항해가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며 그들의 항로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고지도와 해도, 항해, 천체관측 등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지도를 그린 사람이 해역을 밤에 지났는지 낮에 지났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저자의 추론은 신빙성이 있어 보였고 항해라는 신나는일에 대해 푹빠져 읽었던 이 책을 통해 르네상스에서 중국이 차지했던 비중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해보게된 좋은 시간이 되었던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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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고 하는 것은 과연 어떤 인물이어야 할까.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면서도 소설만의 흥미진진한 매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좋은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왜곡이든 아니든간에, 이제는 팩션이라고 하는 쟝르까지 새롭게 나타났을 정도로, 역사라고 하는 것은 단지 그 전체적인 view에서 같은 맥락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저 사료가 될만한 구절 1줄만으로도 그 역사를 새롭게 재해석하여 문학작품으로 승화되는 것은, 어쩌면 작가의 천재적인 재능으로 이야기될 수도 있고 또 그것만으로도 독자에게는 흥미진진한 읽을거리가 되니, 정말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중국의 위대한 항해가이자 저명한 인물인, 정화 제독은 1421년부터 3년가량동안 전세계를 두루두루 항해하면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다가 중국의 선덕제가 정화에게 대함대를 이끌고서 만천하에 새로운 치세의 시작을 알리도록 명하면서 중국의 대함대가 피렌체에 도착하게 되고, 교황 Eugenius 4세를 알현하게 되고, 지도를 비롯한 각종 천문학이나 예술, 건축, 수학, 인쇄술 등의 문명을 전파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여러가지 분야의 지식을 전파함으로써 그 당시의 일부 유럽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 등의 그 당시 그 곳을 주름잡고 있던 유명한 철학가들의 사상을 등지고, 이러한 중국의 천문학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1490년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피렌체인들이 중국에서 간행된 농업 백과사전인 농서에서, 모사한 것으로 보이는 기계와 함께 그와 관련된 각종 공학기술에 대한 도안에 대해 연구를 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곳 유럽땅에 중국의 문명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지식인들에게서 먼저 발생한 것으로써,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에는 크리스토퍼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게 되고, 그러부터 18년 즈음 전에, 그는 파올로 토스카넬리에게서 아메리카 지도를 받았다. 토스카넬리는 그 풍부하고 알차고 참된 지식을 바로 1434년에 중국에서 피렌체로 건너와 이런저러한 중국의 문명을 깨우치도록 전파해주었던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들로부터 그것을 얻었다. 그리고 1500년대에는 이 1434년에 얻었던 중국에서 전래된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지도가 잇달아서 등장하게 된다. 그 지도들에는 유럽인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마젤란 해협까지도 표시되어 있다.
이처럼 전체적인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작가의 능수능란한 필체와 함께 그와 더불어서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가 바로 이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즈 매거진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바로, 이 책의 작가인 개빈 멘지스의 손을 거치면서 "역사는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변신" 하고 있는 것이다. 놀랍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저 아주 예전에 유럽땅에서 일어났던 '사실'에 불과하기만 할 수도 있는 그러한 일들이 바로 작가의 살이 덧붙여지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된다는 것. 정말 책이라고 하는 만물의 영장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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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제의 과도한 제정의 파탄과 죽음의로 인하여서 멈추었던 정화의 대항해가 영락의 손자인 선덕제의 즉위로 말미암아서 다시 시작이 되었는데 자신의 즉위를 세사에 알리고 할아버지인 영락제의 위업인 각지의 조공을 받기 위하여서 정화는 다시 황제의 명령으로 대항해를 나서게 되는데 이책은 1421은 항해를 하면서 발견한 곳들과 항해를 한 중국인들의 흔적 찾기가 주목적으로 쓰여 졌다면 1434는 정화의 대함대로 인한 영향력이 어떻게 유럽의 르네상스를 일으키게 되었는지 그것을 알아보는 장이다.
일단 함대는 아라비아 반더의 홍해로 진입을 하여서 카이로를 거쳐서 나일 운하를 지나서 베네치아와 피렌체에서 교황을 만나서 자신들의 우수한 천체도와 지도를 주어서 명나라에 조공을 받치러 오라고 이야기 하기위하여서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탈리아에서 교황과 만난 함대는 선물로 천체도와 영락제의 큰업적인 요즘의 백과사전인 영락대전을 선물로 주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불을 발히는 큰 역활을 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한 증거로 1434년 중국인들이 유럽을 방문 하기 전에는 없었던 지식들이 갑자기 1434년을 기점으로 쏟아져 나오는데 이러한 이유를 당시 선진국인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그러한 일이 생긴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인물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가 중국의 농서에 나오는 내용과 같은것이 많아서 의문을 품은 저자가 알아보니 다빈치도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 마르티니의 업적을 물려 받아서 그것에 자신의 연구를 더욱 보탠 사람이라는 증거를 찾았다.
마르티니도 마리아노 디 자코포 디토 타콜라 라는 사람의 연구를 도용 하였는데 이사람은 당시 중국인들이 전해준 책에서 지식을 얻어서 그러한 많은 장치를 자신의 것처럼 하여서 책을 발간을 하였다.
이책은 기계와 수차, 갑문등의 설계도가 있는데 이러한 내용은 중국의 농서에 먼저 기록이 되어있고 농서의 내용과 같은 모양으로 책이 편찬 되었다.
이러한 기술의 전파로 베네치아의 양잠이 큰 발전을 이룩하고 피렌에서는 운하를 만들어서 발전을 이룩 하였는데 중국의 기술이 없었더라면 유럽의 르네상스는 더욱 먼 세월을 보낸후 생기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중국인의 발 자취는 호주와 뉴질랜드 남미 미국 캐나다등지 에서 발견이 되는데 뉴질랜드의 원주민의 DNA를 조사 하였더니 대만인과 같은 구조가 발견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중국의 장크선들이 여러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 지역에서 많은 광물과 자원을 본국으로 보낸것을 알수 있다.
그러한 식민지들은 유럽인과 조후를 마치고 명나라의 방침이 쇄국으로 전환이 되면서 지식을 전수 받은 유럽인들의 발전을 불러서 많은 인명이 피해를 보는 사태가 생기게 되었다.
1434 이책은 천체도에 관한 내용과 전문지식을 요하는 내용이 많아서 읽기가 조금 힘이 들었는데 전체적으로 느낄수 있는 내용은 유럽인들은 이제라도 진실을 알고 자신들만의 힘으로 르네상스를 일으킨 것이 아니고 다른 지식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 하고 겸손 해질 필요가 있고 중국인들은 자랑 스러워 할만한 역사를 발견 하였다고 말할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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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뒤돌아보면 항상 서양이 동양보다 앞섰다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그건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의 헛소리 같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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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 E.H.Car- 사실로서의 역사와, 역사가에 의해 쓰여진 역사,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에 대한 모든 문헌이 옳은 것일까? 우리와 일본이 주장하는 과거, 일본과 중국이 주장하는 과거가 왜 그렇게 다른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학자들에 새로운 고증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보다도 더 시기가 앞서는 것으로 예측되는 새로운 금속활자본이 얼마전 발견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역사는 파면 팔 수록 속을 알 수 없이 더 깊어지는 구멍 같다. 아마도 이런 점이, 역사에 대한 기록과 유물을 남기고, 보존하고 연구해야 할 이유인 듯도 하다. 대학시절 들었던 동양사 수없은 내 기억에 지금까지 남아있다. 서양사 수업과 함께 들었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동양사 수없이다. 왜 그럴까? 그 때 들었던 동양사 수업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올 때 까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었다. 오히려 다른 부분이 많았다.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흑과백 처럼 다른 것이 아니라, 큰 틀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그 수업을 통해 한 가지의 역사를 우리의 입장에서도 보고, 일본의 입장에서도 보고, 중국의 입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반면 서양사 수업은 서양 중세사에 관한 책을 그대로 배우는 수업이었다. 정화원정대, 과거 중국의 대함대, 그것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함대가 유럽 원정에 나섰다는 역사는 이미 여러 차례 고증된 바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은 여기 까지였다. 왜 그랬을까? 첫 번째는 무관심이었을 것이고, 두 번째는, 이러한 주장이 큰 힘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듯하다. 어쨌든, 책 속의 내용은 내가 알고 있던 것을 바탕으로 상상하던 것보다 더 놀라웠다. 1520년에 그 해협에 다다랐을 때 마젤란과 선원들은 식량이 떨어져 쥐를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선원들은 항로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탐험대 일부를 이끌고 스페인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에스테반 고메스Esteban G?ez가 반란을 일으켜 산안토니오호San Antonio를 장악했다. 마젤란은 절대로 항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설득함으로써 반란을 진압했다. 그때 어느 선원은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모두 [그 해협이] 막다른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선장은 눈에 잘 띄지 않는 해협을 통과해야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포르투갈 국왕의 기밀문서 보관실에서 보헤미아의 마르틴Martin of Bohemia이 제작한 해도를 직접 보았다고 한다."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를 내놓은 뒤 우리는 www.1421.tv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지금까지 여기에는 수백만 명이 방문했다. 아울러 우리는 독자들로부터 수십만 통의 전자우편을 받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새로운 증거를 보내주었다. 한편 독자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점은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에서 내가 르네상스가 막 꽃필 무렵 중국 함대가 유럽에 등장하는 상황을 기술하지 않은 것이었다. 1434에서 말하고 있는 정화 대함대의 이야기는 그 어떤 픽션보다 흥미롭다. 믿을 수 없이 놀라운 사실임에도 책을 읽어 나가면서, 실타래 처럼 꼬인 실이 풀려나가는 느낌도 함께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어느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과거에는 그렇게 수많은 영웅과 천재가 있었는데, 과거보다 더 많은 인류가 살며, 그 어느 때보다 세계 곳곳의 뉴스를 잘 받아 볼 수 있는 오늘날에는 왜 볼 수 없을까? 정화 대함대의 이야기에 비하면, 기적, 우연, 필연, 그리고 역사적인 대천재의 출현 같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역사는 신화나 동화에 가깝다. 과거 많은 수난의 역사를 겪었던 지금의 우리 땅에는 찬란했던 문화 유산은 거의다 없어지고 말았다. 문헌상으로 존재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과 예술품들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역사는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처럼 크고 거대한 건축물 못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문헌 기록들로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우리가 가진 문헌 기록들에 대한 분석과 고증이 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국내 학자들 사이에 극명한 견해의 차이로 인해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곧 그 나라의 힘이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려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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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434를 대하면서 제목이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세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이유는 단 한가지, 주인공이 정화라는 환관이라는 이유에서다. 영락제의 최측근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사라져야 했던 다른 신하들과 달리 정화는 자신의 진퇴시기가 언제인지 알았기에 살아남은 인물이다. 아마도 그래서 였을 것이다. 그토록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인물이기에 오랜 기다림이라는 시간이 지루하지만은 않았던 것이, 그간 수많은 상상이 머릿속을 채웠다 흩어지기를 반복해왔었다. 영락제(주체) 대 시작되었던 정화의 선단 대항해는 아들 홍희(주고치)시절에 잠시 멈췄다가, 손자인 선덕(주첨기)시절에 다시 부활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영국)의 눈으로 본 중국역사, 저자의 글로는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가 있다. 물론 아직 접하지 못한 책이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을 시작으로, 제 16대 숭정제 주유검까지 276년이라는 기간 나라가 존립해왔다. 특히 영락제 시절 강력한 통치를 바탕으로 절대권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황제가 된 영락제는 ‘7학사’를 중심으로 하는 내각정치와 승려 도연, 환관 정화(마화) 등을 앞세운 밀실정치로 제국을 이끌었다. 이때부터 환관 정화가 등장한다. 1434년도에 이루어진 정화대장정이 유럽에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중국의 문화가 유럽으로 전파되며 그 시기의 르네상스를 주도했다는것이 개빈 멘지스의 주장이다. 정화의 사절단이 지나간 길을 따라 그와 그의 동료들이 다시금 밟아간다. "지금까지 르네상스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문명이 부활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 같은 유럽중심적 역사관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 찾아온 것 같다. 물론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이 르네상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유럽에 전래된 중국의 지적 자본이 르네상스를 불러일으킨 불꽃이었다고 본다." 이것이 저자가 책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이다. 난바다에서 일어난 비극: 정화의 함대가 쓰나미에 휩쓸리다(p.367) 예전 본 지금은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는 영화가 한편있었는데 아마도 중국영화였나 보다. 그것은 영락제가 등장하고 환관 정화가 주인공이었다. 그때 처음 보았으면 알았다. 명나라 시대에 영락제 등극시기 정화라는 환관이 있었고 그가 이룬 업적중 정화의 선단 대항해야 말로 길이 이름을 남길만한 업적이었다는것을, 그리고 그에 관해 알고 싶어했다. 그것을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대장정의 끝이 어떠했는지 결과를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서야 그 결말을 알게 되었다. 7척의 약150M 되는 정크선에다가 200여척의 크고 작은 배들로 항해, 참 대단한 선단으로 보여진다. 바다위를 떠도는 작은 섬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오랜 항해를 하던 그 선단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바로 쓰나미에 의한 침몰로 그 끝을 맺었다. 중국의 정화 대함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불을 지피다 이 말의 의미를 이제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인연으로 중국역사에 대해 새로운 지평이 열리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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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0년 선종실록에 실린 칙령이 눈길을 잡아 끈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새로워졌으나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나라들은 아직도 그 소식을 듣지도 알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태감 정화와 왕경홍 같은 여러 사람들이 존경과 복종을 가르치기 위해 특별히 파견되었다." 정화는 그렇게 사신으로 임명되어 유럽을 가게 된다.
정화가 유럽의 통치자들에게 선물로 가져간 것은 지도, 항해도구, 천문력 등으로 특히 곽수경의 [수시력]은 일출, 일몰, 월출, 월몰이 나타나는 시각과 혜성, 일식, 월식을 몇 년 앞서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천문관측 자료가 실려 있었다. 1434년 이후 피렌체에는 중국계와 몽골계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정화의 중국 사절단이 거쳐갔다는 인상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다. 더불어 파올로 토스카넬리가 1474년에 페르낭 마르틴스 수사신부에게 보낸 편지와 콜럼버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지구는 구형이며, 스페인에서 서쪽으로 항해하면 중국에 도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는 유게니우스 4세 시절에 피렌체를 방문한 중국 사신들 그 당시 그들로부터 얻은 정보라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쉐너의 1515년과 1520년의 지구의는 토스카넬리가 포르투갈 국왕과 콜럼버스에게 보낸 편지의 설명과 일치한다고 한다. 여기서 콜럼버스의 이야기를 더 하고싶어진다. 토스카넬리는 콜럼버스에게 서쪽으로 가면 중국에 갈 수 있다며 그 지도를 보내주었고, 그 길에는 미지의 대륙 아메리카가 나와 있었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일지에서 대서양 서부의 지도를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고 하니, 그가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에는 중국사신들이 가져온 지도에 도움이 컸던 것이 아닐까.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다방면의 천재라고 말한다. 그런데 [마드리드 고사본]에 수록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맞물리는 톱니바퀴의 그림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맞물리는 톱니바퀴와 닮았다. 또한 그의 발명품 중 외륜선은 중국의 유송시대의 외륜선과 비슷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대포나 박격포, 사석포 도안도 그렸다고 하는데, 중국은 이미 다양한 사석포를 사용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발명하였다는 기계들의 몇몇을 중국은 이미 사용하고 있었고, 그 기계의 모습이 유사하다는 것을 책에 실린 삽화들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디 조르조는 타콜라의 발명품들을 모방하였다. 책에는 타콜라의 연결식 공성용 사다리의 삽화가 실려 있는데, 이는 중국의 사다리와 유사한 모양새이다.
중국의 농서에는 버킷펌프와 사슬펌프, 수문과 보, 둑과 도랑 등 논에 용수를 대는 다양한 수단이 삽화를 통해 설명되어 있다고 하고, 타콜라와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는 둑과 수문, 펌프의 도안을 남겼다. 저자는 타콜라의 펌프 도안이 등장한 시기가 1435년 이후나 1438년 이후로 추정하고 있다. 타콜라, 프란체스코 등은 중국의 문물인 화약, 강철, 대포 등을 모방하였고, 중국인들이 방문한 1434년 이후 피렌체인들은 다양한 중국식 철 용해법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중국이 유럽의 르네상스에 끼친 영향이 지대했던 것 같다. 정화 함대가 1434년 유럽을 다녀온 이후, 그들에게 남긴 흔적들을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었던 이 시간은 새로운 지식을 담아내게 되는 다소 놀라웠던 순간이었다. 표지의 문구처럼 저자의 충격적인 역사의 재해석은 인상적인 시간으로 남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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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4가 의미하는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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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활자화 되었던 역사서와 교과서를 다시 써야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개빈 맨지스의 1434는 오래된 역사서의 교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재발견이자 역사의 흐름을 정확히 고증한 새로운 역사서가 만들어 졌습니다. 청소년 권장도서에 빠지지 않고 단골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콜럼버스와 마젤란 ,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갈릴레이 같은 위대한 탐험가와 과학자 혹은 천문학자들에게는 언제나 세계최초라는 강조구가 따라다녔습니다. 물론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로 누구나 받아들였고, 상식의 한 모퉁이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교과서와 위인전과 여타의 방송매체에서 인증한 역사적인 사실이 우리가 알고있는 진실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역사의 2차적인 충격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방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콜럼버스 뒤에는 더욱 위대한 중국의 정화제독이 이끄는 정화 함대가 있었고, 천재적인 발명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 많은 도안 뒤에도 역시 중국의 1차 발명이 오래전에 있었다고 한다면 과연 고대 중국인들은 월등한 수준의 과학과 수학 천문학 등과 같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1세기의 떠오르는 거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저력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허황된 논리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중국이 세계 안에 고립되는 정치적 상황이 수백년의 문화 과학적인 진보를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급성장하는 중국의 모습에서 고대 중국의 화려한 과학기술의 문명을 엿볼 수 있습니다.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의 저자 개빈 멘지스는 중국 정화 함대라는 메시아의 등장으로 인하여 유럽과 이탈리아를 필두로 한 르네상스라는 문화혁명을 일어났음을 증명하기 위해 현장조사와 방대한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 당시의 시대상황과 생활상을 잘깍은 연필로 세밀화를 그리듯이 설명을 하고, 중국과 유럽의 과학자와 기술자 수학자들의 상세한 프로필과 업적, 일상의 기록들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미지의 인물들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과히 살아있는 인간에게 최초의 숨결을 불어넣듯이 사실성에 근거를 두고 논리적인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꿈틀대는 문명에 최초의 숨결을 전해준 중국의 정화 함대에는 [영락대전] 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백과사전이 있었습니다. 모든 기술과학을 총망라한 영락대전을 만든 영락제는 세계의 여러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고 중국의 지배하에 두기 위해 정화 함대를 각지에 파견하여 그들의 독창적인 문물을 전파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럽은 정화 함대가 전해준 기술을 바탕으로 모방과 발전의 단계를 거쳐서 르네상스라는 유럽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선진기술을 전해주는 대가로 조공을 원했던 중국은 서구 열강이 강대해지는 것을 역사속에서 씁쓸하게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개빈 맨지스의 손에 의해 빚어진 구슬같은 역사서에서 그동안 왜곡되어진 역사의 진실된 얼굴을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Oztoto's Cook n Book http://blog.naver.com/oneyefishl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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