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리는 소매치기 이야기 이다. 소매치기의 심리와 범죄의 세계가 치밀하게 그려져 있다. 주인공이 소매치기를 하는 장면이 묘사된 부분을 읽고 있을 때는 혹 작가는 소매치기 출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매치기인 ‘니시무라’는 소매치기의 말로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길을 가려는 소년을 다른 길로 가도록 돕는다. 그러나 악의 세계는 늪과 같아,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또 한사람 ‘기자키’는 악의 세계의 늪을 관장하는 제왕이다. 그는 늪에 빠진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을 자기 기분에 따라 한다. ‘기자키’는 ‘니시무라’의 천재적인 소매치기 능력을 알아보고 ‘니시무라’에게 게임을 하도록 만든다. 게임의 룰도 ‘기자키’가 가지고 있다. 당연이 게임에 이기든 지든 ‘니시무라’의 운명은 ‘기자키’에게 있다. 그럼 ‘니시무라’는 어떻게 될까 우리에게는 민주주의라는 합리적인 체계와 그를 유지해 나가는 법이 있다. 그러나 우리 삶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때는 아주 비합리적이고 불법적으로 흘러갈 때가 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권력이 될 때가 그런 경우이다. 모든 필요한 것을 돈으로 구하여야 하는 간접 경제 속의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조직 속에 속한다. 조직 속에 개인은 조직의 운명에 자신을 맡긴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남의 손에 쥐어 주는 것이다. 이런 모순 에서 벗어나 스스로 운명을 펼쳐나가려면 혼자 우뚝 서기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여기서 혼자라는 말은 사회와 격리된 혼자는 아니다. 그러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용기가 아니라 이타심을 발휘하는 용기여야 할 것이다. ‘니시무라’는 사회의 불법자인 소매치기이고 운명이 남의 손에 쥐어 있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자비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상대하는 ‘기자키’는 비열하고 두려움이 많은 인간의 탈을 쓴 인격파괴자다. 기자키는 사회의 악의 요소를 통해 모은 돈과 그 돈으로 남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하세계 권력을 만든다. 그런 돈과 권력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이 추구해나가는 목표와 쾌락을 위해 자신에게 위협적인 것은 언제든지 제거한다. <쓰리>는 소매치기 이야기로 꾸며져 있지만 어쩌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가진 자가 보여주는 무자비한 횡포가 어떤 것인지..... 마지막 주인공 ‘니시무라’가 빌딩사이 사지의 공간에서 밖으로 던진 동전. 그 동전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다수의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던진 동전! 많은 사람들이 보고 그를 도울 수 있는 희망의 동전이길 지극한 마음으로 빌어 본다. |
|
책 제목을 보고 언뜻 영어 숫자 3을 그냥 우리나라 말로 쓴거로 연상했다. 근데..아니다. 여기서 쓰리는 예전에 아니 지금도 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쓰리꾼.. 쓰리당하다.. 란 말이 있었는데 소매치기와 소매치기를 당하다라는 소리다. 쓰리란 말이 일본어였던 거다. 제목대로 소매치기가 나온다.
읽고나서 한참을 생각에 빠졌다. 책 내용에 이런 게 나온다. 옛날 프랑스에 어느 귀족이 있었다. 그 귀족의 성에 열세살 소년이 하인으로 팔려왔다. 귀족은 인생이 싫증이 나서 유쾌한 재밋거리를 찾고 있었다. 귀족은 그 소년을 보며 이 녀석의 인생을 자신이 하나에서 열까지 규정해 주기로 결심했다. 종이를 꺼내 소년의 미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바로 운명의 노트다. 하인으로 팔려온 소년은 운명의 노트대로 한 소녀를 만나 먼 영지로 떠나게 되고 삼류영화처럼 헤어진다.. 소년이 열여덟살 때는 단 하루만 농노이던 양친을 만나러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그날 일가족은 산적의 습격을 받게 된다. 소년의 눈 앞에서 부모가 무참히 살해되는 것이다. 물론 귀족의 노트대로다. 이렇게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귀족의 각본대로 생을 산다.. 귀족을 자신의 각본대로 움직이는 소년의 생을 보며 즐거워 한다..
무소불위의 절대자. 절대자가 짜 놓은 각본. 거기에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간. "나"라는 주인공도 역시 거기에 걸려든다. 우리 인간사 누군가 각본을 쓰고 그대로 실행되는 게 아닐까? 운명이란 단어처럼. 그런 생각에 빠지니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내 각본 쓴 절대자..각본 좀 제대로 쓰란 말이야! 이렇게 외치고 싶다.
책은 괜찮은 거 같은데
뭔가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이런저런 짜임새를 바라고 싶다. 약간 허탈하고 재미없는 영화를 본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고 싶어졌다.
|
|
독자가 문학에, 아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설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일까. 미학적 완성도나 세계를 뚫어보는 놀라운 직관, 기상천외한 수사, 전혀 몰랐던 세계에 대한 정보, 삶의 단편 등 일까? 누구나 평등하게 취향을 소비할 수 있는, 그래서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읽지 않을’권리를 갖고 있는 감상자를 상대하는 예술분야에서 이 질문에 대한 보편적인 대답은 가능한 것인가.
‘문학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깊이를 추구하면서, 또한 이야기로서도 스릴 있는 것을 지향했습니다’
인용한 글에서 우리는 종전의 질문에 대한 보편적 대답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언급은 <쓰리>의 저자 나카무라 후미노리가 <쓰리>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한국 독자에게’라는 제목으로 남긴 글의 일부이다. 실제로 <쓰리>는 언급된 미학에 충실하고 할 수 있다. 이야기로서 재미있고 잘 읽히면서도, 단지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무엇인가를 더 전달하고 있는, 그야말로 ‘문학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깊이’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독자로써 결국 소설(특히 장편)에 기대하는 것은 우선 ‘이야기성’이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미문으로 이루어진 글이라도 그것들이 모여 전개하고 있는 이야기가 재미없다면 삼시세끼 먹는 케이크처럼 부담스럽고 지겹다. <쓰리>는 일인칭 소설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인 집중력 있는 전개를 잘 살리고 있는 소설로, 독자는 진행되고 있는 목소리를 따라 쉽게 소설에 몰입될 수 있다. 주인공 인물의 내면과 감각을 넘나들며 ‘스릴 있게’ 이 소설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가 단지 재미있는 서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은 ‘감각’에 대한 표현에 있어서 두드러진다. 소설의 특성상 ‘감각’이라는 모티프는 특별히 중요한데, 이것은 타나토스적인 삶에서의 에로스를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매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쓰리>의 주인공은 소매치기로 감각이 발달한 인물이다. 따라서 감각 묘사에 설득력은 인물에 대한 신뢰와 연결되어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표현하는 ‘감각’의 역할은 인물에 대한 당위를 넘어, 소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보이지 않는 척추와 같은 역할을 한다. 소매치기라는 소재가 스릴과 서사적 재미를 제공하고 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감각(개인적 체험)’에 대한 저자의 표현은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에 그치지 않고 타자인 독자를 가체험 영역으로 끌어들여 소설의 주요한 주제이자 모티프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묘사 뿐 아니라, 구성력 역시 뛰어나다. |
|
레옹과 마틸다는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다. 레옹의 직업은 살인 청부업으로 떠돌아다니는 인생이다. 마틸다는 마약 중간상인인 아버지 밑에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이다. 그러다 마틸다의 가족이 마약문제에 얽히면서 마틸다를 제외한 전 가족이 몰살당한다. 이때 레옹이 마틸다를 구해주면서 마틸다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동생을 죽인 범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녀는 살인 청부업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레옹에게 방법을 전수받는다. 그러면서 둘 사이엔 정이 싹트고 냉혈한 같던 레옹도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1] 영화 <레옹>의 이야기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 청부살인업자와 소녀 커플을 깊이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부살인업자인 남자가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린 소녀를 돌봐주게 된 건 왜 일까? 어렸을 때부터 비운의 삶을 살았던 소년은 자라서 청부살인업자가 되고, 그 앞에 예전의 그를 꼭닮은 소녀가 나타난다. 아마 그런 게 아니었을까? 레옹과 마틸다는.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쓰리> 역시 왠지 배경음악으로 스팅의Shape Of My Heart가 흐를 듯 하다. ‘나’는 소매치기이다. 내가 마음을 주었던 소매치기 동료는 바로 나 때문에 죽게 된다. 나만 아니면 그는 삶을 택했을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 일’을 한 이유는 오직 나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 한 소년이 나타난다. 이전의 나를 꼭 닮은. 소년의 엄마는 몸을 팔며 근근이 살아간다. 애인인 남자와 같이 사는데, 남자는 폭력을 일삼으며 매매춘을 공공연히 부추긴다. 아이는 그 집에서 이 두 ‘성인’과 함께 산다. 엄마는 종종 아이에게 물건을 훔쳐오라고 한다. 아이의 삶은 너무나 춥다. 이 두 사람이 만나게 된다. 레옹과 마틸다처럼. 성냥팔이 소녀처럼, 대성당에서 얼어죽은 네로처럼, 삶이 평생 추운 사람들이 있다. 따뜻한 사람들의 삶을 엿보기는 하지만, 그 따뜻함 속으로 결코 들어오지는 못하는 그런 사람들. ‘추워. 추워. 너무 추워.’ 그렇게 춥게 살다 어느날 싸늘하게 얼어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 인생이 온통 겨울, 겨울, 겨울, 겨울인 사람들. <쓰리>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소매치기와 그의 어린 시절을 꼭 닮은 소년의 이야기. 태어난 장소에서 그의 삶은 결정되고 그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흐름 속에서 계속 움직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95). 아이의 팔다리를 바라보며, 태어난 장소에 의해 이 아이의 삶이 규정되었다는 게 새삼스럽게 실감으로 다가왔다. 억지로 떠안긴 환경 속에서 아이는 힘껏,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얼어 죽겠다 싶어서 다리를 툭 찼더니 아이가 눈을 떴다(174). 그리고 이 소매치기 남자는 또 한 번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의 친구가 그를 버릴 수 없었던 것처럼, 이 남자 역시 소년 때문에 이 제안을 거부할 수가 없다. 결국은 죽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은 파멸에 이르게 될 줄 알면서도. “협박치고는 너무 고전적인데?” “그래, 고전적인 협박이 가장 잘 듣지.” 그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소리 내어 웃었다. “신미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정말 멍청한 놈들이야. 그런 밑바닥 인생을 선택한 주제에 항상 어딘가에 연결되려고 한단 말이야. 그야말로 멍청함의 극치야. 너희는 사실 계속 고독한 프리로 있는 게 좋았어. 똑똑히 들어. 신미가 그때 강도 사건에 참가하기 전에 내빼지 않은 건 너 때문이었어.” “…… 신미가?” “그래. 강도 사건에 참여해서 둘 다 살겠느냐, 아니면 둘이 함께 도망쳐서 둘 다 죽겠느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거든. 혼자였다면 그놈은 죽을 위험이 있더라도 당장 도망쳤을 거야.” (중략) “한마디로 너는 이미 내 휘하에 있어. 넌 사양할 권리가 없어. 그 어미와 아들이 끔찍하게 죽기 때문이지. 그게 너의 운명이야. 운명이라는 건 강자와 약자의 관계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종교에 눈을 돌려보면 알 거야. 야훼를 따른 이스라엘 사람들이 왜 야훼를 두려워햇을까? 바로 그 신에게 힘이 있었기 때문이야. 신을 믿는 인간은 많건 적건 신을 두려워해. 왜냐하면 신에게 힘이 있기 때문에.” (152-153) 거부할 수 없는 이 ‘밑바닥 인생’에서 ‘나’는 벗어날 수 있을까? 타인의 인생을 농락하는 걸 즐기는 그 거대한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 죽는다 해도 슬퍼하며 눈물 흘릴 사람 하나 없는 이런 삶이지만 그래도 삶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는 ‘나’는 죽음의 제안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 [덧붙임] 도시의 마천루인 높은 빌딩들의 사진에 주인공 남자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얹은 표지가 작품의 이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 책을 실물로 못 보고 컴퓨터 모니터로만 봐서 몰랐는데, 이 남자는 지갑을 재킷 안주머니에 넣고 있는 중이다. 아마 표지를 봤다면 ‘쓰리’를 아라비아 숫자 ‘3’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텐데… 어른들이 흔히 ‘쓰리맞았다’고 할 때의 그 ‘쓰리’다. 일본어 すり [掏摸], ‘소매치기’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개인적인 희망이지만, 번역하면서 작품의 이미지에 맞게 한국어 제목을 다시 정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쓰리’라는 한글 제목 위에 ‘掏摸’라고 써놓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듯 하다. 아마도 대개의 사람들은 나처럼 ‘쓰리’에서 ‘3’을 연상하지 않았을까? |
|
일단 장르소설에 등록된 작품들은 다 스캔하지만, 이 작품은 놓쳤다. 아마도 제목을 보고서 '쓰리'가
소매치기가 아닌 숫자의 3라 생각했고, 동일제목의 옴니버스 호러판타지영화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다시 보게 된것은, crimereads에서 여러번 소개되어서였다.
영어로 번역되어서 계속해서 선정되는 이 작품이 무엇인가 ..하다가 읽게되었다. 그러니까 일본어로 쓰여진 이 작품이 영어로 번역되서 소개되고 그걸 알게된뒤 한국어로 읽는. 그러니까 어떤 언어로 되어있듯, 결국 좋은 작품은 만나게 마련이라는 건가. 다 읽고나서 조금 울었다. 니시무라는 소매치기이다. 그는 아무도 의심하지않게 잘차려입고 부자만을 노린다. 그런 그에게 한 모자가 눈에 비춰진다. 어머니는 아이를 잘 돌보지않은듯, 허름하고 더러운 그 아이는 엄마의 지령으로 물건을 훔치고 붙잡히기전 니시무라는 그들에게 이를 알려준다. 그리고 그에게 끌리듯 다가오는 아이. 아이는 니시무라처럼 물건을 잘 훔치고 싶어한다. 아니, 자신을 처음으로 보호해준, 엄마보다 그의 안위를 걱정해준, 그렇게 스쳐가는듯했던 니시무라에게도 간절한 끈을 붙잡고 싶었던듯하다. 하지만, 니시무라는 자신을 그렇게 보살펴준 이시카와와의 마지막 일 이후 그의 운명을 알면서도 가끔 궁금해한다. 그런 그에게 악과 권력의 화신인 기자키가 다가와, 이시카와의 마지막 범죄미션과도 비슷한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을 던져주며, 피할시에 그 아이를 죽이겠다고 말한다. 한 인간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그의 인생을 조각했던 귀족처럼, 기자키도 모든 것을 다 가진 지금 그렇게 니시무라의 인생을 조종하는 쾌락을 누리려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 알까. 자신의 생명이 걸렸지만, 자신의 혈육도 아니지만, 자신을 믿는 그 조그만 생명을 위해서 목숨이 아깝지않은 그런 마음을 기자키는 느낄 수 있을까? 그가 다른 인간들을 자신의 의도에 따르는 장기의 돌처럼 여기듯, 그 또한 이 큰 세계의 하나의 장기돌이라는 것을. 소설을 읽다면 공감해서 그 상대가 범죄자건 뭐건 잘되길 바랄때가 있따. 책을 덮어도 어디선가 잘 살기를 바라게 된다. 난 니시무라가 동전을 잘 던졌기를 바란다. |
|
만화책을 연상케 하는 표지가 눈길을 끌었다.
도쿄를 휘저으며 부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지갑을 훔치는 소매치기 니시무라가 이 책 <쓰리>의 주인공이다. 소매치기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니시무라는 그러나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만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랄해 보이기보다는 외로워 보인다는 점이 니시무라의 매력을 높여주는 것 같았다. 니시무라는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부자들이 거니는 곳은 어디에서든 손을 뻗어 지갑을 훔쳐낸다. 심지어 지갑에서 돈만 빼내고 지갑은 다시 주머니 속에 넣는 묘기까지 부리기도 한다. 상대에게 살짝 충격을 가하고 손가락만을 이용해 다른 이의 지갑을 빼내는 소매치기 장면은 책을 읽는 사람까지도 가슴이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 소매치기를 하여 필요를 충족할 수 있고, 세상의 규칙에 얽매이지도 않으며 제 멋대로 사는 니시무라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유롭게만 보이던 니시무라의 모습은 곧 주춤한다. 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려다 직원에게 적발된 한 모자가 니시무라의 삶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어린 아들이 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도록 시키는 엄마의 모습과 엄마가 적어준 리스트대로 열심히 물건을 주워 담는 아들의 모습은 가혹하리만큼 보기가 불편했다. 그렇게 아무와의 관계도 없이 홀로 살던 니시무라가 한 모자와 관계를 갖게 되자마자 기자키가 등장한다. 니시무라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겠다며 나타난 기자키는 니시무라에게 세 가지의 작업을 할 것을 주문하고는 실패할 경우엔 죽이겠다고 협박을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자신의 생각대로 조종하려는 기자키는 그야말로 무법자 같았다.
아무 연고도 없고 설사 죽는다 해도 그의 죽음을 알아줄 사람이 없어서, 그런 편리함 때문에 기자키는 니시무라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 선택의 이유가 너무 씁쓸했다. 니시무라가 일을 성공하던 성공하지 않던 그 끝에는 죽음이 있었음을 알았다면 과연 결과는 달라졌을까. 마지막 순간에 니시무라가 던져 올린 피묻은 동전은 과연 니시무라의 목숨을 살리는 희망의 동전이 되었을까. 여러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는 결말이었다.
|
|
‘소매치기’란, 타인의 금품을 교묘하게 훔치는 특수 절도행위다. 이 비열함 가득하고 흉포한 범죄행위의 일본말‘쓰리(陶摸)’를 제목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만으로도 역설적이게도 야릇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처럼 가히 천부적이라 할 밖에 없는 소매치기의 서슴없는 절도행위에 감탄을 연발 해대는 것을 보면 웃기는 얘기지만‘예술’이란 말을 절로 흘러나오게 한다.
거침없이 반복되는 프로소매치기인 주인공‘니시무라’의 소매치기 행위에서 알 수 없는 짜릿한 희열을 강요받기도 하지만, 이러한 행위보다는 그의 내면의 목소리들, 바로 심리(心理)를 들여다보고, 집단의 힘에 의해 버려진 자의 음울한 고독에 귀 기울이게 하는 암묵적 서사에 오히려 매료된다. “결코 가 닿을 수 없다고 생각될 만큼” 멀고 아름다운 탑, 언제나 흐릿하고, 윤곽이 애매한, 오래된 백일몽 같은 탑을 그리는 청년의 몽롱한 이상향 때문에 괜스레 동류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네들 대개가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고립감과 무기력, 그리고 숙명적 체념에 휘둘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집단을 거부하고 건전함과 환함을 거부했다. 내 주위를 높은 벽으로 에워싸고 인생에 생겨난 어둠의 틈새에 들어가듯이 살아왔다.”는 가치 부정의 의식은 우리들이 무심코 저지르는 타인에 대한 폭력이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훼손시키는지를 대변한다. 부유한 자들의 지갑만을 빼내는 행위가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그 빼낸 돈이 어제의 소유자를 알 수 없듯이 “돈은 각자 인생의 순간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거”라는 자연의 순리에 이르면 초월적인 진실로 이해 될 수도 있다. 사실 거짓을 몸에 두르고 그 거짓으로 주위에 녹아들어 의심을 해체시키는 소매치기의 생존술은 여느 인간들의 삶의 방식과 그리 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주인공 니시무라의 쓰리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 의식의 빈틈을 헤집는 고도의 총체적 심리전술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 여기엔 세상에 대한 비웃음, 조롱을 이미 내재하고 있고, 손을 뻗칠 때의 그 긴장감 속에서만 자유로워질 것 같은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이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한 쓰리꾼의 내면을 시종 쫓아가게 하는 힘은 거대한 운명의 힘처럼 작용하는 악마의 화신으로 등장하는‘기자키’라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피살되는 여러 인간에게서 그네들의 감정이 동시에 침입해 들어오는 기운을 즐기고, 세상의 왜곡된 구조를 악용하는 규모를 알 수 없는 범죄의 분신과 마주할 때, 그 미지의 공포는 삶을 더욱 황폐하게 가속화시킬 것이다. 버림받아 의존할 곳 없는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한 악마의 요구, 천재 소매치기에게 주어진 세 가지 과제의 해결은 피 할 수 없는 게임이 된다.
불합리한 것들로 구성된 게임, 이것이 바로 세상의 구조라 말하는 기자키와의 대결은 죽음의 공포를 초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선(善)을 잊어서는 결코 악(惡)에 물들 수 없다는 악마의 이 모순적 명제는 진실일까? 온 힘을 다해 오백엔짜리 동전을 튕겨 올리는 니시무라의 세상을 향한 마지막 구원의 행위는 인상 깊은 장면이 되어 각인된다. 소매치기라는 범죄행위의 거북한 소재가 더 할 수 없는 매혹적 소재로 둔갑하고, 여기에 현대인의 고립과 소외, 그리고 운명의 부조리에 대한 숙명적 저항을 물리기 어려울 정도의 흥미와 긴장으로 이끄는 스토리의 구성으로 매료시키는 작가의 역량에 그저 찬사를 연발케 된다. “반사회적 존재에 호감”을 느낀다는 작가의 양해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세상에 대한 불쾌한 반감과 교감하는 이 저작을 그리 쉽게 물리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로 그 존재의 한 면에 우리네 모습도 도사리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
|
|
|
이번의 주인공은 특이하게도 길거리에서 남의 주머니를 터는 일을 하는 쓰리꾼이다. 자칭 타칭 천재 쓰리꾼이라 일컬어지는 니시무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머니는 다 내 것이라 믿는 그에게도 천적은 존재했다. 마치 개구리가 뱀앞에서 꼼짝 못하는 것처럼 그를 알게 된것은 이시카와가 그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였다. 어둠의 일을 하는듯한 그의 눈길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고 그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것이란 예언(?)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 시기는 예정보다 가까웠고 그를 포함한 삼인은 그가 꾸미는 음모에 합류하게 된다. |
|
미스터리 추리, SF판타지 소설에 대한 관심은 지금까지 전혀 느껴보지 못한 상상과 추리의 세계가 전해주는 매력때문일 것이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장소에서 나를 알지 못하는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인 여행의 매력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전문적인 분야를 다룬 소설 또한 이것들과 같은 맥락을 따른다. 새로운 경험을 가능케하는, 소설속 주인공과 함께 걸으며 그들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즐거움, <쓰리>를 통해 '소매치기'라는 직업?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쓰리>, 한자로는 도모(掏摸)라고 쓰여지는데 일본어로는 '쓰리'라 읽히고 소매치기 [pickpocket] 를 의미한다. 처음 이 작품을 집어들고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쓰리'가 바로 훔치다는 의미의 일본어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제목속에는 '소매치기'라는 단순 의미만 담겨져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책을 읽고 나서 그 속에 담긴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천재 소매치기 니시무라,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자들의 주머니만을 노리는 조금은 양심적인? 소매치기 니시무라에게 다가온 악의를 가진 남자 기자키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 그의 친구 이시카와의 죽음, 오랜 연인인 사에코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의 엄마의 어린 남자아이... 그리고 마지막에 니시무라에게 다가오는 어둠의 그림자... 소매치기라는 소재를 통해 작가는 소매치기의 순간 순간과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긴박한 상황과 숨막힐 듯한 순간이 작가는 펜끝에서 살아 숨쉬듯 깨어난다.
이 작품은 제4회 오에 겐자부로 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쓰리>는 만화같은 표지에 독특한 제목을 가진 작품이기에 손에 들게 된 작품이기도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 상 수상이라는 수식때문에 궁금하고 만나고 싶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소매치기라는 소재를 작가가 그의 분신이 된 듯 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말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인 작품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도 엿보인다. 약간은 느슨해보이는 구성과 틀에 박힌듯 보이는 설정이 바로 그것이다.
'네가 만일 악에 물들고 싶다면 결코 선을 잊어선 안돼' 니시무라와 기자키와 얽힌 관계와 더불어 시선을 끄는 것은 어린 남자아이를 바라보는 니시무라의 시선이다. 아이 엄마의 무모하고 무책임한 행동을 통해 자신의 과거을 읽게 되는 니시무라. 부자만 노리는 소매치기, 그러면서도 성추행당하는 여학생을 구해주기도 하고, 아이를 구하기위해 자신의 모든걸 내어 놓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 세상에 절대악이란 것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 책 제목이 가지는 의미는 다양하게 느껴진다. 소매치기라는 의미와 더불어 숫자 '3'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 소매치기에게 필요한 세가지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니시무라를 비롯해 기자키, 그리고 어린아이를 연결하는 세 명의 인물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기자키가 제안한 세가지 일거리... 이 모두가 이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는 아닐까. 모든 이들에게 주어져있는 '운명'이라는 굴레. 단순히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운명, 오늘도 그 쳇바퀴를 돌아가는 우리의 삶이 니시무라의 이야기속에 고스란히 그려지는 듯해 씁쓸하기만하다.
'사실 참 아름다워. 그건 인생의, 이 세상의 아름다움 중의 하나야. 하지만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이용해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지. 사람들이 불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있을 때, 우리만은 그 아름다움을 보는 대신 그들의 주머니를 보고 있어. 그게 좀 뭐랄까....지겨웠어.' - P. 38 -
독특한 소재, 그 속에 담아낸 인생과 운명이라는 감동과 메세지, 매력적인 캐릭터... 처음 접한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작품속 주인공 니시무라의 모습이 왠지 그를 닮아 있는듯 느껴진다. 작가 자신도 이 작품에 상당한 애정이 간다고 말한다. 재미와 더불어 오에 겐자부로 상 수상이라는 문학적 가치까지 인정받은 이 작품이 국내에서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지 않을까. 가벼우면서도 어느정도 깊이와 문학적 가치를 지닌 이 작품이 조금씩 내 마음을 훔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