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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이라는 단어는 사라져 가는 단어인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한 이유는 사회가 발전을 하면서 서로간의 의견충돌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싸움이 늘어갑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목청을 높이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댜 사회에서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는 자신을 낮추고 싸움에서 진것이라고 상대방에게 알려주는것 같다는 마음들이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화를 진장시키는 효과를 주는데 이러한 것이 사라지고 서로간의 의견 대립만이 생기는 사회를 예전의 서로 화합을 하는 사회로 가자는 의미로 저는 부끄러움 코드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왜부끄러우면 얼굴에 표시가 나타나는것일까 그러한 이유는 얼굴은 다른것으로 숨시는것이 매우 힘이 드는 부위라서 부끄러워 하는 사람의 감정을 가장 잘나타내고 그렇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아 저사람이 부끄러워 하는구나 하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된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안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의 잘못한 점이 부각이 되어 지면서 용서와 이해심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된다
저자는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서양은 죄의식을 가지고 동양은 수치심을 가진다는 이야기를 한다.
서양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서 그것을 신에게 고백을 하고 그러한 죄를 신이 용서를 한다는 죄의식을 가지고 있고 동양 사람들은 신과 같은 존재가 아인 우리의 주변사람들에게 잘못된점을 내보였다는 수치심을 가진다고 분석을 한다.
어느것이 더 좋은것 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갈래로 나누어진것은 그 생활환경에 기인한것으로 볼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잘못을 하여도 그러한 잘못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그것이 자신의 주변사람들에게 알려지면 그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행위가 된다.
죄의식은 누가 몰라도 자신이 그러한 잘못을 했다고 생각을 하면 문제가 되는것인데 잘못을 했다는 생각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하게된다.
동양의 수치심은 잘못이 없어도 주변의 반응에 신경을 많이 쓰는것이 특징이다.
이책은 여러가지 사례를 들면서 부끄러움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고 이야기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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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코드 / 신화연 지음 좋은책만들기 刊 가장 아름답고 인간다운 사회적 본성이 부끄러움이라고 정의한 필자는 실종돼 가는 저자 신화연은 대단한 석학이다. 이화여대 대학원 심리학과를 마치고 호주 국립대학 저자의 말대로 요즘 횡행하는 토크 쇼는 별로 들어가는 것도 없이 순 날로 먹는 프로 또 저자는 권위주의에 쩌든 우리 문화 환경에서는 허풍과 허세가 부끄러움을 관리하 독자가 심리학 쪽으로는 무지해도 부끄러움을 덜 타면서 읽은 책이다. 부끄러움의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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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회복하여 사회와 타인과의 소통 그리고 나와의 소통에서 자유로워지자. 부끄러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아마도 성경에서 찾는 게 옳을 듯싶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서 먹지 말라고 당부하신 나무 열매를 따 먹은 후 자기들이 알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알몸인 채가 부끄럽다는 것을 느끼고 몸을 가린다. 이와 같이 부끄러움은 타인에게 감추고 싶고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하지만 부끄러운 감정이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할 때 자신의 발전도 뒤따라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자는 《부끄러움 코드(2010.6.10. 좋은책만들기)》의 여는 말에서 자아도취적 뻔뻔 모드가 대세인 사회,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는 사회에 부끄러움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고 적었다. 그리고 현대인의 필수교양일 수 없을 것 같은 부끄러움이, 실은 선한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회복하게 해 주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리고픈 마음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p19)라고 밝힌다. 《부끄러움 코드》는 학문적 입장에 비추어 부끄러움에 관한 감정을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끄러움의 패러독스, 부끄러움의 모순 등 부끄러움이 갖는 이중성을 조명한다. 즉, 부끄러움이 갖는 긍정성과 부정성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부끄러움과 죄의식, 수치심 등 도덕성 문화의 관련성이 논의되고 있는 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부끄러움 문화도 비교해서 알려준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부끄러움을 찾아보는 것으로 본격적인 부끄러움 탐색에 들어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느끼는 부끄러움,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서의 부끄러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되는 부끄러움, 아줌마와 남편의 부끄러움 등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부끄러운 감정은 타인과 나, 나와 나의 이해가 얼마나 원활하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고통이 될 수고 있으며, 용서와 화해가 될 수도 있음을 말한다. 즉, 부끄러움은 소통의 예술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끄러움 코드》의 마지막은 부끄러움 감정에게 져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예를 보여준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부끄러운 감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만든다. 그리고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심리적 과정을 통틀어 부끄러움을 어떻게 적응하여 그 감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는 이를 ‘부끄러움의 경영’이라 부른다.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가 있는데 그 작품에는 매번 버럭 큰소리를 질러대고 무심코 지나칠 법한 일도 꼬투리를 잡아 주위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인물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큰 형과 인정받는 엘리트로 사회생활을 하는 작은 형과 비교해서 보잘 것 없는 자신의 현실을 부끄러워한다. 나는 그가 부끄러운 마음과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더 큰소리를 치고 신경질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면에 숨겨진 안쓰러움과 아픔과 고통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분명히 그 마음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으며 그를 응원했다. 나는 어떤 부끄러움이 있을까. 나에게는 숨기고픈 어떤 부끄러운 감정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그 감정에서 자유로워져 진정한 나의 모습과 꼭 만나겠다고 다짐해본다. 사람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 중에서 부끄러움, 단 하나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은 참으로 읽을거리도 많고 배울 거리도 많다. ‘나와 나를 우리로 만나게 하는 소통의 공간’이란 부제로 부끄러움의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도 신선했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공간인 부끄러움을 타인과의 효율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가 충분히 설득력 있게 진행되었기에 저자의 입장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솔직하게 말하면 현재 우리 사회는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사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로 보이는 건 나에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부끄러움의 회복만이 사회와 타인과의 소통 그리고 나와의 소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 말이다. 지금부터는 부끄러움에 귀를 기울여야할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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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은 상당히 개인적인 감정이면서도 사회적인 성격을 가졌기에 이중적인 면모가 있다. 한 개인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에 유일하게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감정이 바로 부끄러움이다. 그렇기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는 사회적인 ‘나’와 나다운 ‘나’가 일치되지 못해 깊은 소외감을 낳게 한다. 이런 감정의 소외를 제대로 극복했다면 충분히 사회란 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그런 감정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것이 소멸되지 않고 켜켜히 쌓아두었다가 어느 순간엔 세상에 분노를 터트리거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자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을 정도로 부끄러움이란 감정은 위험하면서도 중요한 감정이다. 그런데 이런 부끄러움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개개인의 성격이나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 학력이나 경력 등에도 연관있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의 분위기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부끄러움을 징벌로 대하는 사회에서는 건강하게 해결하지 못해 그것이 재앙의 불씨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큰 예가 아돌로 히틀러의 경우이다. 어릴 적부터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이유 없는 학대와 언어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그는 항상 분노에 차 있었다고 한다. 깊은 부끄러움이 해결되지 않아 분노로 전이된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부끄러움은 한낱 개인적인 감정으로 치부해버릴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감정이라는 것이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나는 내 무의식에서 만들어낸 책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마음이 끌렸다. 어릴 적부터 부끄러운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해 항상 도망치기에만 바빴던 나로선 어른이 된 이후에도 부끄러움에 대해 때마다 숙고해보곤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서히 내성적인 표현력을 개선해나가고 내성적인 표현력과 부끄러움이 충분히 극복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는 그 어릴 적에 왜 그리 부끄러움에 얽매어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번도 속시원할 만한 해답을 얻지 못했었기에 그저 공상으로만 치부하고 말았었는데, 이 책을 만나고선 부끄러움이 충분히 숙고해보고 논의해볼 만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이후에도 부끄러움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덮치고 그것으로 인해 좌절감을 느낄 때도 그것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이 책에서 배울 수 있었다. 딱히 무언가 해결책이 제시된 것은 아닌데, 부끄러움을 느꼈을 때 보이는 일반적인 반응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자 내게 문제가 되는 행동 양상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움은 일반적으로 은둔형이나 위축형, 자아공격형, 회피형, 타인공격형의 반응을 보이게 하는데, 은둔형은 소외감이나 외로움이라는 부작용을 가지게 되는 단점이 있고, 소외감을 느끼기 힘들어 자아공격형으로 빠지게 되면 극단적으로 자살에 이르게 되기도 한단다. 또 명품 같은 다른 것으로 자신을 감추려는 것이 회피형이고, 부끄러움의 원인을 모조리 다른 사람 탓을 하게 되는 타인공격형의 예가 ‘묻지마 살인’이나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란다.
그러니 범죄자들을 단지 후안무치의 사람들이라고 치부하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언가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공격적인 성향과 분노를 뿜어내는 것이란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 대부분 범죄자들의 가정 환경이 썩 좋지 못하다. 아버지나 어머니 한 쪽이 안 계시거나 두 분 다 안계셔서 외부에서 받아오는 상처나 부끄러움을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바로 그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학대나 언어폭력으로 받은 상처와 수치심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기에 밖으로 분노를 표출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부끄러움은 바로 사회적인 문제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장 큰 예로, 10여 년 전 스코틀랜드의 작은 도시에서 토마스 해밀턴이 일으킨 초등학교 어린이 총기난사 사건을 들 수 있겠다. 부끄러움이란 감정이 안전하게 해소될 수 있는 가정이 존재했더라면, 그를 다독여주는 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가정을 유지할 수 없었던 젊은 엄마에게서 외조부모에게 입양된 해밀턴은 괴팍하면서도 지배적인 식구들 밑에서 친구 없이 자랐다. 후에 보이스카웃 관련 일을 했는데 외톨이인 그에 대해서 소아성애병자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아 억울하게 직업을 잃었다. 무죄임이 밝혀졌어도 그는 직장을 구할 수도 없었던 데다가 이웃사람들에게까지 내침을 당했던 것이다. 만약 사회가, 주위의 이웃이, 할머니가, 엄마가 그를 이해하고 공감해주었더라면 그는 근처의 초등학교에서 열여섯 명의 어린이와 교사 한 명을 총으로 살해하고 자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니 부끄러움이란 하등 쓸모없는 감정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사회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내 생각이 다르고 남 생각이 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무조건 수용할 순 없지 않은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행동을 했다면 마땅히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그 부끄러움을 통해 사회에서 용인된 행동이 무엇인지,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사회, 그런 부끄러움을 해소시킬 수 있는 사회가 바로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사람은 느끼지 않고, 부끄러움을 굳이 느끼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위정자들부터 그런 정당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생활한다면, 그리고 그런 부끄러움에 대해서 남탓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는 충분히 희망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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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부끄럽다.; '창피하다.'는 말보다는 '당당하다.' '당돌하다.'는 말이 더 많이 쓰이것 같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도 '왜 당당하지 못하다.'는 말을 더 많이하게 되는 것 같다. 예전 할머니들께서는 실수를 해도, 너무 오래살아도 부끄럽다는 말씀들을 많이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부끄럽다'거나 '창피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이어령교수는 디지로그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으며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생각이 적절히 배합이 되어야 살아가는데 좋다고 하셨다. 그처럼 작가도 부끄러움은 아날로그적 감정의 표현이라 했다. 언뜻 생각해보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자신감이 없다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감정의 표현임을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부끄러움은 생존적 기능에 있고, 일반적으로 느끼는 부끄러움은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기능을 한다고 했다.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면서 더 많이 화를 낸다든가, 자신이 편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관계를 볼 때 사회적 관계의 기능에 있어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부끄러움의 코드가 서양과 동야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놀라웠다. 서양인이 느끼는 부끄러움의 코드는 양심의 '소리'에 바탕을 하고 있지만 동양의 부끄러움의 코드는 '주위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른것 같다. 가장 근원적인 수치심에 아담과 이브의 성경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히틀러의 독재가 어디서 기인했는지에 대한 이 책의 기록은 그동안 심리학적으로 접근했던 인간의 마음을 또다른 코드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부끄러움의 내용을 이해하고 다시 시도하는 복된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모든 인간 관계에서 겪어내어야 하는 참된 나의 됨됨이를 찾아가는 것인것 같다. 당당함도 좋고 시크한 것도 좋지만 기본적인 내안의 부끄러움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함께 동행하면 고쳐나가는 사회, 아니 나 자신이 되어야 겠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임을 알게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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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전재로 하는 자신을 향한 감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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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부끄러운 감정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 생각들이 계속 세뇌되어 세습되기 전에 우리의 생각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바로 이 책이 우리가 당연시해왔던 것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한 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고, 아이들을 가르쳤던 나로서는 책임 의식 없이 무턱대고 가르친 것에 대해 무척 부끄러움을 느끼고, 스스로 괴로웠다. 저자가 말하길, 부끄러움을 무시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에서 타인과 소통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유아독존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며, 도덕적 양심에 호소할 수도 없는 몰지각한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또한 마음 속 진심을 가리고 삐에로처럼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그것은 역으로 가려진 진심을 표출하기 위해 또 다른 통로를 찾으면서 사회에 부적응적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우리는 잘못된 사고 방식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었고, 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이끌고 있었는지 스스로 반성해야 하겠다. 부끄러운 감정은 인간으로서의 본능적 감정이다. 슬픔, 기쁨 화남을 느끼듯이 느끼는 본능 말이다. 만약, 기쁜 감정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인간이기에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사회문화적으로 그 본능의 감정을 무시하고 숨겨야 한다면 인간으로서 커다란 고통일 것이다. 저자는 인간 본능의 부끄러운 감정을 서로가 인정하고, 타인의 부끄러움 감정을 존중해주기를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어떤 이유로 인해서 부끄러움 감정을 죄책감으로 여기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 동방예의지국의 우리는 부끄러움을 예의 바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옳지 못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서양의 사고 방식이 들어오면서 부끄러워하는 것을 마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아 존중감이 없어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잘못된 당당함이 부끄러움 감정을 부끄럽게 여기게 만들었다. 즉,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은 나 개인의 생각이다. 자연의 흐름을 역행하기 보다는 순응하는 삶을 존중하며, 뛰어난 나 개인보다는 함께 어우러진 나를 추구했던 것이 바로 동양의 철학이다. 하지만 서양의 철학은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또한 세계를 바꿀 수과학적 분석적 사고에 초점을 두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를 꿈꾸었다. 그러기에 자연과 세상 앞에 선 당당한 나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어찌됐건 이 글을 읽는 내내 과거 우리의 조상들의 부끄러움을 존중해서 소박하고 아름다웠던 삶을 동경하듯 머리 속에 그려보고, 뻔뻔하기 그지 없는 현실 삶과 비교하며 마음 속으로 부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부끄러움에 대한 저자의 깊이 있는 통찰이 단어 하나 하나에 녹아 들었다. 그리고 그 글을 읽는 내내 나로 하여금 감탄하게 만들었다. 또한 다른 사상가들의 명언 그리고 속담 속 부끄러움에 대한 함축된 문장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띄었다. 그 문장들을 한 숨에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은 저자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았고, 이 책을 잘못 읽었다는 느낌을 갖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읽고 또 읽고 읽으며 저자의 생각, 숨어 있는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읽고 난 후 내가 한층 성숙해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 책은 흥미로운 주제를 펼쳐내는 데 있어서 다소 어려운 내용도 담고 있긴 하지만 영화나 실제 대중적 사건들과 함께 어우러져 전달함으로써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앞서서도 말했듯 이 책이 어려운 것은 그 내용이 어떤 이론이어서 혹은 잘난 맛에 쓰여진 글이어서 어려운 것은 아니고, 저자의 깊이 있는 생각들이 함축되어 간결하게 담겨져 있어서 단어 하나를 이해하는 데도 어느 정도의 사유의 시간이 필요했기에 어려웠다는 것이다. 어찌 됐건 정말 흥미롭게 알차게 잘 읽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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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이라는 단어에 내포되는 의미는 아마도 부정적 의미가 많이 들어 있을 것이다.특히 저자의 주장처럼 얼굴과 관련된 의미가 많을 것이다 낯이 뜨겁다 얼굴이 빨개진다등 여러표현이 있다. 이책은 기존의 우리들에게 알려진 부정적인 이미지외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부끄러움이라는 의미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다. 서양에서는 부끄러움을 죄의식이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을 하였으며 동양에서는 수치스러움이라는 뜻으로 사용이 되었다. 최근의 우리의 문화가 서구화 되면서 부끄러움이란 표현을 죄의식또는 자기비하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으나,오히려 서양에서는 동양의 수치스러움이라는 의미로 도덕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사실 이러한 구분은 애매하고도 의미가 별로 없다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도덕이라는 의미로 재해석을 할경우는 우리의 가치로도 새롭게 인식을 할수가 있을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사실을 자백하지 않을 경우 간접적인 부끄러움을 떠올리게 하여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죄를 하는 경우가 간혹 발생을 한다. 그것은 범인 스스로 부끄럽고 인간적인 도덕율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을 할수가 있다. 우리인간에게는 부끄러움이란 스스로의 통제된 행위된 도덕의 표현이다. 크게 나아가서는 남을 배려하는 하나의 척도된행위이자 남과나의 새로운 의사소통의 도구라고도 할수가 있을 것이다. 책속의 여러사례등을 읽고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니 과연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나를 세상과 하나됨으로 이어주는 훌륭한 도구라고 믿게되었다.
그리고 부끄러움과 반대되는 감정은 자신감이다. 얼굴을 당당히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부끄러움이 있음에도 당당히 세상에 자신의 당당함을 보인다면 그것은 당당함 즉 자신감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자신감으로 새롭게 탄생된 의미로도 볼수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존재할때 그사회는 숨쉬기가 힘들고 살기가 어려운 사회가 될것이다. 반면 스스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살아간다면 서로서로 다양하게 부끄러움이라는 형태로 소통이 된다고도 볼수가 있다. 긍정적인 의미의 부끄러움이 우리사회를 어떻게 움직이고 우리사회와 행복과 관계가 있는지 저자의 의미를 알수가 있겠다.
사람사는 냄새가 많이 나는 부끄러움이 행복한 세상으로 이끌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서로서로 배려를 하고 자신의 마음속깊은 곳에 스스로의 통제장치의 일부분인 부끄러움을 새롭게 인식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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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은 사람들간의 소통의 길을 틔워주는 감정이다.
부끄러움이 얼굴에 나타난다는 것이 저주이면서도 축복이기도 하다니, 맞는 말이기도 하다.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뻔뻔한 사람보다는 별일 아니어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빛이 얼굴에 나타나는 사람이라면 용서의 마음이 일지 않을까 한다. 같은 사무실의 직원은 안좋은 일로 거래처와 통화를 하다보면 얼굴과 몸이 아주 새빨갛게 달아오르곤 한다. 본인은 싫어하지만 보는 이들은 위로를 해주기도 하고 잘못이 아님을 인정해 주기도 한다. 얼굴에 나타나는 부끄러움은 결국 ‘너’에게 보내는 ‘나’의 소망의 메시지라는 말.....
우리 작은딸은 너무 당당하다. 그래서 걱정이기도 하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알지만 금새 잊어버리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항상 당당하고 당돌하여서 걱정일때도 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는 것이겠지만 그와 반대로 큰 아이는 앞으로 걱정이다. 앞에 나서기 싫어하고 상대방에게 나쁜 말은 하지도 못하고 부탁하는 말도 하기 싫어한다. 그만큼 행동도 조심스럽고 말도 가려서 하겠지만 살아가면서 남에게 부탁하는 말을 하여야 할때도 생길텐데, 앞으로 살아가려면 힘겨운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는 걱정이 일기도 한다.
부끄러움은 선한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회복하게 해주는 감정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과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인간의 조건일수도 있으며, 부끄러움의 내밀한 중요성이 현대인의 필수교양일수 없다는 것도 현실이다.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는 체면이 밥 먹여주고 얼어죽어도 곁불은 안 쬐고, 남의 눈을 무서워하는 등 부끄러움에 얽매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었으나, 요즘은 직장이나 사회에서 상대의 뒤통수를 치는 인륜조차 서슴지 않는 부끄럼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자유를 꿈꾼다. 그런 자들은 부끄러움의 경계선을 넘어서 무법자의 세상을 만들수는 없으며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 것이니 우리에겐 세상의 법이 아닌 서로가 지켜야 할 마음의 법을 일깨워야 할것이다. 우리의 삶이 따뜻하고 평안하기를 바란다면 부끄러움을 직시하여야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면서 평안을 바랄수는 없으며 자기 내면의 부끄러움을 들여다보고 다시 시작하는 행동을 하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