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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은 팝과 재즈, 클래식, 국내 대중음악 등 음악사를 전방위적으로 뒤져 음악사의 결정적 장면이랄 내용을 몇 가지 골랐다. 1권에 이어서 2권에서 네 꼭지의 글을 실었다. 해방전후시기 우리의 새로운 음악을 모색했던 ‘조선음악가동맹’을 ‘러시아 5인조’(교과서에서, 이른바
국민음악파라고 소개하는)와 비교하고 있으며, 1980년대를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라 보면서, 당시의 대중음악을 주류(조용필)와
비주류(들국화, 노찾사 등)가
경쟁하면서 넓은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분석한다. 1848년 혁명의 실패 이후 등장한 신(新)빈악파와 미국에서 등장한 흑인들의 재반전, 즉흥음악, 혹은 비밥을 이야기하고,
‘예술사에서 가장 순조롭게 혁명에 성공한, 인류 최후의 문화 콘텐츠’라 결론을 내리고 있는 뮤지컬이 오페라로부터
어떻게 이어졌는지 풀어낸다. 사실 1권보다 흥미는
좀 떨어진다. 당연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1권의 내용보다 2권의 음악과 음악가 들이 ‘내게’
좀더 낯설기 때문이다. 조선음악가동맹과 김순남은 아무리 그 의의가 크다고 하더라도 <사(死)의 찬미>나 <목포의 눈물>보다 낯설고, 러시아5인조는 모차르트, 베토벤보다
낯설다. 그래도 재즈가 비밥보다 익숙하다. 다만 1970년대의 청년문화의 김민기, 양희은보다 1980년대의 조용필, 들국화, 노찾사
등이 시대적으로 나와 맞기 때문에 그 부분이 가장 재미있게 읽을 순 있었다(그건 상대적이다. 1권에서도 우리나라 얘기는 더 재미있었다). 그런 것도 있다. 2권에서는
좀 나열이 많다.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5인조의 음악 제목들, 조선음악가동맹 소속의 인물들과 그 음악 제목들, 재즈 이후에 엎치락
뒤치락하며 등장하는 흑인 음악들, 오페라 제목들 등등. 아는
것들과 어디선가 들어본 것들, 전혀 들어보지 못한 것들이 막 얽힌다.
상당 부분 나의 문제일 수 있지만, 그래도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고 한 강헌이기에 좀 아쉽다. 물론
글을 어렵게 쓴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유효한 것은 음악을 듣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역사적 맥락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순남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
이였는지보다 왜 그런 음악을 하려고 했는지가 더 중요하고, 조용필이라는 가수가 최초의 ‘슈퍼스타’라는 걸 말하는 것보다 어떻게 그 시대에 그게 가능했는지, 그리고 그 토양에서 이른바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버그라운드로 도약하는 가수와 팀들이 등장했는지가 더 의미 있고, 흥미롭다. 뮤지컬을 감상하면서도 그 뮤지컬이 등장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그리고 왜 우리나라의 시장이 성장하면서도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것도 역사적, 시대적, 세계적 맥락을 통해서 분석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강헌 씨에 이끌려 떠난 음악 여행은 분명 진지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크게 심각하지 않았으며,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즐거운 여행이었다. 그가 언급하는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과거를 상상할
수 있었고,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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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람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게 음악이 아닐까 싶다. 노랫말이 있는 건 어렵다 해도 그 안에 담긴 느낌은 조금 알 수 있겠지. 그렇기는 해도 나도 우리나라 노래를 더 많이 듣기는 했다. 내가 아는 다른 나라 음악 얼마 없다. 라디오 방송(음악캠프)은 오래 들었는데, 음악은 외워도 제목은 잘 외우지 않았다(지금도). 라디오 듣다가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관심 갖고 CD 사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CD 산 지도 오래되었다. 한동안은 일본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렇다고 넓게 들은 건 아니고 듣는 것만 들었다. 아직도 라디오 방송에서 일본말로 하는 노래는 나오지 않는다. 전에 한번인가 들은 적 있는데. 왜 이 말로 흘렀을까. 다른 책에서 일본 문화 개방이 나온 걸 봐서 그럴지도. 그거 보고 그런 일도 있었지 했다. 이 책 마지막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나온 노래 <사의 찬미>와 <목포의 눈물> 이야기를 한다. 이것도 조금 영향이 있는 거겠지. 지금은 텔레비전 안 봐서 어떤 음악이 나오는지 모른다. 어느 때부턴가 아이돌 음악만 나온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전히 그럴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오래 가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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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것이 그렇지만, 역사와
사회에 대한 관점이 없이는 음악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음악은 들을 수 있겠지만, 그건 그저 소비에 그칠 뿐이다. 듣고 있는 음악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수동적으로 음악을 받아들일 뿐, 그건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역사』는 그런 차원에서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숙고하게 한다. 그가 명시적으로 음악을 어떻게 듣는 것인지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음악을 읽고 있으며, 그것도 모든 음악을 다루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가 음악의 역사에서 관심을 갖는 부분을 좀더 깊게 살펴보고 있으며, 친절하게 들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럼으로써 음악을 그저 듣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해하며 들을 수 있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그가 ‘전복과 반전의
역사’란 제목으로 뽑은 음악사의 사건은 네 가지다(1권의
경우, 2014년 1권을 내고 2017년 2권을 냈다). 팝에서, 가요에서, 클래식에서 골고루 골랐다(이렇게 쓰고 보니 아이러니하단 느낌이 든다. 강헌은 팝, 가요, 클래식이란 용어를 모두 불만스러워하거나 부인한다. 팝은 너무 포괄적이라는 의미에서, 가요는 그 기원이 불순하단 의미에서, 클래식은 모호하단 의미에서). 그가 고른 음악사의 사건, 혹은 시대, 인물은 모두 불순하다.
음악적으로 기존의 음악에 대항하고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의미에서, 시대와 불화(不和)했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음악과 시대의 흐름을 변질시켰다는 의미에서.
그가 고른 그 ‘전복과
반전의 역사’를 잠깐씩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재즈와 로큰롤이다. 미국
흑인의 역사와 함께 하는 재즈, 그리고 어른의 음악에서 10대의
음악으로의 전환을 이룩해낸 로큰롤. 마이너리티가 최초로 음악의 주체로 선 이 음악의 역사에서 새로운
음악적 패러다임 전환을 본다(특히 인상 깊은 것은 루이 암스트롱의 성공 요인이다. 그는 흑인 음악인 재즈로 성공했지만, 백인들이 그를 명예 백인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1960년대, 1970년대 우리나라의 청년문화를 이끈 통기타 혁명이다. 강헌이
가장 주목하는 인물은 한대수, 신중현 같은 이들이다(아니
그렇겠는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뒤엉켜 발전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곤 했던 그들의 음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클래식에서는
(당연히) 모차르트와 베토벤이다. 근대의 인물들과 그 풍경을 다룬 주경철의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에서도 모차르트는 다루고 있다. 주경철 교수는 모차르트를 ‘하이든의 세계에서 살면서 베토벤의 세계를
지향’했던 음악가로 쓰고 있는데, 강헌도 비슷한 관점이다. 출세를 지향하면서도 귀족들만의 세계에 굴복하지 못하고, 저항하고자
했던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당대의 좌절과 후세의 성공 요인을 보면, 클래식을 듣는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끝으로 우리나라에 근대 대중가요의 시작을 다룬다. 바로 윤심덕의 <사(死)의 찬미>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다. 특히 <사의
찬미>의 경우에는 그 성공에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이른바 윤심덕 타살설로, 그는 “한국
음악 문화의 근대가 ‘죽음’이라는 자극적인 세세이셔널리즘, 다시 말해 음악 내부의 논리가 아닌, 음악 바깥의 쇼킹한 스캔들에
의해서 열렸다”고 썼다), <목포의 눈물>의 경우엔 엔카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가장 제국주의적인 문법으로
민족 저항을 노래하는 이상한 역설”을 이야기한다. 우리 근대사가
암울했기에 우리 근대 음악사가 암울한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도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일본 황군의 진격을 노래한 <감격시대>를 해방의 감격을 노래로 공개 석상에서 자랑스레 부르는 현실은 개탄스럽기만 한 것이다.
음악은 사회와 역사와 떨어져서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음악을 깊게 이해하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게 강헌이라는 인물이 가끔씩 TV에서 그저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는, 단순한 음악평론가와 좀 다른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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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오래도록 많이 들었다. 자연히 신뢰하는 평론가가 있게 마련인데 강헌은 그 중에서도 가장 상위에 있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강헌의 첫 책이다. 놀랐다. 얼마나 오래도록 활동했으며 유명세도 제법 있는 편인데 이제야 첫 책이라니!(가장 첫 페이지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호는 의박이며 자는 산만이어서 나이 50이 넘도록 책 한 권 내지 못한다. 책 표지에 들어가는 프로필을 쓰게 되어 만감이 교차한다.) 또 하나 딱따구리가 뇌리를 쪼았던 순간은 강헌이 팟캐스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무려 2013년부터! 헉! 나는 그 사실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진작 팟캐스트와 친하게 지내볼 것을!'하는 후회를 더운 여름 밤의 맥주처럼 벌컥벌컥 들이킨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 책이 있어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2013년부터 시작된 팟캐스트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 한다. 물론 녹취록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고 한 권의 책이라는 완결된 형태로 만들기 위해 내용을 대폭 보완했다고 한다. 나처럼 뒤늦게 팟캐스트(나는 끝까지 팟캐스트가 방송법 적용을 받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방송'이란 용어를 쓰지 않으련다.)의 존재를 알게 된 이를 위해 커다란 선물이 아닐 수 없다.(굳이 '커다란이란 형용사를 쓴 것은 이 책을 통해 정말로 많은 것들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20세기 이후 인간의 일상에 음악이 개입하지 않는 순간은 없었다.'고 믿는 강헌은 비록 음악이 인간이 의식과 무의식에 깊은 흔적을 남기긴 하였지만 '음악만큼 신비화의 추앙을 받은 예술도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또한 시행착오의 존재인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역사적 생산물 중의 하나일 뿐이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 의해 생성되는 예술적 욕망의 결과물일 뿐이다.' 여기서 나는 어떤 문장을 특별히 볼드체로 했는데 이것이 바로 음악을 투시하는 데 있어 이 책이 취하는 방법론의 가장 기본이 되는 소실점이기 때문이다. 강헌은 음악을 사회적 생산물로 바라본다. 아무리 뛰어난 음악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전적으로 천재의 영감이나 내재된 가치의 탁월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정한 사회적 환경의 반향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마치 마르크스의 '생산양식'과도 같이 음악도 일정한 형식의 음악을 탄생시킨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조건들이 중요하기에 그는 역사를 훑는다. 표지에 나오는 'MUSIC IN HISTORY, HISTORY IN MUSIC'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 기나긴 음악사 속에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특별히 네 개의 역사적 순간을 담는다. 제목 그대로 과거를 전복하고 음악의 진화를 가져온 대표적인 순간이다. 하나씩 간단히 열거해 본다면 이러하다. 먼저 메이저리티의 전유물이기만 했던 음악을 마이너리티의 손으로 쥐게 만든, 진정한 의미의 전복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는 재즈와 로큰롤의 탄생, 그리고 우리나라의 60년대, 독재의 시퍼런 칼날 아래서 숨죽인 민중들에게 자유와 저항의 바람을 불어넣었던 통기타 혁명과 그룹 사운드, 여기에다 지금은 가장 대표적인 클래식으로 추앙받으나 당대에는 왕정 중심의 클래식에 반발해 자신의 음악에서 공화주의적 정신을 고취한, 한 마디로 안티클래식이었던 모차르트와 베토벤(특히 이 부분에서 살리에르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반전이다. 강헌은 지금 우리의 살리에르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오해에 불과한 지를 여기서 조목조목 밝히고 있는데 거기에 맞춰 모차르트와 베토벤 또한 재평가 된다.)에다 마지막으로 군부시절만큼이나 자유와 희망이 억압되었던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 어떻게 일본의 엔카가 한국의 트로트가 되어 대중음악사를 비로소 열어젖히게 되었는지 그 '반전'의 순간을 윤심덕의 '사의 찬미'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중심으로 담는다. 그런데도 페이지는 357이나 되고 글자 폰트도 겨우 9(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아무튼 보통의 책 폰트보다는 작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겨우 네 개의 장면을 담는다지만 그와 관련해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지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이 책은 시쳇말로 '정보의 바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재즈부터 트로트까지 다양한 음악 형식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태어나게 만든 미국과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의 6, 70년대와 일제 시대 사회상에 대한 것까지 페이지마자 정보들이 좁쌀처럼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책도 음식과 같아서 알찬 정보들을 많이 섭취하다 보면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때 포만감을 느끼는 데 이 책이 정말 그렇다. 어쩌면 너무 많이 먹어서 한동안 책을 내려놓고 숨을 골라야 할 지도 모를 지경이다. 무엇보다 재즈와 로큰롤의 입문자라면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이 책엔 빛나는 순간들이 많은데, '역시 강헌이구나!' 느끼게 되는 순간들로 '점원들'이나 '체이싱 아미' 같은 영화로 유명한 감독 케빈 스미스가 톰 크루즈를 인터뷰할 때 호들갑을 떨면서 톰 크루즈 영화엔 톰 크루즈가 빛나는 '톰 크루즈 순간'이 있다고 드립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따와 나도 '강헌 순간'이라 부르련다. 그런 '강헌 순간'에서 가장 눈부신 장면은 역시 김민기의 '아침 이슬'의 곡 전개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아침이슬>에 대한 설명은 138페이지에서 143페이지까지 6페이지에 걸쳐 전개되는데 그 중 절반이 '아침이슬'의 음악적 구조에 대한 설명에 할애되어 있다. 분량만 봐도 얼마나 곡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너무 길어서 인용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인데 간단히 정리해 본다면 원래 대중음악은 형식적으로 A-B-A로 구성된다고 한다. 여기서 A와 B는 테마로 아름다운 선율로 청자를 이상향과도 같은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A테마가 있고 그것에 이어 열창을 통해 더욱 드라마틱하게 발전시키는 B테마가 있다는 것이다. 강헌은 이렇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내 생각에 B테마는 A테마가 그리는 세상에 들어가지 못하는 지금 내 삶의 불안, 고통 같은 것이 반영된 게 아닐까 한다. 결코 열리지 않을 유리창으로 이상향을 바라본다면 내 삶의 누추함이 더 강조될 터이니까 말이다. 강헌은 가요가 대중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지막에 가서 다시 A테마로 돌아와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A-B-A인 것이다. 거기엔 현실에서는 가 닿을 수 없는 세계를 노래로나마 닿고 싶어하는 대중의 마음이 투영된 한 편, 현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변화시켜 A세상을 추구하겠다는 대중의 의지가 녹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아침이슬'은 이 구조를 배반한다. '나 이제 가노라~' 후의 부분은 A테마로 돌아가지 않고 전혀 다른 C테마로 청자를 데려가 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당시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이 노래의 상업적 가치는 끝난 것이라 강헌은 말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이 노래는 7080 세대의 가장 대표적인 노래이나 당시엔 3천장 밖에는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음악을 사회적 환경의 반향으로 보는 강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가 많은 이들에게 불려줬던 사회적 맥락을 읽어낸다. 바로 그것이 '대학생'이 주축이 되었던 청년 문화가 가진 한계의 반영이라는 것을 말이다. 현실과 끝없이 타협해야 하는 선민 집단의 일원이면서도 기존의 기득권 세력의 비민주적인 전횡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길을 새롭게 모색해야 했던 이 혁명적 낭만주의의 자식들에게, 이 대책없는 C테마로의 도약은 바로 낭만주의 그 자체였다. 혁명은 낭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다시 A테마로 돌아와서 대중성을 쟁취하고 권력을 쟁취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노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다. 가장 낭만적인 초원의 지평으로 날아가 버린다. 이것이 1970년대 청년문화의 혁명적 낭만주의 감수성과 그 구조가 딱 들어맞았다.(P. 142) 그렇다고 이게 딱히 그 세대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당시 혁명은 낭만화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혁명이 정말 무엇이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치열한 고민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을 억압하고 폐를 조이는 군부독재라는 장막만 걷혀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다 누리는 표현의 자유를 조금도 누리지 못한 채, 바보로 살아야 하는 시대를 끝장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낭만화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그 시대의 한계가 그대로 정체되어 또 다시 지금 이 시대를 과거로 회귀하게 만드는데 주역을 담당하도록 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노래 하나에 대한 치밀한 분석으로 이렇게까지 담아내는 것은 내게 무엇보다도 '강헌의 순간'이었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이런 이야기로 가득찬 책이다. '아침 이슬'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인용한 것도 이 책이 어떤 식으로 말하고 있는지 보이기 위함이었다. 살리에르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 엔카와 트로트의 역사나 음악에 대한 구조적 분석도 그렇고, 인용하고 싶은 부분이 참 많은데 리뷰가 너무 길어질까봐 하지 못하는 게 유감이다. 한대수와 신중현(신중현은 박정희에게 가장 많은 탄압을 받은 뮤지션이다. 이유는 너무도 약소했다. 박정희가 일제시대 총독부가 행했던 선동 가요를 본받아 정권 선전을 위해 자신이 직접 노래를 만들어 음반을 제작하려고 신중현에게 의뢰했는데 신중현이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중현은 그 뒤 '대마초 사범 연예인 1호'가 되어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탄압을 받는데 한 마디로 '괘씸죄'였다. 원래 우리나라는 그 때까지 대마초 흡연이 금지되지 않았다. 박정희의 '복수혈전'으로 비로소 범죄가 된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시절에 이루어졌던 노래 검열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세상에나 김세환의 '길가에 앉아서'가 금지곡이었고 그 이유가 '근로 의욕 저하~'라니. 과연 창조 경제의 전통은 거기서 시작되었나 보다. 검열의 이유들이 참 창조적이다. 하지만 그것도 화수분은 아니었던지 '아침이슬'은 금지된 이유조차 없이 금지되었다. 한 마디로 묻지마 금지곡. 정말 많은 말을 들을 수 있는데 이처럼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음악과 사회의 연관성을 이처럼 뛰어나게 보여주는 책이 달리 없는 것 같지만 설령 그것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음악에 대한 이야기, 문화에 대한 이야기 만으로도 제 값어치를 충분히 하는 책이다. 한 마디로 강추할 수 밖에 없는 책. 나는 지금 강헌의 팟캐스트 들으러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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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은 재미있다.
음악이론 부분에서 살짝 어려운 점을 느끼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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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은 공공의 미(美)인 동시에 무죄인 건가. 그렇다면 음악 또한 무죄일 터다. 하나 『전복과 반전의 순간』의 재미가 더해지는 건 부제(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에서 알 수 있듯 음악(사)을 관통하는 특수한 순간들과 함께 버무려진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을 거다. 각각의 장에서 발견하게 되는 이채로운 순간들은 전쟁과 노예에서 시작한다. 쿠바를 놓고 미국과 스페인이 전쟁을 벌인 후 버려진 군수물자들 중엔 군악대에서 쓰던 악기가 있었다. 특히 소리가 멀리 전달된다는 특성 때문에 군대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건 관악기. 그리고 그 전쟁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가 바로 뉴올리언스였다. 뉴올리언스가 어디인가. 바로 재즈의 발상지라 여겨지는 바로 그곳이다. 나 원, 더군다나 거기에선 루이 암스트롱이 태어났다. 그런데 책에 의하면 재즈에 사용되는 악기를 만든 것도, 재즈 음반을 가장 먼저 녹음한 것도 백인이다. 희한한 일이다. 재즈라고 하면 으레 흑인의 탄력 있는 제스처가 떠오르는데 말이다. 가혹한 매질을 당하며 서로 대화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일해야만 했던 목화밭의 노예들, 백인이 정해놓은 규율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그들의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건 그저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뿐. 바로 필드홀러(field-holler)다. 들판에서의 절규? 황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p.39)ㅡ 훗날 멕시코 올림픽에서의 블랙 파워 살루트를 떠올려보면 이 모든 것이 잊을 수 없는 역사라는 사실에 기분이 새로워진다. 그리고 이어진 블루스와 가스펠의 탄생. 세계는 내처 '모던'해지고, 50년대 미국 중산층과 히피의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날 무렵 엘비스 프레슬리와 로큰롤, 비틀즈, 롤링 스톤스가 등장한다. 시간이 지나 한국에선 신중현과 김민기, 한대수로 대변되는 포크의 물결이 시작되고, 저 유명한 「아침 이슬」이 금지곡으로 지정된다(최초 양희은의 목소리로 발표되었기 때문에 청년들로부터 많이 불리고 금지곡까지 된 것이지 김민기 본인이 부른 노래를 들어보면 맥이 풀릴 지경이다. 하지만 나는 김민기 버전을 더 좋아한다. 본래 「아침 이슬」은 만취해 '필름이 끊어진 뒤' 야산 공동묘지에서 자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선 '쪽팔려서' 만든 노래다). 책은 세 번째 장에서 훌쩍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클래식을 훑는데, 다시 마지막 장에선 20세기 한국으로 돌아온다(트로트와 엔카의 탄생과 원조 논란도 이야기된다). 심지어 명성황후와 동학농민혁명까지 언급되는데 윤심덕이 죽은 뒤에야 발표된 「사의 찬미」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는 것만 같다.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다양한 '전복'과 '반전'을 준비했다. 미국을 뒤흔들었던 재즈와 로큰롤, 한국의 통기타 음악과 그룹사운드, 프랑스혁명 전후의 모차르트와 베토벤,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관통하는 한국 근대음악까지. 그런데 좌표가 어디에 맞추어지든 내용과 관련 없는 의문이 하나 드는 건, 강헌이 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책 한 권 발표하지 않았었느냐는 거다. 책이 재미있고 아니고는 차치하고 그쪽이 더 의아하기 짝이 없다(인터넷을 뒤져보니 이전에 쓴 뭔가가 있긴 한데, 이 『전복과 반전의 순간』 쪽이 좀 더 자유로운 이야기를 담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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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 2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두번째 책이다. 재미있어 하는 대목을 적절하게 편집해 놓은 부분이 이 책의 백미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왜 제목이 전복과 반전의 순간인지 이해가 되면서 제목하나는 잘 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잘 모르고 느끼지 못했지만 우리가 즐긴 그 대중문화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고 그런 의미가 있었는지 세삼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음악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텐테이블 고무를 갈고 듣게 되었다. LP음반에 끼여있던 가사집에 강헌선생의 가수소개와 음악평론이 써 있다. 내가 듣던 내가 즐겨 들었던 그런 중고음반을 가끔 나가서 보이면 구해온다. 그 음반을 다시 사서 듣는 취미가 생겼다. 다 이 책 덕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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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강헌을 음악평론가로 알고 있고 어떤 사람은 영화제작자로 알고 있고 어떤 사람은 명리학자로 알고 있다...심지어 좀 더 깊게 알고 있는 사람은 강헌을 미식평론가로 알고 있다. 나 역시 처음에 알게 된 강헌은 음식관련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음악평론가였고 더 알아보니 명리학자이며 영화제작자 였다. 사적인 자리에서 딱 한번 만난 적 있는데 그때는 그냥 뚱뚱한 아저씨였다. 이렇게 여러 방면에 두루두루 조예가 깊은 그는 지금까지 한 20여권의 책을 쓰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 놀랍게도 이 책이 그의 첫번째 책이다.
음악을 듣는 것에만 관심 있을 뿐 그것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던 내게 이 책은 흥미 그자체 였다. 어쩌면 학교에서 잠깐 배웠을 법한 내용 따위는 아예 없다. 재즈와 로큰롤, 통기타문화, 클래식, 사의 찬미까지 연속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내용들은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있다.
세상 모든 책의 한 0.01%쯤이나 읽었을 지 모르는 내게 이 책만큼 각주가 차고 넘치는 책도 없었다. 어떤 페이지는 두세줄의 본문 내용과 나머지를 각주로 꽉 채우는 경우도 있었다. 작가가 얼마나 이 책을 쓰는 데 공을 들였는지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뒤늦게 2편이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주문한 후 1편의 소소한 재미를 까먹게 될까 싶어 이렇게 리뷰를 남겨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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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인기가 있으면서도 없다. 사람의 이야기가 바로 역사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 역사에 빠져들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모습들은 참 비슷비슷하기에 그 속에서 지금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꽤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한 역사는 재미가 없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에서 사람의 이야기는 절반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외에 대부분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숫자로 이야기하는 그 당시의 여러가지 통계와 제도에 관한 이야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또한 가장 재미없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숫자들이 역사를 조금 더 깊이있게 만나게 하는 부분은 있지만, 역사에 흥미를 붙이는 것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음악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서 다루는 음악사에서 숫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의 미술사나 음악사가 재미없는 이유가 되는 숫자들이 이 책에서는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음악을 한 사람들과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음악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의 주인공은 '음악'과 그 '음악'과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이다. 이 책은 모두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그 네 개의 장에서 다루는 음악들은 각각 다르다. 하지만 작가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주류를 이루는 음악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음악들을 이 책에서는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음악들의 장르가 특별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음악들이 한 역할은 어쩌면 시대가 요구한 것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시대를 여는 역할을 했지만 그 음악들이 특별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음악의 장르가 아니라 그 음악을 한 사람들과 그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이 이 책의 주인공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 주인공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음악들은 재즈와 로큰롤 그리고 포크와 클래식, 트로트다. 이 중에서 재즈와 로큰롤 그리고 클래식은 세계사적인 부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장면을 연출한 음악들이라고 할 수 있고, 통기타로 대표되는 포크와 트로트는 우리나라의 음악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은 상당히 균형 잡힌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세계와 우리나라를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시대와 장르가 다른 그 음악들이 했던 역할을 모두 비슷한 방향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을 채우고 있는 트로트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아니 어쩌면 트로트도 조금 다른 모습을 갖고 같은 방향성을 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최소한 세상이 변화하는 순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장르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책의 주인공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음악을 통해서 그 사람들이 살았던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언제나 더 나은 세상을 꿈꿨던 이들의 이야기로 다시 모이게 된다. 노예의 삶을 살았던 흑인들과 기성세대에게 밀려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던 십대들의 음악인 재즈와 로큰롤, 통기타 하나로 폭압적인 정치 상황을 버티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의 음악이었던 포크, 음악사적으로 거장으로 평가를 받지만 당대에는 가난하고 힘겹게 꿈과 현실에서 고민해야 했던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클래식은 모두 결국은 이 책의 제목처럼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음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들려주는 '사의 찬미'와 '목포의 눈물'이 갖고 있는 의미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음악이 하나의 세상을 변화하게 한 장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이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음악을 통해서 역사의 결정적 장면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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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
가장 쉽고 재미있게 정리된 대중음악 역사서다. 기존의 백인 중심으로 기술되었던 재즈, 블루스 등의 '고급진' 음악들을 알고 봤더니 사회의 '쓰레기'들이 만든 음악이었다는 반전을 얘기한다는 점은 주제 자체가 참으로 참신했다.
사람들은 평소 이성이 있는 자리에서 '무슨 음악 들어'라고 물으면 절반이 얘기하는 게 '재즈들어', 가끔은 '블루스 좋아해'라고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재즈 어떤 음악 들어?'라고 물으면 '.....'이라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렇듯 이곳 한국에서도 재즈를 듣는다는 것은 자신을 과대포장하기에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인식이 다분하다. 하지만 이러한 음악이 미국 항구도시의 사창가에서 흑인삐끼들이 전쟁에서 버려진 관악기로 술취한 손님들을 낚는 용으로 사용되었고, 그 어원자체도 '꼴리는' 음악이라는 뜻에서 왔다는 사실까지 알고 그런 사람들(재즈 이름만 알고 작업용 프로필로만 사용하는 이들)에게 가르켜 준다면 꽤 유용할 것이다.
평론가 강헌의 이번 책은 한국사회에서 마이너리티의 취향으로 살아가는 이들이게 하나의 동기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천만 동원 영화 한 편 안보는 독립영화 매니아로 살면서 대기업의 광고빨로 천만 동원한 영화만 보는 이들에게 문화생활 안하는 무식한 종자로 매도당하는 이들에게도 전복의 날은 올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