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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난 후, 대부분은 책을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무엇인가 해독하지 못한 빈틈을 발견하거나 너무 재미있게 보고 난 영화라면 원작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책 또한 그렇다. 콜미바이유어네임이라는 영화를 너무 재밌게 봐서 책을 사긴 샀는데 무슨 욕심에서인지 뚱딴지 같이 영어 원서를 샀다. 그 원서를 창가에 두었는데 햇빛에 누렇게 변색이 되어가고 간혹 비에 젖어 두툼해져버렸다.
그러다 어쩌다 한동안 잊혔다가 불현듯 생각이 나 이북으로 읽었다.
이 책은 나의 마음을 많이 두근거리게 한다. 첫사랑의 열병처럼, 순식간에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고 눈을 들어 먼 곳을, 푸른 하늘을 바라보게 만든다.
절절한 사랑의 감정, 둘 간의 지적인 대화, 직접적인 사랑의 표현, 마음과 육체가 맞물려 빛을 뿜어내는 순간의 찬란함을 이 책은 너무나 잘 표현해주고 있다. 둘의 마음이 각각 피어나고 서로 엇갈리다가 결국은 고백하고 함께하고 그 끝에 다다르는 과정들이 아름답다.
엘리오가 올리버가 되듯, 올리버가 엘리오가 되듯, 나보다 더 나를 닮은 것같은 상대방의 모습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사랑이다.
어느해 여름 이탈리아 휴양지에 머물고 있는 엘리오네 집에 올리버가 찾아온다. 엘리오의 아버지는 대학교수로 매해 여름에 다른 나라의 젊은 학자들을 초대하여 작업을 돕게 하고 그들이 글을 쓰는 것을 지원한다. 미국에서 온 올리버가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를 본 엘리오는 반하고 마는데,
그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에 마음 아파하고 열렬한 상상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 그와의 사랑을 후회하다가 다시 즉시 불타올라버리는, 엘리오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사랑의 이야기에 내 맘도 오르락 내리락 부풀다가 사그러지다가 파도처럼 거셌다가 잔잔해지다가..
이것은 완벽한 사랑이야기다.
영화 후기에서도 말했지만 엘리오의 아버지가 너무나 현명하다. 엘리오의 상처를 그대로 직시하게 하고 성장시켜주는 그런 어른이다. 사랑은 아리고 쓰리지만 피하지 말고, 억지로 그 마음을 떼어내려고 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상처는 상처대로 치유되어야 하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가 너무 좋다 했는데 책에 거의 빚졌다. 다만 마지막은 영화가 옳다. 지나친 후일담은 사랑을 하게 만들어버린다.
하긴 책은 책의 역할이, 영화는 영화의 역할이 각각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이 책을 종이책으로 다시 봐야겠다. 책을 만지고, 책장을 넘기고, 엎어놓고(난 책이 이렇게 엎어져 있는 모습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잠시동안이라는 책 주인의 약속을 믿고 휴식을 취하는 자세), 옆에 있는 가족이 말을 시켜도 책에 빠져 건성으로 대답하고 마는 이 쏠림을 사랑한다.
아 나는 참 책이 좋다... 이런 연애이야기를 좋아했었는데, 한참이나 되어버렸다.
모든 글은 사랑 이야기, 관계의 이야기다.
그와 그. 그와 그녀. 그녀와 그녀. 그와그녀와 그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구절들이 아름다운 유리조각같다. 찔리는 지도 모르고 손을 베이고 마는 아름다운 조각들 |
| 웬만한 영어 듣기, 읽기,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입니다. 원어민과 대화할 때 일상영어와 비지니스적인 부분에서도 소통이 가능하지만 콜바넴 원서는 그 단계를 훨씬 뛰어넘는 단계입니다. 원어민에게 한 단락을 보여줬을 때에도 생소한 단어라고 이야기 합니다. 물론 한글처럼 생소한 한문 단어는 유추해서 풀어나가는 형식이죠,,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산 원서이며, 한국어 번역본보다 원서가 훨씬 뛰어나다고 하여 읽어보았습니다. 내용 대체적으로 표현을 길게 늘어뜨린 부분이 많지만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엘리오와 올리버의 숨은 감정과 아름다운 대화체는 볼 수 있습니다. 책 용량이 핸드폰보다 훨씬 가볍고, 옛날 책 그 느낌이 살아서 좋아요. 다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원서 난이도가 높다는 것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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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heard and watched ‘Call me by your name’ which deals with the love between two men. At first, I became aware of this story through a TV program that shows movies in advance before its release, so I didn’t know the existence of the book. But I knew there is a paper book on this story. A 17-year-old boy met a man who is a guest of his father’s mansion. Each is attracting and attracted by each other. Fearing the end of their love, they falls in love. I don’t want to spoil it. But I can say one sentence. While reading the lines, you can imagine the beautiy and passion between them like watching mov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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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학 작품은 한 계절을 대표하기에 충분하다. 때로는 작품 하나가 계절을 압도해버릴 때도 있다. 이를테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처럼. 개인적으로 이런 책의 리스트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매년 그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읽지는 않지만, 기억의 서랍을 열듯 작품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 중 '여름의 책' 리스트에 포함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사실 그렇게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다. 좋은 작품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진부하며 어떤 의미로는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주요 인물인 올리버와 엘리오, 그 가족들을 제외한 등장 인물들의 소설 속 위치와 쓰임 등을 생각하면 조금 역겹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호오의 감정과 무관하게, 이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여름의 향수, 첫사랑의 향수는 무시하기 어렵다. 갓 따낸 과일의 맛, 새벽 공기의 냄새, 작열하는 햇빛, 텅 빈 플랫폼... 그 모든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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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who read are hiders. They hide who they are. People who hide don't always like who they are. (115)
영화 개봉에 힘입어 소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유사한 한국 소설도 주목받고 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로 소설에 대한 이야기만 할까한다. 동성애를 다룬 소설을 읽을 때면 이성애자 독자로서 여러 고민이 생긴다. 내 경우 비교적 고민이 짧은 것이 일반이라고 하는 것에서 벗어난 성적 취향도 하나의 삶의 방식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변방이나 이반으로 일축시키던 것을 이제는 함께 존재하는(being) 양식으로 인정하는 맥락에서 읽고, 어느 면에서는 가장 자유스럽고 강력한 저항 방식으로 본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문학 시장의 최근 타깃 중 하나가 퀴어 문학이 아닐까 싶다. 문학이 점점 디스토피아적인 운명론을 그리면서 여성의 몸이나 자궁에 대한 억압이 다시 불거져 나오는 추세다. 구속과 해방, 절망과 가능성 사이에서 인간의 ‘몸’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화두로 부각되는 실정이다.
여러 의미에서 지인들에게 이 소설을 읽자고 종용하면서도 나부터가 반신반의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나와 다른 것, 예를 들자면 페미니즘이나 동물 보호, 난민 문제에 대해 상당히 신경질적이거나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요즘이다. 잘못 건드리면 아예 안 다루는 것보다 나쁠 수 있다. 어느 책에서 본 인간 개인은 그다지 다르지 않지만, 어떤 시스템이 운영되는가에 따라 나은 사회가 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 사회는 어느 정도로 성적 취향이나 성 정체성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구비하고 서로 얼마나 연동되는지 귀추가 주목된다. 솔직히 이 소설은 정통 퀴어 소설로 볼 수 없을 듯하다. 성이 생존 문제와 면밀히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다. 같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소리가 차라리 주인공 엘리오가 뒷골목의 소년이라면 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누군가는 두 주인공이 남자라는 것만 빼면 최고의 낭만 소설이 될 거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첫 관계가 소설 중반에서나 진행된 점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소설은 캐서린 맨스필드의 문체를 연상시켰다. 몸의 첫 합일이 있기 전까지 미소년의 꿈과 몽정이 주를 이루어 실제와 상상의 경계가 혼미하다. 어디까지가 현실의 묘사인지 정확하지 않다. 어느 점에서는 청춘의 과열된 생각 많음과 갈림길 앞에서의 갈등을 반영한 게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이십년 전 과거를 회고하는 방식으로 열일곱 미소년을 강타한 여름 육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뻗어나간다.
이성애자로 좁디좁은 반경 안에서 살아온 나는 어느 극단의 끝점까지 가본 사람, 다시 말해 온 파이어(on fire)의 상태가 마치 인두처럼 심장에 새겨진 사람을 향한 경탄과 부러움이 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이상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엘리오와 올리버 커플의 탄생 뒤에는 앞서 유사한 길을 먼저 걸었던 교수 아버지가 존재했다. 어떤 것에도 영향 받지 않고 백 퍼센트 순수 의지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우리의 몸 안에는 의식하지 못할 뿐 여러 역사가 교차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자고 막상 제안하고도 걱정이 많았다.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퀴어 문학의 정통성을 따르지 않고 예상을 빗나가 오히려 안도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두 남자 커플의 사랑을 문명사회 이전의, 더 강력히 남성의 우월함이 중시되던 문화에 존재했던 동성애 구도를 따른다. 넉넉하고 풍요로운 생활은 지중해 이탈리아의 별장으로 감지되고,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는 조숙하고 지적인 소년은 지성미를 나눌 대상이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미소년 엘리오의 꿈속 성적 열망과 여러 각본은 그의 변덕과 충동을 면죄하는 효력이 있다.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세속적으로 때묻지 않음이 미학의 숭고함까지 운운하게 만든다.
함께 토론한 누군가는 두 남자의 사랑이 미셸 우엘벡의 우월적인 지성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상기시킨다고 했다. 상대 연상 남자의 짧고 강렬한 말―Later!에 사로잡히는 미소년이나, 아이답지 않은 지식과 예술가적인 향유를 보이는 예외적임에 매료되는 젊은 철학 교수는 그런 오해를 살만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여성 독자들의 마음을 움켜쥐고 심쿵하게 할 비유와 상호텍스트성(문체에서 앞서 말한 맨스필드를 연상시키고, 로마라는 배경은 이디스 워튼의 로마 열병을 떠올리게 한다)이 유난히 현란한 작품이다. 사랑과 광포한 낭만성의 극치를 상징할만한 다른 작품(폭풍의 언덕, 퍼시 셸리, 고자질하는 심장, 토마스 하디 등) 속 문구들이 차례로 호출된다. 거북하고 불쾌해지려는 순간이면 신화 속 인물과 철학자들이 언급되며 오해의 소지를 막는다.
무엇보다 줄줄이 이어지는 문장에 독자는 손쉬운 거부나 속단의 기회를 놓친다. 어디서 본 적 있는 익숙한 아름다움(美文)이지만 그것들을 모아 전에 없던 두 남자의 사랑이라는 무지개를 창공에 띄운다. 출렁대고 이글거리는 물결과 별빛이 가득하다. 날 것의 비린 성적 충동에 머무르지 않고 욕망으로 승격화된다. 욕망은 충동과 격이 다르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욕망을 자기 언어로 이론화하는 과정 속에 커다란 담론으로 몸집을 키우고 실체가 아닌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으로 떠받드는 면이 있다. 작가는 욕망을 내가 누군지 아는 정체성 문제로 치환시키고 어느 순간 진실(truth)과 동격화한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은 언어로 지속적으로 탈바꿈되어 자동적으로 정화, 순화되어진다. 모네나 고흐의 그림 이미지가 말로 치환되는 끈덕진 게임판이 펼쳐진다. 지성과 아름다움의 이상적인 합일을 레즈비언이 아니라 게이로 설정한 점은 권력의 우월 관계를 전제로 한다. 수컷의 뽐냄을 유려하게 보여주면서도 식탁 테이블 아래로 오가는 발장난에 코피가 터지거나 복숭아를 으깨는 장면은 유약한 여성화된 인상을 풍긴다.
맨스필드의 단편 <희열>이나 <미스 브릴>을 읽은 사람은 소설가가 놓아둔 유혹의 덫을 피할 수 없다. 뉴잉글랜드 출신의 철학교수에게 지중해에서의 여름휴가는 그 안에 도사리는 자연적인 본능과 본색을 꺼내들게 한다. 지금 여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무장해제의 공간인 것이다. 자연의 원색적이며 뚜렷한 색상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환경, 그리고 벗음과 이탈의 근접성은 인간의 본능과 민낯을 부추긴다.
모든 것이 풍부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지성의 향연 자리는 기존의 벽을 지우도록 자극한다. 자기 자신을 비롯한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지적 호기심과 열망은 그런 비슷한 기운을 소지한 사람과 합을 이루게 되어있다. 이론과 지적 탐구는 한계와 비현실성을 지닐 수밖에 없기에 실천과 껴안음의 시도가 모색된다. 나이 차가 있음에도 그들은 다시없을 포텐의 응축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類類相從, 비슷한 것끼리 서로 알아보고 뭉친다. 남자와 남자의 관계에서 오로지 가질 수 없는 것이 자궁이고 자식이라는 미래다. 엘리오가 올리버를 본 이후 사로잡히는 몽중한은 이런 은유로 해석할 수 있다. 잠은 곧 죽음, 깊은 안식의 어둠은 일체감을 주었던 어머니 뱃속 자궁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소설을 읽으며 누군가는 엘리오가 마지막까지 바라는 게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는 걸 알고 시시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나는 이런 부름은 상대에게 나를 심는 행위로 상대가 나를 품는 은유로 본다. 내가 담긴 그는 나의 분신이므로 상대의 이동과 함께 내가 멀리 가는 확장의 의미가 된다. 그들의 이반이 낯선 이질감을 걷어내는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의 성교와 합일은 지극히 한정된 '나'라는 범위가 커지고 넓어지는 무대가 되기 때문이다. 살구나 복숭아가 특정 신체 부위를 상징하며 성적 이미지를 갖을뿐더러 그것은 잃어버린 심장의 반쪽이 된다. 부재나 결핍의 충원이자 한번 뿐인 인생에서 겨우 한번 온전히 가지는 희열(bliss) 혹은 충만한 복인 것이다.
젊은 날의 중요한 특권은 다름 아닌 나는 어디까지 가보고 무엇이 되어봤냐는 앎의 경지(체험)에 있다. 이 탐구를 마친 올리버는 엘리오의 아버지가 그랬듯 현실세계로 돌아간다. 어른 남자에게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뒤로 한 채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아간다. 아들이 다른 존재가 되어볼 기회를 박탈하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 덕분에 엘리오는 아버지의 삶 너머까지 가볼 수 있었다. 갈림길에서 보통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을 걷는다. 그의 사랑과 기억하기(메모리얼이 암묵적으로 강조되는 이유)는 올리버와 강도가 다르다. 물론 다른 관계가 있었지만 순애보적일뿐 아니라 순교적이기까지 하다. 소설에서 엄밀히 여성 인물들이 바보 같이 그려지지만 엘리오의 회상이라는 점에서 기억은 가장 강렬한 것을 중심으로 비교되고 밀려나게 마련이다.
엘리오는 필멸하는 인간 삶의 조건에서 이십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자기 욕망을 직시하고 강렬한 청춘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보살피는 특출난 사람으로 남는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추하거나 비루하지 않다. 우리의 유난한 삶과 사랑이 지나고 난 자리에 남는 것은 글자마저 희미해질 그림엽서뿐이라는 점에서 그의 저항과 사랑 이야기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줌 모래시계 같은 망각의 역사 저너머로 오렌지빛 평행우주론적 두번째 삶이 동터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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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작품을 먼저 접하고 구매한 책인데 문장도 굉장히 담백하고 이탈리아 남부 나른한 분위기가 잘 느껴집니다. 영화에서는 엘리오의 사랑고백이 굉장히 절절하고 마음 아팠는데 책에서도 본인도 어쩌지 못하는 애타는 첫사랑에 빠진 엘리오의 열띤 감정이 고스란히 잘 느껴집니다. 엘리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올리버이지만 문장 사이사이에서 올리버의 엘리오에 대한 감정이 전달되어서 굉장히 애틋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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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매우 인상깊게 봐 원작을 한 번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원작과 영화가 어떻게 다른지, 어떤 점을 공유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참맛을 느껴보기 위해 원서를 먼저 구입해 읽어보기로 마음 먹고, 번역판을 읽어본 후 다시 영화를 봐야겠다 다짐했습니다. 그정도로 여운이 길었던 영화였습니다. 원작 소설은 엘리오를 1인칭으로 설정해 내용이 전개됩니다. 가장 눈에 띠는 점은 (1인칭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엘리오의 감정묘사가 굉장히 섬세하고 솔직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느끼는 내적갈등과 불안, 행복, 설렘 등과 같은 감정의 동요가 쉽게 공감이 될 정도로 매우 솔직하게 묘사됩니다. 하나의 '사건'에서 엘리오가 느끼는 감정이, '사건들'이 전개되면 될수록 어떻게 변해가는지 혹은 어떻게 표현되고 생각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길면서도 짧았던 여름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책에서는 엘리오가 과거의 여름 휴가를 회상하는 내용으로 설정되어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 온전히 자신을 완성시켜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제목 'Call me by your name'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보편적인 '사랑'의 내용을 다뤘기에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보았을 법한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 그리고 그때의 감정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해주는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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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으로 난무한 번역판... 정말 의미가 완전 다르게 해석해논것이 수두룩해서 결국 사서 보는 원서 더디긴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영화를 이렇게 책으로 또 한번 즐길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책이 원작이긴 하지만ㅋㅋ) 다만 페이퍼백이다보니 소장용으로 한권 더 필요할거같아요. 근데 그렇게 사도 한국에서 나오는 양장판 같은거보다 저렴해서 좋네요 한국책들도 페이퍼백이 대중화됐음 합니다. 곁다리로 새어나간 이야기긴 하지만. 책 가격이 좀더 저렴하면 독서율을 높일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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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고 충격 먹어서 책이 더 좋단 평 보고 주문했는데 처음엔 어려워서 20페이지 가량 읽고 관둠. 5일만에 다 읽었는데 영화보다 더 좋음. 영화는 1/10도 다 못 담아낸듯. 아미 해머가 낭독한 음원이랑 같이 강추함!!!! 표지마저 사랑. 고대그리스 철학자 사상도 나오고 생각보다 쉬운 책도 어려운 책도 아님. 깊게 파고 들진 않아서.. 엔딩부분에서는 울게 됨. |
|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책에서 더 섬세할거러는 생각에 책을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원서라 감정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모르는 표현은 찾아거뇬서 즐길 수 있어 영어 공부에도 새삼 도움이 되고 좋았습니다. 두 남자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아련함이 그대로 존달돠어 영화처런 묵직하고 여운이 많이 남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이런 원서를 지속적으로 구입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정신적으로 맑아짐과 동시에 감정이 풍족해지는 느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