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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다르게 읽어보기
프랑스령 알제리 출신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 이하 ‘카뮈’)의 <이방인>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1)
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소설 <이방인>은 프랑스령 알제리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인 ‘뫼르소’라는 남자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일상을 살아가던 중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이게 되기까지의 상황을 그린 1부와 ‘뫼르소’를 재판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부조리함, 그리고 사형 선고를 받고 변화하는 주인공의 의식을 통해 묘사하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방인>이 가해자 ‘뫼르소’만 조명하고 있기에 우리가 무심코 넘어가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피해자인 아랍인 ‘무싸’와 그 가족의 이야기다. 오늘날 우리가 가해자의 인권은 보호되고 피해자의 인권은 보호되지 못하는 사례들을 보는 것처럼, 아랍인 '무싸'는 시신조차 보호받지 못했다.
<뫼로소, 살인 사건>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이방인>의 이야기를 피해자 아랍인 ‘무싸’ 가족의 입장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이 작품이 잘 알려진 원작의 전복(顚覆)을 꾀하는 유일한 작품은 아니다. <춘향전>의 전복을 꾀한 영화 <방자전>(2010)도 있고, <제인 에어>의 전복이랄 수 있는 진 리스(Jean Rhys, 1890~1979)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1966)도 있다.
하룬, 또 다른 뫼르소
이 소설 <뫼르소, 살인 사건>의 화자(話者)는 <이방인>에서 ‘뫼르소’에게 살해당한 아랍인의 동생 ‘하룬’이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누군가에게 말하는 듯한 형태로 쓰여진 작품이지만, 읽다 보면 <뫼르소, 살인사건>의 ‘하룬’에게서 <이방인>의 ‘뫼르소’가 떠오른다.
뫼르소에 대한 증오에서 출발하여 그를 집요하게 분석하던 하룬은, 결국 자신이 뫼르소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뫼르소가 조국이 아닌 땅에서 고아처럼 떠도는 삶을 살았다면, 하룬은 죽은 형이 살아오기만을 바라는 엄마 곁에서 죽은 듯 지내야만 했다. 뫼르소가 대낮에 햇빛 아래에서 저지른 살인을 하룬 역시 한밤중에 달빛 아래에서 저지른다. 또한 뫼르소가 살인 자체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죄인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하룬은 프랑스인을 죽였지만 죽인 시기가 알제리 독립 이전이 아니라 이후라는 점에서 비난 받는다. 이 부조리한 상황 앞에서 두 사람은 똑같이 종교를 맹렬히 부정하며 자신의 존재를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확고한 태도를 보인다. [pp. 202~203]
다시 말해, <이방인>이나 <뫼르소, 살인사건>에서는 일반적인 살인 사건에 대한 재판처럼 살인의 구성요건을 가지고 다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살인 행위 그 자체와 관련 없는 요소 때문에 가해자가 비난 받고 판결이 선고된다. 뭔가 우스꽝스럽고 ‘부조리’한 느낌이 든다.
프랑스인 뫼르소가 눈부신 햇빛이 따가운 오후 2시에 알제리인을 살해했듯이, 알제리인 하룬은 달빛이 서늘한 새벽 2시에 프랑스인을 살해한다. 다음에는 그 프랑스인의 유족이 알제리인을 살해할까? 뭔가 이상한 ‘뫼비우스의 띠’를 거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왠지 저자가 지나치게 <이방인>을 의식한 나머지 재해석 혹은 안티-테제가 돼버린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피해자 ‘무싸’의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 들면서 ‘뫼르소’ 이야기를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맴돌았다. 1) 알베르 카뮈, <이방인>, (책세상, 2012), p.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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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데 많이 더디었다. 이렇게 서술되는 글을 좋아하지도 않아, 마치 로맹가리의 글을 보는 것처럼 겉돌았다. 200페이지 남짓의 중편소설인데, 안되겠다 싶어 100페이 정도에서 이 책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을 찾아보고,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더니, 처음보다 집중이 더 잘 되었다. 이 책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준다. 일단, 프랑스의 문학과 예술에대한 관용, 허용, 너그러움 같은 것을 새삼 느꼈다. 워낙 많은 훌륭한 작가들을 많이 배출 하였지만, 알베르 까뮈도 그 중의 한 명인데, 그 대가의 대작을 뒤집어 버리는 이 작가의 당돌함이, 그리고 이런 것을 허용하는 환경이 많이 부러웠다. 만약에 한국에서 '토지'나 '태백산맥'같은 글에 대해 딴지를 거는 행위를 한다면 아마 그바닥의 기득권들에게 난도질을 당할 것이다. 그런만큼 내용도 훌륭하였다. 역사적 지식이 부족하여 프랑스와 알제리의 관계에 대해서 구글링을 하고, 참조 자료를 찾아보았는데...뒤늦게서라도 이런 작품이 나와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것은 어쩌면 꼭 풀어야할 숙제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글 거리는 태양 아래에서 특별한 이유없이 아랍인을 쏴 죽인 뫼르소가 잊혀지지는 않을게다. '이방인'이 던져놓았던 그 많은 그물들이 내게 준 임팩트는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다. 나 역시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배려받지 못한 들러리로 살았던 순간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내인생에 등장한 인물들을 조연이나 단역 취급을 하면서 배려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을테지. 내가 고분고분하지 않고 평범하게 생각하지 않아 주목받았던 많은 날들도 떠올랐다. 프랑스-알제리의 역사적 관계도 흥미진진했지만, 잠시 잊고 지냈던 빠리의 생제르만데프레의 서점도 떠올랐다. 뜬금없이 마르끄리뜨 뒤라스가 떠오르기도 하였고. 책 한 권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많은 생각들을 해보았다. 요즘은 비가 많이 와서 눅눅하고 짜증나기 때문에, 계절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것이 흠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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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 디우드의 뫼르소, 살인사건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에게 살해당한 아랍인의 동생 시점입니다. 이방인도 읽고 이 책도 읽어보면 훨씬 더 재미가 있습니다. 여러 시점으로 볼 수 있어서 오히려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봤습니다. |
| 카멜 다우드 작가님의 <뫼르소, 살인 사건>을 대여 이벹로 구매 후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에게 살해당한 아랍인의 동생 시점으로 재해석한 소설입니다. 희생자의 시점으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신선했습니다. |
|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작중 주인공인 뫼르소에 의해 살해당한 피해자의 동생이 노년의 나이가 되어 그 자신의 시점으로 사건을 풀어낸 이야기 입니다. 미처 알지 못한, 상대적으로 신경 쓰지 못한 부분들을 주목하며 실존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
| 카멜 다우드 작가님의 <뫼르소, 살인 사건>을 대여 이벹로 구매 후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에게 살해당한 아랍인의 동생 시점으로 재해석한 소설입니다. 희생자의 시점으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신선했습니다. |
| 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된 카멜 다우드의 뫼르소, 살인 사건을 읽고 나서 쓰는 리뷰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토대로 한 소설로 이방인을 읽지 않으면 이해가 덜 될만한 책입니다. 다른 입장의 시선에서 쓰인 책이라 신선했습니다. 재밌게 읽었어요. |
| 매우 유명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인물이 살인을 하고 그로 인해 죽은 사람의 동생의 시점에서 쓰여진 소설이라는 점이 흥미로워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작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연작의 개념으로 글이 탄생하는 것이 신기했던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
| 카멜 다우드 작가의 뫼르소, 살인 사건 리뷰입니다. 대여 이벤트로 기회가 되어 보게 되었습니다. 카뮈의 이방인의 피해자 가족 입장에서 씌여진 책이라 한참 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방인을 계속 떠올리며 읽었네요. 시각이 신선해서 재밌었어요. |
| 책을 그냥 읽긴 했는데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같이 읽어야한다는 것을 지금 이 시점에서야 알았어요. 피해자의 동생이 어떤 사람(대상은 계속 바뀜)과의 대화 형식으로 자신의 형과 가족들에게 생긴 일에 대해 얘기합니다. 살인자는 이름과 배경 모두를 알 수 있는 반면에 아랍인인 형은 투명인간처럼 취급당하는 걸 보고 자신이 언어를 배워서 형의 사건에 대해 말하는거죠. 신선한 관점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