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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영국의 소설가, 아니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해하기가 쉽겠다.
당초 성인들을 위한 소설이던 것이 우연치않게 어린이용 동화가 되어버리기는 하였지만.. [걸리버 여행기]에서 보여준 풍자와 해학을 통해 우리는 그가 내공높은 고수(-_-;)임을 알 수 있다.
[책들의 전쟁]은 당시 인구에 회자되었던 고전학파와 현대학파 간의 설전(정확히는 저작을 통한 논쟁)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풍자소설이다. 즉, 성 제임스 왕립도서관에 있던 고전 장서와 현대 장서가 한 판 맞짱을 뜬다는 것이 주요 내용인 것이다. 아, "책들의 전쟁"이 전부는 아니다. 부제가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스위프트의 풍자 산문 선집"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스위프트의 다양한 풍자 산문들을 엿볼 수 있다 - 모두 5편의 산문이 실려있다.
흐음.. 조나단 스위프트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이 책을 읽어가면서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스위프트는 어릴적 읽었던 동화판 [걸리버 여행기]와 철들어 읽었던 무삭제 완역 [걸리버 여행기(문학수첩, 2000)]가 전부였던듯 싶다. (그런데도, 무삭제 완역 [걸리버 여행기]를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희귀동물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걸리버 여행기 동화판에는 보통.. 1부 소인국 이야기, 2부 대인국 이야기 정도가 전부이며, 우리가 기억하는 것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더 기억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3부 날으는 섬의 기행(이 섬의 이름이 라퓨타인데, 애니메이션 [천공의 섬, 라퓨타]는 여기에서 빌어온 것일게다) 정도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정작으로 중요한 것은 4부 말들의 나라(휴이넘)이다. 신성모독이라는 평을 들은 것도, 금서가 된 것도 4부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이 책 '저자의 서문'에 보면.. 스위프트가 풍자를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자신의 얼굴만 빼놓고 다른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거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풍자.. 개인적으로 은연중에 '풍자'라는 단어를 '진보'나 '저항'의 동의어쯤으로 여겨왔던 듯 싶다. 그것은 마치 [호질]을 쓰신 연암 선생이 북학파였던 것에서 유추되는 그런 뉘앙스다. 그런데, 스위프트는 다르다. 그는 수구주의자인듯 보인다, 아니 오히려 지독한 보수라고 해야할까? 이 책을 읽어가면서 신성모독과 금서 등으로 기억되었던 진보와 저항의 이미지는 고전주의와 휘그당 일파에 의해 수구와 보수로 다시 채색되어야 했다.
[책들의 전쟁]은 결코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소재 자체가 고전주의와 현대주의의 사상대립을 표현한 것이니 결코 가벼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걸리버 여행기]의 기담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수확은 있다. 스위프트 라는 사람을 다시 읽는다고 해야할까..?? (-_-;) 문득, 김옥 선생의 [학교에 간 개돌이(창비, 1999)]가 떠오른다. 책을 먹어치우자는 먹자파 책벌레와 먹지만 말고 공부도 해야한다는 학구파 책벌레 간의 한 판 맞짱 승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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