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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조선후기의 일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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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풍속사]라고 하여 우리 선조들의, 그 당시 민중들의 삶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읽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림에 대한 설명이다. 한 권은 단원의 그림을 가지고서, 또 한 권은 혜원의 그림을 가지고서, 그리고 마지막 한 권은 단원과 혜원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가지고서, 그림 속에 나타난 의미를 읽고 있다. 당시 풍속과 빗대어서..   조선후기 그림 하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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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풍속사]라고 하여 우리 선조들의, 그 당시 민중들의 삶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읽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림에 대한 설명이다. 한 권은 단원의 그림을 가지고서, 또 한 권은 혜원의 그림을 가지고서, 그리고 마지막 한 권은 단원과 혜원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가지고서, 그림 속에 나타난 의미를 읽고 있다. 당시 풍속과 빗대어서..

 

조선후기 그림 하면 사람들은 진경산수와 풍속화를 떠 올린다고 한다. 진경산수라면 겸재 정선의 그림이 으뜸이고, 풍속화라면 단원 홍도와 혜원 신윤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선의 풍속화에는 단원과 혜원의 풍속화 외에도 많은 풍속화가 있다. 사람들이 단원과 혜원의 풍속화에만 주목하지만, 그 이외의 작품에도 빼어난 작품이 많으며 이것은 조선후기 사회모습과 삶이 그만큼 풍성했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만, 그들의 삶과는 별개로 하고 말이다.

 

한 점을 지나는 선분은 무수히 많으며, 그 점의 의미는 선분 속 위치에 따라 다르듯, 그림을 한 점 이라고 생각한다면 선분을 어떻게 긋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단지 풍속이란 선분 위에서 그림을 이해하고자 했다. 특히 단원과 혜원의 그림을 다룬 [조선 풍속사] 1편이나 3편에선 그림 속에 나타난 풍속과 민초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여기 2권에서는 단지 그 당시의 풍속에 좀더 충실하였다는 느낌이 든다.

 

조선시대는 농업사회 이었다. 따라서 농업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들이 있고 또 그에 관한 그림들도 많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농업에만 종사했던 것은 아니다. 농업 이외의 것을 생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비록 천민이란 굴레를 쓰고 있지만 말이다. 조선후기에도 어부는 존재했을 것이다. 물고기를 잡는 것은 어살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러나 어살은 아무 곳에나 설치하지 못하였고, 또한 나라의 소유였다. 강이나 바다에서 생선을 얻었을 텐데 그걸 나타내는 그림은 드물다. 간혹 생계와 관련 없는 취미생활로서의 낚시에 대한 그림은 있지만서도..

 

지금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생업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만해도 간장, 된장, 고추장은 물론 김장독까지 옹기 없는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 옹기장이들은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급의 장인들 이었지만 김준근옹기장이는 당시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손색이 없다. 또한 엿장수의 가위소리나 엿치기는 이제 아주 사라져 버렸지만, 비록 그들에 대한 그림은 없지만, 풍속화를 보면 한구석에 그들은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나물캐기/윤두서>

그러면 그 당시 여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저자는 말하길, 조선후기 풍속화가 조선의 문화에 끼친 공헌이라면 여성의 삶을 시각적으로 들어낸 것 이라고 한다. 양반들, 남성들의 언어가 은폐하고 있는 그녀들의 삶이 그림을 통하여 비로소 들어났다고 말한다.

 

조선조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의 신체노출을 금기 시 했다. 그렇지만 신한평의젖먹이에서 보듯이 수유하는 젖가슴, 특히 아들을 낳은 사람은 자연스레 젖가슴을 들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 여성이 저고리 아래로 젖가슴을 드러낸 그림은 이 여성이 아들을 낳았다는 증거라고 한다. ..그림에서조차 유별되어지는 남녀차별이여.. 또한 바느질은 꼭 여자가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자의 일로 구분되었고 이는 훌륭한 여성임을 보증하는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여성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란 별로 흔하지 않다. 봄에 나물을 캐는 것은 소박한 생활의 상징이 되지만, 그것은 또한 굶주림과 가난의 상징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나물을 캔다는 것은 곡식이 바닥이 나서 굶주리기 시작한다는 것의 다른 말 이라 해도 틀림이 없었다고 한다.

     <국수 누루는 모양/김준근>

                          

민초들이나 여성들이 이렇게 억압과 가난에 찌들려 있다 해도 사대부들은 식도락과 풍류를 즐긴다. 개장국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주요 보양식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지금과 같이 안 먹거나, 못 먹거나, 먹는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뚜렷이 갈렸다고 한다. 또한 국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썰어내는 칼국수와 눌러서 뽑는 냉면의 두 가지 방식이 주종을 이루었으며, 냉면은 북쪽의 음식이었고 조선조가 끝날 때까지 평안도 특히 평양의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성협의고기굽기에서 볼 수 있듯이 벙거짓골은 쇠고기 요리로 음력 10월 이후 날씨가 쌀쌀해지면 추위를 막는 음식으로 먹었다고 한다. 흔히 전립골 이라고도 하며, 이것이 현재의 전골이라고 한다. 서민들은 결코 누릴 수 없는, 잘사는 양반들 그들만의 음식이지만 말이다.

 

조선후기 양반들의 저택에는 나무로 자연스레 담장을 만든 취병 이라는 것이 있다. 김홍도후원유연이 보여주듯 그들은 집안에 취병을 만들고, 주안상을 차리고 악공과 기생을 불러 잔치를 벌이곤 한다. 또한 한시는 짓는 법만 익히면 누구나 지을 수 있지만 사실상 양반들의 전유물 이었다. 17세기 중기 이후에는 서리들도 하나의 신분층을 이루어 한시 창작에 뛰어든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이었고, 양반사회에서 시를 잘 짓는 것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이것이 서리, 중인에게까지 번졌다는 것은 분명 실용과는 동떨어진 것 이었으리라.


그들은 또 산수유람을 한다. 특히 조선후기 산수바람이 불어온 것은 국토에 대한 사랑 혹은 애국주의의 분출이 아니었다고 한다. 단지 먹고 사는 일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산수를 구경하려는 행태와 관계 있을 뿐 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걸어 올라가지 않았다. 그들이 그린 그림의 이면에는 지배를 당하는 천한 것들의 노동과 땀이 배어있음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이고 무조건적인 욕망은 존재욕 이라고 한다. , 존재욕은 살아있고자 하는 욕망으로 사람들은 그것을 식욕과 성욕에서 찾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대부의 나라 조선후기의 성은 어떠했을까? 신윤복서생과 아가씨노인과 아가씨에서 보여주듯, 그 당시에도 성에 대한 담론은 가능했으리라고 저자는 말한다다만 여자는 여자라서, 양반은 양반이라서 드러내놓을 수가 없었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그 시대의 성을 이야기 하면서 춘화에서 일말의 단서를 찾는다. 춘화는 모든 문명권의 역사가 공통적으로 남긴 문화라고 한다.   

 

조선중기에 이미 중국에서 들어오기 시작한 춘화는 당시만 해도 사대부들의 은밀한 전유물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후기 조선에서도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즐겨(?)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의 풍속화를 보면 성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의 일단을 엿볼수 있다. 그들은 성은 인간 남녀의 교섭인 동시에 자연과 인간의 교섭임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대가 성적으로 개방된 시대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당시에 비하면 음침한 개방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조선후기, 우리는 많은 사료나 실록을 통해서 당시의 삶들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의 역사는 사대부의 역사이었고, 그러기에 그들은 그들만의 기록을 남겼을 뿐이다. 그 시대 농민이나, 상인 그리고 수공업을 하는 이른바 민초들과 여성들의 삶은 어디에도 자세하게 나와있지는 않다  

 

그저 자신들의 편의에 의해 부분적으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단원과 혜원 그리고 그 당시 풍속화를 그린 많은 사람들의 그림에서 그 단초를 찾는다. 실록이나 각종 기록들을 들춰가며 풍속화의 선하나, 점하나 에서 숨은 그림들을 찾아낸다. 그렇게 찾아낸 당시의 풍속은 우리 선조들의, 민초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의 또 다른 면을 알려 주는 것 같다. 더불어 우리에게 그 시대의 삶은 이런 것 이었고, 그렇지만 지금의 삶은 그때와 비교해 어떻느냐고 묻고 있는 것 같다.

k*****1 2010.07.23. 신고 공감 8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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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풍속사를 만나다
"그림을 통해 풍속사를 만나다" 내용보기
성호사설 다시 읽기라는 나비칼럼을 재미있게 읽고 있는 중,저자의 조선 풍속사 출간 소식을 접했다. 총 3권으로 구성된 책이다.2권을 제일 먼저 읽게 된 이유는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나오다>는 개정판이전의 책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런데 <조선 풍속사2>권을 받아 보고는 1권과 3권도 다시 주문하리라 마음을 바꿨다. 풍속사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그동안 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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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다시 읽기라는 나비칼럼을 재미있게 읽고 있는 중,저자의 조선 풍속사 출간 소식을 접했다.

총 3권으로 구성된 책이다.2권을 제일 먼저 읽게 된 이유는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나오다>는 개정판이전의 책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런데 <조선 풍속사2>권을 받아 보고는 1권과 3권도 다시 주문하리라 마음을 바꿨다.

풍속사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그동안 혜원이라든가 단원을 통해 회화사로 만났던 그림을 풍속사로 접근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일까? 혜원이나 단원보다 조금 낮은 평가를 받았던 김준근의 그림이 많이 등장한다. 사실 그의 그림은 지난해 ebs방송을 통해 처음 알게되였고 파리 기메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다.그런데 숭실대기독교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은 크게 생업,여인들의 삶, 식도락의 즐거움, 풍류, 성과 기방 이란 그림을 통해 풍속사를 설명한다.

그림을 보느라,저자의 설명을 듣는다고 처음에는 정신 없었다.그리고 깨닫게 된 사실,이 책 속에는 그림을 통한 풍속사만이 아닌 풍속사를 보완 해 줄 수 있는 다양한 문헌의 내용도 소개되고 있었다.물론 사이사이 저자의 삼천포로 빠지는 글들도 있었지만 풍속사를 재미있게 설명해 주기 위한 저자의 노력은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여인들의 삶에서 제일 먼저 관심을 끈 것은 <젖 먹이기>였다.

당시 시대의 여인들이 가슴을 드러내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저자처럼 나도 잠시 삼천포로 빠지는 시간이였기때문이다.

이 그림은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이 그린 <젖 먹이기>이다.

내가 삼천포로 빠진 이유는 그림 속 더먹머리 아기가 혹 신윤복은 아니였을까 라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기 때문이다.

풍속사적인 이야기라 그림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어디에선가 이 그림을 그린 신한평이 자신의 가족을 그린 것은 아닌가? 라는 글을 언뜻 본듯해서이다.

어쩄든 조선말까지 여인들이 젖 가슴을 내어 놓고 다녔다는 그 풍속을 글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였다.

 

이 밖에도 생업을 다룬 장에서는 옹기장이와 짚신 삼기  엿장수 내용은 퍽 흥미로웠다. 특히 엿장수라 하면 리어카에 고물을 팔며 엿을 바꿔 먹었던 것으로만 기억하던 나에게 예전에는 백당전이라는 상점을 통해 엿을 받아 팔았다는 것을 김준근과 김홍도의 그림을 통해 그리고 한경지략이란 책을 통해 알았다.

그런가 하면 식도락의 즐거움에 소개 된 봄 나물캐기의 그림 속에서는 나물을 캐는 모습을 보면서 고려시대가 불교 국가여서 나물을 더 많이 먹지 않았을까?

조선시대에는 나물을 캔다는 것에는 곡식이 바닥나서 굶주림을 채워내기 위함이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개장국>에 대한 그림과 설명도 이 책의 하일라이트였다고 볼 수 있겠다.

김준근의 '개백정'이란 그림과 이암의 강아지들이란 극과 극의 그림을 비교하고

다양한 개를 통한 음식의 설명들...

왠지 그림을 통해  개를 통해 문화의 차이를 설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많지 않은 그림과 단편적인 설명들이었지만,잘 알지 못하는 나와 같은 이에게는

<조선 풍속사2>와 같은 책이 고맙다.

지난해 민화박물관에서 춘화첩을 구입했었다. 아무런 설명없이 그림만 달랑 있었지만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지라,성과 기방에서 다룬 춘화부분에 더 많은 자료와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풍속화라 하면 여전히 단원과 혜원의 이름만 알고 있던 나에게 김준근이란 화가가 풍속화에 어떤 영향을 미췄는지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다. 조만간 숭실대기독교박물관에 다녀오리라 생각했다.

그의 그림은 단원과 혜원의 그림만큼 정교함은 없었지만(책 속에 소개된 그림에서 본다면..) 지금은 사라진 다양한 과거의 풍속을 그의 그림을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개정판이전 이긴 하지만 이미 있는 책이라 구입할 생각이 없었으나

2권을 보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다.

1권과 3권도 곧 구입하리라~

w*******i 2010.06.15.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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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풍속화에 재현된 식도락의 즐거움
"조선시대 풍속화에 재현된 식도락의 즐거움" 내용보기
조선풍속사 제2권은 '조선사람들, 풍속으로 남다'는 제목하에 조선시대 화가들의 풍속화 21점을 소개한다. 여기에는 유명한 혜원 신윤복과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을 비롯하여 기산 김준근, 화원집안 출신의 유명한 풍속화가 김득신(1754-1822), 신한평, 영조시대의 양반 화가 조영석(1686-1761)과 생평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성엽과 마군후 등과 같은 우리에게 매우 생소한 화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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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풍속사 제2권은 '조선사람들, 풍속으로 남다'는 제목하에 조선시대 화가들의 풍속화 21점을 소개한다. 여기에는 유명한 혜원 신윤복과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을 비롯하여 기산 김준근, 화원집안 출신의 유명한 풍속화가 김득신(1754-1822), 신한평, 영조시대의 양반 화가 조영석(1686-1761)과 생평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성엽과 마군후 등과 같은 우리에게 매우 생소한 화가들이 소개된다. 특히 기산 김준근에 대해 알게 되어 기뻤다. 김준근은 188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원산과 부산과 같은 개항자에서 외국인에게 조선의 생활상을 담은 그림을 대량으로 제작한 수출화가인데, 현재 기산풍속화는 약 1.300점 이상 남아 있다 한다. 기산의 그림 실력은 혜원과 단오에 미치지 못하지만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공신이 아니었나 싶다. 

 
저자는 책의 풍속화를 크게 생업, 여인들의 삶, 식도락의 즐거움, 풍류, 성과 기방 등 5가지 테마로 분류하고 있다. 생업은 고깃배, 옹기장이, 여름날의 짚신 삼기, 엿 파는 아이 4점을 소개하고, 여인들의 삶은 젖 먹이기, 세 여자의 재봉일, 절구질, 나물 캐기, 그네 5점을 소개한다. 식도락의 즐거움은 개백정, 국수 누르는 모양, 고기 굽기 3점을 소개하고, 풍류는 후원유연, 옥계청유도, 백천교, 투전판, 사당판 놀음 5점을 소개한다. 성과 기방은 서생과 아가씨, 춘화 감상, 연못가의 기생, 미인도 4점을 소개한다.
 
여러 테마 가운데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테마는 '식도락의 즐거움'이다. 일단 여름에 냉면을 먹고 겨울에 벙거짓골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은 오늘날에도 그 풍속이 여전하기에 그렇다. 아마추어 식도락가로서 나 역시 저자처럼 냉면을 무지 좋아하는 '냉면주의자'이고, 애완견을 키우는 일원으로서 사람들이 복날에 개장국을 먹지 않았으면 하는 자그마한 바람을 간직하고 있다. 저자는 홍석모(1781-1857)의 《동국세시기》와 안동장씨(1598-1680)의 《음식디미방》, 홍만선(1643-1715)의 《산림경제》와 같은 문헌들을 참조하여 개장, 냉면, 고기 요리에 대해 들려준다.   
z***a 2011.09.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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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조선 풍속사 2-조선 사람들 풍속으로 남다
"[서평]조선 풍속사 2-조선 사람들 풍속으로 남다" 내용보기
'한 점을 지나는 선분은 무수하다. 그 점의 의미는 선분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그림을 한 점으로 생각한다면 그 그림의 의미를 해독하는 선분은 무수하다.'이 책의 머리글에 쓴 저자의 말처럼 점이 선이 되고 하나의 의미가 될 때...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감동으로 전해질 때...단지 그림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단원과 혜원의 풍속화외에도 적지 않
"[서평]조선 풍속사 2-조선 사람들 풍속으로 남다" 내용보기
'한 점을 지나는 선분은 무수하다. 그 점의 의미는 선분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그림을 
한 점으로 생각한다면 그 그림의 의미를 해독하는 선분은 무수하다.'

이 책의 머리글에 쓴 저자의 말처럼 점이 선이 되고 하나의 의미가 될 때...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감동으로 전해질 때...단지 그림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단원과 혜원의 풍속화외에도 적지 않은 풍속화가 전해진다.
작가의 유명세에 눌리지 않고 오히려 홀가분하게  그림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매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선의 사람들의 생업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물근처에 살면 물고기를 잡았을 것이요,
들녘이 있다면 곡식을 길렀을 것이다. 지금도 험한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사는 일은
참으로 고단하다. 하물며 쪽배하나에 의지해 거친바다를 의지하고 살았을 조선의
어부들에게는 먹기위해 죽을을 각오해야만 했을 것이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고기잡이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려니와 고시에 소개된 그들의
한숨섞인 싯구를 듣자니 가슴이 짠해진다. 더구나 관청에서 거의 빼앗기다 시피 하였다니
지금이나 예나 있는 것들의 무자비함이 참혹하기만 하다.

 

가장 흔한 볏짚을 엮어 신을 삼고 자리를 짜고 흙을 빗어 독을 만드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이 그림속에 그대로 녹아져 있다.
하긴 뭐하나 내손을 거치지 않고 먹을것이 될 수 없고 살림살이며 옷가지가 될 수
없었던 그시절의 노동이야 짐작만으로도 애닮기만 하다.
하물며 일일이 절구에 벼를 찧고 불을 지펴 밥을 짓고 길쌈을 하던 여인네들의 
고단함이야 말할 것이 있으랴. 그저 그시절 태어나지 않음을 감사할 밖에.

평양출신의 아버지가  왜 그토록 냉면을 좋아하셨는지..냉면의 역사를 짚어가다 보니
이유가 충분하기만 하다.  여름보다 오히려 겨울에 더 즐겼다는 조상들의 입맛마저
고대로 대물림이 되었던가. 사철 언제든지 냉면을 즐길수 있으니 이또한 감사할 밖에.
지금도 개장국은 호불호가 분명한 음식이지만 단백질 공급원이 부족했던 예전에야
최고의 영양식이 아니겠는가.  



어느 해 고미술상에서 구입한 논어, 맹자사이에 발견된 춘화를 보고 누군가 옛날
거룩한 성닌의 말씀을 읽다가, 성인의 말씀이 지루해지면 춘화를 슬쩍 꺼내보았다가
누가 방을 열고 들어오면 접혀있는 책장속으로 슬쩍 밀어 넣고 했을 모습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나오고 만다. 하긴 그들도 사람이니 오히려 솔직함이 인간답지 않은가.
단원과 혜원도 춘화를 그렸다니...춘화가 성(性)을 돋우는 그림만으로 간주하기에는
뭔가 심오함이 있지 않겠는가.  혹 이부분은 아이들이 볼까 겁이 나는것도 사실이긴
하다만...
조선의 미인을 상징하는 그림을 보노라면 성형으로 범벅이된 지금의 여인네들이
후세에 어떤 그림으로 남을지..자못 궁금할 뿐이다.
h********5 2010.06.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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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의 삶 엿보기 - 강명관의 조선풍속사 2권 _뻑보이(ffuckboy)
"우리 조상들의 삶 엿보기 - 강명관의 조선풍속사 2권 _뻑보이(ffuckboy)" 내용보기
이 책은 이미 글을 쓴 조선 풍속사 1권에 이어지는 두번째 책이다. 조선 풍속사 1권은 단원의 풍속화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이 책은 주제별로 다양한 그림을 활용했다. 특히 구한말 외국인을 상대로 우리 풍속을 그린 그림을 대량으로 팔았다는 김준근의 그림이 많다. ​ ​ 어쨌거나 마음 따뜻해지는 이 책 속으로 또 들어가 볼까? ​ --------------------------- 사기
"우리 조상들의 삶 엿보기 - 강명관의 조선풍속사 2권 _뻑보이(ffuckboy)" 내용보기

이 책은 이미 글을 쓴 조선 풍속사 1권에 이어지는 두번째 책이다.

조선 풍속사 1권은 단원의 풍속화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이 책은 주제별로 다양한 그림을 활용했다. 특히 구한말 외국인을 상대로 우리 풍속을 그린 그림을 대량으로 팔았다는 김준근의 그림이 많다.

어쨌거나 마음 따뜻해지는 이 책 속으로 또 들어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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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그릇을 지고 다니며 팔았던 것처럼 옹기도 역시 지고 다니며 판다. 구한말 사진을 보면, 옹기를 잔뜩 지고 다니며 파는 장사꾼의 사진이 있다. 지게 위에 틀을 만들고 거기에 옹기를 얹어 깨지지 않게 한다. 정말 위태롭게 보인다. 이 사진을 보고 떠오르는 이야기 하나. 어떤 옹기장수가 옹기를 한 짐 지고 가다가 피곤하여 나무 밑에서 앉아 쉬며 공상을 한다. "한 푼 주고 산 건 두 푼을 받고, 두 푼 주고 산 건 네 푼을 받고, 이렇게 해서 다 팔면 다시 옹기를 사서 두 배로 팔고, 이렇게 몇 해만 지나면, 나는 큰 부자가 될 것이야." 옹기장수의 상상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그렇게 돈을 벌게 되면 고대광실 집을 짓고, 온갖 살림 차려 호사스럽게 살아야지. 그런데 어찌 마누라가 하나만 있을 수 있겠어. 예쁜 계집을 첩으로 들여앉혀야지. 그런데 마누라랑 첩이랑 머리를 잡고 싸우면 어떡하나? 싸우기만 해봐라. 이 지게 작대기로 후려쳐서 말려야지" 옹기장수는 자기도 모르게 흥분하여 막대기를 휘둘렀다. 그 바람에 옹기짐이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렇게 실현 가망성이 없는 셈법을 '독장수셈' 또는 한자말로 '옹산'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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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은 이어서 이 개는 몽고가 원산이라는 것, 말처럼 크고 사나워 길들이기 어렵다는 것, 중국에 들어간 것은 작은 종자이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더 작은 종자라는 것, 하지만 우리나라 개보다는 그래도 크다는 것, 중국에 간 사신을 따라 조선으로 들어온다는 것 등 관련 정보를 늘어놓는다. 재미있는 것은 개의 이름이다. 보통 이 개를 호백이라 하고 그중에서 작은 종자를 '발발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요즘의 '발바리'란 애완견은 아마도 이 개를 지칭하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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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이 발바리의 유래까지 밝혀주시다니, 발바리로 인해 즐거운 기분을 느낀다.아~! 아는 만큼 삶은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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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는 서울 시내에서 팔기까지 한 전통 음식이지만, 먹는 사람과 안 먹거나 못 먹거나, 먹기를 반대하는 사람이 뚜렷이 갈린다. 근대 이후에 와서 나뉜게 아니고, 조선시대에도 그랬다. 이유원의 <임하필기>에는, 북경에 가서까지 개고기를 삶아 대령하라고 해서 먹은 심상규(1766~1838)와 남의 집 잔치에 나온 개장국을 보고 '손님에게 대접하는 음식'이 아니라며 먹지 않았던 이종성(1692~1759)의 일화가 나란히 소개되어 있다. 개고기 마니아와 개고기 반대론자는 조선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개고기 마니아를 꼽자면 중종 때 권신 김안로(1481~1537)가 있다. 이팽수란 자는 김안로의 비위를 맞추느라 봉상시 참봉이 되자 크고 살진 개를 골라 사다가 요리해 올린다. 김안로는 이팽수의 개고기 구이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고 이팽수는 이 공으로 승정원 주서가 되었다. 승정원 벼슬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청직이다. 이팽수는 개고기로 주서가 되었으므로 '가장주서'란 별명을 갖게 되었다. 가장이란 '집노루'란 뜻인데,​ 개고기를 '가장'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어떤 미친 인간은 개고기 요리가 맛이 없다고 요리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효종실록> 즉위년(1649) 8월 19일조를 보면, 사간원 정언 이정영이 강원감사 유석이란 사람을 탄핵하고 있다. 유석은 국상 중 공석에서 고기를 먹었고 심지어 가장을 먹기까지 했는데, 맛이 없다고 요리한 사람을 매를 쳐서 죽였다는 것이다. 한심한 인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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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로는 이제 규모 있는 한정식 집이 아니면 거의 찾아볼 길이 없게 되었지만, '벙거짓골'은 지금 한국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왜냐고? 벙거짓골을 '전립골'이라고도 하는데, 이 '전립골'에서 '립'자가 줄어서 '전골'이 된다. 전골은 지금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다. 내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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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선 전골의 유래에 대해 알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벙거지(한자어로는 전립)모양을 한 불판에다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림으로 보면 설명이 쉬운데, 한마디로 갓처럼 챙이 둥글게 둘러있는 모자를 뒤집은 모양의 팬 주위의 챙 부분에 고기를 구우면, 기름과 육즙이 가운데 모자 볼록 솟은 부분으로 흘러가 모이게 된다. 여기에 물과 야채를 넣어 고기를 굽고 동시에 기름과 육수로 끓여진 야채국 같은 것을 먹는 것이다. 그래서 불에 익히면서 먹는 국/찌개의 이름이 전골이 되었다는 것이고.

그런데 원래 전골은 고기를 구우면서 동시에 먹는 것이니, 내가 나중에 식당을 하게된다면 저 벙거짓골을 재현해서 음식을 팔고 우리 조상이 먹은 방식으로 고기와 국을 즐기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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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소를 부려 농사를 짓고부터일 것이다. 한데 이게 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앞서 <고려도경>을 인용해 고려 사람들의 육식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 바 있는데, 이제 아주 본격적으로 인용해 보자.

고려는 정치가 아주 어질고, 부처를 좋아하여 살생을 꺼리기 때문에 임금이나 상신이 아니면 양고기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짐승의 도살도 서투르다. 오직 사신이 올 경우, 사신이 도착하기 전에 미리 키우고 있다가 사신이 도착하면 잡아서 쓴다. 짐승을 잡을 때는 짐승의 수족을 묶고, 뜨거운 불에 던져 넣어 숨이 끊어지고 털이 다 타서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을 붓는다. 만약 다시 살아나면 몽둥이로 쳐서 죽인다. 그런 뒤에야 배를 갈라 창자를 떼어내고 똥오줌을 씻어낸다. 그 고기로 국을 끓이고 굽기를 해본들, 악취가 계속 나기 마련이다. 그 서투른 솜씨가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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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도경은 고려때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온 송나라 사람 서긍이 지은 책이다. 한마디로 중국인의 눈으로 봤을 때, 우리 조상의 나라 고려는 독실한 불교 국가로 고기를 먹지 않아 사신이 올 때나 고기를 준비해서 주는데 너무 잡는법이 서툴러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단다. ㅎㅎ 전국민이 베지테리안 조상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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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승려들을 동원했던가. 양반들은 제 몸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인간들이다. 산수가 좋은 곳으로 가고 싶지만, 어디 평소 운동이란 것을 해보았나? 산에 오르자면 숨이 차서 견딜 수가 없다. 점잖은 체면에 땀을 비처럼 쏟아가며 헐떡이면서 산을 오르는 것은 체신머리 없는 짓이다. 해서 근처 절에 있는 스님들을 동원한다. 참고로 박지원의 <해인사>를 보자​​.

가마꾼 스님 덕에 험한 땅 지나는데

겨우 몇 걸음 가다가 다른 스님 바꿔 메네.

가여워라, 벌건 어깨 움푹 꺼졌으니

두려워라, 시뻘건 대머리 박처럼 터지려 하건만

손으로 허리 괴고 쉴 새 없이 헐떡이고

등에 밴 땀방울 이내 말라버리네.

"묻노라 너희는 즐거움이 있기에

오만 고생 다 하면서 이 깊은 산중에 사느냐?"

"잡역으로 관가에 종이 만들어 바치고

힘이 남으면 신도 삼아 팔지요.

무서운 건 산을 찾는 나그네들

관청에 나아가듯 쏜살같이 달려가지요."

이들 보니, 불쌍한 마음 짠하여

하소연할 데없는 그네들 차마 보지 못하겠네.

양반은 걷지 않는다. 걷는 양반은 부릴 위세가 없는 양반이다. 금강산을 찾으면 으레 산속 중들을 닦달한다. 중들은 종이를 만들어 관에 바치거나, 먹고 살기 위해 짚신을 삼고있다가 양반들이 찾아와 가마를 메라고 하면 누구의 명이라 거절할까, 관청에서 오라고 할 때보다 더 빨리 달려가 즉시 가마를 메고 나선다. 걸어서 올라가기도 힘든 산길을 양반을 메고 올라가니, 얼마나 고되었을까?.............. 도대체 어느 정도의 스님들이 동원되었을까? 윤휴는 유점사 승려 5,60명을 동원했지만 그보다 더한 경우도 물론 있다. 이인상(1710~1760)은 1735년 태백산을 유람했을 때 경상북도 봉화의 각화사에서 하루를 자고, 새벽에 일어나 90명을 골라낸다. 김진상(1684~1755)과 같이 타고 갈 견여 둘을 메고 갈 사람들이다. 이날은 얼어 죽는 것을 걱정할 정도로 추웠다. 삭풍이 몰아치는 논 쌓인 길을 견여를 메고 가는 스님들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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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에서 확인 할 수 있는 몇가지 사실들.

1. 양반은 걷지 않는다. 반드시 가마, 말을 탄다.

2. 불교를 억압하던 조선에서 스님의 지위는 거의 종과 다름없다. 비단 스님 뿐이랴 저 글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양반은 그냥 지나가는 양반아닌 족속들은 제 맘대로 때리거나 부리거나 할 수 있었다는 것. 좀 많이 맘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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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 스님만 가마를 메었던 것은 아니다. 양반들이 등장하는 곳에는 늘 가마를 메어야 하는 백성이 있다. 정약용은 <가마꾼>이라는 시에서 "사람들 아는 것은 가마 타는 즐거움뿐, 가마 메는 괴로움은 모르고 있네"라고 하면서 가마꾼의 괴로움을 꺼낸다.

높은 분 영접에 기한을 어길쏘냐.

엄숙한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네.

가마꾼 숨소리 폭포소리에 뒤섞이고

해진 옷에 땀이 배어 속속들이 젖어 있네.

외진 모퉁이 지날 땐 옆엣놈 뒤처지고

험한 곳 오를 때엔 앞엣놈 꾸부린다.

밧줄에 시달려 두 어깨에 자국 나고

돌에 차여 발바닥엔 못이 생겨 낫지 않네.

자기는 병들면서 남을 편케 해주니

하는 일 당나귀나 다를 바 하나 없네.

너나 나나 본래는 똑같은 동포이고

한 하늘 부모삼아 다 같이 생겼는데

너희들 어리석어 이런 천대 감수하니

내 어찌 부끄럽고 안타깝지 않을쏘냐.

나의 덕이 너에게 미친 것 없었는데

내 어찌 너의 은혜 받을 수 있으리오.

형장이 아우를 사랑치 않으니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니겠는가.

가마꾼은 이처럼 힘들고 비참하다. 따지고 보면 양반들이 승려에게 가마를 메라고 할 어떤 정당한 이유도 없다. 이것이 세상의 원리다. 중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의 거의 모든 관계가 그렇다. 정당한 명령과 복종이라고 하지만 속내를 따져보면 그 정당성이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약용은 중들은 그래도 덜한 편이고 고개 아래 백성들은 더한 착취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어느 날 '큰 깃대 앞세우고 쌍마교 나타나서, 촌마을 사람들 모조리 동원하면' 백성들을 '닭처럼 내몰고 개처럼 부리면서 소리치고 꾸중하기 범보다 더 심하다'는 것이다. '밭 갈다가 징발되면 호미 던지고, 밥 먹다가 징발되면 먹던 음식을 뱉어야' 한다. '죄 없이 욕먹고 꾸중 듣고 일만 번 죽어도 머리는 조아려야' 하며, '지칠 대로 지쳐서 험한 고비 넘기면, 그때야 비로소 포로신세 면하지만' 그 높은 분은 '일산 드높이고 호연히 가버릴 뿐, 한마디 위로의 말 남기지 않'는다. '기진하여 논밭으로 돌아오면, 지친 몸 신음 소리 실낱 같은 목숨'이 될 뿐이다.

그나마 가마꾼에 대해 이렇게 동정을 표한 것은 박지원과 정약용 뿐이다. 대개 우리는 조선의 회화를 보면서 진경산수라, 사실주의라, 국투산하의 아름다움이라 찬양해 마지않는다. 물론 그림은 아름답고 지금 한국의 더할 수 없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찬사를 낳은 그림과 시와 산문의 그 이면에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정당하지 못한 지배 그리고 지배를 당하는 천한 것들의 노동과 땀이 배여 있는 것이다. 만약 진경산수와 국토산하의 아름다움이란 이야기를 당시 가마꾼들이 듣는다면 무어라 할 것인가. 정말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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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장 근원적이고 무조건적인 욕망은 존재욕이다. 존재하려는 욕망, 곧 살아 있고자 하는 욕망이다. 존재욕은 다시 두 가지 욕망으로 구체화된다. <예기>는 이렇게 말한다. "음식과 남녀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 존재하는 곳이다."​ 음식을 먹는 것과 남녀관계, 곧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다. 아니, 그 욕망이 곧 인간이다. 인간은 식욕과 성욕의 구성물인 셈이다. 식욕이 없다면 인간 개체는 소멸한다. 성욕이 없다면 종으로서의 인간이 소멸한다. 그런 까닭에 식욕과 성욕은 인간을 성립시키는,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 욕망이다. 식욕은 음식과 인간 개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이다. 이에 반해 성욕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이다. 그리하여 성욕은 보다 복잡한 욕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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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위의 글을 읽으며 무엇이든 풀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그냥 식욕 성욕이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왜 있는 것인지를 알게되면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

아래는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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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생업
어부, 바다 밑 원혼이 되면 어쩔 테요
옹기장이, 사람의 삶이 이렇게 고달파야 하는가
짚신 삼기, 살림 밑천이 되는 기술
엿장수, 한 달 육장 매장 보니 엿장수 조첨지 별호되네

여인들의 삶
젖 먹이기, 아들 낳은 여인의 특권
바느질, 조선 여인의 시서육예
절구질, 쓿고 빻는 기술
봄나물 캐기, 누구의 밥상에 오를까
그네뛰기, 담장을 넘어 세상을 만나다
식도락의 즐거움
개장국, 역모 전 개장국 한 그릇
냉면, 어느 냉면주의자의 냉면 그림 보기
벙거짓골, 한겨울 나무 아래서 구워 먹는 고기의 맛

풍류
취병, 자연을 두르고 벌인 풍류놀음
시회 풍습, 양반 사회에서 시를 잘 짓는다는 것
산수유람, 진경산수화 속 여행과 고행
투전, 나는 놀면서 내 평생을 마칠 테야
사당패, 거리 예인들의 내력

성과 기방
조선 남녀의 성과 사랑, 서생이 영감이 되었어도……
춘화, 조선을 홀린 포르노그래피
기방, 홀로 있는 기생의 속생각
미인도의 여인, 조선 기생의 시작과 끝

f******y 2014.10.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