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TV문학관에서 '달의제단'을 보고 소설을 한 번 읽어봐야지 했었다.
하지만 막상 기회가 되어 읽게되자 내용을 다 아는데 재미있을까, 하는 망설임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너무 재밌다. 역시 책은 책으로 읽어야지 TV문학관이니 영화니 하는 걸로 보면 안된다.
왜 종가의 문화는 사라지는가. 나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나오는, 성룡이와 같은 종손이 종가의 문화사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이제 이런 형식이 아니면 종가가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정말 운이 좋게 현실에 맞지 않는 이 전통을 지켜보겠다며 희생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이상
종가는 과거 그대로의 방식으로는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심윤경 작가가 종가와 언문 조사에 큰 심혈을 기울였다는 생각이 든다.
책 전반적으로 나오는 종가문화가 정말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성룡이가 풀이하는 언문 또한 실제로 독자가 그런 자료를 마주하는듯이 사실적이다.
그래서 더 재미가 있다.
성룡이가 정실을 사랑하게 된 것에 대해서 토론을 했었는데
나는 성룡이가 아주 어릴 때 부터 정실을 동경했다고 생각한다.
효계당의 17대 종손과 다리병신에 교육수준도 떨어지는 부엌대기 딸래미.
하지만 정실이 받는 달시룻댁의 큰 사랑을 성룡은 부러워하고 심한 질투를 느낀다.
위태위태한 성룡이 정실과 관계를 가짐으로써, 정실이의 출렁이는 살덩어리 위에서
자신의 감정을 쏟아냄으로써 치유를 받는다.
임신마저 자신의 살덩어리에 감춰버릴 수 있는 정실은
성룡이의 아픔을 마치 스펀지가 충격을 흡수하듯이 온전히 받아준다.
어지러움증을 느끼는 성룡이 위에 정실이가 올라타자 압사당하는 느낌이 들면서
성룡이 정신을 차린 것처럼, 흔들거리는 성룡이를
무게감있는 정실이 중심을 잡아준다. 그렇기에 성룡은 정실을 사랑한다.
TV문학관에서는 불에 탄 효계당 잔해 앞에 꽃이 피고
아이를 업은 정실이가 그 꽃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소설에서는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는데 TV문학관을 먼저 봐서 그런지
난 정실이가 잘 탈출해서 아이를 낳고 달시룻댁과 만나 잘 살았을 것 같다.
'달'이 가지는 가장 큰 상징성은 여성, 여성의 자궁이다.
달의 제단은 바로 그 여성의 자궁이 바쳐진 효계당의 지붕을 이야기한다.
주인댁의 욕정에 정인을 잃고 겁탈을 당한 여인이나
대를 이어야한다는 목적의식에 자식을 잃은 여인이나
댓가를 받고 아이를 넘긴 여인이나
종가의 꽃이라는 이름으로 효월당에 갇혀 여자로써 사랑받지 못한 여인이나
다리병신 부엌대기 딸래미가 종손의 아이를 임신했다 해서 쫓겨난 여인이나
모두 달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이다.
자신의 자궁을 제단에 바친 여인들은
그럼에도 성룡이한테 손을 뻗는다.
그러는 것이 여성이며 자궁이고, '달'이다.
제단에 무엇을 바치고 제를 지내는 건 어떤 목적을 가진다.
달의 제단에 무수히 많은 여인들이 바쳐진 후 불이 나면서
그 제단인 효계당의 지붕이 내려앉음으로 제사는 끝이 났다.
그래서 TV문학관 끝에 아이를 업은 정실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모든 의식은 끝이 났으며 이제 행복해질거라고.
아마 정실이 낳은 아이는 사내아이일 것이다.
|
|
심윤경 선생의 작품이고요, 저는 이 분의 작품을 두번 째 읽는 것인데 두 작품이 같은 사람의 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색깔이 다르더군요. 심지어는 이 작품 한 권 안에서도 문체가 스리슬쩍 바뀌는 챕터가 나오는 바람에 으응? 그랬답니다. 쓰다가 잠시 감을 잃으신 것처럼 말이죠. 어쨌거나 두 작품이 완전히 다른 타입임에도 두 작품 모두 별로였던 저로서는 문장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잘 맞지 않는 듯 싶었습니다.
문장은 전작에 비해 상당히 향상된 느낌이었지만(나의 아름다운 정원)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게 나빠도 문장만으로도 한 권을 뚝딱 해치울수 있다,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정도에서 괜찮았던 부분도 있다를 오가다가, 종종 통제되지 못한 느낌-가령, 난해한 단어로 묘사를 하는데 오히려 의미가 분명하지 않아 전달이 좋지 않은 문장이 되어버렸는데 그게 젠체하려다가 그리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문장처럼-이 드는 문장이 등장하는 걸로 봐서 역시, 숙련된 느낌은 아니었어요.-어째 나도 꼬인다- 반면 문체는 뭐랄까, 남성적으로 선이 굵었습니다. 디테일의 묘사보다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 주를 맞춘 문장이어서 다소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거나 문장 면에서는 그다지 흠이랄 게 보이지 않아서 무난했다고 생각되고요, 챕터 말미마다 수록된 언문은 작가의 정성이 상당히 돋보였습니다. 색다른 맛을 주기도 했고요. 그러나 해독이 쉽지 않아 집중력을 오래 유지하도록 해주지는 않더군요.
이야기는 종가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종가집에서 대를 이어야 하는 서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데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좀 불분명한 게 문제였습니다. 저도 종가집에서 주워다 기른 자식이라 종가집 사정을 전혀 모르지는 않는 바, 우리나라의 잘못된 관습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 건가 싶으면 이야기는 또 어느새 1920년대 풍의 <감자> 라든가 <백치 아다다>같은 내용으로 건너가서 한참 거기서 노닐고는, 덜렁 호텔 지하에서 고급 수제 초콜릿을, 요상한 말을 써가며 파는 생모가 등장하기도 하며 그런가 싶으면 다시 안방으로 건너와서 진지하게 종가집을 논해 봅시다, 그러는 편인지라 그다지 뭔가 집중력있는 이야기의 전개는 아니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제 취향은 아니었으되 여성 분들의 평은 좋은 것 같아 아마도 여자가 보기에는 또 다른 면이 있는가 싶습니다. 어쨌거나 종가집 이야기인데 종가집 자식인 제가 별로 공감되는 얘기가 아니었던지라, 읽고 나서도 이게 뭐지? 그런 생각이 좀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개뿔 뼈대라고는 없는 집안이거나 혹은 제가 장남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몰라요. 어쨌거나 온순하던 아이가 거 쫌 태웠다고 해서 할애비에게 반말을 지껄이며 멱살을 잡는 급전환은 뭥미싶더라니까요. 그간 억눌린 감정의 표출치고는 다소 오버다 싶더니 이내 다시 1920년대식 엔딩씬으로 돌아가서 홀탕 다 태우면서 컷. 수고하셨습니다. 평이 좋아 은근히 기대했던 작품이었는데, 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