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깊은 구절"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한다. 나는 하나님이 그날에 나에 대해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내 자녀이다'라고 말씀해주시기를 원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다면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나를 공격한다 할지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p.115
A. W.토저의 '세상에 무릎 꿇지 말라'는 책제목에서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는다. 명령, 선지자적인 외침으로 말한다. 그것부터가 다르다. 아래의 제목들을 보라. 참 대단하지 않은가?
세상과 화목하지 말고 하나님과 화목하라, 흔들리는 세상에서 변치 않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라,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성경이다, 완고한 마음을 버리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라,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주께 모든 것을 바쳐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성령의 능력에 있다, 세상을 닮은 그리스도인인가, 예수를 닮은 그리스도인인가?, 부패한 이 세대를 향해 탄식하며 울라, 세상을 버리고 주께 나아가 영적인 상태를 진단받으라, 신학적 언어의 유령을 경계하라, 살아 있고 성령충만한 언어를 사용하라,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신자는 감정에 따라 살지 않고 믿음에 따라 산다, 거짓과 진리를 구별하여 하늘의 풍성한 복을 구하라. 내가 살지 못하면서 '살라' '~하지 말라'라는 말을 하기는 어렵다. 그런면에서 토저는 말을 하기 이전 그렇게 삶을 살아왔다. 그렇기에 호소력이 있고, 강한 사자후의 외침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글에 색연필로 밑줄을 긋는 나는 몇가지 큰 깨달음을 얻었다. 2단원에서의 권세 부분, 교회의 권세와 말씀의 권세. 성경말씀으로 부터 오는 권세는 우리에게 언약을 준다는 것이나, 특히 3단원의 초대교회와의 동일성을 드러내는 특징 7가지 즉 교리, 도덕성, 하나님, 성령님, 육신, 세상, 예배에 대한 태도에 대해 읽던 중 예배에 대한 태도에서 '소품중독'을 다룬 글이 아주 크게 마음에 와닿았다.
요즘 교회에는 멀티미디어로 붐을 이루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종이에 찬양가사를 써서 사용하는 궤도를, 그러다가 찬양을 OHP필름이나 복사하여 사용했다. 그런데 2000년대를 시작하면서 빔프로젝트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교회에 많이 보급되었다 . 교회에서 빔프로젝트를 통해 월드컵 응원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찬양뿐만 아니라 PPT설교나 영화상영 등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거기다가 작은 교회들이 많아지면서 반주자들이 없어 찬양 반주기같은 것들이 들어오면서 교회는 음향기기들을 거의 갖추게 되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기도회만 보더라도 작은 교회들의 연합인데 왠만하면 음향기기는 기본이고 드럼, 기타, 피아노 정도는 필수고 빔프로젝트도 거의 다 있거나 준비하는 실정이다.
얼마전 실수로 음향시스템이 망가져서 마이크가 제대로 소리를 못내어 음향기기를 새로 사야 할 형편에 이르렀다. 마침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학생부 모임이 있게되었는데 부득이 다른 교회로 장소를 옮겼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마이크시스탬이 안되어 있고 악기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나에게 토저목사님의 소품중독에 관한 메시지는 나를 향한 고함소리(?)같았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쫓고 있는 것인가? 그동안 당연시 여겼던 교회문화에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였다.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 자신이 지도자로서,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5단원의 그리스도인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와 거듭난 사람의 특징에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는데, 거듭난 사람은 우선순위가 바뀐다, 주인의 자세에서 청지기의 자세로 바뀐다, 새로운 원리에 따라 살아간다에 대해 서술한 부분은 특히 눈여겨 볼 만했다. 그외에도 계속해서 도전을 받은 것은 위의 제목들을 통한 명쾌한 답변들이다. 286쪽에 걸친 선지자적인 외침은 나를 돌아보고, 나의 신앙과 도덕을 점검하고, 나의 가치관을 다시 세운다. 또 하나, 매 단원이 끝날 때마다 친송시를 실음으로 이성적 호소와 더불어 감성적 언어를 자극하는 것이 무척이나 새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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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든 순간 나의 마음이 셀레이기 시작했다.
나의 신앙의 있어서 많은 영향력을 끼치신 분이기때문이였다.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읽어가기 시작 하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읽어 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내속에 있는 나의 자아가 그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난 지금껏 토저목사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감을 하면서도 인정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난 성령님께 지혜를 구하였고 성령게서는 내게 깨닫을 수 있는 지혜를 붓기 시작 하였다. 이 말씀들은 우리의 신앙의 있어서 실재가 되지않으면 우리의 머리만 키우며 또다른 바리새인을 만드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과 화목하지 말아야 할것이며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친밀함을 위해서 창조 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권세가 있으며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말씀에서 벗어난 삶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며 하나님에게서 우리를 벗아나게 하기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기준으로 삼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어쩌면 이 새대의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하고 계시는지 로이드존스목사님과 같이 정확하게 이 시대를 깨고 계시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시대를 정확하게 진단및 처방을을 해주셨다.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양떼를 배반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그들에게 거짓말하지 않을 것이다. 주의길을 가는 자로서 이 말씀을 마음 깊숙히 새김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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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무릎 꿇지 말라
토저의 메시지 토저의 메시지는 한결같다. 그는 기독교가 혼란에 빠져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씀을 나의 내면에 질문해 본다. ‘나는 과연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길을 따르고 있는가?’
우리는 이 대답에 있어, 그 상황에 따라 ‘예’ 또는 ‘아니오’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렇게 대신 대답할 수 있다. 나는 매일 묵상을 하고, 수요일 저녁과 금요일 철야예배를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십일조는 물론 반드시 주일예배도 반드시 지키고 있습니다. 저는 주일학교의 교사이며, 성가대의 대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대답이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있다라는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일까?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육적인 자손이다. 그 아무도 이것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육적인 자손이었다는 이유로 영적인 자손도 된다고 믿었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믿음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요 8:39)이라며 그들의 잘못된 이해를 깨트리려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렸으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시말해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겸손과 순종과 믿음이 없었으며, 하나님을 향한 진실됨과 진리의 추구가 없었다. 그들에게 진리와 진실에 대한 추구함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진실 속에는 자기 자신의 합리화와 자랑만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무지한 유대인에게 진리를 보다 알기 쉽게 가르치기 위해 율법이라는 껍데기를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진리대신 율법을 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들만의 성을 더욱 견고케 하는 의와 무기가 되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일까?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 사도행전의 제자들과 사도바울이 믿었던 것을 믿는다. 우리는 그들이 믿었던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도들의 교리적 후손이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아브라함의 육적인 자손으로 인정했듯이, 누구도 이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리적 후손이 곧 영적인 후손이라고 믿는 것은 유대인들이 그러했듯이 큰 오류이며 착각이다. 우리는 바울이 믿었던 것을 믿기 때문에 그가 가졌던 모든 것을 우리고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베드로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도 그가 짊어졌던 십자가를 지금 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훈련소에 입소했다는 것과 훈련소를 졸업했다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다고 믿고 있다. 우리가 사도들의 진정한 후손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선 그들과 같은 존재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를 증명하라는 이 명제마저도 ‘우리는 우리의 의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받은 것입니다.’라고 이야기 하며 이를 거부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대답이 복음을 지하철 앞에서 누구나 가져 갈수 있는 무간지 신문과 같이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동이 아니었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우리가 초대교회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우리가 초대교회와 다른 점은 매우 많다. 그 중에 2가지만을 뽑아본다.
첫째는 도덕성이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매우 높은 도덕성을 유지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믿었기에 그들의 행동이 변화됨을 당연하게 여겼다. 도둑이 그 옆에 있는 도둑에게 ‘지금 당신도 범죄자 이고 나도 범죄자이나, 다행히 나는 예수를 믿고 있기에 지금 죽어도 구원을 얻습니다.’라는 해괴망칙한 이야기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두 번째는 육신에 대한 태도이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나의 옛 것은 죽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도 이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내의 많은 프로그램들을 통해 육신의 사람들을 모으고 세련되게 꾸미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교회를 움직이는 주인이 예수가 아니라 시스템이 되게 구성한다. 그리고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교회는 ‘우리는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이로서 우리는 많은 선교사들을 배출할 수 있으며 그들을 효과적으로 훈련시키고 관리할 수 있게 됩니다.’라고 스스로 자랑한다. 그러나 그 안에 예수님의 뜻은 보기 어렵다. 예수의 이름으로 찬양하고 전도하지만, 결국 진정한 알맹이는 없다. 완벽한 시스템으로 예수님을 주인이 아닌 손님으로 모신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들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이며 이상향의 롤모델 일까?
A.W토저의 대답을 통해 답을 찾아본다. (p.80~81)
사도행정의 교회에서 발견되는 뜨거운 영성에 도달하지 못할 교회는 우리 가운데 하나도 없다. 사도행정과 사도들의 편지에서 볼 수 있는 순수한 생명, 뜨거운 예배, 성령 안에서의 자유 그리고 높은 도덕성이 현재 어떤 교회에서 발견된다면 그 교회는 사도들의 믿음을 계승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서 초대 교회와의 동일성을 보여주는 이런 특징들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사도들의 교회를 계승한 후손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런 특징들이 없으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초대교회의 외형적인 것들을 계승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이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듯이 말이다. 우리는 사도들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영적기준에 도달해야 한다. 그럴때 우리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닮기 시작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사도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가운데 기쁨을 얻을 것이다.
A.W토저의 말을 통해 마무리 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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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먼저 선포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으로 통치되는 반면에 세상은 힘과 권력에 의해 다스려진다. 겉으로 보기에 또한 삶을 살아가면서 느껴지는 삶의 무게를 바라보게 되면, 세상의 힘과 권력 그리고 세상의 달콤한 유혹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 방식인 사랑보다 더 매혹적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래서 많은 크리스챤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보다 세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또한 세상과 타협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A.W 토저의 「세상에 무릎 꿇지 말라」는 책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과 적절하게 타협하며 살아가는 크리스챤들에게 또한 완전하게 하나님 편으로 돌아서지 못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직설적으로 그러한 신앙생활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동시에 그러한 잘못된 신앙에서 돌아서 하나님 편으로 올바르게 서라고 권면한다. 과학과 문명이 찬란한 꽃을 피운 이 세상에서, 토저는 그리스도인들이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 삶의 기준이 과학이 아니라, 지식과 자신의 계획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임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지만 세상의 통치방식이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으며, 또한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세상을 향해 탄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탄식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절한 기도가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절함과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것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역동적인 힘으로 자리 잡고 요동칠 때에, 비로소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릴 수 있는 크리스챤이 탄생하는 것이다. A.W 토저의 「세상에 무릎 꿇지 말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고 삶에 익숙해져 무뎌져 버린 우리의 신앙을 향해 뜨거운 도전을 심어주는 귀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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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한국 교회에 두려움 없이, 거침없이 진리를 선포하는 주의 종이 있을까? 강단에서 어느 순간부터 죄와 회개에 관한 설교가 사라졌다. 진리가 설교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구미에 맞는 사탕발림만 설교라는 명목 하에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바른 말씀의 회복이 시급하다. 약 50여 년 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진리를 거침없이 설파하던 이가 있다. 그는 바로 A. W. 토저이다. 토저는 당시 교회의 잘못된 변형과 어그러짐을 그냥 좌시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정공법으로 과감히 지적했고, 변화를 요구했다. 하나님께 다시 돌아 설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의 요구는 분명하며 때론 잔인했다. 직설적인 그의 일침에 많은 이들의 반감을 갖기도 했다. 토저는 '세상에 무릎 꿇지 말라'에서 어김없이 그 특유의 거침없는 일침을 사람들에게 가한다. 이 책에서는 세상을 기준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성경을 기준으로 삼을 것을 요구한다. 세상을 따르지 말고,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주를 따를 것을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그것을 잡을 것을 말한다. 그의 요구가 거북하게 느껴지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혹 그렇다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기 바란다. 분명 잘못된 부분이 있을테니까. 바른 신앙의 회복에 이 책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와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토저의 귀한 외침을 더 이상 듣지 못하는 게 아쉽다. 이 땅에는 그와 같이 외치는 이가 없다는 사실이 더 아쉽다. 그렇게 용기 있는 자가 이 땅에는 없는 것일까? 하나님보다 인간이 더 크고, 두렵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과감히 전하지 못하는 이 땅의 목회자들이 밉다. 그로 인해 신자들이 점점 더 잘못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서글프다. 완성 되어 가는 말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치부하는 건 무책임한 처사이다. 그러기에는 목회자들의 어깨가 무겁다. 엔터테이너가 대접받는 구조적 현실을 뒤집어엎고, 그러한 현실을 단호히 거부하며 선지자들과 같이 과감히 현실을 지적하는 오늘의 선지자가 우리에게도 탄생하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잠들어가는 신자들을 깨워 신랑이 올 때까지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여 불이 꺼지지 않게 졸지 않고 기다리도록 독려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직은 우리에게 남아 있고, 여전히 부어지고 있다. 주님 오셨을 때 땅을 치고 후회하기 전에 목회자들이, 그리고 신학자들이 먼저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한 신자들의 방황은 계속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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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토저님의 설교가 유명하다고 하여 많은 성도님들이 호평이 많이 있어 궁금하던차에 귀한 책을 선물받게 되었습니다. 과연 토저님의 말씀... 막힌 가슴이 탁트인 느낌이라고나 할까... 너무나 좋았고 너무나 명쾌 통쾌 상쾌하였다고나 할까... 우리나라가 잘살게 된지 불과 30-40년이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다보니 주님과 가까이하고 주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하는데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앞에 너무나 부끄럽고 주님께 죄송할따름입니다 우리의 신앙선배님들은 많은 굴욕속에서 일사각오를 지키신 주기철목사님, 한경직목사님, 죽으면 죽으리라의 안이숙권사님등 그들의 순교의 피를 통하여 우리들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줄 압니다. 앞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저의 생활이 평생토록 계속되리라 생각하면서 안이한 믿음생활을 하지 않나 선배님들이 저희들을 보면 얼마나 답답해 하실지... 제 2장에서 어머님이 자녀를 놀게하다가 저녁이 되어 집으로 불러들이는 장면을 보면서 지금현재 제가 처해있는 자리를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지금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인하여 이 자리가 계속 되는줄알고 미련하게 교만에 빠지는 경우를 봅니다. 저의 경우 공직생활을 하면서 6.2선거를 치루면서 공직자들이 대부분 바뀌는 여소야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모르는 밑바닥에서는 자기들의 이권다툼으로 뒤집어 엎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어머님이 자녀들을 집으로 불러들이듯이 내 자신 내 처지를 알고 겸손하게 빛과 소금으로 살수 있다면 또한 섬김과 나눔으로 소통하는 자리에 산다면 미련없이 어머님이 부르면 훌훌털고 이 자리를 떠날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시기에 맞게 세상에 무릎꿇지 말라는 토저님의 말씀을 통하여 할수만 있다면 내려놓는 신앙 죽는 신앙 희생하는 버리는 신앙을 살려고 합니다. 봉사를 하러다니기전에는 힘들게 왜 내 생활을 하지, 왜 내 것부터 챙기지 않지 이것은 분명히 내 몫인데..., 이 자리는 내 자리야 etc.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봉사를 다니면서 사랑으로 나눔과 실천을 하고나니 육신의 몫은 모두다 물거품이요 지금은 좋은나 썩어질 물질이요 욕심을 내어 가지고 있지만 언젠가 내 놓아야 한다는 사실etc.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흔들리는 세상에서 주님의 변치 않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며 내려가야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아직도 부끄러움만 남습니다. 그러나 토저님의 설교말씀을 통하여 진정한 이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꼭 한번 읽어보고 한번에 안되지만 자꾸 연습하면 아가도 걸어가듯이 연습을 통하여 주님의 법칙에 맞게 살려고 합니다. 즉 주님의 법칙은 이 세상의 법칙에 어긋나지만 주님의 법칙으로 산다면 그 뒤에 오는 주님의 응답 축복은 말로다 할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하여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닮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이 되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성령의 능력에 있다 세상을 버리고 영적으로 주께나아가자 이 책을 통하여 너무나 은혜를 많이 받아 토저님의 시리즈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뜨겁든지 차든지 열심히 주님을 믿어보자 하고 경건의 연습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하는 작은 소망으로 이 책을 읽고 연습해 보려고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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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으셨다면 당신이 그분께 나아갈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p28
부모 따라서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믿음생활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머리가 굵어지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출산하고 나니 그것이 정말 크나큰 축복임을 알게 됩니다. 내 부모를 잘 만나서, 믿는 가정에 태어났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했던 것들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은 이것마저도 주께서 나를 택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주님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하는 것은 하나님께 반응한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알게 됨에 다시 한번 결단하게 되는 것은 좀 더 주 앞에 민감하게 반응했으면 좋겠다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앞에 자주 무릎 꿇다보니 반응하는 정도가 둔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속에서 깊이 살고 있다보니 그 잣대가 세상으로 물들여져 있는 것 같습니다.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 기억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멈칫하게 되면 세상의 잣대로 판단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세상의 잣대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 두려움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안돼..
A.W.토저님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그 분의 기도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종종 이런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돕지 않으시면 제가 망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하소서".... 저는 이런 기도를 할 자신이 없습니다. 주위에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물어보았습니다. 대부분 반응이 난감해합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매주 주일에... 그리고 매일 새벽에 그분께 기도를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계시면 더욱 좋지만, 굳이 안 계셔도 괜찮다는 그런 식의 느낌은 아닐런지모르겠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고, 한사람 한사람의 심령이 찔림을 받고 정말 깨어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탄도 허튼짓을 하지 않고 장난을 치지 않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장난을 친다고 합니다. 언어 게임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언어 게임 자체도 세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그런 것에 속지 않으시는데도 그것을 분명 알고 있는데도 신앙 생활 속에서 너무나 많은 장난을 치고 있었던 나를 보게 됩니다. 부끄럽습니다. 우리 딸에게도 부끄럽습니다. 10대에 거듭났다고 여겼었는데 아직도 다시 거듭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몇번을 거듭나야 하는 것인지 그 거듭남의 의미를 생각해보니 더욱 내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 고전3:1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몸으로 그렇게 살아오고 있었던 나 자신... 나는 육신적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신령한 그리스도인,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이런 생활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고, 성경 읽기를 멈추지 않으며, 주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물임을 매일 고백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세상과 너무 닮아있었습니다. 아기를 낳고 기르는 어미의 입장임에도 신앙은 여전히 아기와 같았습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목적이 없고, 비생산적이었습니다. 신앙을 놀이로 생각하지 않고, 오늘 하루도 조금 더 성숙하길 간절히 원해봅니다.
복을 기원하고, 평안만을 원하는 기도보다는 구원에 감사하고 죄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춤출 수 있는 나 자신이 되길 원합니다.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실과 나를 구원하시는 그 분을 기억하면서 깨어있고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다짐하는 책이었습니다. |
| 토저 목사님의 책 15번째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내게는 정말 유익했다. 토저 목사님의 사자후는 지금 이시대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의 발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교회가 토저 목사님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의 책에서 "교회 강단이 타락하기 시작한 것은 강단에 연예인을 세우면서부터이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이 난다. 사실 많은 교회에서 총동원주일이다, 태신자초청잔치다 하면서 주일 낮예배 강단을 연예인들에게 내어주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한켠으로 물러나 있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현실이 아닌가 한다. 텔레비전에서 하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라하는, 모방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참 안타까운 모습들이 있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주께 모든 것을 바쳐라"라는 제목이 내 마음에 다가왔다. 사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내 중심이 세상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중심이요,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살아가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윗은 시편 119편 105절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발의 빛이니이다."라고 고백했다. 그것은 다윗의 인생 전체를 이끌어 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고백도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다윗을 의인의 대표주자로 말씀하시는데, 우리도 이 모습들을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은 말잔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언어유희가 판치고 있듯이, 신앙생활도 여전히 말로만 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다. 하지만 말잔치의 신앙생활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말로는 다 하지만, 행동도 없고, 삶도 없는 모습들. 요즘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참 한심스러울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말로는 신앙생활 잘 하는 것처럼, 최고로 하는 것처럼 하지만, 정작 자기가 본 주보조차도 버리고 가고, 혹시 음료수라도 주면, 음료수는 마시고, 음료수 병은 본당에 자기가 앉은 자리에 그냥 내비쳐 두고 가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누군가가 치우지 않으면, 일주일후에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게 되는 안타까움이 얼마나 큰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신앙생활은 내 작은 삶의 태도 하나 하나를 다듬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부분들이 철저하게 무시되어 가고 있고,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고, 어느 누구하나 그것에 대해 지적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 앞에서도 그럴진대, 하나님 앞에서야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 기본적인 예의를 무시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예의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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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세상에 무릎 꿇지 말라』 『세상에 무릎 꿇지 말라』는 제목부터 벌써 우리에게 심상치 않은 도전을 준다. 우선 이 책의 저자인 A.W.토저(Aiden Wilson Tozer)는 하나님을 잊은 채 방종하는 세대를 향하여 날카롭게 신랄하게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시대를 향한 말 할 수 없는 탄식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그의 설교는 신학적으로 해박한 지식에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는 간절함으로 영혼들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 무릎 꿇지 말라』이 책도 이러한 그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A.W.토저는 이 책에서 세 가지의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문제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강조한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괘락들을 사랑하지 말고 세상의 성공이라는 가치들을 쫓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일에 힘을 쏟으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인 성경 말씀을 온전히 붙들라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한결 같은 성경을 기준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성경이 곧 진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라는 것이다.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도 부패한 세상을 향해 탄식하며 기도할 수 있는 일도 나의 영적인 상태를 올바르게 진단하게 파악하는 일도 모두 성령의 소관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의 능력을 구하며 그 능력으로 세상을 정복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소위 ‘종교 놀이’라 불릴 만한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 생활은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당장에 그만 두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진정한 하늘의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신앙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매너리즘에 빠져 뭔가 새로운 계기와 도전이 필요한 사람들, 영적으로 목마름과 갈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저울질 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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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 토저 지음/이용복 옮김(2010). 규장. ★★★★
- 영문판 편집자의 글 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거나 가장 극렬한 비판을 받은 사람 중 한 사람은 A.W. 토저일 것이다. 그의 생전에 많은 사람들은 그를 선지자로 여겼다. 그리고 그의 메시지를 듣고 그의 글을 읽었다.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가지고 말이다. 모든 사람이 다 그의 주장에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가 참되며 그의 말에 하나님의 음성이 담겨 있다고 인정했다. 토저가 메시지를 전할 때,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을 알았다. 토저의 사역의 특징은 그가 느낀 것을 강조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느낀 것은 '참된 기독교 신앙의 쇠퇴'였다.
* 위험한 착각 주님이 먼저 제공하시는 것은 평안이 아니다. 주님이 먼저 제공하시는 것은 구원, 죄 사함, 새롭게 함 그리고 교정(嬌正)이다. 그런 다음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평안을 상품화해서 마치 비누를 팔듯이 판매한다(p.168)
* 탄식하며 우는 사람 나는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 때문에 슬퍼할 수는 있다. 그렇다! 나는 슬퍼할 것이다. 나는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내 눈물로 채울 것이다. 신약성경의 기준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예배하는 일이 교회에서 일어나지 않을 때, 내가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설득할 수 없다 할지라도 나는 적어도 그들을 위해 울수는 있다. 만일 우는 것조차 할 수 없다면 탄식이라도 할 것이다.(p.175)
* 빛의 하나님, 밤의 하나님 실패라는 것이 때로는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 그리스도인은 실패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인데, 그것은 예수님이 실패할 여유가 있는 분이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데, 그것은 선한 의도를 가졌으나 자기 자신조차 주체하지 못한 사람의 어리석고 비극적인 최후로 보일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흘 만에 주님을 다시 살리셨다. ... 그러므로 십자가에서의 주님의 죽음은 겉으로 보기에만 실패였다. 본질적으로 주님은 실패자가 될 수 없는 분이시다. 주님은 성공을 당당히 거머쥘 수 있는 분이시다. 창세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장차 오는 모든 세상에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주님도 실패처럼 보이는 밤을 통과하셔야 했다.(p.262)
2012. 03.
내 인생의 A.W. 토저의 두번째 책이다. 남편을 통해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삶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료하고 답답하고 어찌보면 한가하다 느낄 때마다 이 분의 책을 읽게 되는 것 같다. 이 분의 책은 마치 학창시절 학주(학생 주임)를 대할 때와 비슷한 것 같다. 존재만으로도 온 몸에 힘이 들어가고 그렇게 바른자세로 서 있을 수 없다. 이 책 역시 그렇게 나를 무섭게, 매섭게 대하며 신앙의 바른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알고 있지만, 내 마음 한 편에서 '그래도 쉽게 가지..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라는 소리에 대해 '아니야. 그렇지 않어. 좋다고 모두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잖아'라며 회초리를 댄다. 그래서 난 이 분의 책이 좋다. 마치 대학에 들어갔음에도, 그 자유가 마냥 반갑지 않으며, 가끔 대학에도 담임이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처럼 말이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의 소감은 '성경을 제대로 알자. 신앙서적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그것이 성경을 대신하지 않아. 신앙서적은 단지 신앙서적일 뿐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지.'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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