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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대통령은 냉철한 원칙주의자이면서도 합리적인 현실주의자였다!
"내가 겪은 대통령은 냉철한 원칙주의자이면서도 합리적인 현실주의자였다!" 내용보기
우리 대한민국은 고 노무현 대통령 이전까지는 퇴임한 대통령의 모습을 공식적인 행사 외에는 볼 수 없었다. 살아있는 권력이 아니기때문에 세간의 조명이 비춰지지 않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예외였다.  첫째, 이지원시스템과 그간 남긴 대통령기록물이 정치적 이슈로 떠올랐다. 보통 후임 대통령이 선출되면 이임까지 다음 정부로 넘길 인계 업무만 하는 게 통상 관례였다. 그런데 참
"내가 겪은 대통령은 냉철한 원칙주의자이면서도 합리적인 현실주의자였다!" 내용보기

우리 대한민국은 고 노무현 대통령 이전까지는 퇴임한 대통령의 모습을 공식적인 행사 외에는 볼 수 없었다. 살아있는 권력이 아니기때문에 세간의 조명이 비춰지지 않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예외였다.

 

첫째, 이지원시스템과 그간 남긴 대통령기록물이 정치적 이슈로 떠올랐다. 보통 후임 대통령이 선출되면 이임까지 다음 정부로 넘길 인계 업무만 하는 게 통상 관례였다. 그런데 참여정부에서는  대통령기록관을 세우고 그곳에 대통령기록물을 300만건에 가깝게 남겼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대통령 권한으로 지시한 사항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남긴 기록의 역사를 보는 듯 하다. 후대에 기록물을 남겨 참고하라는 의미에서 기록물을 남기는 무리수를 두었다. 이게 국면 전환용으로 정치적 기폭제가 되어 퇴임 대통령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는 도구가 되었다.

 

둘째, 생태복원운동은  퇴임한 대통령을 세간의 주목을 받게 한 이슈가 되었다. 태어나고 자란 마을의 생태를 가꾸고 친환경농법 오리쌀을 통해 소득도 보장하겠다는 소신있는 사업들이 정치인들에게는 부담이 되었을 듯 싶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옛 속담이 있듯이 인기에 죽고 사는 정치인들에게는 눈엣 가시거리가 될 수 있겠다 싶다.

 

이 책의 저자는 퇴임 후 지방으로 내려가 생태복원사업을 전개한 고 노무현 대통령과 오래 전 1985년 구속되었을 때 기꺼이 변호인으로 인연을 맺은 김정호 현 (주)봉하마을대표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던 김정호님은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친환경생태가꾸기를 위해 집을 팽개치고 봉하에 자리를 잡는다. 실무진으로 일하면서 동네 사람들과 협조하여 다양한 생태 친환경 농업 활동을 전개했다. 지금도 그의 명함은 (주)봉하마을대표다.

 

김정호 대표는 지금도 고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 한다. 1988년 부산 동구에서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구호로 국회의원에 처음 출마했을 때의 노무현을. 잘나가던 조세 전문 변호사의 안정된 기득권을 스스로 버리고 1987년 6월 최루탄 가스가 자욱한 남포동 거리에서 혼자 버티고 앉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맞섰던 노무현을 이 책을 통해 불러내고 있다.

 

김정호 대표는 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회상도 책에 남겼다. "그는 평생 동안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친구이자 동반자였다. 대통령이 혼자서 외로울까 봐 마지막까지 변호인으로, 어려움을 나누는 후배이자 친구로서 곁을 지켰다. 탄핵심판 때도 히말라야 트레킹을 접고 달려와서 법률 대리인을 맡았다. 퇴임 후 정치검찰의 칼끝이 대통령을 겨냥해 올 때도 문재인 실장은 더 자주 봉하를 찾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한다. <나무와 숲> 저자인 남효창 홀로숲연구소 소장과 생태 숲 가꾸기 콘셉트와 방향 등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한국의 야생화>로 잘 알려진 광릉수목원 이유미 연구사, <궁궐의 우리 나무>의 경북대 박상진 교수의 도움도 구했다. 친환경 오리농법의 대가 충남 홍성군 주형로 선생을 초정했고 고성군의 생명환경농업을 지도하는 자연농업연구원 조한규 원장도 모셨다. 일본의 오리농법 창시자 후루노 박사도 초빙했다.

 

화포천에 자동수중보를 설치하고 토양 유실을 막아주는 논두렁도 복원했다. 직접 콤바인을 몰았고 자전거부대를 이끌며 환경지키미로 활동했다. '가야 황차'로 불리는 장군차도 심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한 뒤 한 일이다. 아주 소박한 삶이었다. 소박한 삶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기 시작했다. 이게 화근이 되었다.

 

"내가 겪은 대통령은 냉철한 원칙주의자이면서도 합리적인 현실주의자였다. 봉하마을 친환경 벼농사도 기본과 원칙을 견지하면서 현실적인 역량과 조건에 맞추어 융통성 있게 추진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언에 의해 건축가 승효상 씨가 전례가 없는 역사적 조형물로 무덤과 비석을 설계했다. 집 가까이에 봉분 없이 작은 묘비 하나만 세웟다. 너럭바위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대통령 노무현' 여섯 글자를 쓰고 새겼다. 비문을 대신한 1만 5천여 개의 국민참여 박석과 1천 년을 견디는 내후성 강판에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대통령 어록 한 구절을 새겼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c*******9 2017.06.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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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봉하를 추억하다
"노무현과 봉하를 추억하다" 내용보기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면 안타깝고 뭔지 모를 부채의식을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학생들을 이끌고 답사를 하던 중에 감자기 들려온 황망한 소식에 일정을 접고 바로 학교로 달려왔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 이후 어떤 정신으로 지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막막하기만 했던 시간들이었다. 이 책은 ‘봉하 10년의 기록’이란 부제가 붙
"노무현과 봉하를 추억하다" 내용보기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면 안타깝고 뭔지 모를 부채의식을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학생들을 이끌고 답사를 하던 중에 감자기 들려온 황망한 소식에 일정을 접고 바로 학교로 달려왔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 이후 어떤 정신으로 지냈는지지금 생각해도 막막하기만 했던 시간들이었다.

 

이 책은 봉하 10년의 기록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데노무현 전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인 봉하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던 기록이다.

 

물론 후반부는 노 대통령이 떠난 봉하를 지키면 유업을 따르던 많은 이들의 노력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비서관이었던 김정호가 쓰고 엮은 퇴임 이후 10년의 마을 만들기의 기록인 것이다.

 

이 책에서 노 대통령의 서거 전후의 기록을 보면서새삼 10여년 전의 상황이 다시 그려졌던 것이다.

 

최근 보궐선거를 통해서 새롭게 국회의원이 된 저자의 뚝심과 역량이 현실 정치에서도 지속적으로 발휘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만간 다시 봉하마을을 방문하기를 기약하며....(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18.07.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