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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만이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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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문제. 전세계의 화약고. 오늘날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중동은 그야말로 국제뉴스를 하루라도 장식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항상 미국이 있었다. 중동문제의 시작은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약사와 독립(팔레스타인 점령?)에 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한 이후로 중동은 그야말로 전쟁터로 변해 버리고 유태인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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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문제. 전세계의 화약고. 오늘날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중동은 그야말로 국제뉴스를 하루라도 장식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항상 미국이 있었다. 중동문제의 시작은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약사와 독립(팔레스타인 점령?)에 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한 이후로 중동은 그야말로 전쟁터로 변해 버리고 유태인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편파적으로 옹호하면서 문제는 심각해져 갔다. 하지만 그들도 중동의 한 부분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인정해야 하며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하루 속히 그들과 타협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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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내용보기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유럽 국민국가의 이미지를 가진 고대 이스라엘은 발명되었다. 성서연구의 담론에 의해 팔레스타인 땅은 고대 이스라엘인의 땅이라고 간주되며 그 땅에서 행해지고 있는 모든 고고학적인 연구들은 이미 실제 역사라고 합의된, 그러나 근거가 없는 성서의 전승을 밝혀내기 위한 수단이다.   근대 성서연구는 성서연구가 생겨난 사회적, 정치적 맥락과 아주 밀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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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유럽 국민국가의 이미지를 가진 고대 이스라엘은 발명되었다. 성서연구의 담론에 의해 팔레스타인 땅은 고대 이스라엘인의 땅이라고 간주되며 그 땅에서 행해지고 있는 모든 고고학적인 연구들은 이미 실제 역사라고 합의된, 그러나 근거가 없는 성서의 전승을 밝혀내기 위한 수단이다.

 

근대 성서연구는 성서연구가 생겨난 사회적, 정치적 맥락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에서 말하듯이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이스라엘과 서양에게 양도되어 버렸다. 성서연구의 담론은 히브리 성서의 전승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존재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유럽과 서양 문명의 뿌리로서의 고대 이스라엘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는 20세기의 근대 이스라엘의 건국의 정당성의 사상적 근거를 마련해주는 시온주의와 맞닿아 있다. 고고학과 성서역사학의 결합은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철저히 무시하고 침묵시켜 버린다. 역사는 정치다. 성서비평은 오리엔탈리즘과 마찬가지로 유럽 식민주의 시대에 생겨났으며 유럽 식민주의와 복잡하게 얽혀있다. 성서연구는 오리엔탈리즘 담론의 한 부분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성서연구의 담론에 의해서 역사 없는 민족, 역사를 박탈당한 민족이 되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문화는 이스라엘인에 의해 대체될 수밖에 없는 저급하고 타락한 것에 불과하다. 이제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자신의 역사를 추구할 수 있는 자리를 가져야 한다. 이스라엘 역사의 한 부분이나 그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와 더불어 성서연구의 제약을 받지 않는 대안적인 위치를 가져야 한다. 자리 배치의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다.

 

폰 라트는 구약성서는 하나의 역사책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구약성서를 역사책으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럴 땐 히브리 성서의 구분법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특히 쿠트의 ‘새로운 지평’에서부터 연속되어 나타나는 주장들 즉, 구약성서의 이야기들의 고고학적 증거의 부재 - 이스라엘 민족이 외부에서부터 이주해 온 증거가 없다는 것과 다윗-솔로몬 왕국을 뒷받침해 줄만한 물질적인 증거가 없다는 - 의 문제 제기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고고학적으로 근거가 없으니 이를 없었던 일, 즉 허구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구약 성서의 이야기를 실재 역사로 보는 관점 자체가 틀린 것인지 한번 깊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 동의한다. 우리나라 또한 식민지 지배를 받고 식민지 사관에 의해 역사가 뒤틀려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역사가 그것을 기록하고 전하는 주체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객관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서연구도 그러한 식민주의 사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서양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기저에 이미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성서적 세계관에 무조건적으로 저항하는 것도 무리인 것 같다. 그리스도교가 그들의 역사와 문화의 바탕인데 그것을 부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들에겐 불가능한 요구이지 않을까? 그 역할은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제3세계의 비(非)그리스도인 학자들의 몫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 자신도 이야기했듯이 역사가는 편파적인 텍스트를 가지고 작업할 수밖에 없고, 편파적인 텍스트를 발생하게 된 맥락에 대응하여 또 하나의 편파적인 텍스트를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바램처럼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던 팔레스타인의 풍부한 문화유산이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역사의 담론의 하나로 드러날 수 있기를 바란다.

 

h********9 2012.06.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