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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은 가벼운 식사다. 먹는 것은 가벼울지 모르지만 식사에서 나타나는 의미와 의도는 매우 무겁다. 만찬은 단순히 식사 시간만이 아니다. 만찬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의미들은 식사 시간 밖의 ‘관계’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헨리 나우엔은 하나님, 나, 그리고 이웃의 관계로 설명한다. 우리는 만찬을 통해 드러난 신앙의 핵심들을 기억한다. 기억은 단순히 생각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재현’하는 것이다(p. 31). 교단을 초월해서 존경받았던 옥한음 목사님을 기억한다고 할 때 단순히 죽음 자체만 생각하는 것이 않는다. 목사님이 추구했던 가치, 삶, 태도 등을 기억하고 나도 그렇게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하 할까? 만찬은 대접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철저히 거절당하셨다. 오히려 거절당한 예수님은 거절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돌보셨다. 우리는 만찬을 통해 거절 당하셨지만 사람들을 섬기고 대접하는 예수님을 기억해야한다. 이러한 대접은 단순히 식사로 국한되지 않는다. 존 요더의 말대로 대접은 경제적 나눔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이웃들과 함께 실질적인 경제적 나눔을 통해 섬기는 것이다. 만찬을 통해 대접과 나눔의 삶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만찬은 식사다. 만찬의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살과 피다. 만찬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먹는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의 밥이 되어 주셨다. 이제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밥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먹고 예수님이 되어야 한다. 만찬은 누군가의 밥이 되기로 결단하는 헌신이다. 만찬은 용서다. 우리는 빵과 포도주를 먹으며 우리를 위해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한다. 십자가는 죄 용서의 절정이다. 만찬은 우리의 씻을 수 없는 죄가 용서받았음을 알려준다. 더 나아가 우리도 이웃을 용서하는 자로 십자가를 재현하게 된다. 만찬은 기쁨이다. 우리는 맛있는 만찬을 나누면서,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를 통해 천국을 경함한다. 먹는 것의 즐거움이 곧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더 이상 천국은 추상적인 곳이 아니라 구체적인 장소가 된다. 그곳은 날마다 기쁨의 잔치가 열리는 축제의 장소다. 우리는 만찬을 통해 천국을 기억하고 기대하게 된다. 만찬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여준다. 우리는 평범한 식사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하게 된다. 기억은 곧 삶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삶 속에서 기억을 재현하는 것은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만찬을 통해 예수님을 먹고 예수님으로 산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럽다. 그래서 존 밥티스티 멧츠는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을 “위험한 기억”(dangerous memory)라고 했다. 내게 잘못을 한 자들을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 어렵고 만만치 않다. 이 책은 예수님의 밥을 먹고 남들의 밥(?)이 되는 만찬의 진수를 보여준다. 감히 말하건대 누군가의 밥이 되겠다고 결심한다면 당신은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