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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젊은 작가의 참신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는 젊은 작가답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를 문학과 접목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주로 과학과 우주를 이야기 중간 중간에 끼워 넣었는데 이로 인해 신선하기도 했고 황당하기도 했다. 상상력이 잘 발휘된 부분은 실험정신이 잘 발휘되어 보기 좋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은 지나친 실험정신으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특이하고 신선해서 읽는데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이 책은 총 8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얼굴이 커졌다’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이 단편은 저격수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진짜 저격수가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 하겠다. 주인공의 직업은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저격수다. 즉 전문 킬러로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얻고 있다. 그 덕분에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일거리가 들어와 주인공은 따로 돈 걱정은 안하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주인공은 현재 31살의 나이로 결혼할 생각도 은퇴할 생각도 없는 상태다. 주인공은 저격수의 수칙만 잘 지켜나간다면 몇 년간은 은퇴 걱정 없이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는데 이때 생각보다 커진 얼굴을 보고 몹시 당황하게 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것은 ‘얼굴이 두꺼운 것을 프로와 연결 지어 이야기’한 부분이다. 저자는 프로가 된다는 것은 곧 얼굴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분야를 막론하고 어느 정도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얼굴이 다 그 모양이라고 못 박아 이야기한다. 그리곤 ‘도대체 무슨 치열한 짓을 하기에 얼굴이 그렇게 두꺼워지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으며 은근히 프로들을 비판하고 있다. 난 저자의 이런 비판이 옳다고 생각한다. 프로 정치인들이나 프로 연예인들을 보면서 나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얼굴이 두껍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죄를 짓고도 뻔뻔스럽게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난 ‘저렇게 얼굴이 두꺼워야 정치도 하고 연예인 생활도 할 수 있는 것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내가 몸담고 있는 블로그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을 겪어서 다시금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얼굴이 두껍기만 한 자들은 자신들이 노련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하다. 우매한 옛날 사람들이나 얼굴이 두꺼운 자들을 인정했지 똑똑한 현대 사람들은 결코 그런 자들을 프로라 인정하지 않는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걸 인식조차 못한다면 그건 프로가 아니라 낯이 두꺼운 원숭이일 뿐이다. 남들이 멍청하게 생각해 자신을 바라보고 웃는 걸 가지고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해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바로 원숭이다. 얼굴이 두껍기만 한 자들은 이를 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난 내 분야에서 프로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저런 식의 프로는 되고 싶지 않다. 잘못을 했어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죄를 짓고도 자숙하지 않는 그런 프로는 내가 추구하는 프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가 되려면 포커페이스도 필요하지만 난 부끄러움을 아는 프로가 되고 싶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엄마의 설명력’이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이 단편은 인종차별로 이어지는 지나친 한국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참신함이 묻어나는 작품인데 무거운 주제를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줘 저자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묵희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묵희는 어렸을 때 한국인 여자 과학자에게 입양된 인도계 여자다. 어린 시절 호기심 많던 묵희는 엄마에게 여러 가지 궁금한 걸 물어보지만 묵희의 엄마는 진실을 말해주기는커녕 순진한 주인공을 거짓말로 속인다. 이런 엄마의 거짓말을 엄마가 사고로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데 집요한 묵희는 서서히 엄마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진실을 요구하게 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것은 저자가 묵희의 입을 빌려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인종차별에 관해 지적’한 부분이다. 묵희는 엄마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할 무렵 엄마에게 진실을 바로 요구하려 했으나 개인적인 일로 바빠서 그러지 못했다. 그 개인적인 일은 바로 인종차별로 인한 아이들과의 다툼이었는데 검둥이로 놀림을 받는 것이 싫었던 묵희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좀 험악하게 싸움질을 하고 다녔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네놈의 한민족은 왜 꼭 그런 순간 민족주의자가 되는지 모르겠다만, 하나가 나한테 얻어맞으면 옆에 있는 것들은 외국인한테 동포가 맞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떼로 덤비더라고.”라는 말을 묵희의 입을 빌려 한국인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이에 대해 난 공감하는 바가 크다. 저자의 이 지적은 부끄럽지만 사실인 한국인이 반드시 고쳐야 할 문제점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에게 그리고 근현대에는 서양인들에게 심한 인종차별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인들은 은근히 동남아 계통이나 흑인들을 차별하는 안 좋은 버릇이 생겼다. 다국적 가정이 많아지면서 이와 같은 현상은 서서히 줄어 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인종차별은 남아있고 이로 인해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과거 외국과 단절하고 살았었던 시절에는 피부색이 다른 인종을 신기하는 생각했을지언정 무시하거나 차별하진 않았었다. 헌데 일본을 비롯해 서양인들에게 안 좋은 것을 배운 한국인들은 자신이 당한 차별을 고스란히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 사람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 우리는 이점을 바로 인식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쳐나가야 한다. 점점 더 다국적 가정이 늘어날 것이고 한국이 선진국이 되어 갈 텐데 이런 문제로 인해 남들의 지탄을 받아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다. 말로만 선진국을 지향한다고 외칠 것이 아니라 이런 근본적인 문제부터 제대로 해결한 후에 선진국이 되길 희망했으면 좋겠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마리오의 침대’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이 단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까지 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단편도 역시 저자의 색깔을 잘 보여주는 작품인데 저자가 과학과 우주에 관심이 얼마나 많은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 단편의 주인공은 마리오와 마리아 로사 부부다. 이들은 다섯 살 때 처음 만났는데 그때 마리오는 마리아 로사에게 한 눈에 반했지만 마리아 로사는 그저 배만 고팠을 뿐이다. 둘이 서로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은 그로부터 15년 후로 둘 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마리오와 마리아 로사는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둘의 결혼생활은 마리아 로사로 인해 위기를 맞게 된다. 둘 사이를 위기에 빠뜨린 것은 마리아 로사의 코골이였는데 이로 인해 마리오는 밤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크나큰 고통을 받게 된다. 배려심이 깊었던 마리오는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부인이 상처받을까봐 “그 예쁜 코가 밤새 노래를 불렀어, 그 예쁜 코가 밤새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려주었거든.”라고 에둘러서 말했지만 마리아 로사는 그럴 리가 없다며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마리오는 더 이상 얘기하면 마리아 로사가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봐 침묵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마리오는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나날이 수척해진다. 난 이 장면을 보면서 마리오의 인내심과 배려심에 혀를 내둘렀다. 정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마리오였다면 아무리 부인을 사랑하더라도 코골이를 지적해 나의 평온함을 찾았을 것이다. 마리오의 부인인 마리오 로사는 코골이를 하는 것도 모자라 마리오를 안고 자기까지 했는데 내가 마리오의 입장이었다면 부인을 병원부터 데려갔지 침대 사이즈를 크게 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진 않았을 것이다. 마리오의 부인에 대한 배려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헌신차원에선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희생시켜가면서 부인을 위해 불만족스러운 인생을 산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개인의 차원에선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마리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것 같다. 자신이 수척해지고 몸이 나빠지면 부인인 마리아 로사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그리고 마리아 로사가 코고는 건 질병이기 때문에 빨리 고쳤어야지 방관했던 것도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둘 다에게 좋은 것은 병원으로 마리아 로사를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해 고쳐 둘 모두에게 만족스런 수면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낭만적인 삶만을 추구하다 자신의 건강만 잃은 마리오의 태도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코골이는 질병이다. 몸에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같이 자는 사람에겐 크나큰 고통을 주는 심각한 병이다. 상대방을 사랑하고 배려한다는 이류로 이를 방치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자가 코골이를 한다면 지켜볼 것이 아니라 병원부터 데려가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그냥 자신이 참고 사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병원에 데려가 병을 고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배우자의 코골이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이들은 이를 바로 인식해 현명하게 대처했으면 좋겠다. 젊은 작가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도 아직 젊고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하지 않다보니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어떻게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시작은 좋아 보인다. 그래서 난 저자의 다음 작품이 어떨지 상당히 기대가 된다. 이번 작품들에서는 참신함이 돋보였지만 앞으로의 작품에선 참신함보단 완성도에 좀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젊은 작가의 참신함을 맛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바이다. 인상적인 글귀 “세상은 빨리 변하고 조직은 늘 변화를 놓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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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작가가 풀어내는 참신하고 독창적인 소설...>
< 쟝르에 얽매임 없는 유쾌한 상상, SF를 넘어 감성으로...>
'누군가를 만났어'도 황량한 사막에 누워 바라보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처럼 대단한 감각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다투고 돌아선 연인에게 보내는 애틋한 편지 속에 묻어나는 고고심령학자의 경험은 마치 꽁트처럼 마지막에서 화려한 물음을 던진다. 심령현상을 관찰하여 역사연구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이어준다는 고고심령학도 생경스럽지만, 중일전쟁 때의 불발탄을 해체하려온 일본발굴단과 공룡화석을 찾아나선 중국발굴단이 찾는 대상도 의미가 깊다. 각 팀 모두 타인의 안목을 부인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땅을 재단하느라 바쁜 모습이 저 우주를 보면서 생각해보면 그저 어리석기 그지없는 고집들임을... 주인공이 울림에 공명하여 일억육천만년전 지층에서 찾아낸 미래는 'Koi... Mil Gaya' 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하늘 저너머를 멍하니 바라보게 한다. 불현듯 이현세의 아마게돈 만화가 떠오른다.
표제작인 '안녕, 인공존재'는 생각의 독창성에 요즘 말로 "깜놀"이다. 자살해버린 옛애인이 만들어 남긴 돌멩이 같은 '존재성 제품' 하나. 우주비행사인 주인공은 "Dubito™ 회로라는 회의(懷疑) 회로를 통해 데카르트의 존재 추출법을 반복 시행하여 순도 높은 결정 형태의 존재, Cogito™를 추출해 낸다"고 하는 이 '인공 존재'의 진정한 존재의미를 알아내지 못한 채 첫 우주비행에서 미지의 세계로 '조약'이라 이름 붙여진 '존재'을 떠나보낸다. 이 과정을 잠깐 읽어보면 작가가 바라보는 존재의 의미를 잠깐 엿볼 수 있다. "자, 그럼 우리가 지금 우주로 떠나보내려는 물건은 뭐죠?"
'매뉴얼'도 생각의 자유로움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감탄하게된다. 글을 읽지 못하는 꼬맹이가 휴대폰 매뉴얼(삼성 애니콜 SCH-X850)을 보며 읊조리는 책읽기의 내용이, 타슈겐트에 전해오는 오래된 양피지 두루마리가 전하는 미래의 예언과 연결되는 플롯인데 역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생각할 여지가 많다. 뭔가를 다른 방식과 형태로 읽고 생각하는 사색의 공간이 빼곡 고개를 내민다.
'얼굴이 커졌다'는 스나이퍼(저격수)의 이야기인데, 사랑이 얽히면서 얼굴이 커져버린다. 이 커져버린 얼굴이 의미하는 메타포는 무엇일까? 행복? 사랑? 자신의 삶에 열중하는 프로의 흔적? 작가가 뭘 그렇게 깊이있는 복선을 넣었겠냐만 읽는 이에 따라 생각의 여지를 남긴 것은 이 단편이 이 책에 있는 의미일 것이다.
'엄마의 설명력'은 젊은 작가의 상상력을 마음껏 엿볼 수있는 작품이다. 지동설이 진리인 세상에 느닷없이 천동설을 지지하는 천문학자 엄마가 비밀스럽게 밝히는 음모론과 함께 피부색이 다른 딸과의 이야기가 교묘하게 연결되는 전개가 쟝르문학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혼혈 입양아의 눈을 통해 시도하는 반전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본으로하는 배 작가 단편소설의 특징이라고 과히 말할 수 있겠다.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은 마치 SF 애니메이션 같은 단편이다. 외계인과의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로봇의 변신 합체를 다루는 줄거리인데, 최후의 승리를 위해 52만대 합체까지 하는데, 상대는 단 한명. 여기까지는 분명 3류 만화 수준인데 이 다음부터가 인간의 오만과 무지가 버물려지는 암시를 뿌려놓는다. 위협이 될만한 소지가 있으면 문제가 생기기 전에 먼저 위협요소를 제거해 버린다는 예방공격은 어째 강한 데쟈뷰의 내음이 나지 않는가?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전제군주제를 이상으로 하였다던가? 이런 권력의 속성을 내포한 이 소설에서 나는 구약성서 '욥기'에 하느님의 적대자로 혼돈과 무질서의 상징이며, 모든 교만한 자들의 왕으로 그려지는 바다동물 '리바이어던'을 생각한다.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홉스가 반대의 개념으로 차용한 하나님의 대리자인가 아니면 원래의 개념인 적대자인가? 무질서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통치자에게 절대권력이 집중되어지는 사회 질서에 대한 은근한 냉소가 아닐련지...
< 시공간을 초월한 우주로 나아가는 진취의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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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작가만이 쓸 수 있는글. 배명훈작가이기에 가능한 글. 『타워』의 배명훈 작가에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났다. 다른 듯 이어지는 『타워』를 읽으면서 배작가의 연출력에 놀랐었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 그가 『안녕, 인공존재』라는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배명훈작가이기에 가능한 이야기군. 이 책 정말. 마구 마구 빨려들어간다. 결론은 이게 뭐지..? 여덟편의 단편이 하나같이 읽는이를 폭풍속으로 빨아들이듯이 빨아들인다. 그리곤 어...? 그렇게 여덟번을 휘청거리게 만든다. 어지럽다.
크레인 크레인 / 누군가를 만났어 / 안녕, 인공존재! / 매뉴얼 / 얼굴이 커졌다 / 엄마의 설명력 / 변신합체 리바이어던 / 마리오의 침대
여덟편의 단편 중 단 한편도 일상적이고 누구에게나 있을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은 없다. 중국 오지에 버티고 있는 크레인신의 선물, 거대한 기중기, 스토커인듯 하다가 귀신인지 외계인인지 알수없는 누군가를 만나는 사람, 보기엔 단지 돌맹이일 뿐임에도 열심히 전원을 연결하는 사람들, 외계언어일수도 있는 핸드폰 매뉴얼을 읽는 조카와 조카가 들려주는 이야기, 킬러생활을 그만둬야할것같은 얼굴이 커졌다, 거짓으로 일관되어온 엄마와 그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아이, 얼마만큼 더 합체할수 있을까? 그리고 그 로봇속 풍경을 그려낸 리바이어던과 메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돌고 도는 마리오의 침대.
'크레인 크레인'과 '누군가를 만났어'를 읽으면서 배작가가 이번엔 SF적 신화를 만들어내나 싶었다. 하지만, 얼굴이 커졌다에서 그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다. 뭘 이야기하는거지? 그렇게 읽으면서 익숙해질무렵, 마리오의 침대가 나온다.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까? 마리오의 침대를 읽으면서 주인공이 애잔하고 그의 사랑이 따뜻함을 느낀다. 다행이다고 느낀다. 나도 모르게 배명훈작가에 인물들에게 동질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냥 이야기해버리면 될것을,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고, 부인의 잠버릇을 이기기위해 더크고 큰 침대를 원하는 남편. 유머스럽다. 모든 이야기가 유머스럽다. 여덟편의 이야기가 모두 존재를 이야기함에도 그 존재가 거북하거나 어렵지가 않다. 그저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다. 어떤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도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이유는 배명훈이라는 이름때문일 것이다.
이 짧은 단편들이 다른 책에 실려있었던 글이라고 하니, 한권으로 엮어서 읽지않고, 다른곳에서 읽었다면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여졌을지 궁금하다. 배명훈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글들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확실히 배명훈작가는 기발한 상상력의 소유자이다. 책뒤표지에 나와있는 말처럼, 그는 우주에서 떨어진 상상력의 소유자임에 틀림이없다. 그 우주적 상상력을 시원한 차한잔 마시면서 만끽할 수 있는 독자라는 나의 신분이 참 행복하다. 머리쓰지 않고, 읽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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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로 팬이 되어버린 배명훈의 단편 소설집이다. 젊은작가상을 받은 <안녕, 인공존재!>를 비롯 총 8편의 소설이 들어 있다. <타워>만큼 강력한 재미는 없다. 약간 덜 현실적이면서도 더 SF적이라 그런 것 같다. 내가 SF적 상상력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과학적 지능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배명훈의 상상력은 재미있다. 첫작품 <크레인 크레인>은 엄청나게 높은 크레인으로 버스를 들어올리는 중국 산골짜기의 어느 곳 이야기다. '타워'도 그랬지만 그는 높이 높이 올라가는 어떤 것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것 같다. 끝간데 없이 올라가던 크레인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소설이다. <누군가를 만났어>는 공룡화석 발굴단과 심령발굴단과 폭탄제거팀이 같은 곳에서 만나 뒤엉켜 발굴하는 이야기인데, 어쩐지 끝으로 가면 짠한 느낌이 있다. <안녕, 인공존재!>는 젊은작가상 작품집에서 봤을 때도 발군이라 느꼈고, 다시 읽어도 좋다. 굉장히 철학적이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그 철학보다 결혼한 남녀의 우정도 사랑도 아닌 오묘한 관계에 대한 툭 던지고 지나가는 듯한 묘사가 더 좋았지만. <매뉴얼>은 핸드폰 매뉴얼이 지구 예언서라는 발상이 독특한 소설. 한때 핸드폰 매뉴얼 카피 쓰는 걸로 가욋돈을 벌었던 나에게는 특별히 더 가깝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내가 썼던 매뉴얼도 혹시? ㅋㅋㅋ 중간에 끼어 있는 미래 예언에 관한 부분이 현실의 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느낌으로 읽었다. <얼굴이 커졌다>는 <쉬리>의 구조를 차용한 킬러 이야기다.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하면 얼굴이 커진다는 대목에서 참으로 그럴 듯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 들고 성공하여 거만해진 사람들이 목과 얼굴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살찌는 걸 이런 식으로 표현했나 싶어서 많이 웃었다. <엄마의 설명력>은 다 읽고도 이해가 안되서 뒤쪽의 비평을 보고 다시 읽어봤다. 우리 사회의 약자가 불이익을 받을 때 '그게 니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훨씬 더 고귀한 존재라서 그렇다'고 해주는 엄마의 이야기가 주제라니. 비평을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은 나에게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읽혔다. 299명의 조종사, 악마가 아니라 천사에 가까웠다, 피가 났다는 부분들이. 뭐 순전히 내 망상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그렇게 읽혔다. <마리오의 침대>는 깜찍한 이야기. 아내의 달라붙는 잠버릇 때문에 수십년 고생하던 남편이 낸 해결책은 귀엽다. 아휴. 이런 남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이해할 수 없어서 다시 읽어본 작품도 2~3개가 되지만, 어쨌든 배명훈의 상상력은 놀랍다. 그래도 SF팬이 아닌 일반 한국소설 팬으로서는, 그가 다음에 내는 작품이 <안녕, 인공존재>보다는 <타워>에 가까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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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하우스에서 출판한 안녕, 인공존재가 도착한날 문동에서 출판한 책을 꺼내들어 두책을 나란히 놓고 <안녕, 인공존재!>를 읽기 시작했다. 만약 북하우스의 책을 받아보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는 문동에서 출판한 책은 빨리 읽어야 할 책에 밀려 천천히 읽었을것이다. 우선 배명훈작가도 너무 생소했기에 그의 이력을 눈여겨 보았다. 2005년 <스마트D>로 과학기술창작문예단편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2009년도에는 연작소설집 <타워>를 출간한 사실을 확인할수 있었다. 과학기술창작문예단편?에 눈이 잠시 고정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 과학기술창작문예에 당선된것이 당연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책에선 우주에 관련된 신선한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종합비타민이라고 말하고 싶다. 배명훈작가의 단편소설 8편의 이야기를 만나볼수 있는데, <크레인 크레인><누군가를 만났어><안녕, 인공존재!><메뉴얼><얼굴이 커졌다><엄마의 설명력><변신합체 리바이어던><마리오의 침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마치 우리몸에 필요한 종합비타민을 섭취하는것처럼 여러가지의 웃음과 상상력을 만날수 있게 해준다. 오랜만의 천명관작가의 장편소설 <고래>처럼 눈을 책에서 떼기 힘들정도로 흡입력이 있는 책이였다. 젊은 이야기꾼이라는 문구가 어색하지 않았다.
<크레인 크레인> 나는 이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크레인 크레인이라고 말할것이다. 2009년에 집필하고 이 책에 처음 발표한다는 크레인 크레인은 정말 기발한 창세설화를 만날수 있다. 남자는 같은반 사설 비행기학교에 만난 은경이에게 아내와는 다른 사랑을 느끼게된다. 그는 사랑이 두 개로 분할 될수 있다는 사실이 즉, 은경에게서는 가슴을 저미는 애틈함이 묻어나는 사랑을 느끼고, 아내에게서는 오년동안 한결같이 키워온 행복이 진심으로 우려나오는 사랑을 느끼게된다. 그렇게 단순한 사랑도 두개일수 있다는걸 그는 깨닫게 되는데 어느날 은경은 비행기학교를 그만두고 중국으로 출국한다. 집안의 가업을 잇기위한 일이 참으로 엉뚱하게 일종의 무당이라는것인데 책을 읽다보면 참으로 기발한 이야기로 책을 덮을수 없게 만든다. 남자는 아내에게 중국으로 출장을 간다는 핑계로 은경이 있는 중국으로 건너간다.거기서 은경이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가업이라는것이 일종의 신내림인데 그남자가 보기엔 중장비 기사..즉 크레인을 이용해 고립된 마을사람들을 아랫마을과 윗마을을 오가는 버스를 옮겨주는 일이였다. 은경은 남자에게 창세설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 요 쪼그만 동네에 별게 다 있다니깐요. 태초에 있잖아요. 태초에 신의 크레인이 있었대요. 이름이 무려 치쭝션이에요. 기중신. 기중신께서 지상에 내려오셨을 때 땅은 아직 없고 바다만 있었대요. 신의 크레인께서 몸소 갈고리를 뻗어 바다속에 잠겨있던 땅을 건져 올리셨는데 그게 바로 세상의 시작이었어요. 그런데 땅이 너무 무거워서 한 갈고리에 걸어올릴 수가 없었대요. 그래서 여러 군데를 걸어 올리셨는데, 그곳만 삐죽하게 튀어 나와서 산이 되고 산맥이 됐대요." p29
안녕 인공존재보다 슬펐던 부분은 은경은 스스로 선택한 일, 즉 신내림을 이어가는 무녀 집안의 계보. 엄마, 언니, 은경이, 그리고 은경이네 딸..즉 자신의 가업을 이어가기위해 남자와 관계를 맺는다. 남자는 그 사실을 깨닫고 내 뱉는 문장에서 내가슴이 쿵~하는 아픔을 나는 느껴야했다. 슬펐다. 남자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것 같았다.
'은경이는 내가 아니라 딸이 필요한 거였구나. 돌아갈 생각, 처음부터 없었구나!'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움직임이 멈추자 상처가 페로 파고 들었다. 숨을 쉴수가 없었다. 그게 네 방식이었구나. 크레인의 뜻이 아니라 네 뜻이었구나.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에 여기든, 너는 결국 그런식으로 진짜로 성스러운 사람이 돼가고 있구나. 내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도록 은경이는 온전히 하나가 되어갔다. 은경이가 완전해지는 것이 나에게는 상처였다. 나는 아직도 불안전했으니까. 누군가 나와 함께 불완전하게 남아주었으면(중략) 은경이가 다시 몸을 조그맣게 떨기 시작했다. 상처가 심장까지 깊게 침투해왔다. 나는 몸속 깊숙이 은경이에게, 불안한 내 사랑을 모두 쏟아냈다. 상처가 폐를 쥐어짰다(p37~38)
은경이의 잔인한 사랑을 엿볼수 있는 글귀였다. 남자를 사랑햇지만 그녀에게는 그 남자보다 자신의 가업을 이어줄 딸이 필요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된다. 은경은 결국 딸을 낳았고, 그는 그곳에 남아 궁핍한 삶으로 세상을 살다 죽는다. 그러나 영원히 은경의 곁을 떠나진 않았다. 창세설화를 통한 기중신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수 있고 맘껏 웃어보기도, 한편으론 슬픔이 스며들기도 했다.
<안녕, 인공존재!>는 부재를 통한 존재감을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로 느껴졌다. 신우정은 죽음을 통해 첫사랑 이경수에게 신제품 조약돌을 유작으로 남긴다. 기능성제품이 아닌 존재하는 제품인데 신우정의 개발품은 늘 입출력이 없는 기계등 아주 기발한 제품을 만들었고 히트를 시켰다. 그런 그녀가 자살을 한다. 유서도 없이 말이다. 이경수는 인공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설명서등을 읽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좀처럼 존재를 증명할수 없었다. 그는 결국 우주왕복선을 탈때 그 조약돌을 가지고가 우주로 내보낸다. 존재는 빠른 속도로 지구 반대편 우주로 날아갔을때 그는 깨닫게 된다.
존재를 우주로 떠나본줄 알았는데, 존재의 남은 부분이 내 안으로 깊이 더 깊이 파고들어왔다. 예상한 대로 존재가 머물다 사라진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이 너무 커서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러면 증명된 거 아닌가. 이렇게 큰 구멍이 났는데." "바보. 그 구멍은 또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보여줄래? 니 존재 안에 난 구멍인데." "그래? 그럼 내 존재가 이 구멍보다 더 크단 말이야?" 내안에 들어온 신우정에게 말했다.p127
<메뉴얼>는 책을 읽지도 못하면서 핸드폰 메뉴얼을 펼쳐들고, 메뉴얼의 내용과 유사성있게 천재적 창작재능을 보이는 조카와 이모이야기이다. 신선한 소재로 소설을 흥미롭게하고 있으며 <얼굴이 커졌다>는 은경이라는 여자킬러와 남자킬러 이야기로 유쾌하게 이야기를 한층 웃음을 선사한다. <엄마의 설명력>을 통해서는 혼열과 입양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작가는 소설로서 독자에게 메세지를 전달한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참 마음이 따뜻함을 느껴볼수 있었던 소설이였다. 무겁지 않게 나는 가볍게 읽었는데 엄마의 엉뚱함이 참 유쾌했고, 한편으론 엄마의 깊은 배려와 사랑을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변신합체 리바이어던>도 참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의 창작물을 만나볼수 있었고, 무엇보다 <마리오의 침대>는 오랜만에 어른이 읽을수 있는 동화같은 소설이라서 마지막까지 여러가지의 느낌과 웃음을 만나볼수 있었다. 마치 종합비타민을 먹는 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덕분에 배명훈작가의 <타워>가 참 궁굼해졌다. 그 책은 어떤 내용일지? 제 1순위로 그의 책을 구매리스트에 올려놓았다. 그 만큼 배명훈작가의 단편소설들은 무지개색깔처럼 여러 색깔을 지녔고, 종합비타민처럼..종합선물셋트처럼 제 각기 다른 느낌의 단편 소설이였다. 장편소설이나 책읽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들이 정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것처럼 그런 갈증을 해소해주는.. 지루함을 주지 않을 책으로써 권장해보면 좋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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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외로움을 탔던 나는 줄곧 생각했었다. 내가 죽으면 도데체 이 세상에 무엇이 남을까. 딱히 한마디로 함축할 수 없는 '존재감'이라는 그 이질적인 문제는 계속 나를 괴롭혀왔다. '존재'. 누군가 알아줘야 인정되는 그 존재. 마치 해답없는 문제처럼 사춘기때는 밤낯을 고민할 정도로 머리 싸매고 생각했는데 답은 결국 안 나왔다. 결국 난 어른이 되고, 점점 바라는 것이 없어지고 고민이 비례적으로 늘어남으로써 무엇 하나 고민하고 싶지 않는 나이가 되었을때 비로소 나는 그 풀리지 않는 존재감이라는 문제의 족쇄에서 어렴풋이 벗어날 수 있던 것 같다. 그래, 벗어났다고 쓰고 잊어버렸다고 읽는다.
안녕, 인공 존재. 안녕? 인공 존재? 안녕! 인공 존재! 지극히 이질적이지만 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말이다. 존재? 아.. 무엇이었더라. 우연히 본 이 책의 소개글은 글쎄, 기억날 듯 말 듯한 저편에서 오직 익숙함이 끌어내는 이끌림으로 이 책이 뭔책인가 하고 한참을 쳐다봤었다. 존재? 인공 존재? 그런것도 있었나?하는 호기심과 함께. 그러고 있기를 몇분, 아!하고 영구 박터지는 소리를 내며 히죽거렸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해답이구나. 그래, 존재는 어떻게 없어지고 생기는 것일까. 그리고 난, 무턱대고 본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존재란 없어지고서 빈 자리가 생겼을때 비로소 알게되는 허무함같은 것 이라고. 누군가 죽거나 내 곁을 떠났을 때 날 시름시름 앓게도, 펑펑 울게도, 멍하니 넋을 놓게도 하는 그것이 바로 존재감이었다. 문득 떠올려보니 존재감은 정말 외롭고 슬픈 존재구나 싶다. 있을때는 천시 당하다가 이미 곁을 떠났을 때야 인정을 받다니. 이래서 존재와 후회는 형제뻘이겠군, 싶었다.
어렸을 때, 누구였더라. 내가 알던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반 고흐를 좋아하던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너무 부질없지 않니, 죽어서야 내가 인정을 받는 다는 거. 내가 살고 있을때 누리지 못한건데 죽어서 인정을 받아봐야 무슨 소용이겠니. 그의 인생 페이지는 이미 끝났는데. 하고. 어린 마음에, 그리고 지금도 그 말이 왠지 모르게 서글펐다. 지금 생각해보니 존재감도 그 말과 굉장히 일치하는 점이 많다. 없어져서 인정 받아야 무슨 소용일까.. 인공 존재는 우주에 가서 생각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했고 존재했기 때문에 생각했던 존재는 생각조차 하지 않아 존재가 없어지는 '공백'의 치명타로 존재 폭발을 한다. 존재의 끝을 보았다. 존재란 사라져도 사라진 것이 아닌 것. 그것을 말한 것이라면 난 이 책을 정확히 이해한 것 같다.
모든 이야기는 지구로 시작해 우주로 끝났다. 철학적이지만 우리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은 어쩌면 인공 존재 같은 것 일지도 모르겠다. 읽고 나서야 끊임없이 우리에게 존재감을 불어넣는. 엉뚱하지만 속 깊은 책, 안녕, 인공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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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고 조미료 이야기인줄 알고 책을 읽어나갔다.
내용은 조미료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독특한 저자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난해하면서도 역시나 특이한 8편의 단편들이
물없이 고추장을 한 숟가락 떠 먹은 듯한 얼얼함과 통증을 주는 소설이었다.
처음보는 작가의 발칙한 상상들이 곳곳에 숨어있는 이 책은
특히 제목의 '안녕, 인공존재'라는 소설에서 빛을 발한다.
돌멩이같은 것에 단지 전선이 이어져 있는 알 수 없는 물체를
순도 높은 존재 결정체라며 데카르트의 방버론적 회의까지 들먹이며 설명해대는
그 난해함에 그리고 감각기관의 정확성을 하나씩 의심하라는 공법에
예전에 점심먹고 어쩔수없이 맞이한 수학수업처럼 어지러움과 울렁증을 느낄 수 있었다.
기능성 상품이 아니라 오로지 존재성으로만 승부한다는 존재성 상품,
전자기기 주제에 작동여부도 의심을 자아내며 출력을 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그 물건을 바라보는 사람의 존재마저도
한순간에 무장해체 시켜버리는 애물단지인 인공존재
그냥 보기에는 무존재의 대표같이 보이는데도 엄연히 자신은 순도높은 존재라고 박박우기며 이해를 촉구하며
유일한 출력장치는 인공존재를 바라보는 자신이라고 여전히 주문같은 몽롱한 말을 해대는,
알려고 들수록 정신이 혼미해지는 압도적인 인공존재로 읽는내내 멀미를 느꼈다.
다행히 멀미가 극에 달할 무렵 주인공은 뜬금없지만 우주선을 타고 친구의 유작 인공존재를 우주에 배출하고 온다.
그렇게 그저 설명서를 바라보는 것만해도 단숨에 철학자가 되게 만들어버리는 순수존재는 우주에 홀로 남게 되고
그동안의 무존재가 미안해서인지 혼자 우주에 남게되자 존재폭발로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게 된다.
존재는 무존재라는 것이 있기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던가?
특별한 관리가 따로 필요없고 단지 먼지가 앉으면 닦아주는 돌멩이의 존재감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렵다.
인공존재를 알리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킨 친구,
공기처럼 존재감없이 가만히 있다가 자신의 존재가 잊혀져갈 무렵에 폭발로 사라져가며 존재를 스스로 증명시킨
인공존재는 아이러니하지만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처음보는 작가의 난해한 소설의 충격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묘한 성취감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신인작가는 자신도 비슷한 방식으로 존재폭발을 하는 것 같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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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인공존재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어 한숨에 읽을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더운 날씨탓도 있지만 크레인신에 대한 엉뚱한 이야기 보다는 비행자격증을 배우다가 알게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점 이 나를 화나게 했다. 잘못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의심을 사겠지만 화나는 것은 바로 불륜이었다. 이것 도 엄연히 따지면 불륜....세상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 불륜....진짜 화가난다. 하지만 다소 내용은 엉뚱하면서도 왜 이런내용일까 심도있게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벌을 받았지만 그것으로 내마음 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총 8편의 단편으로 되어있지만 무엇하나 특별하지 않은 내용이 없다. 영매의 등장과 엉뚱한 물건을 남 기고 죽은 연구원의 의뢰를 받고 무엇을 하는 물건인가 탐구하는 모습이 좀 이상했다. 일반 독자들이 한번에 이해할수 있을까. 각자마다 가진 생각이 다르니 정말 재미있다 멋진다 다시한번 읽고싶다.라고 말할수는 없을것 같다. 왜냐 난 안녕 인공존재 부분을 두번 읽었지만 엉뚱하다라는 생각이 짙게 베어있 기 때문이다.
한편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이라는 단편은 한마디로 웃겼다. 뒷편에 보면 웃기는 작품으로 묘사했는데 나도 이의없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모든 작품이 상상을 초월하는 재미를 주고 있지만 화 도 나게 했지만 무한한 느낌을 준것은 사실이다. 저자의 특출난 느낌이라고 할까. 표지에서부터 우주 공간을 연상시키는 기이한 문양이 내눈을 흐뜨리기도 했다.
표지에 왜 의심한다 존재한다 라는 문구가 있을까. 삶의 유연성에서 저자는 모티브를 찾은 것일까. 일상적이지 않으면서도 일상적인 이야기 그러면서도 독자들에게 어필할수 있는 이야기. 작가들의 특유법으로 전체적인 내용이 흐름이 진행되지만 인공존재는 그야말로 우리내의 특이하면서도 엉뚱 한 모습을 찾아서 그린것 같아서 집중도 높은 작품으로 평하고 싶다.
다음번 작품으로 저자가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가 관심의 집중을 받을것 같다. 이왕이면 판타지와 추리 그리고 우주공간이 합체된 다양한 모습을 보면 좋겠다. 기이한 현상이면 더 좋고말이다. 문학평론가도 저자를 신뢰한다니 어느 독자가 신뢰하지 않을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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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배명훈 씨의 글은 어딘가 모르게 웃음을 짓게 한다. 단순히 시니컬한 웃음이라고 말하기엔 뭔지 모르게 따스하고, 완전히 다정다감이라고 말하기엔 어쩐지 현실적인 그런 웃음을 말이다. 그래서 난 내 상황이 복잡하고 정신없을 때 그의 글을 보면 행복해진다. 처음 그의 소설 『타워』를 봤을 땐, 뭔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뚜렷했고 그것을 은유적인 혹은 풍자적인 방식으로 잘 전달해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권력의 이동 같은 내용은 우리가 뻔히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는 것들을 까발려주기에 너무 속 시원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안녕, 인공존재!』는 ‘타워’ 와 같은 어떤 공간에서 일어나는 연작소설은 아니여서 그런지 어떤 주제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물론 각각의 단편이 실린 시기도 달랐을 테고, 실린 곳도 다르고, 가장 결정적으로 집필한 시기가 다르니 일관된 주제를 기대하는 것이 더 이상한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처음에 내가 받은 점은 그랬다.
하지만 각각의 단편들이 나름대로의 의미와 상징을 함의하는 것 같아 곰곰히 읽어보게 한다. 인간이든 무엇이든 존재의 의미를 깊게 사유하기도 하고, 아니면 우리의 바쁜 상황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기도 하고, 얼핏 딱딱해보이는 외양 속에 따스한 내면을 담고 사물을 바라보기도 하는 게 꽤 읽을만 하다. 어쨌든 그의 책이라면 나는 이미 중독이 되어버려서 계속 찾아 읽어볼 작정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각 단편이 어떤 책에 발표되었는지 소개도 되어 있는데 과거에 내가 그의 단편을 봤던 적이 있었는지 다시금 확인해보게 된다. 단편집을 읽을 때는 재미있어도 “와~ 재미있다.”하고 말지, 작가 이름까지 기억하진 않았기에 아마 그의 이름을 놓친 적이 몇 번 될 듯도 싶다. 너무 심각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주책맞지도 않게 사소한 내용을 아주 진지하게 비틀어버리는 그의 능력이 있기에 아마 사람들은 그의 글을 읽지 않을까 싶다.
다른 것은 몰라도 소설 뒷면에 있는 그의 「출간사유서」만 봐도 그가 여느 작가들과는 다른 종족임이 드러난다. 그가 책을 내고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을 만행이라 부르면서 다른 사람들의 탓을 하며 그 공을 그들에게 돌리는 것만 봐도 너무 유쾌한 것이 마음에 든다. 이 세상은 심각해야 할 것에 심각하지 않고, 심각하지 말아야 할 것에 열을 올리며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그럴 때 그의 소설을 읽으면 그 막힌 마음을 다소나마 뚫어준다고나 할까. 혹 이렇게 말하면 팬들의 원성을 살지도 모르겠지만, 생활에 유머와 위트를 간직한 것이 마치 『면장선거』를 쓴 오쿠다 히데오 같았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은 딱 그것 하나 『면장선거』만 봤는데 그의 작품이 너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여러 권을 사긴 했지만 아직까진 더 읽은 것이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딱 『면장선거』만 생각한다면 깔깔깔 거리면서 웃게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오쿠다 만큼이나 시원하게 해준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의 평론이 뒷부분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의 설명서를 보면 배명훈 작가를 좀 더 잘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공감되었던 것이 사건의 나열은 유쾌하지만 인물의 표현은 겸손해진다는 그의 말이었는데, 역시 인물의 심리 표현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것 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뭔지 모르게 깔끔하고 명쾌하단 느낌이 들었던 것이 바로 그 이유였던 것이다. 인물들의 생김생김이 질질 끌지 않는다는 것. 솔직히 그런 경향을 여성작가들에게 많이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역시 내겐 질질 끄는 것보단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된 것이 더 끌린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소설이 될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