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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세상은 테러하고 전쟁중이다. 9.11테러가 일어난지 10년이 다되어가지만, 사람들은 테러하면 두려움과 공포부터 느낀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테러를하는 국가가 거꾸로 테러하고 전쟁을 한다고하는 어이없는일이 아직도 진행중인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보았을 때, 이책 [테러리즘, 누군가의 해방투쟁]은 서구강대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주창하며 전제하고 있는, 선악의 이분법뒤에 숨어있는 모순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있다. 테러리즘은 사람들을 동요하게 만들고 아주 계획적으로 혼란을 확산시키는것 이라고 한다. 이것이 테러리즘의 핵심이지만, 그렇다고 테러리즘의 정의를 내리는것이 마냥 쉽지는 않다고 한다. 그것은 어떤개인이나 집단도 결코 자발적으로 채택하지 않을 테러리스트란 꼬리표를 붙이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테러리스트라는 이름표에는 인간성 상실, 범죄행위, 그리고 정치적 지지의 결여 같은 부정적 함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정부는 테러리즘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가지고 있지만, 이들의 정의들은 국가의 하위집단의 폭력사용을 자동적으로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고한다. 그들은 오직 국가만이 합법적으로 무력과 폭력을 사용할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와 전쟁은 두려움을 확산시키려 하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할수있다. 그러나 전쟁은 국가가 수행하는것이고, 테러리즘은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수행하기에 미약한 세력이나 집단이 선택하는 수단이라고 할때, 테러와 전쟁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하게끔 한다. 흔히 테러리즘을 특징짓는 특별한 유형의 폭력 – 암살, 비행기납치, 인질납치 등 – 들이 있지만, 지금은 이같은 행위목록들은 점점 의미가 없어지고 있으며, 결국 테러리즘을 구분하는 특징은 단순한 행동자체라기 보다는 정치적 효과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테러의 한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국가테러리즘의 주요기능은 위협, 전향의 강요, 대량학살 이라고 한다. 이러한 국가테러리즘, 즉 위로부터의 테러리즘을 강력하게 옹호했던 세력은 히틀러의 독일이나, 스탈린의 소련과같이 주로 독재정권이나 급진적인 혁명정권이었다고 한다. 권력을 장악하고있는 위정자들이 폭력과 위협을통해 국민을 통치하는것이 바로 테러인 것이다. 테러리즘을 살펴볼 때, 우리는 먼저 혁명적 테러리즘에 대해 주목한다. 혁명에 대한 가장 현실적이고 일반적인 정의는 근본적인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야기할 목적으로 기존의 정부체계로부터 권력을 찬탈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목적을 가진 테러리즘은 19세기 가장 일관되고 견고한 테러전략으로 등장하였다고 한다. 이들의 근본적인 차별성은 그들이 테러리스트로써 자신들의 역할과 사회의 역할, 나아가 자신들의 행동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된 것 이었고, 이들은 대부분이 무정부주의자들이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이들의 테러리즘은 주춤하였으나, 1970년대 들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베트남전쟁, 쿠바혁명,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대결,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혁명 확산이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서구 강대국들에 의해 테러리즘으로 규정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들 조국을 위한 해방전쟁일수밖에 없었던 것 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20세기 초반을 상징하는 테러는 민족주의자들의 소행이었다고 한다. 민족주의 운동은 강력한 복원력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으며, 민족주의 관점에서 모든 민족의 권리는 평등하다고 한다. 따라서 테러의 다양한 동기들은 오직 문화적 이해를 통해서만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볼 때, 영국에서의 아일랜드공화국 운동이나, 스페인 프랑코 정권하에서의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 그리고 시오니즘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들의 그것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 그러한 테러리스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도리스 레싱의 소설제목으로 유명해진 ‘선한 테러리스트’에서 말하는 그들은, 그들이 저항하는 체제의 억압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행위가 정당화 된다고 한다. 어떤 변화도 지금보다는 나은 결과를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거의 모든 테러리스트들이 공유하고 있는 핵심적 논리이며, 테러리스트들은 일반적으로 지극히 평범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인성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속성들이라고 대부분의 학문적 연구는 말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때에도 극단적인 테러리스트 전략을 구사하는 집단들이 성공적인 해방군으로 기록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즉, 해방세력은 극단적인 또는 절대적인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던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종교적 테러리즘이라는 말이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서구의 관심이 된 것은 종교일반이 아니라 단지 이슬람자체이었다고 한다. 2001년 9.11 테러는 그전까지의 모든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고, 테러와의 전쟁은 이슬람근본주의와의 전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근본주의가 이슬람의 배타적 전유물은 아니다.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까지 가장 끔찍했던 테러는 서구에서 벌어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소행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세력과 이스라엘은 국가차원에서 벌이는 자신들의 테러를 호도하기 위해 이슬람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팔레스타인과 아랍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마찬가지로 해방투쟁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들의 독립투쟁을 생각해 본다.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1989년 이전, 미 국무부는 세계 테러리스트 집단의 80%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이며 이들은 소련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소련의 붕괴 후,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자 라는 말만을 이슬람주의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있어 테러리즘이 실질적으로 절멸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테러리즘의 위협이란 말이 적대적 정권을 공격하는 구실이 되어야 하며, 국제정치 현실에 대한 개입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테러리즘의 대응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해악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 즉 국가에 의한 또 다른 테러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또한 테러리스트에 대한 분노와 안보의 불안 앞에서 기꺼이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려는 행태가 민주주의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를 저자는 말하고 있다. 서구가 패권국가로써의 무분별한 개입을 삼가고,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정치제도를 존중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내 모든 국가의 평등과 호혜와 생존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 이야말로 테러리즘의 토대를 붕괴시키는 것 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가슴에 남는 이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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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즘, ‘누군가의 해방투쟁’이라지만 실제로는 이를 빌미로 통치의 간편함을 즐기려는 국가 권력이 문제다. 그래서 저자인 ‘찰스 타운센드’도 이렇게 부제에서 비꼬아 놓은 것 같다. 그리고 요즘 들어 이집 저집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번역은 전공자가 힘들여 참고서적까지 동원해 가면서 눈에 거슬리지 않고 매끄럽게 해 놓은 점이 고맙기 까지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설마 이를 미국인이 썼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9.11이후로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미 이전의 나라가 아니다는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나마 아들 부시가 물러나고 난 다음에야 조금씩 전 같은 상태로 나아가고 있겠지만 9.11을 빌미로 동원한 여러 장치들은 여전히 작동하기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는 현존하는 최대의 테러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슬람 테러리즘에 대해서도 저자는 말을 아낀다. 테러리즘의 대증적인 요법이 아니라 조금 더 근본적인 방안도 찾아보라는 충고도 조심스럽게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내 머리 속에서 떠올랐던 십자군 전쟁이라는 것은 시작부터 코미디에 다름 없었고 중간 과정이나 결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이 이라크 침공도 하나 다를 바 없었다. 아들 부시 정권 하에서 9.11에 대한 보복 조치로 포탄을 퍼 부었던 것은 결론적으로는 이슬람 형제애를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것 외에는 성과라 할 것도 없었고, 전쟁 발발의 원인인 대량 살상 무기니 뭐니 하는 것이 허구로 밝혀진 다음에는 미국 자체가 악의 축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공표한 것에 다름이 없었다. 전에 ‘시리아나’라는 영화를 극장을 전세 내어 본 적이 있었다 (통 털어 두세 명이 작지도 않은 노떼 시네마에서). 카운터 테러리즘이나 앤티 테러리즘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런 식의 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퍼맨의 미국이란 이미지는 한 순간 다윗의 돌팔매질에 넘어졌던 골리앗에 다름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평범하고 빈한한 가정의 소년이 어떻게 극악무도하다고 표현되는 자살공격조의 일원이 되는지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 한참 못 미치는 바보가 하는 짓이다. 미국은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고 근본적으로 이러한 수동적 의미에서의 카운터 테러리즘보다는 마카로니 웨스턴 식의 앤티테러리즘이나 무협지 수준의 보복극 식의 대응으로는 결코 이슬람 테러리즘의 끝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인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책에는 테러리즘의 연원부터 정의까지 풍부한 사례가 나열되어 있고 흥미 있게 읽었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나열된 장이 끝나고 저자가 하고 싶었던 대목에 이르러서는 이런 말이 하고 싶어서 그렇게 많은 사실을 나열했구나 하는 신중성이 돋보였다. 그나마 저자의 강변 같은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리고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에도 딱 맞아 떨어지는 구절도 있었지만 시절이 하수상한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