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수익 시 두 편
"이수익 시 두 편" 내용보기
1. 사랑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내
"이수익 시 두 편" 내용보기

1. 사랑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

  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 이수익, 「우울한 샹송」

 

 

시인은 우체국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찾으려고 한다. 우체국은 편지를 보내는 곳이다. 사랑을 잃은 시인은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던 그 마음으로 다시 우체국을 찾는다. 우체국에 간다고 대뜸 잃어버린 사랑이 나타날 리 없다.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라는 시구에 표현된 대로, 시인은 우체국에 가서도 여전히 사랑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다. 갓 피어난 연둣빛 풀잎의 서정을 시인은 우체국에서 찾으려고 한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던 순수한 사랑은 이제 시인을 혼미하게 한다.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려는 시인을 흐르는 시간이 그냥 놔두지 않는다. 시간은 앞으로만 뻗어 나가려고 하고, 시인은 풀잎의 서정이 살아 있는 과거로 어떻게든 돌아가려고 한다. ‘과거를 시간적 개념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시인에게 사랑의 과거는 살아 있는 현재와 다르지 않다.

 

살아 있는 현재로서 과거를 시적 현재라는 말로 이야기해도 좋겠다. 시인은 우체국에서 처음의 의상으로돌아올 사랑을 고대한다. 사랑은 처음에 어떤 옷을 입었을까? 시인은 가슴에 꽃을 달고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을 눈여겨본다.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있다. 그들은 시인처럼 잃어버린 사랑을 찾기 위해 우체국에 온 사람들이 아니다. 바람에 얼굴이 터질 정도로 웃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은 가슴에 품은 꽃=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기 위해 오늘도 우체국을 찾는다. 우체국은 그러니까 사랑의 밀어(密語)를 전해주는 애틋한 장소이다. 그들은 시인이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랑이 입은 처음의 의상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얼굴이 다치면서라도 소리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라고 쓰고 있다. 시간에 휩쓸려 스러진 사랑을 지금 이곳으로 불러내려는 시인의 마음이 참으로 안쓰럽지 않은가 

 

사랑의 꽃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를 보내고는 저마다 제 갈 길로 돌아들 간다. 돌아가는 그들의 머리 위에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어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온몸으로 피워내는 꽃불이다. 마음에 꽃불을 담은 사람들이 내보이는 행복에 찬 글씨를시인은 그러나 읽지 못하고 있다. 아픈 마음이 발등으로 간 것일까, 발등이 저려온다. 환한 꽃불을 켠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도 눈앞은 자꾸만 어두워진다. 꽃불처럼 환한 사랑을 향한 열망은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살아 있다. 오늘도 이렇게 시인은 우체국을 찾아오지 않았는가. 우체국에서 시인은 여전히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본다. 시간이 흐르면 그들 또한 사랑을 잃을 것이고, 그 자리를 또 다른 사람들의 사랑이 채울 것이다. 꽃불로 빛나는 사랑은 이리 보면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관계 속에서 다시금 피어나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이 잃어버린 사랑은 지금 기진한 발자국으로 우체국을 서성이고 있다. 우체국에서 피어난 사랑은 우체국을 떠나 먼 곳을 헤매다가 이제야 우체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꽃불처럼 환한 추억을 안고 우체국 밖으로 나간 시인은 어느 날 문득 잃어버린 사랑을 떠올린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의식 위로 떠오른 이 사랑을 안고 시인은 벅찬 마음으로 우체국으로 뛰어간다. 그곳에서 시인은 그리움이 가득 담긴 편지를 보내고 환한 꽃불을 머리에 인 채 서성이는 사랑을 발견한다. 사랑은 힘에 겨운 발걸음을 옮기며 우울한 시선으로 시인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도어를 노크한다.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라는 진술로 시인은 시를 맺고 있다. “어떤 미소라는 시구가 참으로 절묘하다. 그 시절의 첫사랑이 저 깊이 숨은 마음을 두드리면 우리는 어떤 미소를 지으며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시인처럼 나 또한 묻고 또 묻는다.

 

 

2. 아버지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랑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 주며

  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은 영하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

  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

  - 이수익, 「결빙(結氷)의 아버지」

 

 

시인은 예닐곱 살 적 겨울을 떠올린다. 목조 적산가옥 이층 다다미방이 보인다. 벌거숭이 유리창 새로 스며드는 찬바람은 왜 그리 어린 몸 깊숙이 파고들었는지. 밤마다 벌벌 떨면서 어린아이는 아버지 가랑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 넣었다. 아버지는 온몸으로 아이를 껴안았고, 아이는 아버지 가슴팍으로 파고들어 벌레처럼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다. 아이는 잠시나마 아버지 품에서 추위를 피했지만, 사나운 바람을 온몸으로 받았을 아버지는 그 매서운 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등으로 몰아치는 바람을 조금이라도 더 막아야 아이가 그나마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다. 등 뒤로 차가운 바람이 느껴질 때마다 아이는 메마른 아비 품으로 파고든다. 따뜻하다. 차가운 바람을 물리칠 따뜻함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아이의 조그만 몸에서 밀려나오는 따뜻함을 느끼며 춥고도 추운 한밤을 보낸다.

 

아이는 나이를 먹었고,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꼼꼼히 덮어주는 아버지가 되었다. 추억처럼 아비 품을 파고들던 아이가 떠오른다. 아이를 품어주던 그 가슴은 이제 한 줌 뼛가루로 삭아버렸다. 이미 붉은 흙으로 돌아갔을 몸이지만, 시인은 아비의 가슴에서 전해오던 따뜻함을 온몸으로 여전히 느끼고 있다.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습니다.”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추억이란 관념이 아니다. 추억은 언제나 감각이 되어 회상에 빠진 시인의 몸에 살포시 다가앉는다. 옛날인 듯 옛날이 아닌 이 감각으로 시인은 추위에 떠는 아이의 몸을 포근히 감싸 안던 아버지를 다시금 뚜렷이 느낀다. 물론 그 느낌은 아픔을 몰고 온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묵직하게 전해오는 아픔을 느끼지 않고 어떻게 그 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으랴.

 

묘한 건, 시인이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2연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각 연을 “(그런데) 어머님,”이라는 시어로 시작한다. 시인은 어머니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어머니만큼 아버지를 잘 아는 이가 어디에 있을까? 어머니는 아버지를 회상하는 시인의 말을 들으며 그 시절 아버지를 떠올린다.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였지만, 당신에게는 둘도 없는 남편이었던 사람을 떠올린다. 이 시의 2연에는 이승의 물로 화신한 아버지가 나온다. 영하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시인은 문득 자신을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주던 아버지를 다시금 떠올린다. 이승의 물로 화신한 아버지는 지금 꽝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품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을 품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 잔등은 혹한으로 얼어붙었다.

꽝꽝 얼어붙은 강 아래로 여린 물살이 무사히 흐른다. 강 표면이 얼지 않으면 여린 물살이 무사할 리 없다. 아버지는 꽁꽁 얼어붙은 잔등으로 여린 물살을 품어 바다로 가라고,” 속삭인다. 바다는 모든 물살이 궁극적으로 이르러야 하는 지점이다. 아버지는 당신이 품은 여린 물살이 드넓은 바다로 무사히 흘러가서 제 뜻을 펼치길 기원한다. 벌거숭이 유리창을 사납게 쳐대던 바람을 메마른 잔등으로 막아내던 그 시절 아비 또한 이런 생각을 하며 품속을 파고드는 작은 벌레를 꼭 품어 안지 않았을까.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를 보며 시인은 아버지, 아버지……를 거듭 부르고 있다. 말줄임표에 아버지를 대하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오롯이 들어 있다. 시간이 흐르면 아버지가 있던 자리에는 또 다른 아버지가 들어선다. 이승의 물로 화신한 아버지()를 목청껏 부르는 시인의 외침은 그래서 늘 현재형인지도 모른다.

 

 

 

o*****s 2019.09.01.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