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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표해록』은 조선말의 화원승(畵員僧)이었던 풍계 현정이 경주에서 해남을 향해 천불(千佛)을 배에 싣고 오다 풍랑에 휩쓸려 일본으로 표류한 일을 기록한 문헌이다. 이 책은 본디 한문으로 쓰였을 일본표해록을 주석을 달아 번역·해제하고 정성일교수의 관련 논문을 수록해서 조선말 승려의 눈으로 본 일본의 모습을 흥미롭게 조명한다. 사실 나는 『일본표해록』이 매일 매일 쓴 일기체 형식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알고 보니 사실은 표류 후에 조선으로 돌아와서 쓴 책이었다. 때문에 기록의 대부분은 시간을 따라가며 순서대로 쓰인 것이 아니라 소주제 단위로 묶여져 있다. 풍계 현정이 머문 1817년부터 1818년까지의 일본은 아직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기 전이며 전면적인 대외 개방이 이루어지기 전의 에도 막부 말기 일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머물렀던 나가사키에는 중국과 네덜란드의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근대화 이전 일본은 이미 상업을 통해 번창하고 있는 나라였던 것이다. 반면 현정은 일본이 학문에 대해서는 소홀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승려들도 불법(佛法)에 대해서 매우 제한적인 지식만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멜표류기’나 조선 말기 내방한 선교사들의 수기 같은 것을 읽어 보면 조선 사람들은 글공부하기에 여념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 많은데, 어쩌면 그런 조선에서 살다가 온 현정이기에 학당도 없고 독서하는 사람도 없는 나가사키의 풍경이 매우 생소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대마도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현정은 대마도 사람들이 조선말과 일본말을 섞어 쓰고 자신들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지칭했다고 하는데, 비교적 최근인 19세기 초까지 대마도 사람들이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대마도가 본래 조선의 땅이었거나 적어도 조선의 문화권에 더 가까웠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자료가 아닌가 싶다. 『일본표해록』은 매우 짧은 편이지만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일본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기에 현장감이 녹아 있다. 『일본표해록』 원문 뒤에 수록된 정성일 교수의 논문은 현정이 쓴 표해록과 일본측의 기록을 비교하는데, 일본측의 기록이 매우 자세하고 체계적인 데에 놀랐다. 덕분에 그 당시 일본의 보고 절차와 조선과의 외교 관례를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종류의 미시사(微視史)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일본표해록』은 비록 짧은 책이지만 역사의 한 단면을 개인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