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과 생태의 중요성에 대해 이제 겨우 눈 뜨고 있는 요즘 시대에 이 책은 나쁘다못해 위험하다. 판매지수의 높음이 너무 안타깝다. 제대로된 환경론자의 책은 잘 팔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책은 대체 왜 잘 팔리나? 이제껏의 환경론은 현재의 삶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제껏 살던 대로는 살지 말자, 사던 것 안사고 먹던 것 먹지 말자는 그런 읽기 불편한 얘기였다. 그런데 이 책은 뭐냐? 지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약해빠지지 않았으니 오버하는 환경주의자들은 무시하고 너무 걱정할 것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것도 마치 '내가 바로 진리요' 라는 듯 1000페이지가 넘는 두터운 양장본이다. 내가 보기에 이 지구 다 먹어치우고 다른 별 먹으러 가자는 얘기로밖에 안들린다. |
|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경보호론자가 아니라 환경보호 지상주의자다. 환경만이 절대가치이고 환경을 위해선 다른 것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작자들이다. 롬보르그가 하고 싶은 말도 이것이다. 환경보호도 정책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정책의 우선 순위는 경제적 고려로 정해져야 한다. 그 판단을 정확히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환경오염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실상을 객관적으로 알고 그 피해로 인한 비용을 구체적으로 추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환경론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켜야 하기 때문에 피해를 과장하고 사건의 다은 면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농약 사용으로 인해 매년 10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다고 하자. 환경론자들은 농약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농약 사용을 금지해서 나타나는 엄청난 피해는 왜 언급하지 않는가? 만약 농약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면 수확량은 16~84% 줄어들고, 농산물 가격은 30~120% 급등한다. 그러면 채소·과일값이 비싸지고 사람들은 암 발병률을 억제하는 채소·과일을 먹지 않게 된다. 만약 10%만 과일·채소값이 비싸질 경우 미국에서만 2만6천명이 추가로 암에 걸려 사망할 것이다 이렇게 세상일에는 여러가지 면이 있는 것이다. 한 가지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환경보호도 결국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자는 것 아닌가? 환경보호가 목적이 될 순 없다. 환경보호도 행복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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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주의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아무리 거대하고 중요한 국책사업이라고 해도 환경운동가들이 딴지를 걸면 사업공정에 많은 차질이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고 서구 선진국가들의 환경운동가 집단의 파워는 이젠 최고 결정권의 범주에 속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친환경적, 환경친화적, 환경영향평가, NEPA(National Environmetal Policy Act) 란 생소한 단어가 우리주위에서 들리게 되었다. 뭔가 석연치 않아도 그에대한 반대할 자료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할때가 너무 많았다. 그들이 내세우는 환경운동이 너무나 비약적이고 확고해서 그리고 위협적이어서(바로 내일이면 지구가 멸망하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등등) 저들이 그렇게 믿고 신봉하는 원류가 무었인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그들의 외침에 한번쯤이라도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나라 환경주의자들의 10의 9명은 출처불문명한 환경주의자 들이고 사기꾼이라는 루머가 사실이어도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을수 없는 현실에, 횡횡하는 환경론에 대해서 반대하고 싶었다. 이 책이 얼만큼의 반대할수 있는 답변을 할수 있는 지식을 주었다. [인상깊은구절] 석기시대가 종말을 맞은 것은 돌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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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시작하기에 앞서, 5만원이라는 거대한 책값에 300페이지에 달하는 각주 (777페이지부터 1067페이지가 모두 각 구절이 어디에 기인했는지를 보여주는데 쓰이고 있다) 덕분에 상당히 본전 생각이 날 것이라는 점은 미리 경고하고 넘어가야겠다.
하지만 책 내용은 그렇게 허망하지는 않다. 이 책은 상당히 정확한 지점을 타게팅하고 있다. 주변을 잘 살피지 않는 우리나라 안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서구에서는 요즘 환경주의자가 마치 중세시대의 종교재판관이나 이슬람에서의 원리주의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직면하고 있는 환경적 위험에 대해, 포문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으로 열렸고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이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서 환경주의적 대처가 전세계적으로 더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일각의 '온난화의 위험은 과장되었다'라든가, 환경적 문제가 상당히 침소봉대되었다는 주장 또한 들리고 있으니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환경주의적 입장은 현재 상당히 종교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실증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이 책은 과학적인 부분에서 환경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읽을만한 내용이 되었다. 참고로 이상돈저 '비판적 환경주의자'는 환경법을 전공했다고 하는 저자가 단 한마디로 요약될 내용으로 환경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농담 같겠지만 저 책의 리뷰는 하나같이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다가 저자가 조선일보에만 글을 썼으니 오죽 편향적이겠는가.
환경주의적인 태도가 맞는지에 대해, 좌파정부가 했으니까 문제다 이런 식의 접근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과학적으로 측정해서 실제로 위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알고 싶을 뿐이다. 이를테면 지구 온난화의 강도가 몇년 동안 영점 몇도 수준이란 말을 들었을때,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이것이 의미 있는 상승세를 보여주는지가 궁금한 거지 1도 정도는 괜찮지 않겠냐는 누군가의 큰소리가 궁금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환경주의적인 입장으로 시작했던 저자가 통계학적으로 의미 없는 자료를 왜곡하여 환경주의적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환경주의자 진영에 환멸을 느끼고 정반대의 입장에서 다시 쓴 책이다. 저자는 최대한 환경주의자들의 자료들을 재사용하고 있으며, 과장된 결과가 아닌 진정한 결과를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 역시 환경주의에 판정패를 날린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시할만한 내용도 아니다. 통계적으로 여러 의미 있는 분석을 한 것은 눈에 띄지만, 통계학적인 자료의 나열은 그리 우리 일반인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과장된 뉴스만 남는다는 1장의 내용과, 매년 인류의 미래는 과장되게 나쁘게 그려지고 있다는 2장, 오염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처리방법도 발전했다는 4장은 쓸만한 내용이지만, 인류의 미래가 번영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한 3장과 화학 약품, 생물 다양성, 지구 온난화에 대한 5장은 조금 지나치게 나아가고 있다. 즉 이 책의 내용은 환경주의자들이 어떻게 사태를 왜곡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은 무척 성공적이지만, 그렇다고 '사실은 지구는 괜찮다'라는데까지 무리하게 논의를 이끌어가는 데는 힘이 조금 부족하다는 듯이다.
이를테면 3장에서 이야기하는 석유의 잔존 가능성과 대체 에너지에 대해서 말해보자. 나 역시 인류의 미래가 석유자원이 고갈되면서 끝나버린다는 묵시록적인 예언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대체 에너지가 반드시 개발될 것이고 석유의 부존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 역시 사라진다는 이야기만큼이나 허황되다. 필요에 의해 반드시 대체 에너지는 개발되겠지만, 석유가 한정되어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인데 이제껏 늘어왔으니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라는 것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 20세기 중반보다 발달된 기술로 더 많은 곳에서 석유를 찾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양이 무한하다고 과감하게 말하는 것 역시 어이가 없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부분도, 저자는 솔직하게 온난화 자체가 의미 있음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 위기가 과장된 것보다 그 대책이 가시적인 효과가 부족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지적은 정확하다. 하지만 깜짝 놀라게 해서 경고를 주자는 결론 챕터의 소제목은 그가 이야기한 것과 좀 배치되는 듯하다. 오히려 '위기는 실재하지만 대책이 엉망이다'라는 식으로 갔어야 할 것이다.
'반환경주의자'라는 기치를 너무나 뚜렷이 걸고 있기 때문에 결론부분이 좀 어색한 부분이 많이 있다. 하지만 좀더 냉정하게 정리되었다면 훨씬 훌륭했을 것이다. 환경주의를 대신하기 위해 꼭 결론까지 내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위기가 과장되었다고 해서 에너지 위기가 없다고 까지 할 것은 없다. 화학약품의 공포가 과장되었다고 해서 위해가 없다고까지 할 수는 없다. 물론 DDT로 인한 피해보다 DDT를 사용하지 못해서 창궐한 질병들에 대한 지적 같은 것은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아름답다. 하지만 화사첨족이라고, 불필요한 의견이 들어가면서 과학적이고자 했던 처음의 의도에서 벗어난만큼, 이책은 덜 아름다워졌다고 본다.
본문중에, 셸링이 말했다고 하는 이런 대사를 인용한 부분이 나온다. "초라한 예측기술을 개선하기보단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을 조사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록 이 책은 초라한 예측을 꽤나 해대서 환경주의자들과 같은 수준으로 스스로 떨어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환경주의자들이 속단한다고 해서 다른 메시아를 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상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그때그때의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근시안적인' 생각이, 바로 현재의 인류의 모습이며 올바른 모습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 말했듯이, 백년도 못살면서 천년을 걱정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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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증가, 식량부족, 극심한 환경오염. 모두가 문제다. 하지만 특히 기상이변이 관심사다. 지구온난화에 관한 한 모두 에너지와 관련돼있다. 에너지를 사용하면 할수록 온실가스가 더 많이 배출되고 그러면 다시 지구의 온도가 더 올라가게 된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는 기후변화의 주범이다. 또 언제 고갈될지 모른다. 결론은 2가지다. 하나는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절약, 또 하나는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을 개발,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저탄소 녹생성장’을 천명하며 원자력과 더불어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에너지의 축으로 삼고 있다. 시대의 조류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지구온난화가 그토록 위험하다는데 정말 지구온난화가 오긴 오고 있는 것인가. 확실한 증거는 있는가. 이미 결론이 난 문제를 가지고 다시 왈가왈부해봐야 무슨 소용일까? 무수한 반론과 논쟁만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필자는 책제목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환경주이자이면서도 회의에 가득찬 환경주의자이다. 통계가 넘쳐난다. 소화하기 버거울 정도로 방대한 내용까지 담고 있다. 다행히 가벼운 인쇄용지를 사용했는지 무게는 보기보다 덜 나간다. 중요한 것은 환경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는 점이다. 다수의 횡포라고나 할까? 몇날며칠 걸려 겨우 다 읽기는 했는데 소수의견이라고 넘겨버리기에는 일반인 입장에서 생각할 때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치밀하며 체계적이다. 어쨌거나 기후변화에 관한 한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논쟁을 거쳐 결론이 난 것이며, 그 결론에 따라 세계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지난한 전쟁을 시작하였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19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가 2005년 2월부터 발효되기 시작하였고, 최근의 발리 로드맵까지 왔다. 환경의 세기이다. 모든 것이 환경이다. 문제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환경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하는 문제를 다시금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어려움이 많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온 세계가 어려움에 처해 당면한 경제문제 해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자칫 기후변화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버릴 우려도 없지 않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에 기대를 걸어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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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여 년 전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산업발전과 기술진보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반갑지 않은 현상이 나타났다.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 넘쳐나는 쓰레기, 각종 오염, 동식물의 멸종에서부터 현재 큰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는 지구온난화, 환경호르몬의 영향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점들은 ‘인류의 끝없는 발전’에 대한 믿음 대신 미래에 대한 비관론과 환경보호론 등을 많은 지식인과 일반인의 머릿속을 확고히 지배하는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하였다. 1960년대, 70년대에 이르러서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방불케 하는 인구위기론, 자원고갈론, 환경위기론 등이 끊임없이 제기되며 주류를 이루어가는 가운데 그것의 비합리성, 비과학성을 지적하며 그러한 우울하고 불길한 전망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환경낙관론과 이른바 ‘신성장이론’까지 등장하였다. 비외른 롬보르의 ‘회의적 환경주의자’는 바로 이러한 무조건 적인 환경비관론을 비판하는 입장이며,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방대한 통계자료의 분석을 통하여 피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비관론자들이 내세우는 통계자료들은 크게 왜곡되었거나 과장된 것이고 그리하여 이들은 세계의 실제상황을 더 나쁘게 선전하고 알리는데 일조한다고 주장한다. 예로 지금은 여가 시간도 과거보다 많아졌고, 일상생활의 안전도도 증진되었고, 사고도 줄었고, 교육 여건도 개선되었다. 따라서 환경 문제를 생각하면서 이제 더 이상 종말론적인 관점을 가질 필요는 없다. 환경을 중요시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이것은 세상의 여러 중요한 문제 중 하나에 지자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21세기에 최고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처리해야 하는 많은 과제 중 일부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인류의 미래환경에 대해 ‘낙관적’이다. 책의 맨 마지막의 말 ‘아름다운 세상이지 않은가’라는 말에 저자의 낙관론이 집약되어 있는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이 책에 대해 아쉬운 점은, 지구 환경이 나날이 개선되어 가고 있다고 해서 인류가 환경에 대해 ‘방만’해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놓친 것이다. 이 책은 객관적인 통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올바르지 않은 점도 있는 것 같다. 환경이 좋아졌으니 이제는 환경을 보조하고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을 거두어야 한다는 식을 말이다. 현재 지구환경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그에 따라 적절하고 유효한 대책을 세워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일,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할 일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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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사실만 생각해 보자. 첫째 저자는 peak oil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며 유가는 90년대 후반 이래 20달러 전후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현재 원유가격은 100달러를 오가고 있다. 둘째 곡물가격 역시 계속 하락해 왔고 앞으로도 상승할 이유가 없다고 전망했지만 지난 1년간 곡물가격은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저자는 그동안 환경주의자들이 내놓은 주장이나 전망이 대부분 (과학적 혹은 통계적) 근거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의 전망도 이 책이 출간된지 5,6년이 지난 오늘날 크게 어긋나고 있다. 물론 이 때문에 과거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에 그다지 근거가 없었다는 저자의 주장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래를 낙관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 역시 쉽게 부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 별4개를 붙여주고 싶다. 우선 그동안 내가 읽은 몇 권 되지 않는 환경 관련 책들은 모두 일정 측면만 다루고 있었는데 이 책은 환경에 관한 모든 논의를 죄다 다루고 있다. 둘째 앞서 말한 것처럼 저자의 전망 역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쉽게 부인될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책에서 세세히 다루고 있는 바, 과거 환경주의자들의 전망이 엄밀한 과학적 근거를 결여한 것이라는 주장, 그리고 그에 대한 방대한 통계 자료는 꽤나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통계자료를 일일이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은 내게는 없다)
안타까운 것은 일부 평자들이 책의 내용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거나, 혹은 극단적 반대라는 감정적 대응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실제 책의 내용과 가치는 그러한 양 극단이 아닌, 그 가운데 어느 지점인가에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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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염려하는 것보다 양호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객관적 지표를 통하여 확신할 수 있도록 해준 책이다.
자연환경을 보존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한정된 재원을 여러 분야에 나눠써야 하는 현실에서 환경분야에 과도하게 많은 돈을 쓰는 것은 기아, 오염된 식수 등 더 시급한 문제를 자칫 뒷전에 내버려두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한정된 재원을 현실적으로 인명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우선 사용하고 나머지를 환경보존에 쓰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주장한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연환경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환경주의자들이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것도 지난 세기부터 이루어진 인류의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이 종국에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을 파괴하여 인류가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은 객관적 근거가 없이 맹목적이 호들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기아와 질병에 쓰러지고 있는 개도국, 후진국들의 시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이 돈은 결국 경제가 성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인만큼 개도국, 후진국의 경제성장을 자연보존이라는 미명아래 억제해서는 안 된다고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또한 경제 성장과 자연의 보존이 불가양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환경을 보존하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이 선행되어야 환경보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너무 낙관적인 나머지 복잡한 정치경제적 측면은 함구해버린 것 같다.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 공리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실행하는 정치인, 행정가들이 모두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선진국, 개도국 및 후진국들의 인권을 위해서는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경제적 폭압을 자행하는 거대자본가들이 없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전제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이 파멸하는가 안는가는 결국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 그 인간의 손은 바로 ''정치''이다. [인상깊은구절] 환경을 걱정할 때 사람들은 단기적으로 기분을 좋게 해주는 해결책에 쉽게 빠져드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런 해결책은 비교적 사소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엄청난 돈을 쓰게 만들어 훨씬 더 중요한 일에 자원을 쓸 수 없게 만든다. 수질 문제, 농약 사용 문제, 지구 온난화 문제 등에 자원을 사용할 때는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해 신중하게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합리적인 환경 관리와 이성직인 환경 투자가 좋은 일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단지 그런 투자로 인해 야기되는 비용과 이득을 다른 중요한 분야의 비슷한 투자와 비교해야 한다는 뜻일 뿐이다. |
| 이 책은 발행되고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환경이 나빠지고 있다는 통념에 반대하는 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많은 자료들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펼치는데 비해 이 책의 비판자들을 자료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보다는 감정적인 대응이 더 많은 것처럼 보였다. 이 책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보고 이 책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정말로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책을 읽고 이 책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책도 읽어보고 인터넷에서 저자와 반대자들에 대한 논쟁들을 읽어본다면서 환경에 대해 옳은 판단을 하기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환경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물론이고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요새는 알게 모르게 늘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두꺼운 책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
| 오늘날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은 실천하지 않더라도 환경보호의 당위성에는 찬성한다. 그래서 환경을 앞세우는 정책이나, 환경을 앞세우는 규제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도 반대하기가 힘들다. 환경은 오늘날 세계를 휘어잡는 정의의 사도와 같은 사회적 아젠다가 되었기 때문이다. 의문의 여지가 없이 무조건 옳고, 그것을 위해선 더 빨리 더 많은 조치가 시급히 취해져야 한다는 당위가 있다. 그리고 그런 당위성에 대한 의문의 제기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인 기능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데올로기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이데올로기가 나쁜 것인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도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문제는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이데올로기는 문제점을 않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시절동안 우리는 그런 이데올로기의 폐혜를 피부에 닿도록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 책은 오늘날의 주류 환경론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책이다. 한때는 그린피스의 일원으로 활약하던 저자의 마음에 조금의 의문이 일었나보다. 혹은 저자가 폐기물을 배출하는 단체에 매수가 되었을까? 어떻게 생각해도 좋다... 나는 단지 환경문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 하는 것 뿐이니까.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전적으로 찬성을 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이런책도 필요하지 않는가하는 말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빙빙 말을 돌려서 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최소한 내 마음속에는 이제껏 환경론이 이데올로기적인 기능을 하고 있었긴 한가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