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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엔 원년의 풋볼>을 읽고
지난 3월,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1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만엔 원년의 풋볼>을 집어 들었다. 소설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일본 화폐 단위가 떠오르는 만엔(万延)은 일본의 연호(年號) 중 하나로 만엔 원년(元年), 즉 1860년을 가르킨다. 그럼 당시 풋볼(축구) 이야기인가 싶지만 풋볼 팀은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시점에 등장한다. 앞에 인용한 구절과 다시 연결해보면, 1960년 어느 산골에서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경제권을 쥐고 있는 슈퍼마켓을 약탈한 사건을 두고 '폭동'(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부르는 형 미쓰사부로와 '봉기'라 여기는 동생 다카시를 만나게 된다. 소설의 무대로서 골짜기 마을은 현재 두 형제의 고향이자 한 세기 전 증조부 형제의 터전이기도 하다. 땅에서 꽃이 피고 지듯 동일한 공간에서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닮은 듯 다른 역사가 거듭된다. 1860년에 농민 봉기 후 행방이 묘연해진 증조부의 동생과 패전 직후인 1945년에 조선인 부락을 습격한 뒤 살해당한 S형에 대하여 1960년에 이른 두 형제는,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었으나 서로 다른 기억과 생각을 품고 산다. 다카시가 언급한 '업루티드(uprooted)'라는 말처럼 두 사람은 각자만의 이유로 '뿌리 뽑혀' 고향을 떠나 살다가,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 여기며 다시 뿌리 내리기 위해 마을로 (도망치듯) 돌아온 것이다. 설령 '상상력의 폭동'일지라도 어떻게든 삶의 활력을 되찾으려는 동생에 비해 우연한 사고로 한쪽 눈을 잃고 선천성 장애로 보호시설에 맡긴 아이, 그로 인해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내, 스스로 세상을 떠난 친구를 차례로 마주한 형은 시종일관 자기를 비웃고 혐오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다카는 다시 한번 뿌리를 내려보려고 하는 거지. 하지만 나는 내릴 뿌리마저 없나 봐.(173쪽)" 그는 자신을 둘러싼 어둠을 걷는 히카리(光, '빛'을 뜻하는 일본어이자 오에 겐자부로의 아들의 이름)를 만날 수 있을까? 또한 '추체험 (追體驗)', 곧 다른 사람의 체험을 자기의 체험과 같이 느낌으로써 마을 사람들은 물론 다카시 본인도 구원할 수 있을까? <만엔 원년의 풋볼>은 작가뿐 아니라 사회운동가로서 목소리를 내온 오에 겐자부로의 생각이 잘 묻어난 작품이다. 1945년 일본의 세계대전 패배과 1960년 일미안보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안보 투쟁을 겪으면서 그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남다르고 누구보다 엄중했으리라.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을 모르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로는 훨씬 더 오래지만 적어도 소설에서 보듯 한 세기가 지나도 개인과 개인, 나아가 집단과 집단 사이의 폭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결코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기에 미쓰사부로의 독백이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독자와 이 시대를 사는 시민에게 폭력을 근절하고 예방하는 파수꾼의 눈을 가지라고 일러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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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은 무엇을 다룰까? 그건 바로 '수치'가 아닐까?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가 그렇듯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이 그렇듯이,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가 그렇듯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수많은 그렇듯이가 공유하는 있는 인간의 감정은 수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수치스러운 문학을 읽고, 작가들은 그런 작품을 써내며 평론가들은 그런 작품을 격찬하는 걸까? 어째서 부끄러운 인간을 손가락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인간을 모방한 작업물이 높은 평가를 받는, 혹은 받아야 하는 걸까?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파멸에 몰아넣는 것은 자신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사람은 외부에서 죽지만 어떤 사람은 내부에서 죽는다. 외부의 원인은 환부도 외부에 있기에 쉽게 드러나고 쉽게 치유될(가능성이) 수 있다. 그렇지만 내면부터 곪아버린 상처는 쉽게 드러나지 않으며 자기도 모르는 새에 사람을 죽여버린다. 이 작품으로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이라는 한 국가와 한 마을과 한 가문과 한 사람의 수치를 꿰뚫어서 매달았다. 사람은 내면의 세계와 외부의 크고 작은 세계를 동일한 것으로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오에 겐자부로는 그의 치밀한 작업으로 그 인식을 해낸다. 난해한 작품.... 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이 작품을 난해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의 정밀한 묘사가 읽기 힘들지만 그것 때문에 난이도가 높은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인간이 부끄럽고 그 부끄러운 내면과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이 간악함은,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을 말로, 소리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텍스트의 예술을 통해 말하지 않고 보여준다. 독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 보여짐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토록 처절하게 아름다운 작품은 나는 이전에 본 적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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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이전에 이북으로 구매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종이책으로 다시 한 번 구매한 것은, 종이책이 가지고 있는 질감과 입체감 때문이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한 이 판본은 상당히 두껍다. 이는 다른 서적보다 길이가 짧은 탓도 있는데, 그 때문에 책이 불필요할 정도로 두꺼워서 여러모로 읽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종이책으로 읽으니 전자책으로 읽는 것보다 분위기는 더 좋았다. 손에 감기는 질감과 책장을 넘기는 동작과 포스트잇을 붙이고 밑줄을 긋고 메모하는 이 감각은 시대가 발전해도 종이책이 여전히 남아있어야할 이유이지 않을까? 다시 읽으면서 소설의 전체적인 구조가 눈에 들어오면서 이미지에 선명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밀도 높은 텍스트로 이루어진 이 작품이, 실은 무엇보다도 영화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묘한 일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지는 모르겠으나, 기회가 된다면 이 책은 열 번 스무 번은 더 읽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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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엔 원년의 풋볼은 만엔 원년(1860년) 농민 봉기가 발생했던 그 마을에서, 100년이 지난 1960년, 주도자였던 증조부의 동생을 따라 하기라도 하듯, 마을의 경제권을 독점하고 있는 ‘슈퍼마켓 천황’에 대항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긴 역사 속에, 인간의 폭력성은 형태만 다를 뿐 억지스러운 명분과 광기의 주도자, 그리고 나약한 추종자 속에 끊임없이 존재해 왔다. 증조부 동생에 의한 만엔 원년의 농민 봉기와 다카시의 풋볼팀이 주도한 폭동은 이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소 극단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다카시에 반대편에는, 좀처럼 새 삶을 찾기 어려워하는 그의 형 미쓰사부가 있다. 이 책 도처에 산재해 있는 다카시와 미쓰사부의 갈등을 통해 각자의 상처와 수치심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패전 직후 일본인들의 정신적인 공황 상태를 잘 그려내고 있다. 비교적 방대한 양의 글에 내용 자체도 쉽지 않아 읽어가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정작 다 읽고 나서는 여운이 많이 남는다. |
| 오에 겐자부로는 워낙 유명해서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오에 겐자부로는 개인적인 체험이라는 책을 통해 이름을 들어봤는데 이번에 그의 대표작으로 만나게되었다. 작가 개인이 머리에 이상이 있는 자녀의 출생에 의해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술회한바 있는데 그러한 아픔에 맞서 작가가 쏟아낸 성과물에 경이를 표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그의 여러 책들을 통해 겐자부로에대해 알아가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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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작가의 만엔 원년의 풋볼 누군가의 추천으로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기 시작했는데 시간에 쫓겨서 읽다 보니 마음이 조급해져서 문장을 천천히 곱씹는게 힘들어 구매해서 다시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조금 읽기 힘들었지만 책을 읽고 난후에 그 이상의 울림이 있는 책 이었습니다. 일본에도 오에 겐자부로 작가님 같은 작가가 많아 졌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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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엔 원년의 풋볼 / 오에 겐자부로 근대 일본의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면서 인간의 내면 본성을 탐구하는게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추천을 받아 읽게 된 책이었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도 관심갖게 할만큼 좋은 소설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
| <만엔 원년의 풋볼>은 1960년대 일본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배경으로, 과거 농민 봉기의 기억에 사로잡힌 채 고향으로 돌아온 두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와 개인, 신화와 현실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는 깊이 있는 작품. 격렬한 시대 속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독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쉽지 않지만 곱씹을수록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
| 246페이지.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는 곧 지금 자신이 도쿄에서의 일상생활과 마찬가지로 혼자서 자고 있으며, 각자 따로 노는 듯한 몸의 통증이나 갈비뼈 속 깊숙한 곳의 황량한 상실감 때문에 이리저리 뒤척이더라도 어제까지처럼 옆에서 자고 있을 아내를 의식하며 한심스럽게 당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이 책은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넘어서, 인물들의 감정과 성장, 그리고 삶에 대한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입니다. 서서히 풀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독자로서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야기 전개가 약간 느리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빠른 진행을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부담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싶은 독자,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강력히 추천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