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소설의 두 갈래 길은 베르느와 웰즈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일견 상반된 입장과 미학을 한데 어우르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대개는 어렵기 짝이 없는 일이이라. 그러나 가끔씩 아주 가끔씩 갈라진 숲 속의 두 갈래 길을 동시에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 있다. 바로 90년대 하드SF계의 태두처럼 등장한 영국작가 스티븐 백스터(Stephen Baxter)의 1993년작 안티-아이스(Anti-Ice)이다. 이 작품은 여러가지 상반된 특질들이 한데 뒤엉킨 기묘한 장편이다. 우선 무대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의 유럽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상황은 냉전시대의 세계정세 특히 미국과 구소련의 첨예한 대립이라고 하겠다. 두 번째 특징은 증기기관이 판을 칠 산업혁명기의 유럽에 느닷없이 영원불멸의 에너지 원으로 등장하는 기이한 물질인 안티-아이스에 대한 묘사이다. 그러다 보니 스팀펑크를 읽듯이 아나크로니즘에 가깝게 뒤얽힌 문물과 기술문명의 성격이 강하다. 세 번째 특징은 대체역사물이라는 것이다. 백스터는 하드SF 작가로는 보기 드물게 유럽의 (아니 미국을 비롯한 초강대국들의) 정치정세를 나름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안티-아이스라는 외계에서 떨어진 에너지 원으로 인해 뒤바뀌는 전세계의 미래(또는 상상속의 과거)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서 받는 인상은 세부적인 특징들을 넘어서서, 백스터의 손 안에서 줄 베르느의 경이감이 허버트 웰즈의 사회 정치적 의식과 허술하지 않게 맞물리고 있다는 즐거운 발견이라고 하겠다. 소설은 크리미아 전쟁에 참전한 영국 군인(형)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처참한 편지에서 시작하여 수십 년 뒤 아들을 또 다른 거대한 전쟁의 언저리에 보낸 아버지(동생)의 편지로 끝난다. 그리고 이 두 형제의 삶은 남극 깊숙한 곳에서 18세기 후반 우연히 발견된 안티-아이스의 상용화 및 무기화에 의해서 완전히 뒤바뀐다. 안티-아이스란 초저온에서는 안정상태를 유지하지만, 일정 수준의 열을 가하면 (마치 핵폭탄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외계에서 떨어진 물질이다. 소설은 바로 안티-아이스라는 기가 막힌 에너지가 인류의 (보다 정확하게는 영국의) 손에 떨어졌을때 이를 통해 기술적인 혁신이 어떻게 세계를 뒤바꿀 수 있을지를 다룬다. 바로 그 점에서, 그리고 주인공이 트레블러라는 천재적인 과학자와 함께 놀라운 달세계 여행을 한다는 점에서 줄 베르느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러나 영국이 독점한 안티-아이스는 곧바로 러시아와의 혹독한 장기전을 끝내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이후 트레블러와 주인공 Ned Vicars의 우려는 다시 현실화된다. 세계적인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 정치인들, 보수주의자들, 인종주의자들, 국수주의자들의 입김이 날로 높아가는 현실에서, 트레블러가 생각하는 영원한 에너지원을 통한 인류의 복지향상은 그저 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우울하지만 적확한 진단과 묘사는 그러므로 허버트 웰즈의 그림자를 밟는 듯 하다. 이 작품이 주는 또 한 가지 즐거움이라면, 일견 복잡해 보이는 과학기술적인 설명과 정치철학적인 사색이 청소년 수준에도 걸맞도록 전혀 어렵지 않게 (때때로 소박하게, 유쾌하게, 경쾌하게) 잘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농익은 과학소설 독자들 뿐만이 아니라, 아직 과학소설의 참 즐거움에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 독자층에게도 즐겁게 읽히고, 다 읽은 뒤 사색에 잠기게 할만한 흔치 않은 수작이라고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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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폰 북스 양장상태가 마음에 들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SF도 좋아해서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구입했던 책이예요. 구입한지는 오래되었는데, 지금에야 읽게 되었네요. 이번에 책 정리 차원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첫페이지를 읽고서야 지난번에 한번 읽어보다가 다시 덮었던 책이더군요. -.-;;
![]() 양장본이 마음에 들어요.
![]() 책을 펴면 작가의 약력이 나옵니다.
![]() 양장본에 당연 있어줘야하는 책끈 |
| 참을 수 없을 만큼 재미없었다. 시간여행/대체역사/평행우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브장르이다. 줄거리가 아예 없거나, 짜임새가 허술하거나, 인물이 무색무취하더라도 이야기만 적당히 끌고 가면 그냥 재미있게 읽어준다. 하지만 이 안티아이스는 그 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망스런 소설이었다. 18세기 남극에서 '안티아이스'라는 정체불명의 물질이 발견된다. 이 안티아이스를 이용하여 영국은 철도를 깔고, 부를 쌓고, 전쟁에서도 승리한다. 이 부분만 봐서는 괜찮다. 하지만, 어떻게 이 쓸만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이토록 재미없게 쓸 수 있는 걸까! 텅 비었어! 이런 저런 흥미진진해야 마땅할 일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사건만 벌어질 뿐, 독자를 끌어당기는 이야기가 없다. 인물도 성격의 강조된 부분만 삐죽삐죽 솟아나 있을 뿐 제대로 된 사람으로서의 현실감이 없다.10대 아이돌 밴드 멤버들이 '이쁜이', '터프가이', '똑똑이' 같은 역할 이미지만 가지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이 엔딩은 또 뭐야? |
|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스팀펑크. 안티아이스라는 물질로 19세기에 비약적인 공업혁명이 일어나서 시대상은 19세기, 문명은 20세기식의 묘한 불균형적인 세계는 강대국이 핵을 지배한 현 세계에 대한 풍자이자 쥘 베른식의 모험소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묘한 매력의 소설이었다. 영국이 안티아이스를 독점함으로서 전세계 문제에 개입하여 영국의 입맛에 맞게 세계를 조정하는 모습속에서 소련의 붕괴로 미국 일국체제로 이라크 침공 및 여러나라에 압력을 가하는 미국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신나는 달 모험이후 전쟁과 국제분쟁, 마지막 에피소드가 그렇게 씁쓸하게 느꼈던 것은 아무래도 현재의 현실과 별반 차이가 안나는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
| 이 소설의 출판사 소개문을 읽고 이것이야 말로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 작품일거라고 생각했다. 쥘 베르느의 소설을 좋아하고, 대체역사라는 장르도 좋아하며, 무엇보다 19세기 후반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국인 작가의 소설이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번 읽어본 후의 감상은 그저 '속았다!'는 것 뿐이다. 물론, 출판사의 소개문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각각의 요소가 가질 수 있는 최악의 단점만을 모아놓은 셈이랄까. 쥘 베르느의 매력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난 '19세기적인 요소들을 20세기의 사람이 보면서 당시의 시대를 느끼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과학적 지식이나 편견 - 지금의 시각으로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 을 보며 당시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요소들을 느끼는 즐거움 말이다.(설마 아직도 쥘 베르느의 소설에서 직접적인 지식을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마찬가지로, 난 작가가 창조한 가상 세계의 19세기 사람들이 가상세계의 19세기 적인 과학에 대해 떠드는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가상 세계의 핵심 물질인 안티 아이스에 대한 설명조차도 지극히 '현실의 20세기적인' 과학적 상식과 선이 닿아있는지라 별다른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하물며 우주에서의 활동에 대한 묘사는 말할 것도 없다. 쥘 베르느의 소설이 주는 즐거움은 19세기 당시와 현재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는데, 이 소설의 작가는 현대의 독자들도 19세기 당시의 독자들과 같은 즐거움을 느끼리라고 생각한 것일까? 베르느의 소설은 19세기 중반에 쓰여졌기에 의미가 있는 것일 뿐. 20세기의 작가에 의해 20세기 말에 쓰여진 '베르느 스타일의 소설'은 그저 단순한 흉내내기에 그치고 만 것 같다. 가상 역사라는 부분도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안티 아이스가 무엇을 모델로 했는지는 이 소설을 읽어본다면 금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은유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조악해 구역질이 날 정도다) 또한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안티 아이스와 연결되어 진행되는 역사는 현실의 역사가 진행되어 나가는 모습과 별반 다를것이 없었다. 오로지 등장 인물들이 19세기 말의 사람들이고, 등장하는 지명과 사건이 19세기 말 유럽에서 벌어졌다는 것일 뿐. 심지어는 안티 아이스에 관한 작중 인물들의 고민마저도 20세기의 현실 인물들의 고민을 적당히 짜맞춘 것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독자의 상상력과 흥미를 자극하는 점에서는 차라리 다아시 경 시리즈의 '가상 역사'가 안티 아이스 쪽 보다는 더욱 나았던 것 같다.(어쨌건 가상 역사는 그 자체가 주제가 아니라 '도구'에 불과하다는 관점에서 볼 때 말이다) 이런 마당이니 이 소설이 19세기 후반의 시대상을 제대로 묘사해내지 못하고 있는건 당연하다. 쥘 베르느의 소설이나 셜록 홈즈 등에서 느껴지는 '시대상'이 이 소설에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배경이 그 시대라는 것 뿐. 등장하는 과학도, 인물도, 갈등도 모두 20세기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 뿐이니, 대체 어디에서 '19세기 후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일까? 어쨌건, 내 능력이 닿지 않는 범위에서는 문학적 우수성이라던지 심오한 주제의식 같은게 숨어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역사를 좋아하고, 그 범위 안에서 19세기의 고풍스러운(동시에 현대적인) 시대상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 별볼일 없는 소설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덤 : 역자 해설도 별볼일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모 SF 총서의 해설과는 전혀 다른 티미한 해설은 이 책이 '그리폰 북스'라는 딱지를 달고 나온 책이 맞는지 의심하게 만드니 말이다. 덤2 : 아직 이 책을 살지 말지 망설이실 분들을 배려해 최대한 내용 공개는 피하며 쓰다보니 웬지 알맹이가 없는 감상이 된 듯 하지만.... 그래도 나만 당하는 것은 억울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