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해 전 나는 끔찍한 일을 경험했다. 한여름이었는데 모두가 무더위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에어컨을 틀어댄 모양이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는 전력 수요를 감당해내지 못했다. 몇 시간도 아닌 며칠 동안 전기 없는 삶이 이어졌다. 해가 지기가 무섭게 세상은 캄캄해졌다. 컴퓨터, 텔레비전 등은 공간만 차지하고 앉은 고철 덩어리로 돌변했다. 목욕을 하려 해도 찬물만이 나와 인근 목욕탕을 찾아야 했다. 요리가 버거워 배달 음식을 시켰다가 씩씩대며 계단을 올라온 배달 아르바이트생의 거친 숨소리와 만나기도 했다. 인류가 일군 것들이 그 순간엔 그리 위대해 보이지가 않았다. 만일 더 이상 에너지의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우리의 삶이 얼마나 원시적인 형태를 띠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말 그대로 급격한 발견을 거듭해온 인류다.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이런류의 삶을 우리가 살게 되리라고 기대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전쟁을 치른 사람들은 그날 배를 곯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식량 자체가 양이 많지 않았는지라 냉장고가 있었을지라도 안을 채우는 게 쉽지 않았다. 혹 운 좋게 여분의 식량을 얻은 이들도 나름의 지혜를 활용해 음식물을 저장했다. 냉장고 없는 삶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휴대폰 없는 삶만큼이나 공허하게 느껴지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사실 저자가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과연 그런 곳이 있을까 싶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성장한 내 삶에 냉장고는 당연히 존재해야만 하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콘크리트 바닥만을 밟고 성장한 아이들이 쌀이 나무에서 열리는 줄로만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저자의 시도는 무모한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인류는 냉장고 없는 긴긴 시대를 어쨌건 살아왔다. 저자의 여행은 인류의 오랜 역사와 만나는 것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연을 거침없이 활용했다. 지금 같았으면 물길 위에 집을 짓는 일은 상상조차 못한다. 물줄기를 시멘트로 뒤덮거나 아예 메마르게 만든 후에 건물을 쌓아 올릴 것이다. 냉장고 없는 시절의 물은 과일 등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였다. 수박 따위를 차가운 계곡물에 담가 시원하게 만드는 일은 비단 나들이 떠난 사람들만이 활용할 수 있는 지혜는 아니었던 것이다. 서늘한 바람이 거침없이 드나드는 일명 ‘바람길’이나 볕이 잘 들지 않는 방 등도 훌륭한 저장고였다. 그런 장소에는 곡식이나 과일 등을 보관하기 적격이었다. 건강에 좋은 유산균이 가득한 발효식품인 치즈나 우리나라의 김치, 입맛 없을 때면 찾게 되는 젓갈류도 알고 보면 냉장고 없는 시절 탄생한 식품이다. 오르내리는 기온을 고스란히 이용한 이들 식품은 과학에만 의존해 머리를 굴렸더라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 만드는 것을 보고 따라하고, 만들어진 것을 맛보면서 몸으로 익혀온 손맛이 이들 음식의 핵심이다. 돈만 있으면 뭐든 구입이 가능하다. 도시농업을 향한 관심이 치솟았다곤 하나 농사를 짓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 여전히 대부분은 제 돈을 주고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생산한 제품을 구입해 먹는다. 맛이 없으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오래 전 직접 만들어 먹었던 음식에 깃든 손맛을 이들 음식으로부터 기대해선 곤란하다. 이 맛이 아니라며 옷소매를 치켜 올려 보지만 이미 늦었다. 어떻게 해야 예전의 그 맛을 되살릴 수 있는지를 몰라 전전긍긍한다. 생산과 소비의 유리로 우리는 지난날과의 유대감까지 상실했다. 냉장고가 있기에 이와 같은 소비는 더욱 조장된다. 지금 당장 필요가 없을지라도 저렴하게 구입한다 싶으면 대량으로 구입해 저장해 두게 된다. 이따금 냉장고를 열면 언제 샀는지도 모를 물건들이 즐비하다. 얼마나 오래 되었던지 짓무르고 심지어 곰팡이가 피기도 했다. 저자의 언급마냥 저마다 적정 온도가 다르다. 1~4도 가량을 유지하는 냉장고로부터 신선함을 기대하는 건 금물이다. 무의미하지만 오래 놔둘 수 있는 그 장소가 왜 그리도 신성시 여겨지고 있는지 조금은 의아하다. 미약하나마 여전히 옛 방식을 고수하는 곳들이 있어 행복했다. 그들의 삶에서 약간의 고단이 느껴지긴 했다. 허나 그와 같은 수고스러움 덕에 우리의 식탁이 조금 더 풍성해질 수 있었다. 딱히 내세울 건 없지만 텃밭에서 직접 길러 만든 나물류로 가득한 우리 집 식탁이 조금은 특별해 보이는 날이다.몇 해 전 나는 끔찍한 일을 경험했다. 한여름이었는데 모두가 무더위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에어컨을 틀어댄 모양이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는 전력 수요를 감당해내지 못했다. 몇 시간도 아닌 며칠 동안 전기 없는 삶이 이어졌다. 해가 지기가 무섭게 세상은 캄캄해졌다. 컴퓨터, 텔레비전 등은 공간만 차지하고 앉은 고철 덩어리로 돌변했다. 목욕을 하려 해도 찬물만이 나와 인근 목욕탕을 찾아야 했다. 요리가 버거워 배달 음식을 시켰다가 씩씩대며 계단을 올라온 배달 아르바이트생의 거친 숨소리와 만나기도 했다. 인류가 일군 것들이 그 순간엔 그리 위대해 보이지가 않았다. 만일 더 이상 에너지의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우리의 삶이 얼마나 원시적인 형태를 띠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말 그대로 급격한 발견을 거듭해온 인류다.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이런류의 삶을 우리가 살게 되리라고 기대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전쟁을 치른 사람들은 그날 배를 곯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식량 자체가 양이 많지 않았는지라 냉장고가 있었을지라도 안을 채우는 게 쉽지 않았다. 혹 운 좋게 여분의 식량을 얻은 이들도 나름의 지혜를 활용해 음식물을 저장했다. 냉장고 없는 삶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휴대폰 없는 삶만큼이나 공허하게 느껴지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사실 저자가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과연 그런 곳이 있을까 싶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성장한 내 삶에 냉장고는 당연히 존재해야만 하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콘크리트 바닥만을 밟고 성장한 아이들이 쌀이 나무에서 열리는 줄로만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저자의 시도는 무모한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인류는 냉장고 없는 긴긴 시대를 어쨌건 살아왔다. 저자의 여행은 인류의 오랜 역사와 만나는 것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연을 거침없이 활용했다. 지금 같았으면 물길 위에 집을 짓는 일은 상상조차 못한다. 물줄기를 시멘트로 뒤덮거나 아예 메마르게 만든 후에 건물을 쌓아 올릴 것이다. 냉장고 없는 시절의 물은 과일 등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였다. 수박 따위를 차가운 계곡물에 담가 시원하게 만드는 일은 비단 나들이 떠난 사람들만이 활용할 수 있는 지혜는 아니었던 것이다. 서늘한 바람이 거침없이 드나드는 일명 ‘바람길’이나 볕이 잘 들지 않는 방 등도 훌륭한 저장고였다. 그런 장소에는 곡식이나 과일 등을 보관하기 적격이었다. 건강에 좋은 유산균이 가득한 발효식품인 치즈나 우리나라의 김치, 입맛 없을 때면 찾게 되는 젓갈류도 알고 보면 냉장고 없는 시절 탄생한 식품이다. 오르내리는 기온을 고스란히 이용한 이들 식품은 과학에만 의존해 머리를 굴렸더라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 만드는 것을 보고 따라하고, 만들어진 것을 맛보면서 몸으로 익혀온 손맛이 이들 음식의 핵심이다. 돈만 있으면 뭐든 구입이 가능하다. 도시농업을 향한 관심이 치솟았다곤 하나 농사를 짓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 여전히 대부분은 제 돈을 주고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생산한 제품을 구입해 먹는다. 맛이 없으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오래 전 직접 만들어 먹었던 음식에 깃든 손맛을 이들 음식으로부터 기대해선 곤란하다. 이 맛이 아니라며 옷소매를 치켜 올려 보지만 이미 늦었다. 어떻게 해야 예전의 그 맛을 되살릴 수 있는지를 몰라 전전긍긍한다. 생산과 소비의 유리로 우리는 지난날과의 유대감까지 상실했다. 냉장고가 있기에 이와 같은 소비는 더욱 조장된다. 지금 당장 필요가 없을지라도 저렴하게 구입한다 싶으면 대량으로 구입해 저장해 두게 된다. 이따금 냉장고를 열면 언제 샀는지도 모를 물건들이 즐비하다. 얼마나 오래 되었던지 짓무르고 심지어 곰팡이가 피기도 했다. 저자의 언급마냥 저마다 적정 온도가 다르다. 1~4도 가량을 유지하는 냉장고로부터 신선함을 기대하는 건 금물이다. 무의미하지만 오래 놔둘 수 있는 그 장소가 왜 그리도 신성시 여겨지고 있는지 조금은 의아하다. 미약하나마 여전히 옛 방식을 고수하는 곳들이 있어 행복했다. 그들의 삶에서 약간의 고단이 느껴지긴 했다. 허나 그와 같은 수고스러움 덕에 우리의 식탁이 조금 더 풍성해질 수 있었다. 딱히 내세울 건 없지만 텃밭에서 직접 길러 만든 나물류로 가득한 우리 집 식탁이 조금은 특별해 보이는 날이다. |
|
소비 사회에서는 오늘 사고 내일 버리고 내일 또 사고 모레 또 버리는 비효율적인 구매 방식을 부추긴다. 소비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p.70 책에 나오는 파사타(passata, 이탈리아식 토마토 소스)를 만들어 보기 위해 산 토마토를 냉장고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 식탁에 올려두었다. 처음보다 빨개진 토마토는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다. 식재료 자체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보관 방법을 고민하여 디자인 된 다양한 선반들을 보며 절로 감탄이 나온다. |
|
퇴근길에 주린 배를 안고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오는 길에 자주 슈퍼마켓에 간다. 그날 저녁으로 해 먹을 식재료를 포함하여 이것저것 당장 먹지 않을 것도 함께 주섬주섬 산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막 사온 재료들을 활용해서 음식을 해 먹고 남은 재료들은 바로 냉장고로 직행. 그 후 몇몇 식재료들은 상할 때 까지 다시 들여다보지도 않고 결국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자취를 시작한 후에는 항상 이런 패턴의 삶이 반복이다. 그래서 차라리 배달 음식을 먹거나 외식을 자주 하지만 요즘에는 위생 때문에 조금 피곤해도 내가 직접 해 먹는게 낫다는 판단으로 매일 매일 요리를 한다.
이런 내가 한 번도 냉장고에 대해서 의심해 본적이 없다. 되려 냉장고는 인류가 살아온 이래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들 중의 하나라고 여겨왔다. 학생 때 소풍 갔던 경주에서 봤던 석빙고 또한 냉장고의 원시적인 상태가 아니던가? 무해백익(?)하다고만 여겨온 발명품 중의 하나인 냉장고에 대해서 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책의 저자를 이전에 SBS스페셜에서 본 적이 있다. 짧은 분량으로 책에 소개된 여러 음식 보관법을 보았었다. 획기적이라고 여겼었다. 그 뿐이었고, 그 후에도 나는 무조건 음식은 냉장고에 보관해야 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살아오고 있었다. 냉장고가 발명되기 전의 보관법은 불가피한 보관법이기 때문에 최대한 음식을 빨리 상하지 않게 할 뿐, 냉장고에서의 보관보다는 빨리 상할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정답은 알 수 없다.
몇몇 채소의 경우는 오히려 냉장고에서의 보관이 신선도를 떨어뜨린다고 한다. 몰랐던 사실이다. 가장 놀랐던 것은 바로 '계란'이다. 생각해보면 마트에서 계란을 판매할 때 냉장고가 아닌 실온에 보관하면서 판매한다. 그런데 누구나 집에 가져온 이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냉장고에 보관한다.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하기 전까지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음식을 오랫동안 먹기 위해서 노력했는지 여러 발효 음식을 보며 알 수 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와 비슷한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바로 여기서 인류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지금은 이런 지혜를 담은 역사가 냉장고라는 문명의 결과로 대체되어 버렸다. 잠시나마 이 책을 통해서 지금까지는 생각해 볼 수 없었던 음식 보관의 지혜와 역사, 여러 나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