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엿뉘엿 황혼이 검붉게 물드는 인생의 시간은, 작가가 노래하듯 성장의 진통을 겪던 어린 시절의 그 아릿하고 시린 기억들이 아름답고, 슬프고, 또한 설렘이 교차하는 안타까움인가보다.‘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버린‘파우스트’를 자신에게 비유하였듯이 젊은 날의 기억인 이 소설을 위해 작가는 자신의 악마인“시꺼먼 놈”에게 영혼을 저당 잡혀야 했을 만큼 그 꽃 같은 시절로의 회귀는 간절함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었던 것 같다.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유년시절의 기억들이 에세이처럼 펼쳐지던『해산 가는 길』이라는 작품의 연작으로서 『보리 닷 되』는 인생길의 선택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성년 이행기의 자전적(自傳的)소설이다. 작가의 문단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신춘문예 당선작인, 단편소설「목선」이 탄생하기까지의 젊은 날의 치기와 오기에서부터 실패와 성공에의 갈등, 그리고 영원히 계속 될 것 만 같던 좌절의 운명을 교정하는 집념의 시간들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흐른다. 가부장제의 전통, 병영국가의 획일적 군사문화, 겉보리 닷 되로 상징되는 가난한 삶의 끈적거림에 대항하고, 애틋한 사랑과 세속적 성공이 소설가 시인이 되고자하는 청년의 삶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친다.
빗나가기만 하는 형의 그릇됨을 방기하여 장자세습의 전통에 저항하는 둘째의 심리가 비밀스럽게 고백되고,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학교 악대원이 되어 엄격한 획일성을 강요하는 교련시간을 피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본성을 엿보게 된다. “나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거예요.”라는 소박한 꿈은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과는 괴리된 실패의 삶으로 이해되던 시절에 아버지로부터도, 연인에게서도, 형제로부터도 외면되는 것이었으니, 집안의 일손을 돕기 위해 쟁기질하고 김을 뜯어야 하는 문학청년의 번민은 자신의 현실이 과연‘성공을 준비하는 것인지, 실패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 시름을 깊어만 가게만 한다.
한편 소설에서 주인공‘승원’은 오금의 고질적 피부질환으로 수시로 긁어대는데, 바로 이“오금의 환부”는 긁어대어 진물이 나고, 딱지가 앉아 걸음에 불편을 주는 고통이지만, 마구 긁어대면 가려움과 아픔을 한 순간에 덮어버리는 환장할 것 같은 쾌감이기도 하듯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삶의 역설이자 인생의“모순된 슬픈 거래”로서, 스스로 극복해야 할 장애로서 따라다닌다. 그래서 이 오금의 가려움증이 낫게 될 때, 비로소 성장의 통증은 치유된다.
“소설가의 말로는 좋지 않다”는 아버지의 반대에 저항하여 가출하고는 머슴살이의 반복되는 노동에서 언덕위로 돌을 나르는 시시포스의 영원한 형벌을 생각하지만, 바로 이 영원할 것만 같은 동어반복의 고통에서 탈출시키는 것은 자신일 뿐이라는 깨달음, 그리고“오직 혼자만의 지혜와 판단과 힘으로 이를 갈면서 올바른 물길을 찾아 배를 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바닷가 거룻배 위의 교훈처럼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이 삶임을 어느 순간 우린 터득한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원고지 팔십팔 매의 단편소설「목선」이 게재된 신문을 아버지 영정 밑에 걸면서, “아버지 제 고집이 이겼습니다.”라는 주인공의 울음석인 자부심의 목소리가 짠하게 울려온다. “실패를 준비하는 삶을 기록하는 것”이 진짜 소설 아닌가? 하는 주인공의 외침처럼, 우린 누구나 다 이렇듯 자기만의 부대낌과 통증을 앓으면서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이제 고향 장흥으로 돌아가 해산 토굴마당에서 소설가로서 그의 문학적 뿌리가 된 꽃 같은 시절의 추억을 들려주는 이 소설에서 진정“파릇파릇 새싹들”이 움트는 것을 확인케 된다.
“시쓰기와 소설쓰기에 확실히 미쳐버린다는 조건”으로 영혼을 맡기겠다는 계약을 한 작가처럼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면 난 무엇을 약속 할 수 있을까? 어머니의 품에 안겼을 때 맡아지던 유향, “곡신(谷神)의 향기”라 했던가? 아름답게만 기억되는 그 철없던 어린 시절이 문득 그리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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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닷 되 | 한승원
글쓰기 사십여 년, 우리시대의 소설가가 전해주는 삶에 대한 깊은 울림
문학에는 문외한인 필자가 저자의 글을 만난 것은 어느 일간지의 칼럼에서였다. 미사어구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글자 하나하나에서 우러나오는 그 찰진 맛에 사로잡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저자의 여러 작품 중 제목이 눈에 띄는 그의 성장소설 한 권을 만났다.
저자인 한승원 작가는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고향인 전남 장흥의 율산 마을에서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한 작품들을 꾸준히 써오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해일>, <동학제>, <아버지를 위하여>등 다수가 있으며 지난 95년 서울을 등지고 전남 장흥 바닷가에 내려가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이 책은 1997년 출간된 <해산 가는 길>을 잇는 성장소설로, 등단 사십 년을 넘긴 작가의 진솔한 자전적 소설이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승원은 골목길에서 종종 보곤 하던 군수 집 딸 초영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녀의 마음을 그에게로 쏠리게 하고 싶지만 방법은 오리무중. 시와 소설을 쓰며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던 승원이지만 초영의 오빠 이주성도, 친구인 문영철도 그에게 그 꿈을 포기하라고 말한다. 승원의 감각이 예민하지 않고 작가적 자질도 타고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가 힘들어할 때마다 크고 탐스러운 유자를 보았던 태몽을 이야기하며 그를 격려한다.
승원은 교련시간을 피하기 위해 든 악대부에서 클라리넷을 불게 된다. 그런 승원을 못 마땅 해하는 엄한 아버지와 보듬어주는 자애로운 어머니. 점점 엇나가던 형은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동생에 대한 열등감으로 학교에 자퇴서를 내고 하사관학교에 들어가 버린다.
한편 초영의 동생 주인을 통해 승원에게 책을 빌려주며 둘의 사이가 진전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미래가 불투명해 보이는 그에게 실망하고 곧 연락을 끊는다. 이후 서라벌예대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와서 자신만 바라보는 한 여자와 결혼도 하게 된 승원은 국민학교 교사가 되어 평범한 나날들을 보낸다.
그해 늦은 여름의 어느 날 초영의 동생인 주인이 찾아와 초영의 소식을 전하고, 그는 문득 삭발을 하고 한 자 한 자 써내려간다. 마침내 승원은 단편소설 「목선」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 <출판사 서평>
‘나이 일흔 살이 넘어선 지금도 매일 밤 꿈에, 내 왼손바닥의 운명선의 머리가 검지의 한가운데를 타고 손톱 밑까지 지어 올라가도록 하기 위하여, 예리한 바늘로 쪼고 또 쪼아 미세한 살갗 한 점 한 점을 걷어내고 뜯어내고 있다. 운명을 바꾸어 놓기 위하여.’라는 작가의 마지막 말에서 느껴지는 가슴 깊은 곳의 울림은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인생이라는 무거운 돌을 짊어 진채 또다시 올라가야만 하는 ‘시지프스의 꿈’을.
“내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꽃시절의
자취방은 잉크가 얼도록 추었고 배가 고팠다.
그랬을지라도, 그 시절 앞집의 처녀가 밤에 몰래 그윽이 건네준 김치 한 포기,
살 한 바가지로 황홀했는데
그때 나는 몰랐었다. 그 자리에 더 오래 머무르면서
향 맑은 끌과 꽃가루를 더 많이 모았어야 했는데,
그 시공을 한시라도 빨리 졸업하고 떠나 새 세상에서 얼른
어른이 되어 살아가려고 덤비었다.
덤벙덤벙 흘러간 세월의 풍화로 말미암은
깊은 주름살과 희긋희끗한 머리털인 채로 만난
연초록의 새싹세상, 나의 언덕에 바야흐로 샛노란
수선화 산난초꽃 천리향곷 들이 흐드러졌는데,
그 향기 속에서 그 꽃시절을 되돌아보니,
아물아물 안개 속의 음화 한 폭이네.
아, 누가 다시 가져다줄 것인가,
한 굽이 한 굽이,
그 처녀가 남몰래 가져다준 김치 한 포기 쌀 한 바가지 같은
그 슬프면서도 설레던 시의 편린들을.” - <본문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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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리 닷 되>는 저자 한승원 작가의 성장 소설이다. 그가 소설가로 데뷔하기까지의 여정이다. 그렇다고 문학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첫 사랑에 아파하고, 글쓰기에 혼을 빼앗긴 '새파란' 청춘을 그렸다. 아파하고 고민하는 청소년이 읽으면 좋겠다 싶은 책이다. 어른은 이 소설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고등학생 승원은 소설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와 주변 친구들은 그 꿈을 포기하라고 했다. 한 마디로 소질이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만 태몽 얘기까지 하며 승원을 격려했다. 그즈음 승원은 군수 집 딸 초영을 짝사랑했다. 그러나 초영은 미래가 불확실한 승원을 떠났다. 승원은 서라벌예대를 졸업하고 한 여자와 결혼해 초등학교 교사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설가의 꿈을 버리지는 못했다. 심혈을 길울여 쓴 단편 소설 <목선>이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결국 저자는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줄곧 자신을 '실패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그렸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고시 공부를 하든, 농사를 지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성공했을 터였다. 공무원이 되었든, 부농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승원은 이런 삶을 포기하고 소설 쓰는 일만 생각했다. 돈벌이가 시원치 않은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 평생 '실패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살았다고 할 수밖에… 현재 소설가의 삶을 사는 저자는 여전히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여길까? 아니면 이제는 '성공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을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마지막장을 덮었다. 저자가 1939년 생인데다 고향이 전남 장흥인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은 '구두'가 아니라 '고무신'에 가깝다. 그렇지만 투박한 사투리와 절제된 표현은 독자를 감동시킨다. (책 속으로) "초영은, 진주조개 양식하는 어부가 진주조개를 얻기 위하여, 조개 속에 생채기를 만들고 그 속에 이물질 하나를 넣어놓듯이, 내 영혼 속에 생채기 하나를 만들고 이물질 하나를 넣어놓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156쪽) "아따, 그래라. 따지고 보면 책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로 싼 보물이다." (198쪽) "'땅거미'라는 말은 '땅금'이란 말에서 온 것인데, '금'은 신을 뜻한다. '땅거미 내린다'는 것은 '지신(地神)이 내린다'는 것이다." (199쪽) "부엌을 향해 돌아서는 그녀의 눈길이 나에게로 날아왔다. 눈길이 마주치자마자, 그녀는 재빨리 눈길을 거두어갔다." (226쪽) "그 실연보다 더 큰 병이 들었어요. 문학병 말이요." (244쪽) "눈으로 남풍이 날아들었다. 그 바람에 먼지가 섞여 있는 것도 아닌데 내 눈에서는 눈물이 솟았다. 눈물에 논둑이 굴절되었고, 나는 똑바로 걸을 수가 없어 비틀거렸다." (246쪽) "모두들 성공을 준비하는데, 나 혼자만 실패를 준비하고 있다." (251쪽) "사람하고 동물하고 다른 점이 무언지 아느냐. 사람은 자살할 줄 안다는 것이고, 짐승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25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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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의 내모습을 들여다보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동시에 감추고싶지 치부를 들켜버린것같은 날카로움이 몰려오곤 하는데 그렇게 지금의 내모습을 완성해갔던 시간들은 미완성이었기에 순수했고 꿈과 이상을 쫓아 열병을 앓았으며 아련한 사랑에 몸살을 겪었었다
보리 닷되는 고향인 전남 장흥의 율산마을 바다를 배경으로 꾸준한 작품활동을 펼치고있는 한승원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었다. 목선이라는 문단데뷔작이 왕성되기까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던 작가의 길을 걷기위해 힘들게 달려왔던 시간들로 김을 뜯고 쟁기질을 해야만했던 빈농의 아들이 겪어야만 했던 가난과 치부가 여지없이 드러나고 성공을 꿈구는 사람들 사이에서 실패를 예약해야만 했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번민과 고뇌가 그득했다.
집안의 모든 기대감과 동시에 얼마되지않을망정 집안경제의 기득권을 차지한 형이 존재하는 장자세습의 전통에서 국민학교에서 멈출뻔한 둘째 아들의 중학교 진학은 감수해야만하는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자신으로인해 하숙을 하지못한 형의 식사수발은 물론이요 모든 질타와 질시를 감내해야만했고 많은 비리들을 눈감아줘야만했다.
게다가 예나 지금이나 취직이 잘되는 공부가 있고 직업이 있기마련인법,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은 그 속에서 한참이나 비껴가있었다. 더군다나 친구로부터 운명선이 검지나 중지사이 계곡으로 흘러버려 소설가나 시인이 되기는 벌써 다 틀려버렸다는 손금까지 들은마당에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자신의 꿈은 더욱 주저앉을수 밖에 없었다.
때만되면 고질적으로 찾아오는 습진이 혹시나 문둥병이 아닐까 두려움에 떨었던 시기, 어기없이 찾아온 풋풋한 첫사랑에 마음이 설레었고 아팠으며, 함께 음악을 하고 고민을 나누었던 친구의 발전에 위축되는가하면 아버지의 완고함과 독단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해지기만했다. 하지만 그에겐 엄청큰 유자를 보았다는 태몽을 들려주며 그런 자신을 위로해주는 엄마또한 있었다.
금새 어떻게 될까싶어 아슬아슬했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을 내리 부모님곁에서 김을 뜯고 농사일을 거들던 승원은 성공으로 치닫는 첫사랑 초영의 모습에서 자신을 담금질한다. 글쟁이가 되는것을 끝까지 반대한 아버님을 상대로 몸과 영혼을 팔며 시작한 머슴생활에서 그옛날 성공이 아닌 실패를 준비하는 자라 초영이 했던말을 끄집어 낸것이다.
그리고 다시금 달렸다 또한번 멈추었다. 그리고 결국 목선이라는 작품으로 문단데뷔의 꿈을 이루었다. 그렇게 멀었던 길 험난했던길 불가능이라 모든 이들이 말했던 길 하지만 한시도 잊지않았던 그 꿈은 결국 이루어졌다. 앞으로 무엇을할까 생각하는것만으로도 슬퍼지고 눈물이 나는 시기, 무엇을 해야할지 암담하게 느껴지는 불투명한 미래가 내내 무겁기만 한 청소년기 그 구간을 지나는길은 결코 순탄할수가 없었지만 아픈만큼 성숙해지고 겪은만큼 풍부해지는 삶을 보았다.
국어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번을 베껴써야만 했고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많은이들의 아픔을 겪었고 쌀한톨 섞이지않은 꽁보리밥으로 허기를 달래야만했던 시절을 통과하고 꿈을 이루어가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 살아있던 소설가로서의 지극한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 바다가 그리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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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닷되]는 농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정신과 육체를 키워 청년이 되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성장을 이룬 작가의 자전적 회고담이다. 제목으로 삼은 '보리닷되'는 작가에게 참 많은 사연과 감정이 복합적으로 숨어있는 말이다.
장남의 기득권을 넘치게 누리는 큰형이 빈손으로 용돈타박을 하며 고향집을 나서 자취방으로 향할 때, 군소리조차 못하고 형을 뒤따라가는 가난한 농군의 차남 역을 맡은 소년의 어깨에 지워진 것이 바로 쌀 닷 되, 보리 닷 되이다. 용돈이 궁한 때는 쌀 닷 되를 팔아 다시 보리 닷 되로 바꾸고 나머지 돈을 용돈으로 쓰는 생활을 한다. ‘보리닷되’라는 말에는 좀처럼 씹어지지 않고 입안을 맴돌던 꽁보리밥처럼 좀처럼 잊을 수 없는 궁핍하고 힘들었던 학창시절이 숨어있다.
‘보리닷되’라는 말은 또 가난한 현실에 어울리지 않게도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소년의 마음 속에서 싹을 틔우고 있는 감수성과 낭만을 의미한다. 학생들에게서 보리닷되 씩을 모아 사들인 악기로 운영되는 취주악대반에서 소년은 점심을 굶은 빈속으로 클라리넷을 불며 행복을 느낀다. 친구들이 ‘보리닷되!’를 등 뒤에서 외치며 그의 현실성없는 낭만을 희롱하지만, 그에게는 꽁보리밥같이 깔깔한 현실을 꾹꾹 힘주어 씹어 삼키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소년은 문학을 꿈꾼다. 그 꿈이 하도 간절해서 집을 나가 머슴살이를 하기도 하고, 습작을 들고 작가를 찾아가기도 한다. '그 도깨비와 나의 거래는 그날 밤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내 영혼을 그 시꺼먼 놈에게 저당 잡히고 쓴 소설이다.(p.267 작가의 말)'라며 작가는 마치 도깨비에게 저당 잡힌 영혼으로 쉽게 글을 풀어쓴 듯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도깨비에게 영혼을 저당 잡혀서라도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으며, 그만큼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간절했다는 말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요즘 젊은 작가들의 글에서 느껴지는 넘치는 끼와 적어도 먹을 것 걱정은 없는 삶의 풍요가 없다. 대신 풋내나는 보리향기가 있다. 씹으면 톡톡 터지며 느낌이 살아나고,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오던, 겨울 눈을 맞으며 자라나 서글픈 맛이 나던 그 알곡의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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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티비에서 했던 <육남매>라는 드라마를 즐겨봤었다. 가난한 집의 여섯남매와 엄마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장남부터 시작해서 젖먹이인 막내까지. 먹을것이 없어 매번 먹을걸로 형제들은 다퉈야했고, 장남은 다른 식구들 생각에 어깨부터 무거웠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하고...
엄마가 그랬다. "엄마 학교 다닐때는 눈도 무릎까지 쌓였는데, 거길 뚫고 학교를 왔다갔다 했다"라고. 또 "너네는 편한줄 알어. 엄마가 다 해주잖아. 그전에 할머니는 무슨 일만 있으면 엄마를 시켰어. 그래서 엄마가 너희한테 일을 안 시키는거야."라는 말씀도 자주 하신다. 엄마는 정말 급하거나 손이 많이 가지않는 일이 아니면 우릴 부르지 않는다.
부모님 세대와 우리세대가 다르고, 할머니 세대와 엄마 세대가 다르다. 정말이지 시간은 너무 빠르고, 그에 따라 환경도 걷잡을 수 없이 변해간다. 분명 몇년전만 해도 주위에 논이랑 밭이 많았는데(우리 동네는 시골~) 어느새 거기에 대형마트들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많아졌다. 길가에 코스모스도 맣았건만 특정 지역에 가지 않으면 더이상 볼수도 없다. 이런건 참 안타깝다. 사람이 살기 좋아지는건 좋지만 그에 따른 환경은 보살피지 못하는것 같아서 말이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는다. 가난했던 시절, 형과의 불화. 집안을 생각했기에 바닷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겨울에 거센 바람을 맞아가며 김을 따오고,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기도 했다. 내게는 그저 드라마같은 이야기다. 자신과의 싸움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지만 책에서 나온 풍경들은 낯설기만 하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자주 나오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 고등학교만 마쳤던 그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사랑했던 여자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녀는 정말 현실적이었다. 남자는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좋은 곳에 취직해야한다고. 마음은 같았으나 방향이 달랐다. 그래도 그는 꿈을 굽히지 않았다. 노력해서 당당하게 등단하여 그토록 원했던 소설가가 되었다.
내꿈은 두가지였다. 학교 선생님과 소설가. 나는 글쓰는 쪽에는 재주가 없었다. 손재주도 없는데, 글재주도 없고, 하물며 창의성도 떨어진다. 지금도 책을 읽고 난 후에 서평을 쓰려면 얼마나 헤매는지 모른다. (무슨 말로 시작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책을 많이 읽으면 글도 잘 쓴다고 하는데 책을 너무 빨리 읽는것만 배웠나보다. 그안에 있는 느낌들을 살리지 못하니. (그래도 좋아하는 책은 몇번이고 읽는다.) 학교 선생님은... 시험의 문턱이 높았다. 현장에 나와보면 그 공부가 마냥 쓸모있는건 아닌데 말이다. 선생님들을 보면 저 사람보다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선생님들이 애들한테 하는거 보면 깜짝 놀랠거다) 아직도 꿈은 버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길을 가고 있는것도 아니지만. 마음과 행동이 따로노는 나는 실천이 안된다.
몇십년전의 그곳을 보았다. 내가 살지못했던 그 날들을.(타임머신이 있는것도 아닌데. 언제 겪어봐?) 다른건 경험하고 싶지 않은데, 아직 때묻지 않은 풍경들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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