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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원자폭탄 투하 대상국이었다는 사실만 부각시키고 있네요. 폭탄이 떨어져서 미국에 다시 가지 못하고 일본에서 가난하게 살아야 했다는 대목에서는 저도 모르게 분노가 솟았습니다. 또, 미국에선 일본이 그립고 일본에서 미국이 그립다는 부분은 멋을 부리긴 했지만 결국 미국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일본의 미묘한 태도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전반적으로 또 다른 요꼬이야기로 일본인을 미화시킨 스토리가 상당히 거슬렸습니다. 제가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네요.어떻게 이런게 강력 추천이 되었을까요. |
| 평소 그림책만큼은 독자 연령대의 구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이가 선호하는 책과 어른이 선호하는 책이 구별되는 것이 현실이더라도. 그래서 <할아버지의 긴="" 여행="">을 보면서 이건 어른이 더 좋아하겠는걸 하는 생각으로 옆에 놓아두었다. 초등 2학년인 작은아이가 쓰윽 한 번 보더니, 한 번 더 봐야겠다며 혼잣말을 하곤 곰곰 앉은자리에서 두 번을 본다. "엄마 이 책을 보니 여행을 가고 싶어요...아, 아니,,,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네가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 말이지?" "네 바로 그거 에요..." 그림책의 신비한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얘야 인생이란 것은 말이지...여행과도 같은 것이거든...한 번 왔다가 한 번 가는 것이 인생이지만...어쩌구...' 아이에게 어른의 말을 들려주고 있는 어른을 상상해보라. 그 옆에 하품하는 아이가 보인다. 그림책은 논리적으로 얘기하기 힘든 인생의 철학적인 부분을 그림과 간략한 글로서 내보인다는 측면에서 유아동기의 철학책이라고 할만하다. <할아버지의 긴="" 여행="">은 우리들의 긴 여행이라고 제목을 바꿔도 무방하리만큼 인생의 보편적 진실을 다루고 있다. 그 배경이 일본과 미국이고 일본인 할아버지와 손자라는 구체적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다루고 있기에 시대와 국적을 떠나 남녀노소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그림책이다. 할아버지가 동경하는 새로운 세계로의 지향과 고향으로의 회귀본능은 인간이 가진 양면성이다. 떠나고 싶으면서 안주하고 싶은, 그래서 인간들은 한 곳에 붙 박혀 살면서도 끊임없이 일탈을 꿈꾸는 것이겠이라. 그런 인간의 내면적인 갈등을 강렬한 색의 대비나 흐트러진 형태감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잔잔한 색감과 단순화된 형태를 사용해서 풍부한 울림이 있는 그림으로 표현했다.그리고 그림마다 테두리가 있는데 그것이 마치 액자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액자 속의 그림을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고 그림책 안의 공간을 무한대로 상상하게 한다. 책 속 그림 안의 그 무한한 공간감이 그림책의 특성 중에 특성이라고 한다면 <할아버지의 긴="" 여행="">은 그 여행 안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우리가 할아버지의 여행에 동참하는 순간 세상사의 순환고리 안으로 빨려들어간 느낌을 받게 된다. 단순한 기법에 단조로운 색채의 그림이건만 인생의 유의미한 긴 여행의 느낌을 풍부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 느낌을 주는 이유는 파노라마 같은 인생의 펼쳐짐... 그 곳에 자연과 인간, 문명이 공존하는 역사의 장면 장면을 담담히 펼쳐 놓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할머니가 손자에게 읽어준다면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인생의 의미를 되돌려 보며 위로 받을 수 있을 것 같고, 아이는 아이대로 미래를 꿈꾸게 될 것 같은 그런 책이다.할아버지의>할아버지의>할아버지의> |
| 이십대 대부분을 동해바다 시골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새벽마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보며 벅찬 감동을 느꼈지만 그것은 잠깐일 뿐 도시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이십대 후반에 서울로 왔습니다. 복작대는 서울에서 사람들은 이제 피하고 싶은 장애물입니다. 자연과 벗하며 자연으로 살다 아주 가끔씩만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시골에서 살 때는 도시에서 살고 싶고, 도시에서 사는 지금은 시골로 가고 싶은 것입니다. 비단 시골과 도시만 그런 것이 아님은 『할아버지의 긴 여행』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젊은이였을 때 고향인 일본을 떠나 삼 주 동안 배를 타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닿았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끔은 여러 날 걷기도 하면서 미국 땅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할아버지는 캘리포니아를 가장 사랑했습니다. 고향에서 혼인을 했지만 샌프라시스코에서 가정을 꾸렸습니다. 딸이 꽤 자랐을 때 고향 생각을 잠재울 수가 없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린 시절의 산과 강을 다시 보고, 옛 동무들과 함께 즐겁게 웃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캘리포니아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그곳의 산과 강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여행을 한번 다녀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전쟁이 터졌습니다. 결국 다시는 캘리포니아를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청년이 다 되어 혼자 고향을 떠나서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갔습니다. ‘나’도 할아버지가 몹시 사랑하셨던 그곳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줄곧 그곳에 살면서, ‘나’ 역시 딸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나’도 어린 시절의 산과 강이 몹시 그립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손자에게로 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이 나라에 있으면 저 나라가 그립고, 저 나라에 있으면 이 나라가 그리워진다는’이야기를 보며 채울 수 없는 그리움을 느낍니다. 면면이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정지된 사진 같은 그림들로 표현한 기법이 경탄할 만합니다. 그러고 보면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은 인간 존재의 한 본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갖는 어쩔 수 없는 그리움. 그리하여 여전히 나는, 그대가 그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