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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 달 전에 최고조조 님의 이벤트를 통해 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교단에서 지도하면 좋은 옛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인 줄 알고 펼쳤다. 그런데 몇 쪽을 읽어보니 딱딱한 이론서인 듯싶어서 다시 덮어 버렸다. 그러다가 방학을 맞이하여 어제 다시 도전을 한 것이다.
처음 30여 쪽까지는 힘겨웠다. 내용이 어렵다기보다는 이 책에 대해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차 빨려들기 시작해서 50여 쪽부터는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누구나의 마음에는 두 개의 우주(외부현실과 내면현실,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꿈)를 지니고 있는데 옛이야기(동화)는 이 두 개의 우주를 연결하는 통로라는 내용이다. 어린이들은 비현실적인 옛이야기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꿈(무의식, 내면현실)의 세계를 통해 옛이야기의 내용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그런 꿈과 옛이야기(동화)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 책에 든 예문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을 세 가지만 들어 보겠다.
첫째는 '일곱 살 난 여자 아이의 꿈'이다. 내용은 소녀의 꿈속에서 뱀이 동생을 죽이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자 엄마가 뱀을 막으며 싸웠고, 자기도 엄마와 함께 괴물과 싸웠다고 한다. 그런데 아빠는 등장하지 않았다. 꿈속에서도 회사에 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내에게서 꿈의 내용을 들은 아버지는 당연히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존재가 자녀의 꿈에서까지 부재라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그 뒤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현실에서 뱀이 동생에게 덤벼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빠의 부재라는 현실이 아이에게 그런 꿈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내용을 꿈에서 경험하고 있는 아이들은 옛이야기나 동화의 비현실적인 내용을 현실로 인식하면서 흥미를 느끼는 것이 당연하고, 옛이야기는 옛 사람들의 꿈의 표현이라는 것에 무릎을 쳤다. 그렇다면 용궁에서 환생한 심청이나 홍길동의 도술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겠는가?
둘째는 '학교로 간 사자'란 동화이다. 내용은 학교로 가기를 싫어하는 소녀가 있었는데 언제나 느즈막하게 집에서 나섰다는 것이다. 어느 날 골목에서 사자가 나와서 그 날도 지각을 했다. 소녀와 사자는 친구가 되었고 함께 학교로 가서 하루 종일 생활했다.
골목에서 사자가 나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더구나 함께 학교에 가서 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현실감이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황당한 내용을 꿈에서 경험하는 아이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에 가기를 싫어하는 소녀의 마음이 그런 사자를 만들어 냈고, 친구를 괴롭히는 남학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이 사자를 친구로 삼았다는 것이다. 즉 사자는 옛이야기나 작품 속에서는 산신령이나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으로 형상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아이가 부모를 죽이는 꿈'이다. 꿈속에서 부모를 죽였을 경우에 아이들은 죄의식에 빠지고, 혹시 부모가 꿈의 내용을 들었다면 '저 놈이 뭐가 되려고?'하는 마음에 거부감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자기의 자녀가 이런 꿈을 꾸었을 때는 기뻐하면서 축하를 한다는 것이다. 그 꿈은 아이가 비로소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할 힘을 갖게 된 것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마치 소녀가 초경을 치름으로써 육체적으로 성숙한 여인이 된 것과 같다고 할까?
저자는 '꿈이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우주의 정령이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심지어 악몽까지도 자신을 지키려는 무의식 속의 정령이 보내는 무언의 계시라는 것이다. 그 말에 공감이 갔다.
저자는 꿈을 꾸고 나면 그 내용을 반드시 기록을 한다고 한다. 꿈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성찰을 하거나 명상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습관이라고 본다. 꿈을 통해서 어떤 암시를 받을 수도 있고, 작품의 소재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고단하거나 어떤 어려움이 있을 경우에 꾸는 꿈의 소재가 있다. 그것은 학창 생활과 군대 시절에 관한 내용이다. 꿈속에서 나는 학생이기도 하고, 군인이기도 하였다. 물론 꿈의 내용은 나의 실제 경험과는 관계없고, 때로는 황당할 때도 많다. 어는 때는 다시 소집되어서 군대에 가니 군대 시절의 내무반 동료들이 늘근 나를 예전 그대로 대해주는 꿈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마음속에 있는 우주의 정령이 내게 보내는 끊임없는 신호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어떤 전율도 느껴졌다.
이 책은 교사로서 옛이야기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였고, 개인적으로 묘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혹시 이 책을 펼치려는 독자가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좀 지루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50쪽까지만 읽어 보라. 틀림없이 그 이전에 어떤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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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책만 한켠에 사다놓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나름대로 모범을 보인다고 아버지로서 책도 열심히 읽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전히 책읽기엔 심드렁하다. 가슴은 답답했다. 책 속에 보물이 있고, 즐거움이 있는데 이걸 보여줄수도 없으니 말이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뼘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이 딱 그 말이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깨끗한 종이 위에 경험과 이성이란 물감으로 인생그림을 그린다. 나 역시 지금껏 세상과 부대끼며 하얀 종이위엔 덕지덕지 지식과 논리, 경험과 선입견이란 붓과 물감으로 그림이 덧칠되고 있다. 어릴때 하얀 백지상태의 아이들에게 어떤 좋은 재료를 심어줄까 고민하는 교사와 어른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아이를 가진 부모의 심정이라면 이 책을 보면서 아하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문장들이 제법 있다. 그냥 그냥 무심히 읽던 신화와 동화책들이 나름 심리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동화는 사회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을 차근차근 읽다보면 맛깔스럽게 읽혀진다. 어린시절 동화를 읽고 자란 아이들은 따뜻한 어른으로 자라날 것이다. 살아가면서 고통과 고난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그 시기에 어릴 적 읽었던 동화속에서 만났던 정령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책이든 사람이든 어려울 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 도화지는 긍정적 그림들이 그려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먹인다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른이 된 후 긍정적 마인드를 심어주는 책을 읽기 전에, 아이때부터 좋은 동화를 접해온 사람의 내성이 더욱 강하다. 자신의 이성과 경험이란 바탕위에 긍정적 마인드라는 씨를 심는 다는 것은 웃자란 밭에 새로운 씨를 뿌리는 모습과 같다. 밭에 씨를 뿌리는 것도 아무 것도 없는 흙에 뿌려야 더 쉽고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다. 자연처럼 책도 어릴 적 마음 밭에 좋은 씨앗을 뿌려야 한다. 좋은 이야기밥을 먹고 자라난 아이들은 건강한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아이들은 꿈도 많이 꾼다. 그 꿈을 통해 새로운 정령들을 만나고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시간이 지나면 몸은 저절로 어른이 된다. 마음도 함께 어른으로 자라야 정상이건만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영웅은 자기가 살던 고향을 벗어나 모험을 떠납니다. 인간에게 삶은 하나의 모험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영웅입니다(80쪽). 어린이는 미래의 영웅들입니다. 몸에 영양을 주는 밥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신에 영양을 주는 문학 예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옛이야기는 아이들 정신에 주는 밥입니다. 옛이야기밥을 맛있게 먹고 자란 아이들이 미래를 가꿔가는 훌륭한 영웅이 되겠지요(215쪽). 디지털 세상은 어디를 둘러봐도 편리한 세상이다. 한 가정의 통신비는 2006년 6.84%에서 2009년 7.35%로 증가했다. 초창기 휴대폰은 통화와 단문 메시징 기능이었지만 스마트 폰의 등장으로 통신비는 5만원으로 훌쩍 뛰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휴대폰은 필수품이 되었다. 인터넷은 왠만한 가정이면 사용하고 있다. 통신비가 늘어나는 만큼 몸과 뇌는 편리해졌다. 아니 그만큼 게을러졌다. 점점 생각할 시간이 줄어드는 세상이다. 아이들의 생각 주머니가 점점 축소되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부모로써 아이들의 생각 주머니를 어떻게 키울까 고민하지만 쉽지는 않다. 아이들의 생각 주머니를 키우기 위해 이 책은 자그마한 도움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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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복 선생님의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 를 다 읽고 덮는 순간, 난 아이들에게 이야기밥을 잘 먹였던가? 들어주는 봉사를 해주었던 나의 아이들,왕인 그들을 잘 섬겼던가 생각해보았다. 옛이야기를 읽히면 좋대~~권성징악을 알려주니 좋대~ 다양한 의성어,의태어가 들어가 있어서 좋다고 들어서 그저 읽히면 좋은가보다라고 생각하고 들려주고 읽혔던 옛날 이야기였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옛날 이야기는 어쩜 아이들이 제일로 먼저 듣고 접했던 이야기가 아닐까싶다. 이야기를 소리 내서 들려주면 아이들 마음속 우주에 잠자고 있던 정령들이 깨어난다는 말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계속 읽다보니 많이 수긍이 갔다. 나의 아이들이 듣는 문학 시기를 제대로 거치고 가고 있는건지 생각도 해보게 되었고 지금도 역시나 듣는 문학 시기를 꾸준히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 속에선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마음 밖 우주와 마음속 우주가 어떻게 하나로 통해 있는지는 예를 들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어떤 근본주의자 교장 선생이 아이들에게 설교를 하였는데 하느님이 너희한테서 얼굴을 돌리시면 너희들은 말라죽은 낙엽처럼 시들어 죽고 말거라고 하셨단다.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하느님이 자기를 깜빡하시면 어떻게 하냐고 두려워하는데 할아버지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씀해주시는데 나도 모르게 그 아이가 되어 고개를 끄덕끄덕~ㅎㅎ 아이들의 꿈이야기도 재미나고 구수한 평안북도 사투리로 들려주는 옛이야기들도 참으로 재미있다. 그저 재미있어서 읽었던 옛이야기나 신화가 우리 내면의 심리를 반영한다는 사실~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아주 좋은 재료가 되는 것들임을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권선징악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나의 마음속 우주에 꼭 선한 인간만 존재하지는 않는다는것,나의 마음속에서 악의 세력을 배제하다보면 정말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되겠구나싶었다. 교과서에서 나온 <떡시루 잡기>이야기와 구전설화에 공통으로 나오는 두꺼비를 비교하며 꼬집는 작가의 치밀함, 나 또한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그저 교과서에 나오면 모두 좋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다.게으름이 이야기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가까이 두고 수시로 아이들에게 책속에서 읽은 재미난 이야기들을 들려줘야겠다. 그저 읽히면 좋은가보다라고 읽혔던 옛이야기~이젠 제대로 알고 읽히게 되니 아이들 마음에 내 마음이 전해질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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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바구 하나 들려드립니다. http://ko.wikipedia.org/ 옛날에 어떤 왕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왕은 세 아들을 똑같이 사랑해서 자기가 죽은 뒤 어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어야 할지 고민이었습니다. 왕은 죽을 때가 가까워지자 세 아들을 침대 곁으로 불러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내가 요즘 깊이 생각한 게 있는데, 지금 너희들한테 그걸 말해주고 싶다. 나는 너희들 중에서 제일 게으른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왕국은 제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자려고 누워 있을 때 비가 와서 제 눈으로 빗방울이 들어가더라도 이미 눈 감은 것 때문에 그냥 잠이 들 정도로 게으르거든요." 가장 나이 많은 아들이 먼저 말하자 둘째 아들이 나섰습니다. "그렇다면 왕국은 제 것입니다. 저는 난롯가에서 불을 쬐고 있을 때 발을 끌어당기는 것이 귀찮아서 차라리 발꿈치를 불에 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만큼 게으르거든요." 셋째 아들이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왕국은 제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게으르냐 하면 제가 교수형을 당하게 돼서 제 목에 올가미가 씌워져 있는데, 누가 제게 그 밧줄을 자를 수 있는 날카로운 칼을 준다고 해도 차라리 교수형을 당하고 말지 귀찮게 제 손을 움직여서 밧줄을 자르지 않을 정도거든요." 왕이 이말을 듣고 말했습니다. "네가 제일 게으르니 네가 왕이 되거라." -<어른들을 위한 그림형제 동화 전집>,231~232쪽(<아이들은 이야기 밥을 먹는다>에서 재인용.) 듣자듣자 하니 게으름이를 찬양하다니요. 이 동화는 참 해롭겠습니다. 권선징악의 공식에 의한다면, 지혜의 씨름장인 동화판에 의한다면, 게으름을 증명하지 못해 어쩔줄 모르는 부지런이가 왕의 간택을 받아 마땅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게으름도 보상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각인하지 않을까요. 그치만 아니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의 이재복 선생님에 의하면 말이죠. 뭐 꼭 선생님 말씀이 아니라도 도덕가의 주장이 무색할만큼 유쾌한 허풍들입니다. 마지막 발언권을 가질수록 유리한 경기 입니다. '게으름'이란 주제가 헛갈리게 만들지만 상상력과 기획력이 돋보이는 답입니다. 어른들은 메시지를 보지만 아이들은 유희합니다. 전혀 헤롭지 않을겁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이재복/문학동네/2010.6 동화 공부장이 이재복은 더 많은 해석들을 내놓습니다. '근면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기존의 문화 바탕에서 나오는 고정 관념을 비틀어 보고, 뒤집어 보려는 대결 의식의 감정이 숨어 있다.''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해 과도한 경쟁 사회로 몰아가는 지금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내면에도 게으름이 영웅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있다''일의 논리, 이성의 본질, 일중독에만 빠진 사람에게 게으름은 밖을 지향하는 일의 논리보다는 내면을 지향하는 감성적인 직감, 사랑의 본질, 애정 방식에서 여성의 원리를 상징하다고 볼 수 있다''게으름이 아이에게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옛이야기의 시시함을 단번에 깨뜨리는 대목이었습니다. 바보, 마녀(계모), 공주, 괴물이라는 전형도 얼마든지 전복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권선징악'에도, 잔혹한 이야기에도 새 힘을 나눠줍니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못박았던 옛이야기 속의 대결 인물들을 '빛이 되는 인간과 그림자가 되는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빛과 그림자를 떼어 설명할 수 없듯이, 선과 악을 상징하는 두 인물은 모두 우리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겁니다. 왜 이 당연한 사실을 품지 못했던 걸까요.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른들은 이런 동화를 이렇게 읽혔을 겁니다. '나쁜 짓을 하면 벌 받아.착한 사람이 되야 복을 받는 거야' 이제 아이들에게 다르게 읽어줘야 할껍니다. '너의 마음에도 착한이와 나쁜이가 있지?' 잔혹한 이야기에도 '에너지가 강한 원형의 꿈'이라는 타이틀을 선사합니다. 이런 이야기나 꿈은 귀하게 여겨야 한답니다. 마음속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상징의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라지요. 참으로 조곤조곤, 이야기 하듯이 편하게 들려주는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는 성심껏 글씨를 따라 읽어주거나, 주제가 되는 교훈을 전달하고 마는 '책 읽어주기'의 함정을 깨닫게 합니다. 창의력에 목매 선호하는 창작동화, 좋은 습관에 얽매여 고르는 딱딱한 책들을 돌아보게도 만듭니다. 그런 와중에 위시하고 말았던 옛이야기의 매력도 되찾습니다. 이야기가 놀이고, 유희고, 하나의 세계라는 근본적인 사실을 그새 잊어버린듯 합니다. 건설적인 독서습관이나 학습태도를 위한 수단으로써의 '이야기 책'들이 재발견을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전래동화나 명작동화 전집으로 공급책을 확보해야 할까요? 저는 이부분에 일말의 의심을 죽 품고 있었습니다. 유익함 말고도 책을 읽어주는 순간의 신체적, 감정적 교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귀로 듣고 머릿 속으로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빠져 못내 아쉬웠습니다. 제아무리 영감으로 가득하고, 아이의 마음을 끄는 그림이래도 '보는'는 행위에 그친다는게 불구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결심합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매일 밤 할머니가 들려주던 캥거루 이야기처럼 엄마만의 테마도 만들어보자는 제법 당찬 포부를 가졌지요. 책보다는 육성으로, 아이에게 곧 닥칠 분열되고 단절된 세계를 합쳐주고 싶었습니다. '종이'가 아닌 '품'이 앎의 시작이라는 점을 각인하고 싶었습니다. ![]() ![]() 순전히 제가 읽을 요량으로 짧은 이야기들이 실린 어린이 책 두 권을 보았습니다. 한 권은 이솝이야기, 또 한 권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 편씩 읽고 들려주는 일이 여렵지 않아보였습니다. 돌아보니 아이를 업고 다닐 때, 가장 많이 들려준 이야기가 '호랑이와 곶감' 이었네요. 하지만 거기까지. 아이가 말을 시작하자 지루해 하는게 눈에 보였습니다. 그렇게 여러번 중단하고 나니 저도 힘이 빠져서는 반쯤 포기하고 말았지요. 하지만 위 <아이들은 이야기 밥을 먹는다>와 이어 소개할 <베이비 스토리텔링>이 숨죽인 열망을 일깨웁니다. 맨 처음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결심했을 때 <책 읽어주고 이야기해주는 부모들>이란 흥미로운 책을 봤습니다. 들려주기 좋은 옛이야기의 매력은 지루한 설명 없이, 사건의 연속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 사건들은 그림을 보듯 이야기의 진행을 상상할 수 있고, 일말의 반복성이 있다.-<책 읽어주고 이야기해주는 부모들> 94쪽<아이들은 이야기 밥을 먹는다>와 비교한다면 옛이야기의 외형적 유용성을 언급하는 샘이네요. 옛이야기의 원본을 들려주기 좋게 압축하는 실예를 제시하고, 아이들의 경험과 환경에 맞게 지어낸 이야기들도 담습니다. 책은 고개를 주억거릴만 했지만 어쩐지 제 세치 혀는 굳어버렸습니다. 줄줄 꿸 것 같았던 이야기들이 통 입에 붙질 않았습니다. 아이가 지루한 것도 당연하지요. 그러다 이재복 선생님의 책에서 지당하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명확한 단서를 발견합니다. 줄거리를 안다고 해서 남에게 재미있게 들려줄 수는 없습니다.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 24쪽 이 두 문장 안에 제가 저지른 실수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줄거리만 알고 감동 받은 적은 없다'는 거죠. 또 한 가지는 <책 읽어주는 부모>가 언급했던 아이의 경험과 환경에 맞는 이야기를 발굴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베이비 스토리텔링>으로 이정표를 찾았습니다. 베이비 스토리텔링/로니 M.콜/팝콘북스/2010.4이 책에는 주변의 부러움을 살만한,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빠가 등장합니다. 저자이기도 한 로니 M.콜이 풀어놓는 이야기는 'literary fairy tails'(새로 옷을 입힌 요정이야기-옛이야기)가 아닙니다. 말하자면 직접 꾸며낸 환타지죠. 칙폭이(기차), 탁탁이(탭슈즈), 햄순이(햄스터)가 지구와 우주, 집안 곳곳을 여행하고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서 낯설거나 혹은 익숙한 경험을 하는 내용들입니다. 별안간 걱정이 앞섭니다. "내가 과연 이야기를 지어낼 능력이 있을까?" 우선 이 중대한 문제는 덮어둡시다. 우선 잠자리 이야기가 강력한 효과를 자랑하는 잠 최면제라는 사실을 <베이비 스토리텔링>이, 서투른 제가 증명 합니다. 이런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그날부터 아이들은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또 하루를 마감하는 그러한 의식이 기대되어 날마다 행복에 겨워 잠자는 시간을 기다리게 됩니다.-11쪽 홈쇼핑에 미리 섭외된 충실한 사용자 후기 같지만, 지난 주 저희 모녀는 유례없이 평화로운 잠자리 시간을 가졌습니다. 엄마가 어디서 얻어온 이야기에는 시큰둥하던 아이가, 마당에서 시체로 발견된 우리집 암탉 '꼬꼬'가 밤이면 깨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다소 엽기적인 이야기에 열렬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옆집 언니도 나오고, 할머니 할아버지, 다른 동물들도 마구 등장시킵니다. 황당할 뿐 아니라 더듬거리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나서서 잠자리 의식을 채근하는 아이에게 강력한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 <베이비 스토리텔링>의 신선한 이야기 창작법들을 조금 만나봅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아이디어와 먼저 친해지기 위해서 강력한 시각화의 기술을 사용하십시요. #대부분의 이야기에 늘 출현하는 핵심 등장 인물들이 있으면 이야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하세요. #옛속담을 사용하면서 줄거리를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름을 짓고 이야기를 만드세요. 어떤가요? 가능할까요? 그래도 좀 어렵나요? 그렇다면 책이 제안한 한가지 묘수(잠자는 시간이 창의력을 발전시키기 좋다는 교육적 의미였지만)를 시도해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잠들기 전 우리의 정신에 답을 제시하라는 긍정적 명령 내릴 수 있습니다.' '뇌야. 문제를 해결해주길 원해. 멋진 답얻을 수 있게 해줘. 고마워.'라고 말하는 거죠. 자기계발서의 우스꽝스러운 주문 같은가요? 어쨌든 저는 '이야기 들려주는 엄마'라는 명함을 놓칠 수 없습니다. 책값을 줄이려는 꼼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활자가 아닌 목소리로 감정과 온기를 전달하고픈 욕구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이게 바로 이야기가 가진 밈[각주:1] 유전자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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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들어주는 봉사"라는 글 귀가 눈에 들어 왔답니다. 들어주는 봉사? 그거라면 내가 전문인데... 하는 생각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열심히 읽어 보았답다. 책을 즐기며 작품을 읽기가 어려운 아이들은 아직 듣는 말문학에 익숙하지요. 글을 알고 읽게 되면 책을 읽고는 있지만 아직 듣는 문학 시기의 말문학 전통이 강한 이야기를 더욱 즐기는 것이지요. 말문학은 '이야기꾼'이 있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듣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들어주는 봉사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말문학은 존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엄마의 포근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속 우주에 잠자고 있던 정령들이 깨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책 읽기는 눈으로 보면서 귀로 듣는 활동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랍니다. 동화의 어머니인 옛이야기는 옛날 부터 말로 전해져 온 말문학입니다. 바로 '귀로 듣는 문학' 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듣는 문학 시기를 잘 거쳐야 하는 데는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삶의 지혜를 길러주는 의미도 담겨 있답니다. 책을 읽고 보니 그 동안 전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 정령들을 얼마나 끄집어 냈을 까 ?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먹 구구식으로 목소리만 흉내내서 조잘 거리며 읽어 대는 엄마는 아니었을까... 어떡해 하면 좀더 많은 지식을 전달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들로만 가득차서 정작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 했던 것 같아요. 어릴때부터 옛이야기를 즐기고 자란 아이들은 순하다고 하네요. 마음속 우주에는 무수한 정령들이 살고 있기에 마음속 우주를 풍요롭게 가꾸면서 언제든지 어떤 일이 생기면 다양한 이야기를 자아에게 올려 보내주기 때문이랍니다. 이야기를 먹고 마음 밖 우주를 살아가는 자아는 늘 유머러스하게 심리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답니다. 앞으로 아이들을 다그치기 보다는 좀더 여유있는 마음으로 '들어 주는 봉사'를 마음에 새기며 아이들의 내면의 세계를 좀더 주목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읽고 나름 느낀바가 크지만 글을 빌어 표현하자니 마음과 다르네요.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책과 함께 즐거운 시간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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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 두권 쟁이다보니 어느순간 비좁은 거실일망정 그곳을 가득채우고있는게 책이다. 그것을 바라볼때면 한편으로 뿌듯해지면서 아직 읽지못한 책들이 태반인상황에 마음은 조바심을 친다. 책은 바라보는게 아니라 읽어야 하는건데, 책속 이야기를 끄집어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어야하는데 ......
하지만 마음과 달리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방법을 잘 모르겠다.게다가 과연 책속에서 아이들이 뭘 느끼고 공감하고 얻고있기는 한걸까? 눈에 보이지않는 현실이다. 어린시절 그림책을 읽어줄때면 목소리의 톤을 달리하며 실감나게 읽어주려 노력을 했었지만 어떤 이야기를 추가로 나누어야하는걸까 막막했던적이 참 많았다. 항상 과묵했던 성격은 수다스런 엄마가 되기엔 너무도 부족했고 단절되고 굳어버린 사고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보이지않는 세상을 바라보기엔 너무 몰랐었다.
이재복 선생님의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를 읽는내내 난 아이들의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담겨져있는 책속 다양한 사고의 모습을통해 그동안 내가 참으로 바보스러웠었구나 알게된다. 의미도 잘 전달하지 못한채 그 속에 담겨있는 아이들의 모습도 캐치하지못한채 무엇을 읽고 들려주었던것일까? 그나마 많이 하지 못했음에 또 한번 깊은 반성을하면서, 동화속 주인공에 아이들의 속마음이 드러나고 그 정령들에 아이들의 정신이 깃들여있었는데, 하지만 똑같은 책을 읽고 또 읽었던 아이들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니 엄마가 놓쳤던 그 부분들을 잡지않았을까 싶어지기도한다.
어른에게 존재하는 마음밖과 마음속 공간의 벽이 아이들에겐 없단다. 깊은 내면에 들어있는 마음의 소리를 듣지못한채 살아가는어른과 달리 마음속 구원자가 존재하는 아이들은 동화속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믿으며 자신의 마음을 담아낼수 있는것이다.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승냥이와 사자, 아이의 꿈속에 등장했던 뱀의 이야기를 믿어야만 하는 이유로 내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면 매일 꾸는 꿈에 더욱더 귀기울여만했다.
매일 매일 꾸는꿈이건만 간혹 우린 길몽이냐 악몽이냐를 판단할뿐 모두 개꿈이라 치부해 그 소리에 마음을 열어두지 않았었다. 동화속 세상을 인정하지 않았듯 내 아이의 마음또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것이다. 어느날 아이가 나 엄마를 죽이는 꿈을 꾸었어요 하고 말을 걸어온다면 섬뜻함에 내 딸이 왜 라는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게될것이다. 하지만 꿈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온전한 주체로서 자신의 인생길을 헤쳐나갈 준비가 되어있다 해석해 축하파티를 열어준단다.
학교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마을을 대변하고 있던 학교에 간 사자나 엄마에게 혼나고 고립된 상황에 처한 맥스가 내면여행을 떠나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동화가 아이들에게 어떤역활을 하는지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부정적인 면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악의 정령들의 그림자와 사투를 벌이면서 아이들은 내면성장을 하게된다. 그렇게 자리잡아간 감성들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기초가 되어 아이들을 더욱 성장하게 만들고 진정한 세상의 주인이 되게만들었다. 그것이 이야기밥이 아이들에게 주는 기적의 선물이었다. 지금부터라도 그 선물을 더 잘 챙기어 마음의 힘을 견고히 길러보자,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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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엔 그렇게 책을 좋아했던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읽어라고 사준 세계동화전집을 -몇 권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꽤 많았다- 다 읽지 않았다고 매번 혼이 났던 기억만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재밌다고 느껴지는 책은 여러 번 읽었으나 첫장부터 재미없다 느낀 책은 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로인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꾸중을 들었던 기억만 가득하다. 그러나 가족 중 누구도 책을 읽어주었던 기억은 없다. 아마도 더 어린 나이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라 아이에게 동화책이나 옛날 이야기를 들려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드라마나 영화를 볼때면 책 읽어주는 부모의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그렇게 많지는 않은 듯 하다. 아이가 글을 읽지 못할 정도로 어릴때는 읽어주기도 하지만 글을 읽기 시작하면 보통은 혼자 읽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현실 탓인지 아이와 함께 책을 고르는 부모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사주고 스스로 읽기를 바랄 뿐 책을 읽어주거나 읽은 책에 대해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은 듯 하다.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의 저자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 몸을 튼튼하게 하는 것 만큼이나 정신적인 밥인 이야기밥을 먹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책을 많이 읽히려고만 애쓰지 말고 아이가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들려주라는 것이다. 이왕이면 재미있는 옛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 효과가 더 좋다고 말한다. 눈으로 읽는 것보다 귀로 들음으로 인해 더 오래 기억이 될뿐 아니라 아이의 마음 속 우주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며 내면의 세계를 튼튼히 해주는 씨앗이 된다고 말한다. 그런 맥락으로 아이들이 꾼 꿈에 대해서도 '어이구 그건 꿈이잖아'하고 그냥 넘길 것이 아니라 꿈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며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설령 어른들이 듣기에 말이 안되는 황당무게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것이 바로 아이들의 상상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 꿈에 아이의 생각이 표현되기도 하는 것이기에 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중요하며 꿈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한다.
저자는 아이들이 책을 읽을때 부모 입장에서 걱정되는 부분들을 가령 이야기가 잔인하다거나, 너무 선악으로 구분지어져 있다거나, 이야기 속의 상황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지도해야 할 것인가 하는 부분들에 대해 예를 들어가며 이야기밥을 먹이는 것에 대해,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기에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풍부해지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그리고 어떻게 도와주어야할지 궁금하다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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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의 고갈시대에 사는 우리 아이들은 이야기 밥이 이전의 아이들보다 현저히 부족하고 늘 고프기만 하다 밥이 되는 얘깃거리가 없어 늘 배가 허전하다는 아이들에게 이 책은 희소식이다 디즈니 영화에서 볼수 있는 광대한 스토리와 눈부신 화려함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우리의 담백한 동화를 어떻게 느낄까? 전래,혹은 여러 단편을 묶어 동서양의 경계를 부순 이 이야기는 아주 잘 차려진 밥상이였다 또한 세대를 가르는 소통의 장에서 맘껏 뛰어 놀수 있는 한마당이다
왜 꼭 이야기여야 하는 가하는 질문은 접어두게 하고 한껏 제 목소리로 이 이야기들을 담아보고 싶을 만큼 아이들의 목소리를 닮은 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사실 인간이 더 가깝게 느끼고 어울려 살게 하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도 이야기의 힘이다 그래서 우리가 오래도록 꿈꾸는 삶의 이야기속에 유독 아이들의 맑은 영혼에 도움이 될 그런 이야기들만 발췌한 까닭일까 어울리고 부딪기고 그러면서도 서로 소통하는 우리가 될수 있게 신뢰의 끈을 이어준다 어쩌면 이 시기에 그런 공감과 공유가 부재할경우 영원히 위로 받지 못하고 공감 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며 이 책의 효용을 생각해 봤다 나와 내 아이들에게 좀더 영혼의 양식이 될 마음의 비타민을 한 통씩 껴안았다는 생각을 하며 내면이 건강하고 정깊은 아이로 자라주었음 하는 바램을 조심스레 꺼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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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다소 생소했고 재밌는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던 제목이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아이들은 이야기 밥을 먹는다 라는 제목이 참 마음에 더 와 닿는다. 이야기를 밥이라 표현 한 만큼 아이들에겐 꼭 필요한 정서적인 부분이 그 만큼 절실하고 꼭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되어진다. 옛 이야기 교육서라 해서 딱딱하거나 진부하다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 그건 다 오해이다 싶다. 편안하게 들려주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적절하게 우리가 익히 보고, 들어왔던 이야기를 예로 삼아서 이야기를 풀어내시니 더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잘 접하지 못해 우리 아이들 역시도 잘 알지 못한 평북사투리가 살아있는 이야기 말로 직접 들어볼수 있는 시간이 된 것 만으로도 참 좋았다 싶다.
옛이야기에 대해서 좀 더 알 수있었고, 어떻게 더 다갈수 있는지 그리고 왜 우리 아이들에게 옛 이야기가 필요한지도 세세하게 짚어주고 알려주는 점 참 좋았다. 그리고 옛 이야기가 좋은줄은 알지만 왜 ?라고 굳이 물으면 또 딱히 말할 답이 없었거나 진부한 답 아니면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식상한 답이 예상되지만 이젠 이 책을 읽고서는 내 나름대로의 주관이나 어느 정도의 눈높이가 생긴 것이 참 고맙고 반갑다. 내가 먼저 이야기에 빠져들어야 듣는 사람 역시도 이야기에 매료된다는 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 아이들에게 얼마나 성의를 보였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 것도 다 이 책을 접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다. 이제 정신놀이가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도 알았으니 이젠 정말 실천 할 일만 남은 듯 하다. 아이들과 더 재미나게 현장감이 살아있는 동화를 많이 들려주고 읽어 봐야 할 듯 싶네요.
옛이야기 교육서이긴는 하지만 꼭 옛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이야기를 아우르는 책 같아요. 책에 관심이 많고 아이들의 정서에 관심이 많은 분 들이라면 이 책을 정말 꼭 접해봐야 하지 않을 까 싶네요. 저는 오늘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밥을 맛있게 먹을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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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여기저기 쌓여있는 책들을 보면 사람들은 내게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주었으려니 이야기가 바로 의식과 무의식의 통로! 사투리가 그대로 녹아든 옛이야기나 책 속의 짧은 이야기를 작가와 함께 읽으며 동화를 새롭게 감상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