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향곡이 한편의 전쟁이라면, 게다가 공교롭게도 작곡현장이나 제목이나 총탄 냄새에 피땀이 새롭지 않은 공방현장 "레닌그라드"였기에. 베토벤, 말러, 브루크너에 이어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이 오케스트라의 사령관에 속하는 지휘자들이 기량을 발휘하는 전장이라면‥ 서두르지 말자. 참신한 해석이라고, 젊고 힘찬 지휘자라고, 피날레 끝과 함께 박수소리 만세처럼 요란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니까. 군왕 게르기에프는 과연 이 전투에서 승리했는가 ? 다큐멘터리를 찍는 극적요소를 강조하면서도 교향곡의 텍스처를 잃지 말아야하는, 아울러 쇼스타코비치적인 숨겨진 풍자를 살려야하는 듣기보다 까다로운 곡을 제대로 살렸을까 ? 여태껏 들어본 연주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레코딩은 "번스타인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의 1988년 라이브였다. 번스타인은 세부적인 면을 무리없이 살리면서도 역시 그만의 극적인 요소를 이끌어가는 부분에서 가히 최고였으며, 특히 피날레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투티로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혼연일체로 마지막 생명력까지 짜내어 불태우는 경지가 무엇인지 유일하게 보여주다시피했다. 레코딩 수준도 오디오 파일급으로 최고로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기량을 최고로 발휘하다시피한 기념비적인 걸작이라 하지 않던가. 이 번스타인의 연주 때문에 그의 팬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다른 명연으로 콘드라신과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연주도 있는데 1악장 '침공' 테마에서는 그 격렬함과 폭력성이 으뜸으로서 러시아인의 관점에 충실한 연주로서 기억된다. 그렇다면 군왕 게르기에프는 ? 과연 새로운 영토로 단순히 오랑캐로서 쳐들어갔을까, 아니면 기존 군주들이 엄두를 못 내었던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웅대한 전략을 실현시켰을까. 상업주의적인 냄새가 짙은 음반 디자인만 보자면 번스타인을 이겼어야 마땅하다. 게다가 고물 오디오로 들어도 오케스트라가 삼차원으로 느껴지는 21세기적인 천혜의 음질은 이 연주의 장점도 잘 살려주지만 그 단점도 신랄하게 들려준다는 점을 잊지 말자. 낮은 음역을 강조한 연주이므로 번거롭지만 볼륨을 높여서 들어야하지만, 그 덕분에 게르기에프가 세심히 살려낸 소리의 향연을 즐기 수 있단 것도 잊지말자. 물론 그랬다가 엄청난 투티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귀 멍멍거리면 책임지기 어렵지만. 1악장 알레그레토부터 2악장 모데라토까지 들으면 게르기에프가 꽤 세심하며 신중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번스타인은 그만의 서정성으로 선굵게 노래한 반면, 게르기에프는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음악의 텍스쳐를 객관적으로 살리는데 치중했다. 침공 주제에서 떨리는 먼지까지 느껴지는 게르기에프적인 시도가 대단하다고 느껴지지만, 극적 요소는 번스타인이 우위므로 지휘는 막상막하이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를 보면 시카고에 비하면 키로프&로테르담은 분명 열세이고, 특히 도취가 부족한 관악기부터 스태미너 궁핍의 타악기를 듣다보면 게르기에프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나 베를린 필로 지휘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을수록 커지기에 번스타인이 우세이다. 디테일한 부분의 선명도는 가히 최상이지만, 음악이 흐름이라는 점에서는 게르기에프는 중요성을 망각하지 않았을까. 소리는 최상이지만 주제는 살아나지 못했다는 점은‥ 이제 전면전으로 들어가보자. 3악장 아다지오, 그리고 궁극의 4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 과연 여기서 군왕은 숨겨진 비기를 보여줄 것인가. 분명 게르기에프는 이 부분부터 그만의 주관적인 도취로 빠져들고 있다. 혈기방자한 사령관의 육탄돌격은 분명 그 시도만으로도 청자를 사로잡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지원부대가 연약하거니와 지휘자의 전법이 구태의연하다면, 그건 절벽을 향해 돌진하는 레밍즈의 우행과 무엇이 다를까. 번스타인의 경우를 보면, 말러 해석에서 엿보이던 연륜을 최대한 발휘하여 어느 부분도 지루하지 않게 시베리아적인 열정을 담긴 패시지를 무적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구현하였거니와 클라이막스에선 짜릿한 오르가즘까지 선사해주었다. 그러나 게르기에프는‥ 냉정히 말해서 도취적인 연주는 번스타인을 본딴 흔적이 엿보이거니와 그 형태와 파워 면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차라리 1,2 악장의 냉정한 자세를 계속 유지했으면 좋았겠지만, 도취적인 해석으로 나가면서 그간 팽팽히 유지되었던 오케스트라의 질서가 깨지면서 오히려 주제가 살아나지 못 하였다. 흐름을 잇지 못한 탓에 음악은 간데없고, 화려한 소리들만 따로 노는 정도였다. 그래서 작은 음의 세세한 강조는 쓸데없는 배려로, 고음의 과장된 폭발은 신경질적인 '클리셰'로 들렸는데 지나친 것일까. 내가 게르기에프를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싶어 반복청취햇다고 일러두는 바다. 특히 밋밋하다 여겨지는 부분은 번스타인반과 비교청취하면서 게르기에프를 너무 가혹하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끊임없이 묻고 되묻고 하였다. 자꾸 듣다보니 게르기에프가 나은 면도 드러났고, 시도를 새로이 했다는 점에서 보충점수를 줄만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곡 전체를 아우르는 해석의 일관성"부터 "주제를 살리는 흐름"이 빠져있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를 모르면서 게르기에프 연주를 혹평하지 않았나 회의하였지만, 분명 번스타인 반으로 이미 감동받았으므로 작품을 모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괜찮은 해석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조차 번스타인 반을 모방했나 싶을 정도로 참신하지 않았기에. 물론 절대적 명반이란 없는 것처럼, 절대적 비평도 없는 것이다. 미국 아마존에서는 한결같이 이 음반에 별 다섯을 아끼지 않았던 반면, 일본 아마존의 한 고객은 별 셋만 주는 등 혹평을 가했다. 어차피 음악은 각자 듣고 감동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곡의 텍스처를 세세히 보여주었으며 참신한 시도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이 음반구입이 후회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젊은 군왕보다는 타계한 옛 칸이 새삼 그리워지지만‥ 이 음반을 사서 들으신 분이면 반드시 번스타인반을 들어보시길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