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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카페라는 책의 제목을 보니 얼마전 본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http://blog.yes24.com/document/6612869 가 떠오른다. 자정이 되면 구형 자동차나 마차를 타고 꿈에 그리던 예술가들이 살고있던 과거의 카페로 가듯이 이주헌과 함께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미드나잇이 아니어도 꼭 파리가 아니어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 창가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중세에서 현대, 동서양을 망라하는 책속으로 떠나는 예술여행도 나름 즐겁다.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했던 글을 비슷한 주제로 묶은 듯 내용과 형식 모두 자유분방하고 힘을 뺀 글들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흥미롭게 읽었던 것은 동서양의 초상화 전통의 비교이다. 서양화가 사실묘사를 더 중시해왔던 것 같지만 동양에서도 초상화는 "터럭 한 올이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초상화관을 가지고 있었다니 터럭 한 올을 다 셀 수 없는 것이 인간인데 그토록 사실적으로 형상을 그리면서도 그 너머 인물의 정신까지 그려내려는 전신사조傳身寫照의 원칙이 과연 구현해낼 수 있는 경지인가 의문이 생긴다. 그에 비하면 다빈치가 인체해부를 하면서까지 인간의 뼈와 근육, 물질적 구조를 탐구했던 것이 더 인간의 수준에 맞는 예술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물론 세잔이 사과를 아무리 열심히 그린다 해도 사과에 없는 정신과 영혼을 그릴 수 없지만, 사람을 제대로 그린 그림이라면 그림을 통해서 사람이 가진 심리적 갈등과 정신세계가 드러나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 차이를 동양에서는 정신의 본질에 서양에서는 정신의 현상에 집착했다고 단숨에 정리해주었다.
용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대로 천하의 영웅들이 당대의 미인들과 나눈 사랑 이야기도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좋은 이야기감이지만 미인관이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랐던 모양이다. 시이저와 안토니우스의 연인이었던 클레오파트라와 나폴레옹을 애태웠던 조세핀도 지금으로 보면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녀들이 영웅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외모보다 교양과 지혜였다고 한다. 더구나 그녀들의 말년이 외롭고 고단했던 것을 보면 미인박명이라는 숙명에서 벗어나지도 못했으니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요즘 세대들이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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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의 아트카페_이주헌
티소, <10월>, 1877년, 캔버스에 유채, 216*108.7cm, 몬트리올 미술관
티소는 이 그림의 주인공인 캐슬린과 연인이였는데 그녀는 결혼 전 '사생아를 둘이나 낳은 젊은 바람둥이 이혼녀'로 통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된데에는 양친의 정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수녀원에서 성장과정과 이전에 보지도 못한 사람과 이국에서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인해 인도로 가던 중 배에서 알게된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임신하게되었다고한다. 잘나가는 프랑스인 화가였던 티소가 캐슬린과 연인이되자 그에게도 작품 의뢰가 들어오지 않고 기피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28세의 젊은 나이로 캐슬린이 죽자 파리로 돌아가 다시는 런던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지식의 미술관'으로 인해 좋아하게 된 미술평론가 이주헌님의 책으로 그림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은 '화폭에 담긴세상', '이야기가 있는 미인도', '길을 떠난 이는 길을 만난다.', '그림은 소통의 징검다리', '미술이 찬미한 리더'로 구분되어있는데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화폭에 담긴세상', '이야기가 있는 미인도'였다.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화가 중 램브란트의 에칭이 왜 중요한지. 또한 그의 자화상이 왜 유명한지를 이야기해주는 부분과 수잔 발라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램브란트, <유대인 신부>, 1665년, 캔버스에 유채, 121.5*166.5c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반 고흐는 램브란트의 유대인 신부를 보며 '이 그림을 일주일동안 계속볼 수 있게 해준다면 내 목숨에서 10년이라도 떼어 줄 텐데......'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살아생전 램브란트의 그림을 네덜란드에서도 보는데 한계가 있어 램브란트가 내놓은 해결책이 에칭판화들이라고 한다. 램브란트의 판화는 유화에서 보는 것 못지않은 시선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유화에 비해 훨씬 활달하고 자유로운 필치와 표정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램브란트의 자화상을 통해 인생역정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앞에서 우리는 젊은 날의 명예와 부, 행복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파산과 소외의 종장까지 간 한 비극적인 에술혼을 본다. 수잔 발라동은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모델로 활동했으며 은행가와 결혼하면서 경제적 안정을 얻게 되었으나 결국 파국을 맞아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아들의 친구 위테와 동거하며 수잔의 창착열정이 더욱 뜨거워졌다고 이야기하는데 위테가 모델을 스면서 그전에 '모델=여자=옷 벗은 사람=피고용인'이라는 틀에서 '화가=남자=옷 입은 사람 =사용자'라는 방식을 역전하였다고 한다. '길을 떠난 이는 길을 만난다.'부분은 한국화가 및 작품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나에게 아직 한국화가 낯설어서인지 크게 와닿지 못했다. 이 부분이 무척 길게 나열되어 있었는데 약간의 지루함이 느껴졌다. 그이외 '그림은 소통의 징검다리', '미술이 찬미한 리더'는 짧게 짧게 서술되어있는데 이주헌이라는 사람이 미술 뿐만 아니라 글, 사회현상, 경제에 관해서도 깊은 식견을 갖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근대의 여가 생활은 이처럼 단순히 일에서 풀려나거나 스스로 게으르게 방기하는 일에 머물지 않고 자신 안의 에너지와 정열을 극한까지 발산하는 진정한 자아발견의 기회가 되어주었다.
얀 트렉의 바니타스 정물을 보면 해골이 마른짚을 면류관처럼 쓰고있는데 이는 인생의 영광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이며 담뱃대와 비누거품 조가비, 병은 사라지거나 깨지는 사물로 허무의 상징이라고 한다. 비싼 비단천이 상징하는 부와 투구가 상징하는 힘, 예술이 상징하는 아름다움도 모두 풀잎 위의 이슬이요, 아침안개 같은 것이다. 바니스타란 라틴어로 '허영 '덧없음' '무상' '허무'등을 의미한다.
초상화를 뜻하는 영어 portrait는 라틴어 portraiho에서 온 말이다. portraiho는 '끌어내다' '노출시키다'등의 뜻이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 초상화는 실존하는 사람을 끌어내오는것. 다른 사람에게 노출시키는 것이다. 한 사람을 끌어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 존재를 다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 형상과 성격, 심리. 인격. 정신 그 모든것을 끌어오고 노출시키는 것이다.
피카소는 병이나 식기, 테이블 등 일상의 사물과 현대인을 파편화해 그리고 이를 통해 사물의 외양이 아니라 현실과 상황의 본질을 낚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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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음악...... 정말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관심 밖의 분야지만 자꾸만 흥미로워 눈이 갔더니 마음도 따라 갔다. 사실 요즘 나오는 책들은 거의 도서관에서 빌려다보고, 좀 지난 책들은 헌책방에서 싸게 구입하는 편이다. 특히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책들은 인문과 예술 시리즈로 된 책들이 많이 나와있다. 그리고 헌책방이라 책의 품질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면 그 ’기우’마저 완전 무너뜨린다. 오로지 빳빳한 새 책이다. 흐릿하지만....... 흥미롭다고 하나.... 부여한것조차 색다른 관점으로 다가오는 듯 하다.
테디머 <사포와 알카이우스, 1881년> 많은지.....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참 질투나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클레오파트라와 나폴레옹의 그녀 죠세핀까지..... 남자들이 푹 빠져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미인은 아니었건만,...... 외모며 지략과 지혜.... 길 위에서 만난 여행지 라틴아메리카를 통해 그 열정과 열기를 화폭속에 진한 농도로 담아내고, 첩첩산중 우리네 마을을 찾아내어 마을과 자연 사람들을 마음에 담아 그려내기도 하고, 우리의 전통재료로 자신의 열정을 쏟아내기도 했다. 어긋난 인상. 그림이 완성되기 전 카미유는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림 속 아내의 시선을 잊을 수 없었을까? 그렇지만 정작 자신은 가난한 재봉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무였다고 한다. 적어도 나무는 달아나지 않으니깐..... 오가는 행인과 나무의 모습이 비교가 된다.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