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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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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론서를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개론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어떤 분야의 전체를 소개하는 것에 있고, 소개의 방법과 해석은 저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개론서를 읽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개론서를 읽는 것은 읽는 독자가 상당한 관련 분야에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한다. 반대로 개론서를 읽으면 일단 어떤 분야의 전체를 소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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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론서를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개론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어떤 분야의 전체를 소개하는 것에 있고, 소개의 방법과 해석은 저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개론서를 읽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개론서를 읽는 것은 읽는 독자가 상당한 관련 분야에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한다. 반대로 개론서를 읽으면 일단 어떤 분야의 전체를 소개하는 것이기에,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수 있고 독자가 특정한 부분에 흥미를 느끼면서 관련 서적을 찾아 더욱 심도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개론서를 읽으면서 객관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있어야 된다는 점이다. 이렇듯 개론서는 양날의 검과 같고, 독자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신학부()에 다닐 때 처음 접한 구약성서 개론서는 베르너 H. 슈미트의 구약성서입문이었다. 1학년이던 내게 이 책은 무척 어려운 책이었고, 읽어도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는 군 전역을 한 후 3학년이 되어서야 이 책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고, 대학원 가서야 드디어 이 책의 탁월함을 알게 되어 구약성서에 충실한 기본서가 되었다. 그래서 어느 구약성서 개론서를 읽더라도 이 책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고, 지금부터 서평 할 책인 구약신학과의 만남역시 그렇다.

 

 

  성경은 전체 원역사를 통해 창조주와 피조세계뿐만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의 근본과 전형을 말하려고 한다. <88p>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에 행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기록한 책이다. 왜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이 택하셨는지는 알 수 없다. 아브라함은 어느 날 문득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실행에 옮겼고 그때부터 이스라엘의 민족사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단순히 구약성서가 이스라엘 민족사를 중점적으로 기록한 책은 아니다. 39권의 구약성서는 기록자들의 특별한 의도에 따라 다양한 사례들과 형식들로 기록되었지만, 이 모든 책들의 주제와 기록자들의 의도는 39권 중 한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고, 39권 중 한권의 한 부분만으로도 가능하다.

 

  그중에 한 부분을 꼽자면, 단연 창세기 1~11장이다. 저자들(W. 브루그만 공저)의 말처럼 원역사는 하나님과 피조세계의 근원을 설명하고, 하나님과 인간은 누구이며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이후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가족사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 중흥, 패망까지의 기록은 원역사의 주석과 용례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인간이 상처받는 것과 똑같이 상처받으시기로 결심하신다. 이것은 고대근동 종교에서 권력의 핵심층과 동일시되는 신들과는 매우 대조되는 특징이다. <186p>

 

  다른 구약성서 개론서들과는 달리, 이 책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인간적인면에 대단한 상상과 흥미를 갖고 있다. 구약성서를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입장을 일반 개론서적인 서술이 아닌, 문학적인 서술을 한다. 그래서 구속사역 중에 해석되어지는 하나님의 의도에 관한 저자들의 서술은, 하나님의 심정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한다.

 

  나는 성서를 읽을 때마다 인간적인하나님의 모습에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가져왔다. 특히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내가 알았던 모든 신들의 개념을 바꾼다.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신다. 그리고 자신에게 복종할 것을 인간에게 요구하신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다신론이 팽배했던 고대근동에서는 공감할 수 없는 신이고, 조형물이나 자연세계의 대상으로서 인간의 경배와 찬양만을 받아야 할 만들어진 신이 아닌, 살아있는 신으로서 인간에게 경배와 찬양을 요구하면서도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또 다른 무엇인가를 요구한다.

 

  대표적으로 모세오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섬겨야 할 이유와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주신다. 즉 출애굽은 자신을 섬겨야 할 이유를 말하는 사건이고, 십계명은 자신을 섬기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더욱이 레위기, 민수기에 나오는 제사법들과 공동체, 개인에 대한 규칙들을 하나님이 직접 지시했다면, 지나칠 정도로 피조세계에 간섭하신다.

 

  여기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정결(淨潔)을 상징하는 것들과 부정(不淨)을 상징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을 저자들이 해석대로 완전한 상태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선악의 비율을 자신이 보기에 완전한 비율로 배정했다는 의미로 봐야 되는가? 그리고 그 의미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모세오경을 통해 드러나는 것일까? 하나님은 모세오경에서 거룩의 기준을 설정하시고, 기준에 어긋나는 피조물들은 이스라엘 민족(물론 예외가 있다)을 포함하여 단호히 제거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에 저자들의 주장은 기존에 내가 내렸던 결론과 같다. 하나님은 자신이 스스로 만든 피조물들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이에 대해 피조물들이 항변할 정당한 권리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냉혹하지 않으시고, ‘거룩’(곧 하나님의 창조의도)으로부터 이탈한 피조물을 보면서 아파하신다. 이것이 구약성서 전체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아파하심의 원인이다. 혹시 인간이 가지는 감정과 행동의 전체가 하나님의 형상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모습은 인간의 감정과 행동과 같다. 단지 그 감정과 행동의 질적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지상통치자의 통치가 평가되는 기준으로서 왕정의 이상(理想)이 출현한 곳이 바로 다윗이야기며, 후에 지상통치자가 몰락했을 때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메시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이 제시된 곳도 바로 다윗이야기이다. <386p>

 

  다윗의 일대기는 성서의 중요한 기준이다. 다윗은 왕정시대의 이스라엘에게 가장 모범적인 모델이자, 신명기사가에게는 역대 이스라엘 왕들의 평가기준이다. 특히 사무엘하 7장에서 비롯된 일명 다윗계약은 다윗의 위대함을 더욱 빛나게 하는데, 이 계약은 포로기를 거쳐 메시아계약까지 갱신되어 이어진다. 저자들 역시 성서적 전통에 따른 다윗의 해석에 큰 이의를 제기하진 않는다. 다만 저자들과 내가 의문을 갖는 것은 다윗이 과연 이스라엘 왕들의 모적인 모델이자 평가기준 될 수 있느냐?”는 다소 용감한 의문이다.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뛰어난 왕이었지만, 그가 후대의 왕들에게까지 영향력을 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왕이라고 평하기에는 전체적으로 볼 때 공감하기 어렵다. 저자들은 이 의문의 결론을 하나님의 섭리로 돌리지만, 의문에 관한 의견들은 충분히 공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저자들의 의견들을 종합하여 볼 때, 성서기록자들이 유다지파에 특별한 의미성 부여와 포로기 상황 속에서 메시야계약의 정당성을 주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저자들의 말대로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보다 덜 주목을 받고 있으며, 남유다는 대부분의 기간을 외부 세력으로부터 예속상태로 지냈다. 게다가 요시야, 히스기야 단 두 명만이 다윗의 기준에 부합하는데, 그들의 말로는 비참하다. 또한 저자들의 말대로 요시야와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로 이어진 개혁이 아니라, 왕정에 국한된 개혁이었다. 즉 위정자들이 주관이 되어 이루어진 개혁이지, 민중이 중심이 된 개혁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19세기의 개화파 중심의 갑오개혁이지 민중의 의지가 담긴 동학운동 같은 개혁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가들이 요시야와 히스기야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 것은, 그들 외의 왕들로 인해 야웨제의와 율법실천이 위축되었던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자,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좋은 평가를 주지 않았을까? 분명 그들도 다윗처럼 약점이 많은 왕들이었다.

 

  이러한 근거들에서 다윗은 그 앞의 사울과 그 뒤의 솔로몬 사이의 중용적 모델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진 모델이 아닌, 가장 보편적이면서 이스라엘의 왕다운 인물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고 본다. 그래서 사가들은 세 왕들의 일대기를 소개하면서 그들 중 다윗이 이상적인 왕이라 보았을 뿐이고, 이상적인 왕 다윗에게 시간이 갈수록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구약성서가 저자들도 공감하는 6세기 포로기 이후의 편집가설을 따른다면, 구약성서 기록자들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해야했고, 그 대표적인 장치가 혈통과 계약의 통일성과 정당성이다. 여기에 유다민족과 다윗은 매력적인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포로기 이후의 편집자들에게 영향을 받은 다소 과장된 왕이라 생각한다.

 

 

  야웨는 현실정치에 대한 신학적 부가장치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력판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직접 주도하고 결정하는 분이시다. 게다가 이러한 주장은 야웨의 이름을 불렀던 이스라엘 공동체에만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야웨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력들에게도 동일하게 중요한 것으로 적용된다. <505~506p>

 

  저자들은 구약성서의 왕정 이후의 시대적 특징들을 살피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그 주변 세력들을 모두 관장하셨다는 결론을 내린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을 직접 주관하시고, 이에 따라 구약의 예언서들도 이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길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드시는하나님의 자발성이 가능한 것은, 그가 인간의 상식과 지식에서 벗어난 진정 유일한 신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므로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했던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여전히 존재하며,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지혜서와 시가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혜는 곧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탐구하는 작업 속에서 이루어지고, 시와 찬미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며 그 앞에 겸손히 간구할 때 가능하다.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 민족이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내린 결론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샬롬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결론은 시대를 초월하여 언제든지 적용된다.

 

 

  요컨대, 예언자적 목소리의 위대한 권위는 다양한 측면으로 나타나며, 요나서와 같이 오히려 정반대의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672p>

 

  저자들의 주장들이자, 구약학자들의 대부분의 견해는 예언은 계약의 갱신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구약의 예언서들은 신명기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이스라엘과 주변 세력에 선포한다. 이 선포에는 우주적인 하나님의 구속사역과 미래지향적인 회복이 담겨있다. 그래서 계약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계약이 아니고, 회복은 창조 당시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로 향한다.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구심점의 구원선포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넘어서 열방을 향한 구원선포로 전환되는 계기를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암시하신다. 그리고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 중 다윗계약을 의지하여 아직도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선민임을 주장하는 자들을 깨우치는 말로 그의 사역이 된다. “생각을 바꿔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내가 그동안 기본서로 보았던 베르너 H. 슈미트의 구약성서입문과 비교하여 이 책을 읽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구약성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다분히 영미신학의 장점들을 잘 살린 개론서이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신학은 철저한 원문해석과 다소 개방적인 신념들과 가설들의 나열에 독자로 하여금 호감과 반감을 가지게 하는데, 영미신학은 전제된 신념에서 비롯된 해석과 독자들이 당면한 현실을 연계하면서 신학이론을 설파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읽기에는 영미신학의 개론서가 편하고, 실질적 도움은 유럽신학의 개론서가 더 많이 된다.

 

  아쉬운 점은 역자의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삽화(도표 포함)가 별로 없다. 개정판에서 어느 정도 삽화를 실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베르너 H. 슈미트의 구약성서입문도 삽화가 거의 없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B. W. 앤더슨의 구약성서이해는 많은 삽화를 실려 있고 실제로 매우 유익하다(최근에 원서를 가지게 되었는데, 내가 유학을 가게 된다면 이 책이 나의 구약성서 기본서가 될 것이다). 삽화가 없는 상태에서 700페이지가 넘는 개론서를 차분히 읽기에는, 독자들이 지루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내가 필요한 삽화를 다른 책들에서 찾아 이 책에 붙였다. 또한 저자들은 이 책을 내러티브 형식에 따라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흐름이 끊이지 않고 매 장마다 연결되는 기분이다. 이게 좋을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세부적으로 분류하여 구약성서의 종류별(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로 정리해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고, 구약시대의 세계관을 따로 한 부분으로 만들어서 저자들의 의견들을 정리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이점에서는 베르너 H. 슈미트의 구약성서입문이 더 좋다.

 

  아쉬운 점들이 있음에도 어쨌든 이 책, <구약신학과의 만남은 앞으로 나의 구약성서 이해에 있어서 기본서가 될 책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이 책을 기본서로 선택한 것은 베르너 H. 슈미트의 구약성서입문을 읽어서일지도 모르고, 그 책의 한계를 느껴서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오늘날 내가 처한 현실상황을 비추어 신학적 사고를 하게 만든다. 즉 신학과 현실의 거리감이 다소 가까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s******0 2011.05.3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