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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두껍지 않은 장편소설, 가볍게 읽고 싶은 생각에 고른 책이다. 물론 어려운 책이라곤 볼 수 없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한편으론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또 현재의 나를 생각해 보게도 한다. 그리고 세상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바라보게 한다.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사실 이 책 내용을 볼 때 여기서 말하는 웃음은 웃음이라기 보다는 욕구를 말하는 것 같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구. 공을 갖고 놀고 싶고, 강한 아이들과 놀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며 보호받고 싶고, 무언가를 갖고 싶은 그런 욕구. 그리고 아이들은 말 그대로 아이들을 뜻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아이들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다. 욕구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을 작은 시골마을의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지내던 모습으로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싸우고 화합하고 화해하게 되는 모습까지. 여기 아이들의 생활은 우리 어른들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싶다. 공을 얻게 되고 공을 갖고 놀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심리와 행동, 편을 가르고 상대를 이기려 하고 질서를 위해 여러가지 규칙들을 만들고, 의리를 지키고 상대편을 괴롭히고...자신의 입장에 따라 내 편, 상대변으로 나뉘고...이렇듯 공에 집착하며 공맛에 빠져있던 동이는 시내를 나가보고는 더 큰 세상을 알게 되고 새로운 흥미거리를 알게 된다. 그래서 동이는 나무에 올라가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습다고 생각하고 새 전축을 보러 달려가는 아이들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미지의 것들, 전화, 자동차, 비행기, 그런 것들을 꿈꾼다. 글쎄, 약간의 거리를 두고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우리네의 사는 모습들의 면면을 들추는 그런 작품같다. 가볍게 재미나게 농담이 섞인 이야기들이지만 말이다. 공을 몰며 노는 일, 보통 사람들에겐 피할 수 없는 일인 듯 보인다. 나에게 공은 무엇일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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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아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재미있다.
맞아 맞아 저런 아이 꼭 있지 하면서 빙긋이 웃게 된다. 공 하나를 가지고도 사람의 면면을 알 수 있다. 정말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욕심. 그 욕심이 사람을 어떻게 갖고 노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어느 여름, 정체 모를 공 하나로 시작된 아이들의 욕심, 더 나아가 탐욕은 아이들을 한층 성숙하게 만들었다. 다만, 여기서의 성숙이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어른 사회의 축소판, 자본주의의 폐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작은 사회. 해법은 없는 걸까? [인상깊은구절] 58p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동이 집 쪽을 쳐다보면서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어보는 아이도 있었다. "아무튼 아까 정한 순서, 잊어먹지 마!" 김칫국만 연신 마셔대는 아이도 있었다. "웃기지 마, 동이 오면 다시 짜야지!" 무효를 선언하는 아이. "맞아!" 동의하는 아이. "뭐 하러 다시 짜?" 맞받아치는 아이. "야, 동이 오지도 않을 건데 순서가 무슨 소용이야!" 비웃는 아이. "올지 안 올지, 네가 어떻게 알아? 네가 동이 속을 알아? 네가 하느님이야?" 엉뚱한 쪽으로 화를 몰아가는 아이. "누가 한 번 가봐라." 남의 등을 밀어보는 아이. "가긴 뭐 하러 가." 일찌감치 미련을 떨쳐버리는 아이. "가보고 싶으면 네가 가봐." 되받아 치는 아이. "자기 발로 나오진 않겠지만, 우리가 가서 부르면 나올지 몰라." 끝내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아이. "그러면 네가 가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촉하는 아이. "그랬다가는 더 유세를 떨걸!" 지레짐작으로 포기해 버리는 아이...... 아이들은 공을 퉁길 때처럼, 끝도 없이 서로서로 퉁기고 쫓고 밀고 받아치고 내빼고 포기하고 다시 끼어들고 하면서, 지칠 줄을 몰랐다. 140p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원인이 없어졌는데도 싸움이 계속되다니. 아니 원인이 없어졌기 때문에 싸움은 해결할 방법도 없이 그 자체로 더욱 치열해지는 것인지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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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교의 <결혼은 미친짓이다>를 읽지는 못했지만 얼핏 전해들은 내용만으로도 그는 나의 호감을 샀다. 사각형으로 가두어진 상상력의 한계를 넓힐 줄 아는 작가는 언제나 나의 호기심을 발동시키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에 새롭게 낸 두 권의 책 중에서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않는다>를 먼저 읽었다. 이만교의 문체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에서 그의 목소리는 장난꾸러기의 그것이다. 아이들이 ‘공’을 갖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내게 어린 시절의 재믹스를 연상 시켰다. 다른 아이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내가 가지고 있을 때의 그 우쭐한 느낌. 그리고 다른 아이들 모두가 그것을 선망할 때 느껴지는 묘한 특권과 쾌감.
어린 시절 나에게는 게임기를 TV에 연결해 팩을 꽃아 게임을 하는 재믹스가 그랬다. 바로 그 재믹스처럼 소설 속, 공을 둘러싼 아이들의 우화가 어른들의 가치 세계에서 무엇보다 큰 힘을 발휘하는 ‘돈’으로 투영되면서 참 씁쓸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 우화에서 그리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씁쓸했다. [인상깊은구절] 달빛 따라 재를 넘는 스님만이 이 모든 소란이 공으로 말미암은 사단인 줄 알았을는지, 죽은 자가 볼 때는 가난한 삶도 부러운 것이거늘, 산 사람에게 가난한 삶은 죽느니만 못한 것이어서, 집집마다 지지고 볶고 난리도 아니었다. |
| 모든 공(功)의 내부는 공(空)으로 가득하다. 공허함과 텅빔의 온전한 세계, 완전한 단절과 어두운 고독의 세계를 내부에 담고 있어야만 지금 여기가 아닌 곳이 분명한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힘(탄력)을 얻는다. 인간이 공을 부리고 공이 인간을 부리건 간에 인간은 공과 가깝거나 멀거나 하건 간에 던지고 때리고 차고 옮기고 굴리고 튀기고 안고 넣고 훔치고 밀고 막고 받고 아수라장을 떨어도, 공이 내부에 하나의 세계를 간직하고 있는 한 공은 계속해서 살아있는 생명처럼 움직이고 주위의 관심과 주의를 끌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경우도 그러하리라. 작가의 말대로 이 책은 소년들의 공놀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때의 공(功)은 공(空)으로 치환하고 읽어도 무방하다고, 작가는 넌지시 알려준다. 어린 소년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며 공!을 가지고 논다. 그 노는 이야기가 이 이야기의 전부다. 처음부터 끝까지 논다. 노는 와중에 놀면서 아이들은 깨우쳐간다. 공을 통해서, 공과 놀음으로 인해서, 공과 하나가 되어서, 공의 자리에 다른 것을 놓아두고, 공이 있거나 없거나 할 때 생기는 마음을 탐구함으로 아이들은 점점 커진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공을 가지고 놀이하는 게 아닌, 다른 행위를 하는 것으로 점점 바뀌어 간다.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은 하나의 우화로 읽힌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이만교의 입담과 구수하고 아기자기한 두리뭉실한 기지와 재치는 그의 문장이나 소재 곳곳에 드러난다. 쉽고 간단하고 순박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사소하고 얇은 것들을 모아 예쁘고 섬세한 글을 만들 줄 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공을 가지고 벌이는 놀이, 공 때문에 벌어지는 사소한 상황과 감정의 변화를 기발하고도 집요하게 하나의 일관성 있는 형식으로 잘 꾸며낸다. 이만교의 다른 소설 [머꼬네집에 놀러올래]에서 빛났던, 썰렁하고 서투르고 밋밋한 일상의 상황에 은근슬쩍 의뭉스럽게 엉뚱하고 황당한 사실과 개념을 덧대는 실력이 이 책에서는 이음새 이어진 자리가 티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현실과 환상이 어울리고 있다. 우화이긴 하지만 현실과 거리가 너무 가까워 선뜻 우화인지 눈치채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이들처럼, 사람들이 싸우면서 배우고 깨닫고 서로를 이해하며 친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럼 지구의 모든 인종들은 모두 가족 같은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
| 어느 날 시골 소년 동이에게 ‘공’이 생긴다. 도시에서 공 만드는 공장에 다니는 큰누나가 선물한 것이다. 공은 가벼운 물방울처럼 떠올랐다가 느리게 내려 앉을 수 있고, 약간만 힘을 가해도 고무줄 퉁겨지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차고 천장까지 튀어오를 수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이에게 공의 소유는 세상을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척 거대한 일이 된다. 그리하여 공은 동이와 동이의 작은 누나, 동이와 범이, 동이와 온동네 아이들에게로 영향력을 넓혀간다. 소설은 뭐 그렇다. 이만교 특유의 그 넘쳐 흐를 것 같은 유머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유머 너머에 감추어져 있던 시니컬의 기원을 밝히려고 시도 하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동이의 손아귀에 들어간 공이라는 놀 것과 마찬가지로 이만교라는 작가에게 있어 소설은 일종의 놀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이러한 예측은 소설의 후미,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소설쓰기를 두고 ‘공을 몰며 노는 일’이라고 명명함으로써 튼튼하게 뒷받침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러한 놀 것이 그저 단순한 놀이의 도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동이는 공을 가지고 놀고, 공을 가지고 함께 놀고, 공을 가지고 함께 놀다가 싸우고, 공을 가지고 함께 놀다가 싸우다가 다시 화해하는 전과정을 통하여 성장한다. 딱히 공이 아니었다고해도 어린 시절 누구든 한 가지쯤 가지게 되는 자신만의 무엇, 지금은 의식의 저편 무의식의 한 켠에나 보물처럼 감추어진 무엇이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것의 등장은 어린 자신을 등장이전과 등장이후로 나누는 분수령으로 작용하지 않았던가.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공’, 또는 ‘공의 소유’는 모든 어른들이 아이이던 시절 한번쯤 겪었을 성장통의 다른 이름임을 확인한다. 아, 그리고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만교는 작가의 말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설명을 늘어놓고 있다. 보통은 작가와 친분이 있는, 또는 출판사와 친분이 있는 평론가가 이리저리 어려운 말을 써가며 풀어 놓아야 제격인 설명을 작가의 말로 덧붙여 놓은 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작가의 설명에 따르자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기성세대나 할 것 같은 고민과 갈등과 반목을 사실은 아이들 때도 똑같이 하면서 살았던 것이구나... 아니 아이들이야말로 욕심과 집착심에 사로잡혀 산다. 그러나 또 우리가 이러한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점잖은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아이들처럼 빨리 잊고 빨리 또 다른 무엇인가에 강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이끌리는 태도가 아닐까...” “독자는 이 이야기 전체를 하나의 우화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우리에게 서구 근대 문명은, 매혹적이면서도 이기적인 욕망의 ‘공 맛’에 사로잡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으니까...” “독자는 문장을 읽을 때 ‘공(ball)'을 ‘공(空)’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사건을 발생시키는 원인이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 실체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그러한 인연으로서의 ‘공’...” 그런데 혹시 이 작가, 평론가들이랑 친하지 않은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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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면 이 책의 작가 '이만교'씨가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책을 쓴 작가였던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너무나 다른 분위기이지만 이만교씨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각각 그 작품만의 색깔이 톡톡히 느껴진다는 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는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게 하는 따뜻한 소설이다. 마냥 순수하지만 장난기가 가득한 동이의 모습에서 또 다른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생각하며 추억에 잠길수도 있었고 연달아 벌어지는 삶의 에피소드와 작은 소년 '동이'의 하루를 통해 넉넉한 웃음을 느낄수 있었던 책이다. 자칫 지루할수 있는 시골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려내었고 마냥 웃으며 끝나는 소설이 아니라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어른은 물론 아이들과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소설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구절] 동이는 담배 연기를 한 번 더 내뿜으며 다짐했다. 이번 한 가위에 큰 누나가 내려오면 따라가겠다고 졸라야지. 졸라도 들어주지 않으면 가는 방법을 알아두었다가 찾아 올라가야지. 억이 녀석도 함께 가기로 했다. 녀석과 같이 간다면 한결 든든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