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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리를 통해 느끼는 삶의 경이로움]
만약에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이라는 상상을 가끔 해 보았다. 지금의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있다는 것은 모습 자체를 떠나서 지금의 삶에 너무도 익숙해져있다는 말과 같다. 만약 지금의 내가 아니라면...이라는 상상은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그런 자극제같은 역할을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자극제라고 해서 강렬하다기 보다는 너무도 신비하고 경이로운 자연의 한 단면을 그려주기에 그런 순수함에 자극을 받아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도시에서 자란 탓에 자연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탓에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을 탐할 수 있는 장소를 자주 다녔다. 일명 생태공원이라고 지어졌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그 장소도 인간들에게는 자연을 탐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였고 인위적인 보존을 통해서 앞으로 더 생명력과 가치를 지니는 장소들이 되어가는 곳이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호랑나비 애벌레를 보고 책속의 그것과 똑같다며 호들갑을 떨고 살짝 건드리자 성을 내면서 위협적으로 뿔을 내밀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자연을 모른다는 이유로 가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다 였고 새로운 세계를 안다는 즐거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면 지금은 그 자연을 대하는 마음이 많이 달라졌다.
가까이서 잎사귀의 잎맥을 살피는데 익숙해져 있다가 지금은 조금 떨어져서 숲의 거대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와 함께 가는 자연을 느끼고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함께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인간이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것은 자연에게 얻는 그 무엇이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의 삶이 너무도 치열해서 미처 먼 곳을 바라보지 못하고 동동 거리면서 살 때 자연은 그 원초적인 모습으로 자연의 진리를 전해준다. 이 작품은 자연 속에서 태어나 죽음을 맞이하는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를 통해 자연의 진리를, 삶의 진리를 일깨워주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가시가 뾰족하게 나있던 걸로 기억되는 산초나무는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의 서식지가 된다. 묘한 산초나무의 향이 애벌레를 지켜주는 향이 되는 것인지 이 나무는 가중나무고치나방이 알을 낳고 그 알들이 잎을 먹으면서 생활하는 장소이다. 13마리의 애벌레. 산초나무에서 태어난 13마리의 애벌레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자연의 일부이지만 태어나고 죽어가는 그 과정을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13마리의 애벌레 중에서 겨우 우화에 성공하는 것은 단 한마리. 천적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최대한 젖혀서 멀리 배설하려고 하나 결국 먹잇감이 되고 마는 애벌레가 있는가 하면, 가장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숙주로 삼는 고치벌 때문에 죽는 애벌레도 있다. 우화하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 죽은 애벌레는 아치 자신의 몸 속에 자리잡은 고치벌의 알들을 부화시키기 위한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듯해서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어린 시절에 나비가 되기 위한 애벌레의 이야기를 다룬 그 정도만을 상상했는데 이 작품은 생태동화이면서 동시에 애벌레의 성장을 통해 자연의 이치와 순리를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애벌레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으면서 인간이 자연 속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자연의 일부로 그의 곁에 돌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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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든 생각은 차윤정의 『신갈나무 투쟁기』가 먼저 생각났다. 『신갈나무 투쟁기』보다 약한가? 생각했다. 그러나 책이 진행 되면서 『애벌레를 위하여』는 또 그 나름대로의 멋과 맛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애벌레를 위하여』의 시작은 가중나무 고치 나방의 고치로부터 이야기는 시작 되고 있다. 진달래 나뭇가지에 매달린 고치에서 한 마리의 수컷 나비가 깨어나고 그 나비가 짝짓기를 했다. 암컷은 산초나무 가지에 알을 낳고 자연의질서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 후 산초나무에서 깨어난 가중나무고치 나방의 열세 마리 애벌레들의 삶을 통한 숲의 생태, 자연의 질서를 이야기한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대부분 자신이 태어 난 나무에 의지해 살아간다. 이 책의 주인공 가중나무 고치나방의 열세마리의 애벌레는 산초나무에서 깨어났다. 이들은 산초나무 잎을 뜯어 먹으면서 그 곳에서 허물을 벗고 변태를 거듭한 후 고치를 만들게 될 것이다. 애벌레가 변태를 거듭하다 고치를 만들기까지 이야기는 긴박하다. 그 긴박성은 애벌레를 둘러싼 숲의 생명들에게 있다. 박새, 동고비, 곤줄박이, 박쥐, 청설모, 톱사슴벌레, 게거미, 뱀허물쌍살벌, 자벌레, 밭배나무, 오리나무, 진달래나무 등 수 많은 숲속 생명체다. 이들은 때로는 먹이사슬 관계로, 때로는 공생 관계로, 때로는 우연한 만남을 통해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맺는 관계들을 통해 작가는 하나의 생명은 그 자신이며 동시에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숲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신갈나무 투쟁기』을 읽어 보면 한 줌의 햇볕과 한 모금의 물을 위해, 아주 작은 공간을 위해 나름대로 식물들은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신갈나무 투쟁기』가 식물을 통한 생존을 위한 치열함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애벌레를 위하여』는 가중나무 고치나방의 애벌레를 통해 숲 속 작은 생물들의 생존을 이야기한다. 매일, 매 순간 목숨을 건 전투는 치열하다. 한순간의 방심은 죽음과 직결이 되어 있다. 살고 죽는 것에 연민이나 미련은 없다. 잔혹한 살상, 어이없는 죽음만이 실재한다. 굳이 무언가를 감추려하지도 않고 포장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 할 뿐이다. 열세마리의 애벌레들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사라져 가고 어떻게 살아남는지 지켜보는 동안 긴박감과 숭고함을 느낀다.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들이 한 마리씩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과연 몇 마리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살짝 이야기 하자면, 열세 마리 애벌레 중에 살아남아 고치를 만든 것은 겨우 두 마리뿐이다. 작품의 표면적인 주인공 열세 번째 애벌레가 고치를 만들 수 있을까 궁금했다. 결론은 열세 번째 애벌레는 끝내 고치를 만들지 못했다. 열세 번째 가중나무 고치나방의 죽음에서 느껴지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자연인가? 이게 모성인가?’ 생각 할 뿐이다. ‘애벌레를 위하여’는 열세 번째 애벌레의 죽음과 연관 된 책이라는 생각이들었다. 책을 책장에 꽂으며 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