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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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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저녁,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산초기름에 구운 두부가 나왔다. 산초향기를 맡는 순간 나는 열세 번째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가 되고 말았다! 산초나무 가지나 잎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데 산초냄새를 맡자 내 머릿속에는 열세 번째 애벌레가 살던 숲이 한가득 찼다. 산초나무잎에 매달린 애벌레들이며 사마귀, 청솔모, 고양이까지, 초록색 산초기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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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저녁,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산초기름에 구운 두부가 나왔다. 산초향기를 맡는 순간 나는 열세 번째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가 되고 말았다! 산초나무 가지나 잎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데 산초냄새를 맡자 내 머릿속에는 열세 번째 애벌레가 살던 숲이 한가득 찼다. 산초나무잎에 매달린 애벌레들이며 사마귀, 청솔모, 고양이까지, 초록색 산초기름으로 구워진 두부 접시에는 책속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산초두부 한 접시를 앞에 두고 뭇 생명과 이야기, 우주를 떠올리는, 그야말로 ‘애벌레명상’을 경험했다. 작가의 섬세한 이야기가 내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리라.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현미경을 들고 숲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열세 번째 애벌레가 알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숲속 식구의 일원이 되었으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들과 숲속에서 여름과 가을, 겨울을 났다. 보이지 않던 수많은 애벌레들이 보이고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조차 예사롭지 않다. 작은 애벌레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다시 보게 된다.

 폭풍우에 다치고,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거나 혹은 간신히 살아남는 이야기가 긴장은 줄지언정 슬프거나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결코 먹이사슬이나 적자생존의 논리가 아니라 “생명의 그물”로 이어져 있다는 걸 전제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든 크든, 오래 살든 짧게 살든, 힘이 세든 약하든, 못생겼든 잘생겼든, 모든 생명은 나름의 존재의 이유를 갖고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하고 조화롭다는 사실은 당연하면서도 새삼 감동적이다.

 냄새로만 산초나무잎을 찾는 애벌레가 나는 왜 그리 부러울까. 도감을 보지도 않고 누구에게 묻지도 않고 ‘오로지 냄새로’ ‘산초나무만을 향해’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가는’ ‘아주 작은’ 애벌레들이 왜 그리 부러울까. 자연에서 너무 멀어진, 그래서 생명 본연의 감각과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커다란 몸뚱이를 한 인간들의-생명체로서의 무능력과 무기력, 무관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애벌레처럼 쉬지 않고 꿈틀거렸다.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지배자이기를 자처하는 인간의 삶은 얼마나 황폐하고 이기적인지. 여름 내내 있는 힘을 다해 울다가 말복을 넘기고 나무 밑에 쓰러진 저 매미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루를 살지언정, 자연의 순리대로, 하지만 우주에 단 하나뿐인 생명으로서 자기 생에 최선을 다하고 떠나는 저 하루살이들의 영혼은 또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가.  

 어렸을 때는 누구나 그렇겠지만-작가 역시도 말했듯이, 나도 어느 누구보다 애벌레를 무서워하고 싫어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만이 세상의 주인인양 행세하는 사람들이 무섭고 싫다. 멈추지 않는 작은 몸부림으로 자기 앞에 놓인 크고 많고 힘겹고 두려운 모든 삶을 최선을 다해 맞닥뜨리는 이 세상의 모든 ‘애벌레를 위하여’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j*****0 2010.08.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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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리를 통해 느끼는 삶의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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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리를 통해 느끼는 삶의 경이로움]          만약에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이라는 상상을 가끔 해 보았다. 지금의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있다는 것은 모습 자체를 떠나서 지금의 삶에 너무도 익숙해져있다는 말과 같다. 만약 지금의 내가 아니라면...이라는 상상은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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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리를 통해 느끼는 삶의 경이로움] 

 

 

 

 

만약에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이라는 상상을 가끔 해 보았다. 지금의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있다는 것은 모습 자체를 떠나서 지금의 삶에 너무도 익숙해져있다는 말과 같다. 만약 지금의 내가 아니라면...이라는 상상은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그런 자극제같은 역할을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자극제라고 해서 강렬하다기 보다는 너무도 신비하고 경이로운 자연의 한 단면을 그려주기에 그런 순수함에 자극을 받아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도시에서 자란 탓에 자연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탓에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을 탐할 수 있는 장소를 자주 다녔다. 일명 생태공원이라고 지어졌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그 장소도 인간들에게는 자연을 탐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였고 인위적인 보존을 통해서 앞으로 더 생명력과 가치를 지니는 장소들이 되어가는 곳이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호랑나비 애벌레를 보고 책속의 그것과 똑같다며 호들갑을 떨고 살짝 건드리자 성을 내면서 위협적으로 뿔을 내밀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자연을 모른다는 이유로 가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다 였고 새로운 세계를 안다는 즐거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면 지금은 그 자연을 대하는 마음이 많이 달라졌다.  

 

가까이서 잎사귀의 잎맥을 살피는데 익숙해져 있다가 지금은 조금 떨어져서 숲의 거대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와 함께 가는 자연을 느끼고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함께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인간이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것은 자연에게 얻는 그 무엇이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의 삶이 너무도 치열해서 미처 먼 곳을 바라보지 못하고 동동 거리면서 살 때 자연은 그 원초적인 모습으로 자연의 진리를 전해준다. 이 작품은 자연 속에서 태어나 죽음을 맞이하는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를 통해 자연의 진리를, 삶의 진리를 일깨워주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가시가 뾰족하게 나있던 걸로 기억되는 산초나무는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의 서식지가 된다. 묘한 산초나무의 향이 애벌레를 지켜주는 향이 되는 것인지 이 나무는 가중나무고치나방이 알을 낳고 그 알들이 잎을 먹으면서 생활하는 장소이다. 13마리의 애벌레. 산초나무에서 태어난 13마리의 애벌레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자연의 일부이지만 태어나고 죽어가는 그 과정을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13마리의 애벌레 중에서 겨우 우화에 성공하는 것은 단 한마리. 천적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최대한 젖혀서 멀리 배설하려고 하나 결국 먹잇감이 되고 마는 애벌레가 있는가 하면, 가장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숙주로 삼는 고치벌 때문에 죽는 애벌레도 있다. 우화하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 죽은 애벌레는 아치 자신의 몸 속에 자리잡은 고치벌의 알들을 부화시키기 위한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듯해서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어린 시절에 나비가 되기 위한 애벌레의 이야기를 다룬 그 정도만을 상상했는데 이 작품은 생태동화이면서 동시에 애벌레의 성장을 통해 자연의 이치와 순리를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애벌레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으면서 인간이 자연 속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자연의 일부로 그의 곁에 돌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c******u 2010.07.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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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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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든 생각은 차윤정의 『신갈나무 투쟁기』가 먼저 생각났다. 『신갈나무 투쟁기』보다 약한가? 생각했다. 그러나 책이 진행 되면서 『애벌레를 위하여』는 또 그 나름대로의 멋과 맛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애벌레를 위하여』의 시작은 가중나무 고치 나방의 고치로부터 이야기는 시작 되고 있다. 진달래 나뭇가지에 매달린 고치에서 한 마리의 수컷 나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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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든 생각은 차윤정의 『신갈나무 투쟁기』가 먼저 생각났다. 『신갈나무 투쟁기』보다 약한가? 생각했다. 그러나 책이 진행 되면서 『애벌레를 위하여』는 또 그 나름대로의 멋과 맛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애벌레를 위하여』의 시작은 가중나무 고치 나방의 고치로부터 이야기는 시작 되고 있다. 진달래 나뭇가지에 매달린 고치에서 한 마리의 수컷 나비가 깨어나고 그 나비가 짝짓기를 했다. 암컷은 산초나무 가지에 알을 낳고 자연의질서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 후 산초나무에서 깨어난 가중나무고치 나방의 열세 마리 애벌레들의 삶을 통한 숲의 생태, 자연의 질서를 이야기한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대부분 자신이 태어 난 나무에 의지해 살아간다. 이 책의 주인공 가중나무 고치나방의 열세마리의 애벌레는 산초나무에서 깨어났다. 이들은 산초나무 잎을 뜯어 먹으면서 그 곳에서 허물을 벗고 변태를 거듭한 후 고치를 만들게 될 것이다. 애벌레가 변태를 거듭하다 고치를 만들기까지 이야기는 긴박하다. 그 긴박성은 애벌레를 둘러싼 숲의 생명들에게 있다. 박새, 동고비, 곤줄박이, 박쥐, 청설모, 톱사슴벌레, 게거미, 뱀허물쌍살벌, 자벌레, 밭배나무, 오리나무, 진달래나무 등 수 많은 숲속 생명체다. 이들은 때로는 먹이사슬 관계로, 때로는 공생 관계로, 때로는 우연한 만남을 통해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맺는 관계들을 통해 작가는 하나의 생명은 그 자신이며 동시에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숲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신갈나무 투쟁기』을 읽어 보면 한 줌의 햇볕과 한 모금의 물을 위해, 아주 작은 공간을 위해 나름대로 식물들은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신갈나무 투쟁기』가 식물을 통한 생존을 위한 치열함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애벌레를 위하여』는 가중나무 고치나방의 애벌레를 통해 숲 속 작은 생물들의 생존을 이야기한다. 매일, 매 순간 목숨을 건 전투는 치열하다. 한순간의 방심은 죽음과 직결이 되어 있다. 살고 죽는 것에 연민이나 미련은 없다. 잔혹한 살상, 어이없는 죽음만이 실재한다. 굳이 무언가를 감추려하지도 않고 포장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 할 뿐이다. 열세마리의 애벌레들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사라져 가고 어떻게 살아남는지 지켜보는 동안 긴박감과 숭고함을 느낀다.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들이 한 마리씩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과연 몇 마리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살짝 이야기 하자면, 열세 마리 애벌레 중에 살아남아 고치를 만든 것은 겨우 두 마리뿐이다. 작품의 표면적인 주인공 열세 번째 애벌레가 고치를 만들 수 있을까 궁금했다. 결론은 열세 번째 애벌레는 끝내 고치를 만들지 못했다. 열세 번째 가중나무 고치나방의 죽음에서 느껴지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자연인가? 이게 모성인가?’ 생각 할 뿐이다. ‘애벌레를 위하여’는 열세 번째 애벌레의 죽음과 연관 된 책이라는 생각이들었다. 책을 책장에 꽂으며 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c********k 2010.07.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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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애벌레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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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를 위하여>  책의 마지장막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놀라움! 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그 작은 세상들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작가가 가진 세밀한 관찰의 눈이 아예 자연이 되어버린 느낌을 받는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또 조금 부족하다. 화면에 잡히지 않는 더 작은 세상과 그들 내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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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벌레를 위하여>


 책의 마지장막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놀라움! 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그 작은 세상들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작가가 가진 세밀한 관찰의 눈이 아예 자연이 되어버린 느낌을 받는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또 조금 부족하다. 화면에 잡히지 않는 더 작은 세상과 그들 내면을 글로 풀어놓으므로, 작은 생명체들과 사람의 눈높이를 같은 위치에 두어 그들의 세상 속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계절의 그때그때의 숲이 된 느낌은 짜릿하다. 굉장히 객관적으로 사진을 찍듯이 숲과 생명체들의 역동이 표현된 듯, 하지만 거기에 소설만이 주는 상상력과 감성역시 전혀 놓치지 않았다.

 

 번데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멋진 자태를 뽐내고 새 생명을 탄생시킨 후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모습과 그들이 고진 감내 끝에 세상에 남겨놓은 새 생명들이 알에서부터 다시 성충이 되는 그 끊을 수 없는 연결의 고리를 읽고 나니 가슴 한 끝이 묘해진다. 산초나무를 중심으로 그 잎사귀들 마다 놓여있는 애벌레들과 거미 무당벌레, 새, 베짱이, 벌 등, 친근한 이름에서부터 낯선 이름들의 숲속 친구들을 움직임을 작가의 눈을 빌어 볼 수 있었다.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이 바로 내 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치 앞을 알 수 없어 항상 긴장하는 그들의 삶이나 우리 사람들의 삶이나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단지 우리는 거대한 몸으로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밟고 헤칠 수 있다는 것뿐. 내가 걷어찬 수많은 생명의 애벌레들이 그처럼 어려운 역경을 이기고, 늘 긴장 속에서 그 정도를 버텼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조금은 주의를 기울였을까.

 

 잎새 사이사이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은 미쳐하지 못하고 자신의 배를 채웠다는 만족감을 채 누리지도 못하고 천적에게 잡히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태어난 지점에서 죽음을 편하게 기다리는 매미, 베짱이, 사마귀 등, 숲의 친구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경건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성장을 멈추고, 자신을 바쳐 고치벌의 알을 부화 시킨 열세 번째의 애벌레 모습에서는 자연이 주는 강한 모성본능에 또  한번 놀란다. 작가가 표현한 그 애벌레의 마음이 사실인 것처럼 다가온다. 바람이 분다고 탓 할 수도 없고, 난데없이 우박이 떨어진다고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최대한 그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다. 그리고 다시 자연이 주는 에너지로 지친 몸을 치유하고 그렇게 하루하루에 충실히 한다.                  

 

 자연을 이야기한 책이라고 하기엔 가벼운. 마치 생각거리가 많은 철학책을 한권의 읽기를 이제야 마친 것 같다. 매미의 소리 바람의 소리 벌레들의 지지직 소리들을 옆에서 듣는 것처럼 읽기가 마쳤으니, 또 다시 정독으로 첫 장을 열고 싶다. 우리의 삶의 토대를 만들어주는 수많은 애벌레들을 위하여. 

p*******0 2010.06.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