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7)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3%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4%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8.0
  • 30대 0.0
  • 40대 8.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문익환 평전> 을 읽고..
"<문익환 평전> 을 읽고.." 내용보기
올해2월, 늦봄 문익환 목사의 10주기 추모행사가 광주에서 열렸다. 당시 열렬하게 시청하고있던 티비프로그램인 의 진행자 문성근씨가돌연 프로그램을 중도하차하고 열린우리당에의 입당을 선언했던 시기였기때문에,추모제 마지막 연사로 예정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다소 불온한 의도를가지고 추모제에 참석했었다. 시내의 자그마한 카페에서 열린 추모제
"<문익환 평전> 을 읽고.." 내용보기
올해2월, 늦봄 문익환 목사의 10주기 추모행사가 광주에서 열렸다. 당시 열렬하게 시청하고있던 티비프로그램인 <인물현대사>의 진행자 문성근씨가돌연 프로그램을 중도하차하고 열린우리당에의 입당을 선언했던 시기였기때문에,추모제 마지막 연사로 예정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다소 불온한 의도를가지고 추모제에 참석했었다. 시내의 자그마한 카페에서 열린 추모제및 사진전은 역시나 어수선한 정국을 반영하듯,많은 노사모회원들이 참여한 상태에서 열렸는데...(아마도 노란잠바 안 입은 일반인은 나뿐이었던듯..;;) 불을끄고, 곧이어 상영된 문익환 목사 관련 슬라이드영상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검은두루마기를 거치고, 성성한 백발을 휘날리며 쩌렁쩌렁한 사자후를 토해내는 모습,김일성 주석을 꽈악 껴안는 모습..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추모의눈물..사회로부터 단편적으로 주입된 편견으로만 대략적으로 인식하고 있던 그의 존재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문성근이 연설중에 전했던 것처럼,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시인 김형수가 탈고한<문익환 평전="">이 출판되어 세상에 나왔다. 포털사이트의 배너에서 평전의 광고를 보았을때...그리고 목침만큼 묵직한 책을 서점에서 골랐들었을 때의 그 감격이란... 책을 구하자마자 작은 떨림을 느끼며 곧 한장한장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일단 일련의 평전과 다르게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서술방식이나 표현이 아닌가 싶다.'민족문학'의 대표자로 일컬어지는 저자 김형수는 시인답게 굉장히 유려하고, 또 감성적인 글발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분명한 장단점을 가져온다. 일단, 지극히 주관적인 요소가 강하다보니 허구와 결합된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되기도 하고, 긴 호흡으로 모든 사건,문제를 살피다보니 쉬이 내용의 큰 줄기가 정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와 반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의 대하드라마나 다름없는 늦봄의 생애가 가지는 감동과 교훈을 가장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한것이라는 옹호역시 가능하다. 실제로 그가 5번째 출옥을 마치자마자 도착한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에서 행한 그 유명한 연설...(먼저가신 26명 열사의 이름을 목놓아부르는..)을 다룬 부분에서는 흐르는 눈물을 그치기가 힘들어 꽤 오랫동안 마음을 진정시켜야만 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가슴 떨렸 것은 문익환 목사가 한국의 여러 거목들과 나눈 우정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윤동주, 장준하, 고은, 김대중..등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만주 명동학교 시절부터 교우하며 숱한 방황과 시련을 함께 겪어왔다. 그는 살아생전 입버릇처럼 '콤플렉스 투성이' 라고 되뇌며 벗들에 대한 자책감과 더불어 그들에 미치지 못하는 행보를 하고 있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곤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묵묵한 양심적 민족시인의 길을 간 윤동주의 시를 평생 되뇌었고, 일제에 직접항거하고 독재에 홀로 맞선 장준하의 의문사를 막지 못하였음에 평생 가슴 아파해야만 했다. 필자는 그러한 그의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와 더불어 집요하게 구약번역에 매달리며 확립된 민중에 대한 의식이 차곡차곡 그의 내면에 쌓여오다가 전태일의 분신과 함께 비로소 폭포수처럼 세상 밖으로 터져나왔다고 전한다. 40이 훌쩍 넘어서야 홀연히 민주화운동의 일선에 나타나 불과 30여년간 한국현대사에 실로 굵직굵직한 발자취를 수없이 남긴 그의 갑작스런 '의식의 전환' 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부분이다. 물론 그가 만주...고구려와 발해의 기개가 살아 숨쉬는...에서 유년을 보내고 , 항일운동 최일선에 서있던 아버지 문재린 목사 등 가족들의 무용담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품게된 '대륙인으로서의 기질' 역시 고려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민통련 의장 시절, 수많은 동지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아야만했던 역사적인 방북사건과 통일정책에의 매진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익환 목사의 행보가 , 그가 실행한 여러 역사적인 제스쳐들이 과연 매순간 적절했는가...최선이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다. 혹자는 그를 '소영웅주의' , '독단적인 행보' 와 같은 단어로 비판하기도 하고, 심지어 방북당시에는 '북파간첩' , '미군프락치' 라며 누명을 씌워 그를 궁지로 몰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민족과 역사에 대한 진정성...그리고 애정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가 어렵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파송' 하셨다고 굳게 믿으며,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 설사 그곳이 맨바닥에서 먹고자며 생활해야 하는 곳이라 하든 2,3명의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만이 모인곳이라 하든지 가리지 않고 뛰어가 굳게 손을 맞잡고 힘을 보태곤 하던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된 목회자의 전형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수차례 징역형을 선고받고 노년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출감되자마자 항상 수많은 열사들의 장례위원장직이나 민주화단체의 책임직을 자처했던 그의 용기있는 행보앞에 '미군프락치' 운운하는 것은 정말이지 파렴치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일 것이다. 책이나 방송을 통하여 접하게 되는 386세대들의 단상은 거의 대부분 잿빛이다. 특히나 다큐프로에서 과거를 조용히 회상하는 대목의 인터뷰에서는 하나같이 눈물을 참느라 힘겨운 노력들을 벌이시곤 한다. (책중에서는 [고등어]가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던 당대의 역사적 소명. 그리고 그것을 힘겹게 짊어지느라 포기해야만 했던 젊은날의 많은 페이지들. 먼저간이들에 대한 슬픔. 남겨진 자로서의 죄책감.. 이 책을 읽는 동안 문익환 목사 역시 386세대는 아니지만 당대의 젊은 이들과 비슷한 잿빛의 옷을 입고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그들의 그러한 아픔들이 어렴풋이나마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죽는날까지 자신의 망막속에 각인될 것 같다는 꽃다운 젊은이들의 분신장면과 억울한 주검들을 보며 사자후를 토하는 그의 모습, 26명의 열사들의 이름을 피맺힌 목소리로 목놓아 부르던 그의 모습이 나역시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w********3 2004.07.01. 신고 공감 1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잠들지 않는 애족애국의 꽃, 문익환
"잠들지 않는 애족애국의 꽃, 문익환" 내용보기
‘인간은 무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하는 한 인간의 마음집에 다녀왔다. 거대한 스타디   움을 방불케 하는 규모에 멋들어진 장식하나 없이 소박한 정만으로 그득 찬 그곳에 발을 들여놓기가, 나   얼마나 염치없던지. 문 익 환. 다 같은 선홍빛 심장일진대 사람마다 제각각의 빛을 띤다.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수동적인 열손가락에도 설레는 눈물을 싣게 하
"잠들지 않는 애족애국의 꽃, 문익환" 내용보기

‘인간은 무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하는 한 인간의 마음집에 다녀왔다. 거대한 스타디

 

움을 방불케 하는 규모에 멋들어진 장식하나 없이 소박한 정만으로 그득 찬 그곳에 발을 들여놓기가, 나

 

얼마나 염치없던지. 문 익 환. 다 같은 선홍빛 심장일진대 사람마다 제각각의 빛을 띤다.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수동적인 열손가락에도 설레는 눈물을 싣게 하는, 그의 뜨거운 용광로란 가슴통. 첫 페이지를 펼쳐 마

 

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아니 그의 심장이 영원히 잠들 것 같아, 나는 차마 마지막 페이지를 덮지 못하고

 

그저 울고 울어야 했다. 며칠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펜이 아닌 자판부림에 도저히 손을 맡기지 못한 채.

 

 

 

영화배우의 아버지로, 그저 언젠가 북한을 다녀왔다던 목사라고 하는 그의 단편적 삶에 머물러있었던 나

 

의 무지에 찬물 한바가지를 끼얹어본다. 내가 문익환 목사님을 바로 알게 된 이 사건이 혹 누군가(신이든

 

누구든)의 예약된 계획이라면 나는 지금 바로 엎드려 누구에게라도 거듭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이 어

 

른을 제대로 보게 해준 데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말이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네 것도 내 것 내 것

 

도 내 것’이 웬 말이냐. 닭도 먼저 알도 먼저, 내 것도 네 것 네 것은 네 것. 물심양면으로 사랑을 퍼주는

 

오지랖만 후했던 문익환. 바로 이 무기로 그는 약자와 반 조각짜리 조국통일을 위해 살신인했다. 나는

 

이 분이 사람 같지가 않다. 그는 인간의 형상을 빌어 이 땅위에 재림한 신이었다. 것도 신의 부재를 맹신

 

하던 내가 그렇게 보았다면 이제부터는 신의 존재를 믿어버리게 된 셈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

 

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p225, 윤동주의 시 중에서).

 

 

 

애국으로 향하는 우정의 배에 오른 세 친구

 

해방 6개월을 앞두고 후쿠오카 감옥에서 요절의문사(주사주입, 생체실험 의혹)한 벗 윤동주와 송몽규.

 

1918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윤동주, 송몽규와 학창시절을 함께했던 문익환은 펜으로 아린 조국을

 

창唱했던 윤동주에게 문학적 열등감을, 혁명적 혈기로 민족투쟁의 선봉에서 언제나 당당했던 송몽규에게

 

동지적 경외감을 느끼며 그답지 않은 자책에 한없이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양대 산

 

맥처럼 높이 우러렀던 두 친구와의 우정은 조국 통일이란 합승열차를 추동시키는데 문익환 그가 스스로

 

를 다독거리며 곳곳의 약자에게 사랑과 위로를 베푸는 초석이 되어준다. 시가 윤동주의 애국심을 대변하

 

고 적극적인 항일운동이 송몽규의 그것을 대신했다면, 무한적 인간애는 문익환 식 애족애국심을 불태운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사실 문익환이 전태일의 죽음을 통해 목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야심

 

만만한 득의작(得意作)이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라는 성서의 구절을

 

빌려, 전태일이 ‘죽음’을 남기면서 ‘바라던 것의 실상’, 전태일이 목숨을 바쳐서까지 보여주고 싶었던, 그

 

날그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를 노래하고 있었던 것이다(p409).

 

 

 

청년 분신과 반독재 항일투사의 주검이 남긴 넋에 동참하는 히브리 시작詩作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피복 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분신, 1986년 서울대 강연 도중 문익환 목전에서 분신한 이동수,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고발 및 개헌을 요구하는 몇 차례의 공개서한 발부- 등으로 인해 끝내 타살의문사한 장준하 등등. 한 많은 이들의 주검은 다소 늦은 56세 때 문익환의 첫 시집 [새삼스런 하루]의 출간을 재촉하며 민초적 정서로 똘똘 뭉쳐진 그의 다부진 문학적 분신을 대변한다. 일제식민지와 한국전쟁, 조국분단, 위정자와 군사정권의 유착이란 거듭된 민족수난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미. 소를 위시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내정간섭과 교활한 지식층의 포섭 및 핍박에 한국은 그야말로 난세도 그런 난세지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 그의 심신은 이미 그 자신을 떠나 소외된 자들의 처절한 몸부림과 이별한 우리 반민족에게 이동해 집중된다. 하여 저 애달픈 애국 동지들의 주검이 내준 과제는 문익환의 시로 다시 부활하고, 이제 그에게 열린 조국의 현실은 그가 하나하나 풀어가야 할 희망의 끈이 된 것이다.

 

“38선을 베고 누울지언정 민족이 둘로 나뉘는 것을 더 이상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생각의 재판이었던 것이다(p703).

 

“예수의 죽음은 갈릴리 민중의 죽음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이 민중의 죽음이었다면, 그의 부활은 민중의 부활일 밖에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는 통일운동은 부활신앙을 역사 속에서 사는 일입니다.”(p714,방북 당시 문익환 목사가 접견한 북측에 건넨 말)

 

“문 목사가 김일성이를 안아줬다고 뭐라 하는데, 여보시오, 문 목사가 아니면 김일성이를 안아줄 사람이 없어요!”(p745, 문 목사 방북 건으로 개정된 법정에서의 할머니 김신묵 여사의 발언)

 

빙산(김일성 주석)을 녹인 거인(문익환 목사)의 진정성

김일성 주석과 문익환 목사의 포옹으로 일순 통일의 발판이 꿈틀거린다.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 단일팀 참가 시 국가 대신 아리랑을 부르기로 합의, 남북 공동 국어사전 편집, 이산가족문제의 실천방안(북에 남측 출판물 비치를 위한 서점 개점 건의안에만 김 주석은 확고한 답을 주지 않았다). 문 목사의 격식 없고 대담한 이 세 가지 제안을 김 주석은 흔쾌히 수락한다. 하지만 통일의 물꼬를 튼 위업을 달성하고 귀국한 그를 기다린 건 첩첩산중 감옥이었다. 그에게 첩첩산중의 감옥이란 작은 폭을 가진, 통일을 망설이고 꺼려하는, 아예 그를 매장시켜 골칫거리 거목 하나를 처단하려는 무지몽매한 치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문 목사가 안고가야 할 우리 민족이요, 동지였으므로 그는 끝까지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발군의 노력을 다한다. 허나 세상은 그가 못 다 한 숙제를 다음 타자에게 넘기는 안타까운 비운의 결말을 짓고 만다.

 

사랑은 남아도는 젖처럼 넘치는 생명을 가진 강자에게만 있는 것입니다(p790).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노라(p790).

 

조국통일의 염원을 무덤까지 데리고 간 애국자

시위 중이던 명지 대학생 강경대 군이 경찰의 진압봉에 맞아죽고, 그의 장례위원장을 맡은 문 목사는 1991년 6월 6일 21개월의 여섯 번째 옥중 고를 겪는다. 그리고 1993년 김영삼의 영악한 문민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문 목사의 통일가도는 여전하여 전투적으로 정부 설득에 나서며 도덕적 민간 통일운동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본다. 허나 세상은 또다시 그의 통일 순애보에 태클을 건다. 그의 언행을 범민련 해체로 몰아 안기부 측 스파이이자 제 2의 이광수라는 비난과 질타가 쇄도한 것. 그렇게 통일의 문에 거의 다다른 것만 같았던 햇살은 다시 제 모습을 감추려는 듯 무정한 3년여의 세월을 흘려보내고, 문 목사는 1994년 끝내 조국 통일을 이루지 못한 통한痛恨을 안고 7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문익환, 언제나 샘솟는 젖줄로 대기하고 있다가 필요한 요소요소에 거침없이 사랑을 쏟아주던 그를 어찌 신이 아닌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해마다 그가 잠든 모란공원을 찾는 수많은 인파의 발자국들을 보라. 그들의 발자국이 보지 못하는 바를 생동하는 가슴은 뼈저리게 본다. 한때의 어리석음에서 탈피한 그들의 심장이 뒤늦게나마 열망하고 소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아마도 그것을 더듬어 추적해보는 것이야말로 문 목사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일게다. 더불어 나는 믿는다.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나는 왠지 그가 사진 속에서 혹은 남북한의 8천만 한민족의 가슴 속에서 불로장생하며 ‘통일, 까짓 거 아주 쉬워. 꼭 이룰 수 있고말고.’라는 힘찬 파이팅을 들려주는 것만 같다. 사진 속에서만 웃고 있는 그가, 지금 나는 너무 그립다.

 

 

 

 

애국애족의 걸음마를 떼어준

 

당신을 알아보지 못한 어리석음을 탓하소서

 

사람에게 붙어사는 오만, 박약, 이기, 나태, 오해를 탓하소서

 

우울한 역사에 버려진 국가의 가련한 숙명을 탓하소서

 

 

 

정말 몰랐습니다

 

당신의 시선이 누구에게 가장 먼저 머무르는지

 

당신의 말이 누구에게 우선적으로 다듬어 열리는지

 

당신의 고무신이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던가를

 

 

 

무성한 가시밭길에 노출됨을 원망하지 않고

 

해와 달이 사라지고 사방 길마저

 

온통 막혀버렸음을 원망하지 않고

 

반 평짜리 옥방에서도 통일을 소원할 수 있어

 

제 몸을 불태워 자유와 평등을 열망한 젊은이에게

 

시와 투쟁으로 애국애족하다 죽어간 벗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어 다행이다 행복하다 하셨습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이 땅과 하늘이

 

더불어 사는 사회와 기댈 내 나라가

 

울고 웃는 표정과 아프고 즐거운 기분이

 

무엇보다 당신이 남겨놓은 숙제인

 

통일을 기원할 수 있음이

 

어찌하여 고맙고 다행스럽고 행복한가를

 

 

그리워할 수 있는

 

당신이 있어 또 행복합니다

 

 

 

부디

 

편히 쉬소서!



a*********9 2012.04.27. 신고 공감 9 댓글 7
리뷰 총점 종이책
추천할만한 평전~
"추천할만한 평전~" 내용보기
그러니까, 개인적으로는 평전이 '너무 많이'출간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라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고, 그런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긴 하다. 하지만 어쨌건,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책을 구입한 이유는 순전히 책 표지의 사진 때문이었다. 대학 입학당시 무슨 일로 붙어있던 것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하여간 학회실 여기저기에 붙어있던 행사 홍보 포스터(?)의 배경사진이 바로 이 책 표
"추천할만한 평전~" 내용보기
그러니까, 개인적으로는 평전이 '너무 많이'출간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라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고, 그런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긴 하다. 하지만 어쨌건,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책을 구입한 이유는 순전히 책 표지의 사진 때문이었다. 대학 입학당시 무슨 일로 붙어있던 것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하여간 학회실 여기저기에 붙어있던 행사 홍보 포스터(?)의 배경사진이 바로 이 책 표지의 사진과 동일한 사진이었다. 행사가 끝나고도 꽤나 오랫동안 떼어지지 않고 붙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럼에도 언제나 그 포스터에 눈이 갔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 사진 속 인물에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곰곰히 옛 기억을 반추해보면 흥미로운 것은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던 나였지만(단적으로 만26년 조선일보 독자란게 그 예다. 더군다나 중딩때부터 고딩때까진 그냥 독자도 아닌 '열독자'였으니ㅋ) 문익환 목사님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적도 없고, 나 또한 유독 문목사님에 대해서는 '빨갱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책을보며 모든 사람을 '섬기러 오신'듯 행동하신, 때문에 언제나 자신을 낮추어 세상을 아름답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 그 분의 파란만장하면서도 일관된 일생이, 그 수많은 흑색선전마저 그 분의 모습을 왜곡시키지 못하도록 만든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평전을 쓴 김형수씨의 직업은 문인이다. 이러한 저자의 배경은 책의 강점이기도 하고 약점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이런 인생이 있을수 있나 싶을 정도로 우리의 20세기를 그 한몸에 온전히 담아낸 문목사님의 일생을 정말이지 드라마틱하게 서술하여 평전에 감동과 재미를 준 것은 그 배경이 강점으로 작용한 측면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주변의 몇몇 분이 평하시는바대로 독자에 따라선 문체가 영 취향에 안 맞는 경우도 있겠다싶은 생각은 든다.(그렇다고 몇몇 평전들처럼 한 개인에 대한 찬양 일변도로 가지는 않는다)

우리가 아는 문익환 목사님의 모습은 1976년 59세 나이로 '3.1민주구국선언'성명서를 작성한 것이 처음이다. 하지만 책은 우리가 아는 문목사님의 모습만큼이나 우리가 알기 이전의 문목사님 모습이 중요하다며 그 분의 일생에 대해 자세하고 극적으로(?) 서술해 나간다. 자신의 컴플렉스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며 그 컴플렉스를 하나, 둘 극복해가던 그 분의 모습, 그 고생스럽고 위험했던 저항의 공간마저도 웃음의 공간, 해학의 공간으로 녹여버릴 만큼 그 분의 광대한 '사랑'은 정말 인상적이었다.(참고로 문익환 목사님께선 생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모든 것은 좋습니다. 좋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악은 무엇인가? 악은 악용된 선이 아니겠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의 80년대는 문익환 목사님으로 흘러들어가 문익환 목사님으로부터 다시 나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리라는 생각이 든다. 80년대는 문 목사님 만큼 가능성이 존재 했고, 문목사님 만큼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넘치는 정열과 헌신, 사랑과 휴머니즘은 80년대의 가능성이었지만, 분명 너무도 순진하셨고, 다소 감상적이셨던 부분 또한 없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분을 단순히 진보적 민족주의자 정도의 구획에 가두는 것은 그 분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그 시대에 대한 모독이기도 한 듯 싶다. 그 분은 단순한 사상적 구획설정을 뛰어넘는 수준의 사고와 그 무엇보다도 정력적인 실천을 하셨던 분이시기에.

여담이다만, 문목사님의 인생은 그 출생부터 한국 현대사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에 있으셨던지라 책은 '한 유력한 재야 운동가를 중심으로 본 한국현대사'수준이다. 한국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책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인다. 물론 그보다 중요한건 그 분의 정말이지 '위대한'일생이겠지만. 엔간하면 평전은 추천 안하는데, 이 책만큼은 예외로 하고 싶을만큼 괜찮았다.

ps.문목사님 사진을 보며 느낀건데, 40세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이 정말이지 옳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나도 그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는. 내가 가진 소망 중 가장 실현불가능 한 소망인듯ㅋ-_-v
j***8 2006.06.13. 신고 공감 7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다시 만난 예수
"다시 만난 예수" 내용보기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아 정리하기가 어렵다. 몇년전 참학에서 만난 친구가 어느날 저녁무렵 남편하고 어디를 간다고 하길래 물었더니 문익환목사님 추모행사가 있어 남편과 참석하련다고 했다. 우리 민족이 다시 하나 되는 날을 위해 돌아가시는 날까지 온 몸과 마음을 애쓰며 사셨던 목사님이라는 정도만 마음에 있었는데 내 가까운 지인이 목사님 사후 몇년 후 였음
"다시 만난 예수" 내용보기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아 정리하기가 어렵다. 몇년전 참학에서 만난 친구가 어느날 저녁무렵 남편하고 어디를 간다고 하길래 물었더니 문익환목사님 추모행사가 있어 남편과 참석하련다고 했다. 우리 민족이 다시 하나 되는 날을 위해 돌아가시는 날까지 온 몸과 마음을 애쓰며 사셨던 목사님이라는 정도만 마음에 있었는데 내 가까운 지인이 목사님 사후 몇년 후 였음에도 그 기일을 기억해 추모행사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다소 놀랍기도 했고 가슴 뭉클했었다. '늦봄'이라는 호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익환 목사가 사회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것은 그의 나이 육십을 바라보는 때였다.병약했고, 이상주의자였으며, 현실과는 저만큼의 거리에서 넌지시 건너다만 볼 뿐 늘 꿈을 꾸듯 살았던 그가 전태일의 분신을 보며 조금씩 조금씩 현실에 발을 담그기 시작한다.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는 그 날까지 갈라진 민족을 다시 하나로 만들기위해 단 하루도 변변히 몸을 쉬이지 않았다. 6번이나 감옥에 몸이 묶였으면서도 매번 재판 받는 일을 정부와 이성적인 대화를 하기 위한 기회라 여겼고 어디서 누구를 만나던 사람을 섬기는 일을 진정으로 행했던 이 시대의 예수였다. 그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길을 가려 했던게 아니라 '좌'도 '우'도 다 같이 갈 수 있는 길을 꿈꾸었다. 또한 그가 쓰는 글은 초등학교 문턱보다도 낮아서 한글을 깨친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만큼 겸손하고 쉽고 명료했다. 그는, 각 분야의 전문가, 소위 엘리트의 판단에 따라 모든 일이 결정되고 상식으로 살아가는 비전문가들인 민은 완전히 발언권을 상실하게 된 우리의 현실. 그래서 세상은 점점 더 반민중적이요, 반민주적이 되어 전문가만이 말발이 서게 돼버린 이 세상을 통렬히 비판했다. 그가 예수의 말 중에서도 가장 경외하는 말이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노라." 였다고 한다. 일제의 폭압을 피해 북간도 용정으로 이주한 후 다시 기나긴 여정 끝에 남한, 이곳에 정착하기 까지, 그리고 그 긴 세월동안 꿈을 꾸듯 여린 소년 같은 마음으로 살아 온 그 세월이 오히려 육십이 다 되어 이 세상에 깊숙히 발을 담그는 것을 시작으로 세상을 떠날때까지 온 몸과 마음으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쉼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자양분이 아니었을까? 조급하지 않았으며 늘 겸손했고,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나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부르면 어디 건 어느 때 건 한달음에 달려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이 시대의 예수. '우리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사랑을 가져라! 사랑은 지치지 않는다' 라고 우리에게 잔잔히 타이르는 목사님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그의 평전을 읽으며 몇 번을 목이 메이고 눈물이 쏟아졌는지 모른다. 옆에서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볼라치면 우리집 두 녀석은 "엄마, 또 울어? 거기 뭐가 있는데?" 별로 착하지도 않은데 눈물은 왜 이렇게도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지... 마석에 있는 모란공원에 다녀와야 겠다.
y******7 2004.07.24.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한 목사의 삶이 던진 진지한 물음
"한 목사의 삶이 던진 진지한 물음" 내용보기
실천문학사에서 간만에 내놓은 역사인물찾기 시리즈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한때는 통일 운동에 전념하는 목사, 정통(?) 신학을 약간 비껴간 이단아, 열정적인 민중운동가 정도로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故 문익환 목사에 대한 책이지요. 800 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무게감으로 인해 결코 쉽지 않은 책이겠거니 하는 두려움으로 첫장을 시작했지만.. 웬걸,
"한 목사의 삶이 던진 진지한 물음" 내용보기
실천문학사에서 간만에 내놓은 역사인물찾기 시리즈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한때는 통일 운동에 전념하는 목사, 정통(?) 신학을 약간 비껴간 이단아, 열정적인 민중운동가 정도로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故 문익환 목사에 대한 책이지요. 800 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무게감으로 인해 결코 쉽지 않은 책이겠거니 하는 두려움으로 첫장을 시작했지만.. 웬걸, 시대와 장소를 넘나드는 이 서사극은 함부로 책을 내려놓을 수 없는 마력으로 독자를 끌어가는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지은이 김형수의 다소 거친 호흡으로 인해 다분히 '감정적인 평전'으로 비칠 수도 있고 또한 그의 글이 읽는 이로 하여금 '긴 호흡'을 요구함으로써 자칫 글의 위세에 눌릴 소지가 충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 상처입은 민족의 치유를 위해 첫 발을 내디딘 후에, 민족의 통일과 자주, 민주를 위해 온 몸을 불살라온 문익환 목사의 삶을 조망하는데 충분한 듯합니다. 문익환을 단지 통일 할아버지라는 단면으로 평가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는 통일 운동가이기 이전에 목사였고 이 시대를 가슴아파하기 이전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영혼을 쓰다듬고자 노력했던 목자였던 것이지요. 지은이 김형수의 말을 빌어보면 이렇습니다. ".. 한신대 총학생회에서도 학생들에게 '늦봄 문익환'의 신분적 정체성을 묻는 여론조사가 있었다. 문익환을 '통일할아버지'라 부를 것인가? '문익환 선생'이라 할 것인가, '문익환 목사'라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중략.... 나는 '목사님!'이 옳다고 보았다. 문익환은 그리스도인이요, 그가 추구해온 가치는 정치 사회적으로 인권운동, 민중운동, 통일운동 등으로 보이지만 내면적 실체는 '그리스도적 가치의 실현'이 아니었겠는가. 중년을 넘기면서 관심의 초점을 '교회에서 세계로' 옮겨가지만 그러한 '동력'을 준 것도, 또 그러한 삶을 통해 도달하고자 한 곳도 '그리스도적 가치의 구현'이었다. ... 중략... '민족주의적 기독교도'를 자임하면서 '민족사적 수난'을 통해 '히브리인의 슬픔'을 읽는 것은 뛰어난 역사의식의 산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그의 '정서적 조국은 고구려였으며, 영혼적 혈통은 유목민'이라고 썼으며, 이것이 내가 세운 '문익환像'의 열쇠어가 되었다." 문익환 목사는 당대 구약학의 대가였습니다. 1960년대 후반 신/구 양敎에서 성서를 공동으로 번역할 당시 그는 성서 공동번역의 책임위원이 될 정도로 성서 연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어쩌면 그의 그러한 배경이 오히려 저를 더욱 혼돈으로 빠지게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약한 老軀를 이끌고 군사 정치의 매서운 현실과 맞서 싸우는 투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의 영혼 깊숙히 沈潛되어 있는 성서의 메시지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내 인식속에 투영되어 있는 메시야와 문익환 목사의 인식속에 비쳐진 메시야는 동일한 분이 아니던가요? 그런데 어쩌면 그 사람이 걸어간 길과 내가 현재 걸어가고 있는 길이 이리도 차이가 난단 말입니까? "모든 지식인은 자신의 인식으로 세계를 투사한다. 인식의 힘은 대상에 떨어지는 빛과 같은 것이다. 책상은 어두운 공간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있건 아니면 불빛에 노출되건 여전히 책상이다. 빛은 책상이 거기 있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아보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빛이 책상을 낳지는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신학'의 문제는 '신앙'의 문제 이전에 근본적으로 짚어보아야 할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잘못된 신학, 부분적이고 편협한 신학의 테두리 안에서 형성된 인식은 자칫 사물을, 그리고 이 세계를 온전치 못한 빛으로 투영하게 되고 사소한듯 하지만 근원적인 문제의 차이는 자칫 생애 전체의 궤도를 어긋나게 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처럼 내면의 울렁거림을 느끼게 한 책을 보았습니다. 한 목사의 생애가, 지금까지 서른 세월을 지내왔던 제 삶에 몇가지 퀘스쳔 마크를 던져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y*****g 2004.11.23.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 나라의 역사를 알게 해준 책
"이 나라의 역사를 알게 해준 책 " 내용보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한국의 역사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부터 태어나서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에 있었던 한국의 어두운 사건들을 나는 너무 모르고 있었다. 이런 내 자신이 안타까우면서도 그나마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내 자신보다 좀더 주변을 돌아보아야 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한
"이 나라의 역사를 알게 해준 책 " 내용보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한국의 역사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부터 태어나서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에 있었던 한국의 어두운 사건들을 나는 너무 모르고 있었다. 이런 내 자신이 안타까우면서도 그나마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내 자신보다 좀더 주변을 돌아보아야 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한 인물의 삶이 이렇게 파란만장 할 수 있는가! 한 나라를 대변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문익환 목사님의 일대기는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나도 정말 조금이나마 그의 사랑을 배우고 싶었다. 마지막 부분에 이런 글이 나온다."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이 지치지 않게 만든다." 이 말이 문익환 목사님을 평생 지탱해 준 말이 아닐까? 예수님의 사랑을 평생 전했던 그였다. 책을 읽으며 여러 감정들이 오고 갔다. 분노와 감격 그리고 슬픔과 기쁨이 수시로 반복되었다. 한 인간의 욕심 앞에 수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했기에 분노했고 그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들을 품고자 했던 문익환 목사님의 사랑에 감격했다. 한국 역사의 비 민주주의 앞에 슬펐고 민주주의를 찾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의 투쟁 앞에 기뻐하기도 했다. 역사는 반드시 심판대 앞에 서게 되어 있다. 그러하기에 지금보다 미래를 보아야 한다. 그 동안 한국 역사 속에 그 당시 엄청난 권력을 자랑하던 이들은 지금 철저히 심판당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 진실 앞에 심판당할 것이다. 문익환 목사님도 지금 심판대 앞에 서 있다. 살아 있을 적 그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지만 그는 승리자이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심판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나도 지금의 모습이 아닌 먼 훗날 심판대 앞에 서는 모습으로 살아야 하고 그것이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s*****l 2004.05.29.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꿈과 기상이 넘치는 책
"꿈과 기상이 넘치는 책" 내용보기
김구선생님의 백범일지와 안중근의사의 안중근평전을 모두 엮어놓은 것 같은책 명동은 북간도에 있던 우리민족의 정착지로 조선을 밝힌다는 뜻이다. 내가 볼 때 안중근의사는 화산이 폭발하는시점까지의 분이시고 김구선생님은 화산이 폭발한후 차차 식으며 산의 형태를 갖추기시작하기까지를 사신분이며 문익환목사님은 화산이 폭발한후 차차 식은후 산의 형태를 갖추기를 완료한후
"꿈과 기상이 넘치는 책" 내용보기

김구선생님의 백범일지와 안중근의사의 안중근평전을 모두 엮어놓은 것 같은책

명동은 북간도에 있던 우리민족의 정착지로 조선을 밝힌다는 뜻이다.

내가 볼 때 안중근의사는 화산이 폭발하는시점까지의 분이시고

김구선생님은 화산이 폭발한후 차차 식으며 산의 형태를 갖추기시작하기까지를 사신분이며

문익환목사님은 화산이 폭발한후 차차 식은후 산의 형태를 갖추기를 완료한후 생명이 싹트기까지의 인생

문익환목사님의 방북과 언론에서 말하는 친북좌파에 대한 안좋은 방송들 우리같은 안방에 틀어박혀 있는 민초들은 청개천의 전태일이 왜 불을 붙였는지 잘못은 무조건 북한이 한 짓이고 통일운동을 하면 언론이 가르치고 지시한대로 친북이고 정권을 뒤집으려는 불순세력이란 말들에 항상 동조하고 쇠뇌되어 왔었다.

문익환평전의 당사자도 참 훌륭한 인생을 사신 위대한 지도자이시지만 이 글을 엮은 이도 참 도도한 글을 참 한민족의 정서에 맞게 엮었다.

이런 지도자를 내가 왜 용공이니 친북이니 하는 언론에서 흩뿌리는 단어들에 현혹되어 이상하게 편견했던지 후회스럽고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20세기에 안중근의사 김구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위대한 지도자라 느낀다.

페이지가 800을 넘어 제대로 된 책을 읽은 느낌이다.

좋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12.08.1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를 만들어가는 선생의 일대기를 읽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선생의 일대기를 읽다" 내용보기
체게바라 평전을 읽고 나서 평전도 재미있는 책인 것을 알았다. 그래도 800여 쪽이 넘는 분량이라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선생이 살았던 1918년부터 1994년까지는 20세기의 변화하는 역사를 나타내고 있고, 선생 자신이 그 변화의 중앙에서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나중의 세월은 나의 세대에서도 겪어 보았으니 조금은 알 수 있는 것 같다. 1919년 3ㆍ1운동 때
"역사를 만들어가는 선생의 일대기를 읽다" 내용보기
체게바라 평전을 읽고 나서 평전도 재미있는 책인 것을 알았다. 그래도 800여 쪽이 넘는 분량이라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선생이 살았던 1918년부터 1994년까지는 20세기의 변화하는 역사를 나타내고 있고, 선생 자신이 그 변화의 중앙에서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나중의 세월은 나의 세대에서도 겪어 보았으니 조금은 알 수 있는 것 같다. 1919년 3ㆍ1운동 때 아버지는 간도 국민회의 일원이었고, 어머니는 이동휘 선생의 딸이 결성한 ‘7인의 비밀 여자결사대’에 들어 있었다(53쪽)고 하니 어릴 적부터 특별한 환경 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다르게 자라나는 경우도 있으니 사람의 본성은 타고나는 것 같다. 문익환은 윤동주와 송몽규를 다시 만나 삼총사를 회복했다. 문학적인 분위기도 살아났다. 윤동주는 윤석중의 동요와 동시에 심취했고, 송몽규는 중핛생의 신분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해서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163쪽)고 한다. 이런 만남이 앞으로의 문익환의 미래에 더욱 확고한 기초를 닦게 된다. 1975년 장준하의 죽음은 문익환의 삶의 한 분기점이 된다. 장준하는 “어떤 사람이나 다 일정 자격만 갖추면 모두 대통령이 될 수 있지만, 박정희만큼은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대통령을 시켜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장하곤 했던 것이다(424쪽). 장준하 영결식의 장례위원장을 맡은 문익환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장준하의 죽음을 땅에 묻어서는 안 되며, 장준하가 못한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게 되고 그 약속을 지키는 길을 가게 된다. 이렇게 걸어간 그의 길은 대부분 알고 있는 일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세기의 우리나라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나로서는 가까운 80년대나 90년대의 역사를 제대로 현장에서 겪었는데 그 이전의 역사는 이 책으로 인해 간접적인 경험을 한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반면에 세상은 분단이 만들어내는 활극의 바다에 떠서 흔들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엽기적 상황이 벌어졌으니, 그 중 가장 황당한 것이 ‘국회프락치사건’(1949년 3월~6월)이었다. 그것은 당시 반민특위의 활동을 통해 소위 반민분자, 즉 일제시대의 특별고등경찰이면서 정부 수립 후에도 그대로 실권을 쥐고 있는 무리들을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김약수, 노일환, 김진웅 등 급진적 소장의원들에게 간첩이라는 딱지를 붙여 반민특위 활동 자체를 무효화시켜버린 사건이었다(279쪽). 종국에는 진보적인 편에서 교단을 따로 세워 자기 신앙에 따라 교회를 가르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짓고 새로운 교단이 생기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장로회였다. 그 일파만파의 중심되는 인물인 김재준 목사의 ‘축자영감설 비판’이 바로 문동환의 세계가 열리는 입구였다. 문동환은 프린스턴에서 만난 새로운 신학의 세계로 주저없이 걸어 들어갔다. 복음서란 가장 일찍 기록된 마가복음도 기원 70년 후에 씌어진 것이며 요한복음도 서기 100년경에 씌어진 것으로, 그때쯤에는 예수가 신격화되어서 그 말씀과 행동이 절대적인 것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그는 어렵지 않게 출구를 찾았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은 사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라기보다 이 복음서를 쓴 기자가 자기의 신앙고백을 예수님의 말씀처럼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동환에게 새로운 전망을 안겨주었다(322쪽). 또 전쟁의 이름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인명이 훼손당한 수많은 죽음과 상처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수의 이름으로 병도 고치고 물질적 축복과 정신적 위로도 받자는 기복신앙에 사로잡혀 깨어날 줄 몰랐다(329쪽). 1942년 만주군관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금메달을 수여받음과 동시에 졸업생을 대신하는 답사를 낭독할 때 그이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만주국의 왕도락토(王道樂土)를 지켜 대동아공영권을 확립하는 성전에 참여, 저는 벚꽃처럼 산화하겠습니다. 성적도 우수한 조선인 생도가 일본 천황에게 이토록 무서운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박정희는 일본 육사에 입학할 수 있는 특전을 얻었다. 그리하여 다시 1944년 일본 육사 57기를 3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오카모도 미노루’라는 이름의 일본군 소위가 되었다(425쪽). 예수를 믿으면 모든 병이 나아 건강해진다는 것,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하늘 축복을 누리고 사후에도 천당에 가서 복락을 누린다는 것 등등으로 일관하는 기복신앙처럼 선교에 장애가 되는 것은 없었다(508쪽).
7*****0 2004.12.0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문익환평전
"문익환평전" 내용보기
1899/2/28일 관북의 네 가문 1백 41명의 사람들은 살아온 터전을 간도로 옮긴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들의 기록에 따르면 하나, 간도는 비옥한 곳이다. 둘, 계속 방치하면 남의 땅(중국)이 된다. 셋, 그곳에 공동체를 만들어 나라를 일을킬 인재를 기르자는 목적을 바탕으로 국경을 넘었다한다. 그리고 그곳에 명동(조선을 밝히다)촌을 세우게 됩니다. 이곳을 수많은
"문익환평전" 내용보기

1899/2/28일 관북의 네 가문 1백 41명의 사람들은 살아온 터전을 간도로 옮긴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들의 기록에 따르면 하나, 간도는 비옥한 곳이다. 둘, 계속 방치하면 남의 땅(중국)이 된다. 셋, 그곳에 공동체를 만들어 나라를 일을킬 인재를 기르자는 목적을 바탕으로 국경을 넘었다한다.

그리고 그곳에 명동(조선을 밝히다)촌을 세우게 됩니다. 이곳을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거쳐 지나갔고, 어릴적부터 그런 것들을 쭉 지켜보고 자란 문익환, 윤동주,송몽규와 같은 이들은 자연스레 애국심이란 단어를 마음속에 깊이 새기게 된다. 길고도 긴 일제의 탄압속에서 윤동주와 송몽규는 당대 지식인으로써 일본에서의 독립 투쟁을 계획하다가  해방을 채 얼마 남기지 않고 1945/2월 윤동주를 시작으로 뒤이어 송몽규까지 옥사하게 된다. 해방 이후에 문익환의 행적에 써 놓은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종교인으로써 생각을 같이 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기에 그러한 것들에 대해선 가타부타하지 않으려한다. 그가 가진 기독교적인 생각은 이 책을 읽게 되는 또다른 독자의 판단에 맞기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선 문익환의 통일에 대한 열망과 그에 대한 사회의 왜곡된 평가를 다루고 있다. 솔직히 1889년 당시 초등학생이었기에 그 시대에 일어났던 정치, 경제적이었던 일들에 대해선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노태우의 평화의 댐 사건이 기억날 따름이다. 하지만, 그가 했던 모든일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내 부끄러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2달간 철거민 아주머니들과 길바닥에서 함께 생활했던일, 초청 강연회 시간이 7시인데 10시까지 믿고 기다린 사람들, 그것을 믿고 땀이 범벅이 되도록 뛰어 강연장을 찾아가는 문익환 목사의 모습에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중엔 감성을 자극하는 많은 아름다운 문장들이 있지만, 그런 문장보다 내 지금 삶을 한번 더 생각을 하게 했던 문장들을 책을 대표해서 남기고자한다.

s*****z 2013.08.2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가지게 된 기쁨.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가지게 된 기쁨." 내용보기
문익환에 대해서는 '과격한 운동권 목사'라는 이미지 하나만을 달랑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티비에서 문성근을 볼 때마다 아, 저 사람 아빠가 문익환이었지. 하고 건성으로 생각했고 어쩌다 과격한 노정권 반대집회를 하는 교회단체들을 볼 때마다 음, 교회 사람들은 역시 과격해...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난 지금, 그런 교회단체와 문익환을 하나로 엮어서 생각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가지게 된 기쁨." 내용보기
문익환에 대해서는 '과격한 운동권 목사'라는 이미지 하나만을 달랑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티비에서 문성근을 볼 때마다 아, 저 사람 아빠가 문익환이었지. 하고 건성으로 생각했고 어쩌다 과격한 노정권 반대집회를 하는 교회단체들을 볼 때마다 음, 교회 사람들은 역시 과격해...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난 지금, 그런 교회단체와 문익환을 하나로 엮어서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엉뚱하고 무관심했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왜 나는 목사인 문익환이 수구 기득권세력의 대표격인 대부분의 기독교인들과 정반대되는 지점에 서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했었을까? 아마도 너무 드라마틱하고 아픈 현대사의 수많은 장면들이 과격한 반응을 낳고 그 후광이 내게 과격한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생각하게 되는 무심함을 갖게 했었나보다. 하지만 문익환, 그는 이 땅에 몇 안되는 진정한 종교인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생을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주욱 따라가다보면 우리 나라의 시뻘건 현대사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 아픈 현대사와 맞닥뜨린 그가 사유하는 방식과 행동반경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현대사가 자리하는 지점을 큰 폭 위에서 정확하게 짚어낼수 있게 된다. 식민지, 전쟁, 분단...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별일아닌 단순한 과거역사처럼 들리는 단어들이 그의 생과 만나는 순간 현재형이 되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오늘이 얼마나 굴곡되어있고 뒤틀려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좁은 지평안에 갇혀있는지를 치명적으로 깨닫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잔인하고 아픈 일들을 겪어왔던가.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현대사의 연장선상에 서서 얼마나 왜곡된 역사교육을 받아왔던가...역사와 정면으로 마주서서 당당하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하였던, 그리하여 모든 이들의 가슴에 사랑으로 남았던 거인. 그가 가버린 지금,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한국인으로서 이제야 그의 생과 조우하여 감사와 존경을 보내게 된다. 처음엔 저자의 문체가 너무 시적이고 감상적이라서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했었다. 백페이지를 넘어가면서부터는 감상적인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는 저자를 십분 이해하게 되었고 문익환이라는 인물에게 나도 함께 빠져들어 그의 문체가 적절한 곳에 충분히 쓰이고 있음을 기뻐하게 되었다. 또한 문익환이라는 인물자체가 김형수의 문체와 너무 어울리는 감성넘치는 캐릭터가 아니었던가. 한가지, 책크기가 너무 작고 하드카피라서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에 꽤 불편했다. 내용도 알차고 평전의 주인공도 상업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인데 왜 책을 이렇게 모양 중심으로 편집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어떤 모양의 책이었건 나는 끝까지 읽어나갔을 것이다. 한 아름다운 영혼과 만날수 있었으므로. 우리 나라의 현대사와 만날 때마다 온갖 약사빠르고 비열했던 인물들만 등장에 가슴이 쓰라리고 한국인으로서 수치심을 느꼈었는데 오랫만에 아름다운 인물을 만나니 가슴이 꽉 차오는 느낌이다. 존경할수 있는 한국인을 가지게 된것이 한없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인상깊은구절]
종교적인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고, 종교적이니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종교적인 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고 사회는 속된 것이라는 생각은 그릇된 생각입니다. 모든 장소가, 모든 사람이,모든 일이 거룩한 것입니다.
e****5 2004.04.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