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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거나 혹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의 자수성가 이야기, 신체가 완전하지 못한 장애인들의 장애를 뛰어넘는 의지나 성공의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커다란 감동과 함께 인상깊은 동기를 부여하는 주요테마가 되어주곤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진 것들을 가지지 못한채 무엇인가를 박탈당한 삶을 부여받았으나 그보다 강한 자신의 의지로 다른 이들이 가지지 못한 그 이상의 것들을 이룩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 자체만으로 때로는 현재에 안주하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지금의 자신을 동정하고 주저 앉은 사람들에게 채찍이 되어주고 강한 의지의 불씨를 지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이들을 독려하고 감동을 선사하는 많은 완전하지 않은 이들의 그 이상의 성공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식상하고 더 이상 신선하지 못한 주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에겐, 때로는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용기와 독려보다는, 당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토닥거림이, 그리고 지금 당장 힘에 들어 주저 앉아있는 당신의 모습까지도 당신의 모습이라는 수긍의 마음이 필요한때도 있을테니 말이다
![]() 두 다리가 없는 채로 태어난 케빈 마이클 코널리의 이야기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는 누군가가 장애를 딛고 일어나 남들보다 뛰어난 지력과 재능을 발휘하고 남들보다 멀리 날아가 남들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 남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식의 인생역전감동스토리가 아니다. 그저 어린 시절 다리가 없는채로 태어나 단 한번도 다리를 가져보지 못한 이 청년이 어떻게 그런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며 적응해나갔는지, 다리가 없는 자신의 몸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는 끝이 없다. 단지 그러한 과정을 끝없이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게 될 케빈의 인생중 한 토막을 담고 있을 뿐인 남들과 다른 몸을 가진 청년의 짧은 에세이일뿐이다. 그래서일까? 이 이야기에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포인트나 그를 한없이 가련하게 여겨야 하는 동정의 지점들 보다는 그런 그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의 모습들을 통해 누구나 한가지 이상을 가지고 있을 장애들(신체뿐 아니라 마음의 장애나 상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보여준다.
![]() 케빈은 수 없이 많은 순간을 시행착오를 거치며 도전하고 수정하며 삶을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다리 없이 태어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미관상 좋은 의족을 달고 생활하기도 하고, 이 의족이 실용성이 없다는 판단아래 휠체어에 앉기도 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활용도를 위해 자신만의 스케이트 보드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또 이 스케이트 보드가 어떤 위험을 안고 있는지 어떤 불편함을 가져다 주는지 역시도 스스로 체험하며 체득해나가고, 끝없이 자신을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다리없는 사람이지만 레슬링을 하고, 다리 없는 사람이지만 스키를 타며, 다리 없는 사람이지만 여러 나라는 돌아보는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는 케빈. 여자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그녀와 헤어지기도 하는 케빈의 모습은 그래서 그가 다리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역시 인생을 살아가는 한명의 사람이기에 겪는 자연스러운 오류와 착오의 연속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그렇게 다리가 없이 태어난, 그리고 그렇게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닥치는대로 모든 것들을 해보는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의 이야기들은 그 책의 경고문처럼 박힌 제목과는 다르게 분명 나를 놀라게 했다. 다리 없는 소년의 여행기라는 점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모든 것들을 도전하는 그의 담대함에 말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단점과 약점, 그리고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것 같은 상처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케빈에게 다리가 없듯, 팔 다리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그런 부분들이 그들의 장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가 모두 자신의 그러한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부정하고 외면하며 맞딱드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인 일이리라.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가 놀라운 이유는, 케빈이라는 다리 없는 청년이 한 눈에 보아도 알아볼 수 있는 장애를 자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그 자연스러움과 담담함이 아니었을까 한다. 하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단점과 장애들마저도 자신의 것을 인정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우리들이니 말이다. 흔하디 흔한 말처럼, 어쩌면 컴플렉스는 인정하는 순간 이미 컴플렉스가 아닐진데, 말로는 이토록 멋지고 쉬운 일이 실제로는 쉽지 않음을, 그리고 다리 없이 태어난 이 젊은 청년은 그 쉽지 않은 일을 스스럼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음을 통해 나의 미련함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 바로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가 놀라운 이유가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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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보는 바로 그 순간,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보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이 보이는 세계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눈은 다른 눈과 결합한다.
ㅡ 존 버거, 『본다는 것의 의미』
어머니 손을 잡고 읍내 장터에 나가면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나왔나 싶을 정도로 북적였다. 장날을 기다려 그간 수확한 농작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온 사람, 손때 묻은 돈을 들고 장터 구경을 나온 사람, 그들을 따라나선 아이들.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어머니 옷깃을 꽉 쥐고 있으면 손에는 땀이 배어나왔다. 그때 내 키는 어머니 허리에 겨우 미치는 꼬맹이였다. 설탕옷 입은 뜨거운 핫도그를 베어먹으면서 내 눈은 여기저기 머물렀다. 그러다 내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목을 쳐들지 않으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어른들 틈에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 고무 다리를 끌며 길바닥을 누비는 사람이었다. 그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몹시 놀랐다는 것만 기억한다. 나는 그를 오랫동안 쳐다봤던 것 같다. 그는 시선을 땅에 두고 있었다. 나중에 나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다리가 없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다만 구걸을 위해 다리 없는 사람 시늉을 한다는 말을 어른들에게 들었다. 나는 경악했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그들이 불쌍했다. 멀쩡한 두 다리를 그런 식으로 욕보이다니. 정말로 병신 같았다. 맨땅에 헤딩이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시선을 감추던 벌레같은 굽은 등이 눈에 선하다.
서두를 조금 불편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이제 안심해도 될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소개하려는 사람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유쾌하며 열정적인 건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케빈 마이클 코널리'는 스물다섯의 청년이다. 두 다리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없었다. 좌우 상칭 무지증이라고 한다. 처음 그의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와 팔이 있지만 마치 토르소처럼 허리만 댕강 남은 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케빈은 어릴 때부터 놀라움 담긴 시선을 받아왔다. 그를 향한 시선에 담긴 감정은 대부분 경악과 연민, 호기심, 공포였다.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 케빈은 세상의 시선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을 익혔다. 그런 긍정적인 마음 자세가 없었더라면 케빈은 집 밖에도 못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또 한 번 놀랍게도, 그는 다리 있는 사람들도 하기 힘든 레슬링이나 스키를 즐기고 <x게임>에 출전해 입상까지 한다.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삶의 전환점이 있다. 난생 처음 스스로 번 돈을 쥔 케빈은 여행을 결심한다. 그리고 역시 난생 처음 가족의 도움이 미치지 않는 세계에 홀로 자신을 던진다. 낡고 냄새나는 스케이트보드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더 넓은 세상 속으로 향했던 그 시점이 케빈의 삶에서는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자신을 잘 알고 아껴주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작고 안전한 울타리를 떠난 케빈은 불편하고 불쾌한 시선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단지 다리가 없다는 이유로 동정의 시선을 던지고, 시선만으로도 모자라 돈까지 던지는 사람들에게서 케빈은 상처를 받는다. 아무리 시야가 넓고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도 결국 자기 세계 안에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자기 눈에 비친 두 다리 없는 작은 몸뚱이를 받아들이는 그들 마음까지는 케빈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국의 붐비는 거리에서 케빈은,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에게 꽂히는 무수한 시선들을 피하기만 했던 케빈이 생각해낸 그 방식은 이렇다. 자신도 그들의 반응을 포착하고 관찰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카메라를 이용해 그들의 시선을 포착하고 수집하면서 자신과 세계 사이에 놓인 거리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는 케빈이 포착한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이 담겨 있다. 그리고 케빈이 그들 시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솔직하고 유쾌한 문장으로 그려진다. 다시 그 어린 시절 장터로 돌아가서, 병신 시늉하던 고무다리 아저씨를 떠올린다. 그는 왜 시선을 땅에 박고 있었을까. 눈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붐비는 그 장터에서 왜 그는 굽은 등과 푹 숙인 고개 아래로 시선을 감추고 있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문득 그 고무다리 아저씨를 생각했다. 맨땅에 헤딩하던 그는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세상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바로 보는 것을 피했던 것이다. 검은 고무 아래 감춰진 두 다리, 멀쩡한 두 다리가 있음에도 자신이 병신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런데 물론 이것은 나의 시선이고 나의 생각일 뿐 실제로 그 사람이 왜 맨땅에 헤딩하듯 고개를 땅에 처박고 눈을 내리깔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케빈이 포착한 사람들의 시선에 내 시선을 포개면서 나 또한 이들 중 하나가 아니었나 반성을 하게 되었다. 또 누군가는 나에게 그런 편협한 시선을 던졌고, 던질 것이라는 사실도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이 다양한 세계, 무수한 시선들 속에서 '나'를 잃지 않으면서 '너'를 포용하면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케빈의 삶, 그리고 그 안에서 그가 포착해낸 다양한 시선들은 많은 생각을 던져 준다. 그래서,
케빈, 너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네 눈에 비친 나를 보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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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한 남자의 세상이야기...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왜 놀라지 말라고 미리 말을 하는 것일까... 책을 처음 보았을 때 표지를 보고 장난끼 가득한 꼬마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저의 첫 느낌과는 전혀 다르게 이 책은 태어날때 부터 두 다리가 없었던 케빈 마이클 코널리가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여행 중에 우연히 찍은 사진에서 자신 앞에서는 보이지 않던 표정들이 뒤에서는 보이는 것을 알고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금 특별함을 갖고 있으면 사물이든 사람이든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받기 마련입니다. 사물이면 그만큼 장점이 많은 것이라 생각하는데 사람은 감정을 갖고 있기에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일 것입니다. 타인이 자신에게서 느끼는 두려움과, 놀람, 그리고 심하게는 혐오감까지 느끼게 되니까요. 롤러스케이트를 이용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없이 느껴야 했던 사람들의 동정어린 시선...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살까? 생각하는 케빈... 직접 경험해 보지 않는 한 두 다리가 없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더라도 자신을 대하는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낄때에는 정말 좌절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는 이러한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바라보는 놀란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한방 먹임으로서 멋지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케빈이 찍은 책속의 사진들을 보면 특징이 있는데 케빈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숨겨진 사람들의 감정과 세상을 좀더 자세히 볼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또한 선택의 문제이다. 당신이 세상으로부터 숨기려고 하는 것은 당신이 만들어내는 한계이기도 하다. - 책속에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기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겠지만 모든 것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법... 소인국에 가면 큰 사람이 눈길을 끌 것이고 대인국에 가면 작은 사람이 눈길을 끌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잣대보다는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게 가장 중요한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체가 자유롭지 못하면 모두 장애인이라 부르는데 책속에서 만난 케빈은 보통 사람보다 오히려 더 활동적이고 삶의 열정이 가득한 가슴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다리가 없어 단지 조금 불편한 것뿐이라는 생각으로... 케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말 가슴뛰게 열정적으로 살았던 때가 언제인지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도 똑같지 않기에 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고 각자 자신만의 개성과 특징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모두 다르기에 자연스럽게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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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들어 올려주지 않으면, 무슨 수로 계산대에 손을 뻗을 수 있지? 누가 나를 옮겨주지 않으면, 무슨 수로 25센티미터 높이의 눈이 쌓인 주차장을 지나갈 수 있지?' 케빈은 다리가 없이 태어난 아이다. 그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뭉쿨했다. 두 할아버지가 나누는 이야기, 손자의 다리가 없음을 목마를 태웠을때 잡을 곳이 없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아기가 다리 없이 태어남에도 그 모든것을 '선물' 처럼 받아 들이고 장애아라기 보다는 장애를 어떻게 하면 '극복' 하며 살아갈지를 가르친 엄마와 그런 케빈을 위해 맥가이버가 되어야 했던 노동자 아버지의 이야기는 같은 부모로 많은 생각을 가지게 했다. 자신의 이상한 모습을 남들이 의식하는 것을 담은 사진으로 장식한 책 표지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을까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가슴 아프지만 그의 장애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읽고 나면 과연 정상인 나는 그보다 나을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산다는것은 장애보다는 '실행' 이 더 중요한것 같다.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신에게 맞는 운동이 무엇이 있을까 하며 아버지와 함께 찾는 케빈의 '도전' 이 맘 아프면서도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레슬링이나 그외 운동은 그가 다리가 없기에 남보다는 뒤쳐질 수 있었지만 '스키' 는 그가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운동이었던 것. 그를 가르쳐줄 강사 또한 너무도 인간적이고 그를 장애인으로 보기 보다는 스키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으로 간주하여 좀더 그에게 맞는 장비를 갖추어주기 위하여 노력하는 벅, 이나 그외 사람들 또한 편견없이 케빈을 대한 것이 오늘날의 그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X게임에서 2위에 오른것이며 남들과 다르기에 자신의 발이 되어줄 '스케이트보드' 를 몸처럼 여겨 자신의 이름과 주소 스케이트보드를 타게 된 사연등을 적어 놓음으로 해서 도난을 방지하고 그 스케이크보드를 타고 세계여행을 즐기는 대단한 사진작가이며 도전적인 케빈, 그의 손에 박힌 굳은 살 사진이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보드를 타고 전날과 같은 루트를 통해 도시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실제로 찾고 있었던 건, 나를 지나치면서 어쩔 수 없이 시선을 던지게 될 사람들과 얼굴들이었다.' 어디를 가나 주목을 받는 그의 모습, 혹은 돈을 주기도 하고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땐 들어서 옮겨 주기도 하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경찰이나 아이나 할아버지나 사제나 모두가 첫눈에 '놀라움' 을 표시한다. 처음엔 그 시선이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 보려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을 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케빈, 우리보다 다리를 갖지 못했지만 다리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용감한 청년인듯 하다. '지금까지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다는 것은 끔찍한 괴로움이었고, 나는 어설픈 미소를 띠며 그것을 참아내야 했다. 드디어 나는 그들의 시선을 이용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고 그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죽기 살기로 하고 있냐?' 당신은 죽기 살기로 살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글쎄, 난 지금 죽기 살기로 살고 있을까?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희망하던 오늘을 난 죽기 살기로 살고 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에게 하루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남과 다른 시선으로 남과 다른 시선을 받으며 남보다 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수 있는 일들을 척척 해 내는 그를 보며 '희망' 이란 노력하는 자의 것이란 것을 새삼 느껴본다. 무엇이든 피나는 노력을 한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그가 X게임의 선수로 그리고 다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보드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듯 '안될거야' 보다는 ' 할 수 있다' 라는 '희망' 을 가지게 하는 그의 이야기에는 좌절보다는 위기를 딛고 일어서는 단단한 청년의 노력과 꿈이 담겨 있어 더 가슴 뭉클하다. 남의 시선쯤이야 살아가는데 짐이 될 수 없음을, 그 또한 자신의 삶에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사진' 으로 카타르시스를 준 케빈의 이야기를 읽고 '삶의 희망' 을 충전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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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다케 히로타다, 닉 부이치치. 이 책의 저자 케빈 마이클 코널리 역시 그들과 같은 장애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토다케와 닉은 사지 모두 없는 반면 케빈은 양팔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큰 장애가 있지만, 긍정적이며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는 표제처럼 장애인인 케빈을 보며 놀라는 세계인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처음엔 책 속 곳곳에 사진이 무엇인가 했는데 케빈이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의 발인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가며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찍은 사진이란다.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은 비슷하다. 그 누구도 웃지 않으며 약간 놀란 듯한 혹은 힐끔거리는 또 혐오감을 느끼는 표정들. 하루에도 몇 십 번 누군가로 하여금 그런 시선을 받는 케빈은 어떨까? 또한 그의 높이에서 바라본 모습들은 일찍이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이었다. 땅과 가깝고 수많은 무릎들에 둘러싸인 세상. 케빈은 자신의 출생 당시의 상황부터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를 갖고 그 과정에서 어떤 장애의 가능성도 발견하지 못한 채 출산한 아이었는데 두 다리가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끔찍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를 극복하고 누구보다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부러우리만치 좋은 가족들이 있다. 지독하게 개성있는 생김새로 태어났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남들과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격려. 케빈에게도 그랬다. 이 책과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오체 불만족>을 읽으면서도 느낀 일인데 각 나라의 장애인을 위한 복지 상태를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우리나라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오토다케 히로타다 역시 사지가 없지만, 수영을 할 수도 있다. 만약 우리나라의 수영장 어느 곳에 사지가 없는 장애인이 입장하려 한다면 모든 과정이 일반인의 그것과 같이 순조로울까? 모르긴 몰라도 방송국의 카메라를 대동하지 않고라면 힘들지 않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케빈은 스키 대회에서도 수상한 적이 있는데 다리가 없는 자가 우리나라 스키장에 가서 스키를 타겠다고 한다면 쉽게 허락할까? 모두 같은 뜻으로 거절할 것이다. '위험할 수 있어요' 또 한 마디는 속으로 삼킬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러나 이들에게는 이런 스포츠를 지원해주고 지도해주는 코치들이 있었다. 나는 이것이 몹시 부러웠다. 비록 내가 장애인은 아니지만, 만약 내가 장애인이라면 이런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함은 물론 누가 볼세라 칩거하며 지냈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기 전인 아기 때부터 부모로 부터 '넌 할 수 있어' 라는 메시지를 받으며 성장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폭우로 부엌이 물에 잠겼다는 말에 케빈의 엄마는 "괜찮아. 집이 몽땅 잠긴 것도 아닌데 뭐"(p.12) 라고 말했다고 한다. 케빈의 어머니의 이런 낙관적인 성향이 양육과정에도 분명 중요하게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망설임과 주저함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케빈의 삶은 비장애인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사랑을 하기도 하고 여행을 할 수도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케빈의 가슴 아프고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에는 내 마음마저 아련해왔다. 그리고 그의 스케이트보드 아래에는 '다리가 없는 사람의 스케이트보드입니다. 훔쳐가지 마세요" 라고 적어두었단다. 이 역시 그동안 그가 얼마나 많은 스케이트보드를 도둑맞았으며 그로 인해 난감한 상황들을 많이 만났음을 뜻한다. 케빈이 가장 분노했던 대목은 자신에게 적선하는 자들에게 있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점이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보면 안타깝고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그들에게는 비장애인에게 보다 더 편하고 수월한 과정을 제공한다. 그런데 케빈은 그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는 장애를 가진 것이 동정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신체가 다를 뿐인데 건강한 신체를 갖지 않은 이들을 무조건 동정하고 특별한 시선을 보내는 일이 그들에게는 무관심만큼이나 상처가 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들에게 선행한답시고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불손한 행동은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케빈은 장애인이 아니다. 도리어 사지가 멀쩡하지만 스스로 아무것도 못한다고 최면을 거는 자가 진짜 장애인 아닐까. 케빈에게 메일을 보냈다. '나는 당신을 동정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당신과 우리는 같기 때문이예요. 누구도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지금 행복하잖아요. 당신은 여행 마니아 같은데 기회가 되면 한국에도 놀러오세요' 라고. 그 어디선가 책에서 만난 모습 그대로 스케이트보드에 몸을 얹고 자유롭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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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이유로 케빈은 태어날 때부터,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 뱃속에서부터 두 다리가 없는 '불완전한' 존재였다. 그의 부모는 아이가 신체적으로 불완전했기에 정신적으로는 '완전한' 존재가 되길 바란다. 그들은 케빈을 비장애인 아이와 다름없이 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집 밖으로 한 발짝만 나서면 케빈은 타인에 의해 불행의 희생자로 규정되고 낙인찍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빈은 간단하고 쉬운 포기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도전을 선택한다.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는 두 다리가 없어도 무한도전을 즐기는 20대 청년 케빈이 때로는 남의 일인 것처럼 담담하게, 때로는 자신의 분에 못 이겨 감정적으로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놓은 작품이다.
나는 저자의 불가능할 것 같은 도전 앞에서 여러 단계의 심리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동정이었다. 매번 열기 힘든 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저자의 행동이 무모해 보였고 매우 안쓰러웠다. 그 다음으로는 끊임없이 문을 두드려 결국에는 관문을 통과한 케빈의 모습에 놀라움과 감동의 기분이 이어졌다. 또한 자신을 향한 타인의 시선을 카메라로 찍어내는 케빈과 많은 사진의 주인공들로 인해 나는 부끄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케빈은 편치 않은 몸을 보드 위에 맡긴 채 세계여행을 다녀오고 앞으로의 여러 계획을 세운다. 그는 나에게 장애인과 비장애인 중 어느 쪽이 불완전한 존재인가, 라는 복잡한 화두를 마지막에 던져주고 자신의 다음 도전을 향해 유유히 사라진다.
신체적으로 불완전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안타깝고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지육신이 멀쩡하지만 안일하고 나태한 나와 비교하면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의 열정과 노력을 배우고자하는 소망이 생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이들은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엄청난' 사람이라는 선을 그어버리게 된다. 그들이 평범한 인간보다 높은 레벨의 존재가 되는 순간이다. 결국 내가 본연의 안일하고 나태한 생활을 합리화시키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의 저자, 케빈은 대단하고 엄청난 사람이지만 나와 같은 평범한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들의 시선이 억울하고 싫고 화가 난다. 일종의 복수심에서 출발한 사진 촬영에 대해서도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또한 여행지에서 만난 장애인을 보고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느낀 자신의 모습에 고뇌한다. 이처럼 케빈은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독자들에게 여실히 드러내면서 자신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 외치고 있었다.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는 기존의 인생역정 감동백배 장애인 에세이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걷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차별화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많은 문제를 고민하게 만드는 효과를 갖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얻은 결과물은 독자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발현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대단하다!',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를 접하면서 내가 갖은 지극히 상투적인 감상이다. 하지만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알맹이가 첨부되어 있으니 이 '상투적인 감상'을 꼭 느껴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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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는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난 케빈 마이클 코널리의 사진과 생각을 실은 책이다. 다름과 틀림의 구분이 모호한 세상에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평생 수없이 많은 '틀림'의 손가락질을 감수해야 한다는 종신형의 선고와도 같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이유없이 차별과 모욕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순간의 당황스러움이나 슬픔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될 정신적인 상처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도 어쩌면 우리가 우리와 다른 장애인이나 외국인을 알게 모르게 차별하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가 그렇게 그들이 받았을 정신적인 상처가 역으로 우리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왔었기 때문에 케빈 마이클 코널리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건강한 그의 정신은 일반인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또 그런 이유에서 그런 그를 틀리다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나를 느끼고 부끄러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 외눈박이의 나라에서는 두눈을 가진 것이 비정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남과 다름이 경계의 대상이 되는 사회속에서 사람들 속에 묻혀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코널리의 이야기가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하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마음이 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 주저앉아 슬퍼하고 있거나 하지 않고 자신만이 가진 독특함을 살려 새롭게 비상하려 하는 그의 모습에는 마음속에서부터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도 자신의 모습에 절망도 하고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에 대해 고민도 했었겠지만, 케빈 마이클 코널리는 누구보다도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성형대국이라고 불릴만큼 성형이 일반화되고 있는 나라에 살면서 왜들 성형을 하는지 궁금해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싶어할 수도 있을만한 상황에 있는데도 절망하거나 포기해버지 않고 불편한 몸으로 건강한 사람도 쉽게 못하는 외국여행을 당당하게 하면서 말그대로 온 몸으로 세계와 세상사람들과 부딪치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몸은 건장하지만 정신은 허약한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소개하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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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 그가 찍은 사진들 속에 내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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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생일날 태어난 첫 아이 '케빈'은 날 때부터 두 다리가 없었다. 하지만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레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 엄마, 아빠는 아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어려운 살림이지만, 최선을 다해 정상인보다 더 활동적이고 긍정적인 아이로 키운다. 청년이 된 지금 그는 휠체어를 타지 않는다. 물론 불편한 의족도 사양한다.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그가 움직이는 수단은 바로 스케이트 보드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스케이트 보드와 함께 움직이고, 늘 그의 눈 높이는 다른 사람들의 다리에 머문다. 그런 낮은 곳의 그를 쳐다보는 사람들은 늘 놀라움과 안쓰러움, 혹은 불쌍하다는 시선이다. 때로는 못볼 것을 보고 말았다는 불편한 마음과 함께.
"누구에게나 진짜, 진짜 잘할 수 있는 일이 하나쯤 필요하다. 나머지 것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만큼 잘하는 일 말이다. 너한테는 그게 스키고, 나한테는 운전이란다, 아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고 승부욕이 강한 아이는 결국 장애인 스키선수가 되어 많은 상금을 받게 되고, 그 돈으로 카메라를 구입해 세계곳곳을 여행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가 찍는 사진의 주제는 바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 세상 속에 들어가 여행을 하는 동안, 때로는 그를 불쌍하게 생각하며 거리에서 돈을 주며 자신보다 불쌍한 사람들 앞에서 그는 좌절한다. 그리고 때로는 얼른 케빈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에게 분노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다는 것은 끔찍한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었고, 나는 어설픈 미소를 띠며 그것을 참아내야 했다. 드디어 나는 그들의 시선을 이용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고, 그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케빈이 품었던 우리에 대한 마음을 한 가지씩 알아가면서 많은 반성을 해야했다. 그를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바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제대로 보는 가슴을 갖지 못한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그가 17개국을 다니면서 찍었던 33,000장의 사진들은 모두 한 가지 모습이다. 자신에게 던져진 여러 나라, 여러 세대, 여러 계층의 사진들은 모두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 그런데 사진 속 그들의 모습이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그 눈길은, 그 표정은 바로 내가 지었을 표정이었고, 내가 그를 보았을 눈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을 찍는 일에 몰두했던 자신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갈등한다. 늘 누군가가 자신을 보는 일에 익숙해하며 살아왔던 21년의 시간들. 항상 그런 눈길을 받으면서 살아왔고, 이제는 자신이 그들의 그런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지만, 그런 행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집단적인 똑같은 행동과 반응에 대해 그 시선은 무엇을 의미했던 걸까? 그들은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했으며, 그것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케빈은 자신이 찍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고민하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긴 여행 끝에 그는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온다.
'케빈'이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들은 사실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책 제목처럼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가 아니라 우리 모두 그를 보고 놀라지 말기를 ...... 그저 나와 같은 사람으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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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장애인이라는 단어속에서 우리들은 딱한가지를 생각한다. 불쌍하다. 쯧쯧쯧 사실 이런 말을 난 들을수밖에 없었다. 내동생의 불편한 두다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기에 말이다. 담담히 시선을 받아내는 동생을 통해서 더 아픈가슴을 부여안고 살아야했고 더 독하게 다독여줘야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정도지만 그래도 마음에 상처는 남아있다.
이것이 우리들이 바라보는 장애인들에 대한 시선이다. 그리고 혐오의 시선이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아 이들이 장애인을 바라볼때면 못볼거라고 본것처럼 부모들이 더 난리를 친다. 그럴때면 옆에가서 솔직히 욕 을 해주고 싶을때도 있었다. 두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가 처음 방송에 나왔을때 다들 신선한 충격을 받았 을 것이다. 어떻게 두손가락으로 저렇게 칠수 있을까. 그뒤에는 숨은 어머니의 도움도 있었지만 자신이 비록 장애인이지만 더 악착같이 노력한 희아의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좌우 무지증" 다리없이 태어난 아이. 그런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심정을 무엇으로 말할수 있을까. 놀라지 말 라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받았을 상처가 보였고 무언의 폭력앞에 더 악착같은 마 음을 잡은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할수 없을거라는 선입견을 깨고 레슬링을 배우고 스키도 당당하게 탈 줄아 는 괴짜의 모습도 보였다. 속으로 응원을 했다. 그래 정상인보다 더 잘할수 있는 모습을 이 악물고 해보여라.
두팔이 아니 양손이 다리역할을 하는데 상처투성이 손을 볼때 눈물이 핑 돌았다. 몇일전에 본 입으로 그림을 그 리는 장애인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했다. 입으로 컴퓨터를 하는 시인도 있고 외국의 경우 양팔이 없이도 수영을 자유자재로 하는 장애인도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들이 생각할 문제는 아마도 무언의 폭력과 선입견이다.
자신을 더 사랑할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저자를 통해서 비록 몸을 불편할지 모르지만 행복이 무엇인 지를 보여주는것 같아서 기쁘다. 정상적인 모습을 가지고도 불평과 불만으로 쌓인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가 더 장애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은 장애인이 평범하게 살수 없는 곳이지만 그들이 더 행복하고 편안한 안 식처로 살아갈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