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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부도덕한 생활지침을 설파하는 미시마 유키오의 에세이. 처음엔 반어적으로 말하는 줄 알았다. 이를테면, 청년이여 나약해져라, 거짓말을 많이 하라, 약속을 지키지 마라, 은혜는 잊어라 같은 명제를 두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와 반대급부에 대해 일러주니까. 그런데 몇 장 읽다 보면 이것이 인간 세상의 커다란 역설임을 알 수 있고, 이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1958년에 일본에서 연재된 산문인데, 지금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통상의 행동양식과 그에 대한 작가의 명제가 빛난다. 소설에서는 탐미주의라 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다룬 작가이지만, 산문에서는 발칙하고 도발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접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여성에 대한 관점과 극우주의자로서의 역사인식이다. 이런 것들을 걸러들을 수 있다면 충분히 참고할 만한 관점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책의 마지막에서 자살을 경계하고 자살하지 말 것을 이야기했지만 스스로는 몇 년 후 할복자살했다는 것, 그의 죽음으로 인해 일본 극우가 활개를 치게 되고 자민당이 만들어졌다는 점. 작가도 자신이 적은 글처럼 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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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를 읽으며 미시마 유키오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얼마 전에는 그의 자전소설격인 <가면의 고백>을 읽었다. 이어서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책 <부도덕 교육강좌>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미시마 유키오가 어떤 잡지에 연재한 칼럼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펴낸 것이다. 부도덕이라니, 웬지 미시마와 교묘히 맞아떨어지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더욱 읽고 싶었던 느낌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글의 제목들부터가 참 유쾌하다. '남에게 폐를 끼치고 죽어라', '약자를 괴롭혀라', '거짓말을 많이 하라', '여자에게 폭력을 사용하라' 등 사회적으로 일종의 암묵적 금기가 되고 있는 내용들을 뒤집는듯한 자극적인 제목이다. 하지만 내용들을 보면, 억압과 가식이 가득한 세상을 비꼬고 풍자하고, 그 허망함을 폭로하고 있다. 미시마답다고 생각한 것이, 그는 <금각사>에서 금각사를 불태워버림으로써 아름다움의 포로였던 처지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주인공을 묘사했고 <가면의 고백>에서 자신의 어린시절의 망상과 독특한 성향 등을 당당하게 드러냈으며 그의 죽음조차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런식으로 강하게 나오는 것이 미시마답다는 생각이다.
괜히 남의 일에 참견하는 오지랖 넓은 중년여성들을 비꼬기도 하고(개인적으로 아주 속이 시원했던 부분이다. 오지랖넓은 사람은 딱 질색이기에...) 필요 이상으로 겸손한 척 하면서 속은 굉장히 거만한 사람들을 '겸손형 바보'로 칭하기도 한다. 얼마나 오래 살려고 그러는지 하루종일 온갖 영양제 따위를 달고 사는 사람을 비웃고, 지식인은 대접을 받지만 근육질의 몸매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한다. 술집에서 처자식이 있는 사실을 숨기고 독신자로 행세하는 사람들을 교묘히 풍자하고, 여자를 때리는 행위를 남자답다고 칭송하면서 반어적으로 폭력에 대해 비판한다. 도덕의 가면을 쓴, 하지만 이면은 결코 도덕적이지 않은 이 세상을 반어법으로 통렬히 비판하는 것이 아닐까.
이래저래 이 책을 읽으며 말 그대로 유쾌, 상쾌, 통쾌한 기분이 되었고 고지식하고 교과서적인 소리만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 참 딱딱하게 사시는군요! 하고 즐겁게 반박해 줄 마음이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실린, 미시마의 의견에 모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파시스트적인 면모나 은연중에 보이는 약자에 대한 가혹함은 절대로 본받고 싶지 않다. 하지만 파멸을 향해, 허무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심연을 드러낸 점은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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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덕 교육강좌라고 제목으로 내게 다가온 한권의 책! 나는 이 책의 내용이 제목만큼이나 궁금했다. 이 책을 나는 과감히 편견에서 깨어나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떼라는 것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리저리 자신이 원하는대로 가버려 부모의 애간장을 녹이기도 하며 자기의견을 강하게 내세우기도 한다. 이럴때 어떤 사람은 아이가 엇나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가 주관을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 단점에 가려진 장점을 보는 법 같은 것 말이다. 갈피갈피에서 나는 작가의 개성있는 필치뿐만 아니라 깨어있는 의식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과 글의 의미들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온 작품이었다. 당신은 이 친구가 순전히 학대받고 싶어서 당신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목숨을 건지게 되는 것이고, 나는 당신은 약자를 학대하는 재미를 맛봄으로써 결국 양쪽 다 득을 본셈이다. -본문 중- 마시마 유키오의 글을 보며 대단하다! 직설적이다! 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바라보는 글에서 미사여구가 없다. 속을 다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이 책은 소재조차도 독특하고, 내용을 독특하다. 내가 이제까지 어디서도 접해볼 수 없어던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장점에 가려진 단점을 보게 하기도 하고, 단점에 가려진 장점을 보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안개를 걷어내 시야를 확보하게 만들어주는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도 직설적이다. 나의 자기연민에서 벗어나게 도와주기도 하였다. 부도덕 교과서는 내가 서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게 해준다. 그는 약자의 괴롭히라고 말한다. 약자를 괴롭히라고? 약자를 도우라는 말을 들었어도 괴롭히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그가 말하는 약자는 "나는 약합니다. 불쌍한 인간입니다. 나를 괴롭히지 마세요"와 같은 얼굴을 사람들을 말한다. 분명히 해둬야 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상황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의 글을 보며, 나도 약함을 내세우는 사람이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약함을 내세우며 사는 사람!나는 왜 부정할 수가 없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나의 많은 매력중에 약함을 앞에 세웠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은 의견이 기지 보다 더 휼륭하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어설픈 의견이 기지보다 자연스러운 기지가 인생의 지혜로서 가치가 있는 법인데..... "랭커스터가 그렇게 키가 작아?하고 놀려대니, 그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버드 랭커스터가 지금 앉아 있어"라고 말하는 거다. 내가 말하는 자연스러운 기지가 바로 이런 것이다. -본문 중- 나도 가끔은 나를 미사여구에 가둘 때가 있다. 어떻게 하면 멋지게 말할까? 여기서 제대로 한번 말해야 하는데... 라는 속마음을 품으면서 말이다. 그런말을 뱉고 온 날은 나 참 겉멋들었다!라고 내가 내게 말을 걸때도 있었다. 미사여구를 구사하는 아가씨를 보면서 과거의 내모습 아니 지금도 가끔 튀어나오는 나 자신을 만나보게 되었다. 타인의 감정으로 대용된다!라는 글이 있다. 남의 규칙에 끌려다니기 싫다 말하면서 나의 감감정은 대용되도록 나 스스로 부추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여백을 내것으로 채우기 못하고, 나는 남의 것으로 채워버린 것 같다. 그리고 기지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의견만 중시하지 않았나? 싶다. 기지라는 새로운 녀석을 오늘 발견한 느낌이 든다.이 설레이는 느낌은 뭘까? 이 책은 특별함, 독특함, 개성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 꼭 읽고 보길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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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다녀온 일본근대문학기행의 첫날 찾은 일본근대문학관에서 미시마 유키오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구경하고서 <금각사>와 함께 읽게 된 책입니다. 제목으로 보아 미시마 유키오의 개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작가가 이런 성격의 책을 쓰려면 적어도 기획 의도를 밝히는 글쯤은 앞에 붙어두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었지만 없었습니다. 다만 문학평론가 오쿠노 다케오가 말미에 붙인 해설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성품에 대하여 설명한 다음, “(미시마)는 대단히 웅대하고 진지한 장편에만 힘을 쏟았다. 그리고 그곳엔 놀이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하지만 <부도덕 교육 강좌>에서는 미시마의 소설에 나타나지 않은 기지와 역설, 웃음이 충분히 발현되었다. 연재 무대가 <주간 명성>이라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대둥적인 주간지였던 만큼, 미시마 유키오는 격식을 버리고 마음껏 장난을 친다.(414쪽)”라고 적었습니다. ‘모르는 남자와도 술집에 갈 수 있다’라는 글로 시작해서 ‘끝이 나쁘면 모든 게 나쁘다’까지 모두 67꼭지의 글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작가가 34세이던 1958년에 연재되었고, 이듬해 중앙공론사에서 단행본으로 나왔으니 지금으로부터 67년전에 쓰인 글입니다. 제목과는 달리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현대(당시)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와 함께 예술에 대한 동경이 녹아들어 있다.(415쪽)”라고 다케오는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50년 전의 글인데도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다.(416쪽)’라고 하였습니다. 저처럼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기 전에 <금각사>를 읽었다는 옮긴이는 “혹시 예언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50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2010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온통 뒤흔들 만큼 위력적이다.(419쪽)”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요즈음의 세태와 많이 닮은 점도 있지만, 여전히 충격적인 주장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 점은 먼 훗날 현실화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처음에는 제가 지난 해 읽은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 사회심리학과의 로랑 베그 교수가 쓴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와 맥을 같이 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https://blog.naver.com/neuro412/223688253461>의 경우는 이미 드러난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면, 미시마 유키오의 <부도덕 교육 강좌>는 지금까지 도덕적이라고 생각해온 명제를 뒤집어 생각해보라는 권고라는 생각입니다. 몇 가지 의표를 찌르는 작가의 생각을 읽어보기로 합니다. 먼저 ‘청년이여, 나약해져라’에서는 체육이 강조되고 영양이 좋아지면서 10대 남녀의 체격이 급속도로 향상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유념해야 하는 점은 “정치가는 청년의 사상을 활용하는 시늉만 보이지 실제로 이용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청년의 육체뿐이라는 사실이다. (…) 그러므로 정치가의 의표를 찌르려면 청년들이 ‘문약’에 흐르고 ‘유약’에 빠져서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흐늘흐늘한 육체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119쪽)”라는 주장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노회한 정치가들이 청년들의 참신한 생각을 정책에 반영하기보다는 구닥다리 정치행태를 지키는 행동대원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이런 속셈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하고, 이들의 속셈에 부화뇌동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젊은 세대다운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매사에 투덜거려라’라는 글에서는 “인생만사 무슨 일에든 ‘지당하십니다’로 일관하면 손해만 볼 뿐 이득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358쪽)”라고 일갈합니다. 어수룩한 삶의 전형이라는 것입니다.“나는 몹시 화났어”라고 세상에 선언하는 즐거움, 이것이야말로 어른의 즐거움이며 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쾌락이다.(362쪽)라고 주장합니다. 생각해보면 불평을 털어놓으려면 스스로도 분명한 무언가를 보여야 합니다. 책잡힐 바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신 주장할 것은 분명하게 주장하도록 해야 스스로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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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아름다운 존재를 태워버리고 마는『금각사』는 미시마 유키오의 참으로 멋진 작품이다. 아름다운 것을 소중히 간직하지 않고 없애버리는 인간의 자학적 심리에 대해서 이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성향 때문이었을까. 어느 순간 미시마 유키오는 극우주의자로 변모한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그는 자위대 궐기 장소에서 할복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일본어에 능통하지 않는 대다수의 독자들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러던 차, 오랜만에 그의 작품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바로 『부도덕 교육강좌』이다. 이번에는 기존의 도덕 교과서를 비웃는 듯한 미시마 유키오의 독설과 냉소를 만날 수 있었다. ![]() 『부도덕 교육강좌』는 1960년대 여성주간지에서 연재하던 작가의 글을 모아 놓은 작품이다. 나는 먼저 '부도덕 교육강좌' 라는 제목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냉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거짓말을 많이 하라', '동정은 한시라도 빨리 버려라', '친구를 배신하라', '은혜는 잊어라', '남의 실수를 보고 웃어라', '매사에 투덜거려라' 등등의 소제목들은 그간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간단하게 뒤집어 놓는다. 일단 1960년대에 쓰여진 에세이 형식의 글은 50년이 흐른 지금 현 시점에서 읽어도 전혀 부담스럽거나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 매우 신기하고 놀라웠다. 착하다는 말이 더 이상 칭찬이 아닌 이 시대를 작가는 발빠르게 미리 예측이라도 한 것 같았다.
세상을 살다보면 도덕과 위선의 구분이 애매모호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인간은 이런 구별의 모호함을 때로는 이용하기도, 때로는 이용당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미시마 유키오는 이와 같은 점을 탐탁지 않게, 마땅찮게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작가는 '부도덕'이라는 단어을 차용해 전면에 내세워서 '도덕'을 교묘히 가려놓는 방법을 택했다. 『부도덕 교육강좌』는 겉으로는 껄렁대며 '도덕'에 침을 뱉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도덕에 가린 위선에 대해서 질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작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는 도덕 교과서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목표를 향해 가는 노선과 수단만이 다를 뿐이다.
대부분의 도덕 교과서를 표방하는 작품들은 아주 고리타분하거나 심심해서 하품이 절로 나는 것과는 달리 『부도덕 교육강좌』를 읽으면서 나는 미시마 유키오의 촌철살인 같은 이야기들 덕분에 매우 즐거웠다. 하지만 나는 『부도덕 교육강좌』의 모든 '부도덕'에 손을 들어주고 싶지는 않다. 가끔씩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다소는 해악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도덕'은 과감하게 버리고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지만 미시마 유키오는 상당히 극단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게다가 이러한 성향은 작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는 독자에게 자칫 위험요소로 다가올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미시마 유키오가 추구하는 이상을 같은 평행선 위에 놓여 있다고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만 않는다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부도덕 교육강좌』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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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덕 교육 강좌'는 '주간 명성'이라는 여성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단행본으로 펴년 에세이 집이다. 67편의 부도덕 교육에 해설, 옮긴이의 말까지 포함해 총 422페이지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무게는 무겁지 않아. 내용 또한 마찬가지. 출근길 전철에 서서 부담없이 읽기에 아주 좋은 책이라고 볼 수 있지. 문제는 내가 이 책을 소설로 알고 샀다는 거야. 미시마 유키오는 데뷔와 동시에 성공을 거둔 남자다. 거칠게 없었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문단에 입문했고 31살 때 이미 '금각사'를 써 버렸으니까. 어릴 땐 몸이 약해 수줍음 많고 허약한 소년, 근육질의 동성 친구에게 미묘한 감정을 품을 정도로 괴상한 아이였지만, 성공을 거두고 보디 빌딩을 시작하더니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패기 충만한 이상한 아저씨가 되버렸지. 그러니까 감히 '부도덕'을 교육하시려는 것 아니겠어? 소설가들은 원래 그래야만 하는건지, 원래 그랬기 때문에 소설가가 되는건지 알수는 없지만, 대개 개성있고 자기 주장이 확실한 사람일 수록 이 세상을 삐뚜루 보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 사람들은 대개 도덕적으로 민감하고 시비에 철저하며 본질 추구에 집요한 면을 보인다. 뭐하나 허투루 넘어가는게 없어. 이 삐딱이들이 '엄밀하게 따지면'이라고 말을 시작할 땐, 어지간히 골치아플 준비를 해야 한다. 부도덕 교육 강좌가 말 그대로 부도덕을 교육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도덕이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억제하기 위한 사회적 규범이다. 그런데 문제는 도덕을 잘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철저히 실천하는 것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거다. 예컨대 우리는 모두 남의 불행에 기뻐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은연중에 그 불행이 고소하게 느껴지면서 묘한 자신감에 벅차오르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니가 그러면 그렇지'. '그렇게 잘난척 하더니 내가 알아 봤다'. 본성이 펄떡펄떡 살아 날뛸땐 도덕은 속수 무책인 법이지. 하지만 이 더러운 본성을 자기 눈으로 목격할 수 있다면? 문득 거울을 봤더니 그 속엔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진 짐승의 모습이 있다. 이게 나의 모습이란 말인가? 나는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히고 본래의 도덕적인 나로 돌아온다. 미시마 유키오는 '남의 불행을 기뻐하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독자가 보는 것은 치졸하고 잔인한 나의 '본모습'이다. 인간은 '내 눈의 들보'를 보기 시작했을 때 도덕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을 갖게 된다. 작자가 보여주는 건 진실한 너의 모습. 네 눈의 들보. 부도덕 교육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론 도덕 교육이라는 여러 독자들의 평은, 그러므로 타당하도다. 하지만 이런 역설, 너무 흔하잖아. 진부해. 질린다고. 도덕 교육같은거, 진지하게 점잖빼고 얘기하면 꼰대처럼 보일까봐 일부러 이런 제스쳐를 취하는거 아니야? 기본적으로 당신의 글에선 남성 우월주의와 힘에의 의지가 느껴져. 남을 깔보는 듯한 시선이 문장 사이사이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내 마음을 질겅질겅 씹어댄다구. 그래서 난 당신이 싫고, 당신의 말투가 싫고, 이 책이 싫어. 하지만 그의 지적엔 절묘한 섬뜩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잔혹함은 소년기의 특징이다. 아무리 감상적으로 보이는 소년에게도 본능적인 잔혹성이 내재되어 있다. 소녀도 마찬가지다. 다정한 심성은 어른의 교활함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p. 19. 선생을 무시하라, 속으로만) 어른이 된다는 것, 건강한 사회의 예의바른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펄떡펄떡 살아 날뛰는 본성을 감옥에 가둬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무의식의 심연으로 유배보내는 것 아니겠는가. 대가의 시선에는 당해낼 수 없는 점이 있는 법이지. 내가 만약 일찍 성공을 거뒀다면, 아마도 미시마 유키오 같은 사람이 됐을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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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작가의 성격이나 취향이 소설에서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다른 요소들로 즐길 수도 있습니다. 구성이나 문체, 소설을 이끌고 가는 패턴이라던가 다른 캐릭터들. 그러나 에세이는 정말 작가 자신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르이기 때문에 잘못 만났 을 때, 탈출구가 없습니다. 정말 나랑 맞지 않는 작가라는 사실에 대한 탈출구 말이죠. 책을 덮음으로써 그 탈출이 가능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읽은 그 내용 들의 잔재가 마음에서 떠돌기 때문에 탈출구가 없다는 표현이 떠올랐습 니다. 미시마 유키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유명해서 읽어보진 않았지만 제목만 이라도 들어본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 작가의 연보를 살펴보니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가라고 해서 글만 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서 할복 자살을 할 정도의 사람은 정말 흔치 않지요. 이런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고, 옳다고 여기는 신념을 관철할 정도로 강인한 내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좋아보이지만 반 대의 경우에서 살펴보면 오만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의 측면이라는 것은 이 사람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봤을 때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글들이 전부 헛소리라던가 쓰레기라던가 그런 생각이 든 것 은 아닙니다. 분명 자신의 철학이 있고 거기에 따르는 정당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단지 그 스타일이 저와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글은 정말 잘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인한 내면을 통해 확고함이 글로 표현되었기에 더 그렇게 느끼겠지요. 이 에세이는 18세기 유명한 소설가 이하라 사이카쿠가 쓴 작품 중 '혼조니주후코, 이십사효'를 흉내 내어 적은 것이라고 합니다. 불효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둠으로써 나는 이 정도의 불효자는 아니라 는 안도감이 들게 하여 효도의 첫걸음을 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합니다. (p. 9~10) 그래서 '비도덕적'인 표현을 썼다고 합니다. 단순히 비도덕적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고 '비도덕적'이라고 여기는 부분에 대한 다른 측면에서의 접근을 통해 그것이 효과적인 위치를 갖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라고 하는 에피소드에 서는 거짓말을 잘 하려면 단순히 머리가 나빠서 그 거짓말이 성립하게 만들 수 없다는 부분이 담겨있습니다. 정말 치밀하게 짜여진, 똑똑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식으로 도덕적인 것은 분명 아니지만 그 '비도덕적'인 부분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을 이야기 합니다. 작가의 한 에피소드마다 왜 그런 이야 기를 썼는지, 왜 반대적인 것을 통해서 옳은 결론이 나는지에 대해 자신의 확고한 철학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든 학생들에게 다 적용 가능하며 옳다고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좀 의문입니다. 30대 이후로 어느 정도 인생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확고함을 지녔 을 때 이 글을 읽으면 전후 판단이 되며, 이 이야기는 옳다, 이 이야기는 좀 아니다. 라는 분별이 가능합니다. 물론 10~20대가 그것이 힘들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제가 생각하는 내가 이것을 해서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자기 신념이 생기는, 자신을 그만큼 파악하게 되는 것은 30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어른'의 범주에 들어가는 나이라서가 아닐까 싶네요. 그러나 10~20대로서는 어느 작가가 좋아서 그 작가 말대로 해야지. 라는 모방 심리도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떤 것에 행복을 느끼고 어떤 것이 옳다고 판단하기 전에 이미 다른 사람의 가치관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사람은 옳은 것만을 보고 자라는 것은 아니고 좋은 것만 겪으면서 자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생각 자체가 이론적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책을 10~20대에게 직접 권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옳은 부분도 있지만, '비도덕'이라는 곳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이렇게 까지 썼어야했나 라는 생각이 드는 비튼 곳, 조금 터무니 없는 옳지 않은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서평을 써야할지 계속 고심을 했습니다. 다른 분들 서평을 좀 찾아보니 칭찬 일색이라, 이런 서평 하나 쯤은 있어도 될 것 같아서 신랄하게 한번 써봤습니다. Fudotoku Kyoiku Koza by Mishima Yukio (1959) (주)태일소담 초판 1쇄 2010년 6월 14일 초판 2쇄 2010년 7월 19일 이수미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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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그가 세상을 떠난지 47년이 지났다. 그가 남겨놓은 문학세계와 정신적인 토대는 후대 일본 소설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무라카미하루키, 히라노 게이치로가 대표적인 일본 작가이며, 그들의 문학 세계의 바탕에는 미시마 유키오가 숨어 있다.그동안 그가 남겨 놓은 문학작품을 접하면서 그의 정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그의 극우적인 성향과 극잔적인 행동들,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그의 생각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며, 그의 언어 유희와 통찰력을 엿보게 한다. 그가 부도덕을 언급한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도덕적인 양식 뒤에 감춰진 위선과 허위를 드러내고자 했던 게 아닌지, 도덕을 강조하면 할 수록 그 안에 수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는 걸 그는 들여다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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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더불어 목차를 보고서도 눈이 동그래지면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미시마 유키오 님의 <부도덕 교육강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익혔던 우리 사회의 도덕, 그리고 우리 사회의 통념이라고 일컫는 것들에 대해서 이 책은 강렬한 비판과 함께 벗어버리라고 이야기해주고 있기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그렇게 부도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가 너무나도 궁금해졌습니다. 의구심과 궁금증, 그리고 호기심까지 온통 물음표를 가지고 만나게 된 이 책은 지금까지 그야말로 삐딱함으로 바라보고 문제시하던 부도덕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부도덕 교육을 권장합니다'라는 소개처럼 미시마 유키오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도덕적인 것, 사람들의 통념과 상식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소개해주면서 독자로부터 놀라움과 독특하고 새로운 인식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해줍니다. 특히 아이들도 익히 아는 도덕성이라 불리우는 '친구를 믿지말고 배신하라'든지, '약속을 지키지 말라'는 등의 부도덕 교육은 정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더욱 고민하면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더 진지하게 읽을 수 있었던 내용입니다.
효나 충을 강조하는 것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기에 그렇게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요. 사실 우리 사회에서 덕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현실적인 부도덕을 꼬집는 것이 아닐까를 생각해보기도 하던 터라 이 책이 더욱 신선하면서도 의미를 갖는 시각이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다양한 시각과 그 관점들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고 반성해야할지를 제대로 짚어보게 해주는 책을 만나서 우리네 사회에 대한 고민과 이해에 더욱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앞으로도 이 책을 가까이 두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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