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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팽 시리즈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매력요소가 바로 유머입니다. 늙고 강건하지 못한 가니마르 대신 등장하는 고르주레 경감은, 나이도 비교적 젊고 덩치도 좋은 편입니다. 머리가 딱히 좋지는 않아도, 빈틈이 그나마 별로 없고(몇 번 발텍스를 놓치는 건 본인 잘못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발텍스가 수완이 좋았고, 뤼팽이 그 자리에 대신 있었어도 별 수 없었을 겁니다) 뤼팽에 대한 적개심이 상당히 강한 편입니다. 고르주레는 제법 자주 뤼팽을 궁지에 몰아 넣고, 우리 독자가 봐도 "공인 호구"인 가니마르와는 달리 뭔가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여튼 이 고르주레가 제법 주도면밀하고 완력도 뛰어난 편이라 고조되는 흥분 속에서도, 뤼팽은 그 약점을 잘도 짚어내어 요리 노리고 저리 조롱하며 그 애쓴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듭니다. 이 과정이 너무나 우습기에, 미스테리 이상으로 유머의 요소가 독자의 혼을 빼 놓습니다.
이 책은 까치판 전(全) 20권 중에 제가 사지 않은 품목이었어요. 전 10여 년 전 이 시리즈가 한 권 한 권 출간될 때마다 사서 모았는데, 무슨 사정이었는지 이 책만 빼 놓았더군요. 제목은 "두 개의 미소를 지닌 여인"인데, 프랑스어 원어를 잘 읽어 보면 좀 다른 의미로도 읽히고, 그게 바로 스포일러입니다. 그래서 그것 관련 이야기는 한 마디도 리뷰에 쓰지 못하겠습니다. 뤼팽 시리즈에서 언제나 사건의 큰 동인으로 작용하는 게 "아이덴티티의 교란"입니다. 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게 주로 뤼팽이죠) 뤼팽은 이 장편 속에서 어떤 여인을 우연찮게 만납니다. 그 여인은 뤼팽의 마음을 쏙 빼 놓을 정도로 미인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이 여인을 묘사한 중 탁월한 문장으로는, "짓는 미소가 그 얼굴을 초월한 듯한, 얼굴의 틀이 바뀌는 것 같은 미인"이 있었는데요. 타고난 틀이 나쁘다는 건 전혀 아니지만, 타고난 골격과 배치의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듯한 내면, 영혼의 밝음 같은 걸 표현하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확실히 그런 여인이 있습니다. 자주는 못 만나도 말입니다.
그냥 넘겨도 될 것을(원래 뤼팽은 돈 욕심이 없지 않습니까? 그저 스포츠 삼아 도둑질을 할 뿐), 무슨 숨겨진 유산이나 수수께끼의 귀중품 행방을 찾는다는 핑계로, 뤼팽은 이 사건에 번거로움 마다 않고 또 뛰어 듭니다.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순박한 시골 처녀 안토닌을 찾아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상하기 짝이 없는 게, 정황상, 그리고 논리적 귀결로, 이 안토닌은 유명한 건달이자 지명수배자 꺽다리 폴의 정부(情婦) "금발의 클라라"와 동일인물이라야 합니다. 그런데 본인은 그 추궁에 격하게 반발하며 아니라고 합니다. 세상사 산전수전 다 겪은 뤼팽, 그 눈동자나 입매 움직이는 것만 봐도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다 압니다. 분명 그 여자인데, 거짓말 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뤼팽 작품에 드물지 않게 등장하는 설정(혹은 핑계)으로, "정신 분열증이라서 인격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있는데, 익숙한 독자는 바로 이 점을 떠올리다 미궁에 빠질 수 있겠습니다. 차라리 처음 읽는 이라면 바로 진상이 눈에 보일 수도 있겠는데요.
데를레몽 후작(성귀수 선생님은 가문의 경우 "에를레몽", 인명의 경우 "데를레몽"으로 이 소유 전치사 de 단축형의 난감한 처리를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은 아주 잘생긴 미남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 이 작품에선 중요한 복선 중 하나가 됩니다(!). 뤼팽은 여기서, 어느 소국(물론 가상의 지명이지만, 그 법적 성격은 아마 모나코 같은 대공국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의 왕비와도 내연의 관계인 걸로 암시됩니다. 뤼팽은 이미 <813>에서 로렌 공국을 부활시켜 그곳에 자신의 괴뢰를 주권 군주로 앉힐 생각을 했더랬죠. 열혈 애국자지만 전쟁을 통해 독일로부터 고토를 수복할 생각을 않고, 책략과 수완으로 "정신적인 프랑스 영토(저 계획이 설사 달성되어도 제국의 영향권 안에 남아 있습니다)"로 삼는 정도로 만족하려 든 그 생각이 좀 귀엽기도 하고, 과격하지 않은 여유가 엿보이는 것 같아 미소를 띠게 합니다. 모르긴 해도, 실명이 "올가"인 그 왕비는 신분 세탁을 통해 뤼팽의 도움으로 그 자리에 앉게 된 것 아닌지 짐작합니다.
이 작품에 대한 비판자들은, 우연 또 우연인 걸로 미스테리의 실상이 나온다는 점에서, 큰 불만을 표시할 만도 합니다. 게다가 (중요한 가지는 아니지만) 가장 악질적인 "비밀 통로"가, 누구 눈에도 예상 가능한 대목에서 다시 등장한다는 점에서, 실망을 안기기도 하죠. 하지만 언제나처럼 뤼팽의 유머와 정신 없는 장난, 재롱은, 이 작품 역시 팬들로 하여금 충분히 즐기고 웃을 수 있는 활극으로 꾸여 주고 있습니다. 많은 역주와 권말의 탁월한 작품론은 진지한 독자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제가 몇 주 전에 다른 서평에 적은 "급진당 출신의 총리"가 바로 조르주 클레망소라는 주장을, 역자께서도 이미 이 시점에 확인 해 주고 계셔서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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