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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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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란 말에는 지리적 관련성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자, 유교, 불교 - 특히 대승불교 - 문화 등이 그것인데 중국, 일본, 한국 외에 몽고와 대만 베트남 정도로 그 지역을 확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지역들이 중국의 문화 영향권 내에 있어서 중국문화와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지만 불교는 인도에서 발원해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된 만큼 중국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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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란 말에는 지리적 관련성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자, 유교, 불교 - 특히 대승불교 - 문화 등이 그것인데 중국, 일본, 한국 외에 몽고와 대만 베트남 정도로 그 지역을 확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지역들이 중국의 문화 영향권 내에 있어서 중국문화와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지만 불교는 인도에서 발원해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된 만큼 중국 고유의 문화는 아니라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하지만, 대승불교, 혹은 선불교라는 동아시아 불교의 특징이 바로 중국식으로 수용되고 변형된 불교문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점은 불교의 전파가 단순히 종교적 수준을 넘어서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가 전해지면서 다양한 경전들이 번역되어져야 했습니다. 이는 수세기에 걸쳐 전문적이고 광범위한 역경작업이 진행되었다는 것이고 이런 과정은 결국 인쇄혁명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일본, 중국 등에서 주장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물이라는 것들이 모두 불경과 관련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특히 불교 국가였던 고려 시대의 제지술과 인쇄술은 당시 세계 최고였다는 점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것 같습니다.

불교가 인도에서 전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각 지역에서 그 특성을 반영해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대승불교의 특징들, 구원을 바라는 신앙, 승려들의 노동, 보살과 나한상의 변천 과정, 선불교의 등장, 유교와의 교류와 대립 등등, 천 오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불교가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력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데요. 우리만 해도 지난500년의 조선에서 유교를 바탕으로 하고 불교를 억제했기에 그런 전통과 문화가 다소 과소평가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재를 살펴봐도  70% 이상이 불교와 관련 있다고 합니다. 물론, 사찰이 산 속에 있어서 외부로부터 비교적 안전했고 석탑 등 보존이 용이한 형태로 된 문화재가 다수 있는 덕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교가 역사 이래 끼친 영향력은 다소 낮게 평가되어 온 것 같습니다. 더구나 한중일 세 나라를 비교하면서 그 흐름을 살펴보니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연관되어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z***a 2010.10.0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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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불교를 바라보는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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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책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석길암님의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이다. 의미심장한 제목을 지닌 이 책은 동아시아가 (인도) 불교를 만나 변화했다고 본 책이 아니라 (인도) 불교가 동아시아에 의해 변형 수용되었다고 본 책이다. 사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지난 2002년부터 1년여 넘게 강남 소재의 남방 불교(위빠사나) 수행 센터에 다닌 것이 전부이다. 그래도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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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책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석길암님의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이다. 의미심장한 제목을 지닌 이 책은 동아시아가 (인도) 불교를 만나 변화했다고 본 책이 아니라 (인도) 불교가 동아시아에 의해 변형 수용되었다고 본 책이다. 사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지난 2002년부터 1년여 넘게 강남 소재의 남방 불교(위빠사나) 수행 센터에 다닌 것이 전부이다. 그래도 경전 해설서와 붓다 일대기, 계율 해설서, 교리 관련서 등 50여권의 불교 관련 책을 읽었다.

 

지난 2002년 당시 조계종의 참선 프로그램 대신 낯선 남방 불교의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우리나라 불교가 선종의 일파인 조계종에 의해 통일되다시피 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물론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선불교의 본산인 중국 문화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지니고 있다. 인도 불교가 중국에 의해 변질되었다는 마음 때문이다.

 

불교는 너무 방대하고 어렵다는 느낌을 준다. 그 자체로 매우 정교한 철학 체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석가모니 붓다의 일대기를 다룬 책은 소박하지만 유식 불교나 중관 불교는 필요에 의해 산출된 이론이라 해도 누가 알랴 싶을 만큼 어렵다. 권오민교수는 <불교학과 불교>에서 “상종(相宗)이라 일컬어지는 아비달마(소승교)나 유식(唯識)에 대해서는 불교학자들조차 어렵다고 말한다”는 말을 한다.(51 페이지) 전공자들조차 어렵다고 말하는 형편이니 문외한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불교학과 불교>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바는 “불교는 단일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 단일하지 않다는 말에 초점을 맞추면 중국 불교도 자기의 토양에서 자라난 불교일 뿐이다. 그런데 불교 신자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연상하는 불교 종파는 선종의 일파인 조계종이다. 이는 해방 이후 몇몇 정상승(政商僧)들이 교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우리 나라 불교의 광대한 범위를 조계종으로 축소한 데서 기인한 불행한 사태이다.(<불교학과 불교> 139 페이지)

 

“불교는 단일하지 않다”는 말을 했지만 불성을 찾아 수행하는 대신 기복 불교나 타력 신앙에 의지하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그런데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에 의하면 북전불교의 전파지역에만 타력 신앙인 아미타불 신앙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북전불교가 전파되고 흥성했던 정치적 지형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즉 당시 북전 불교의 유입 경로에 해당하는 지역은 하나 같이 치열한 전쟁터였다.(91, 92 페이지) 남방 불교의 수행 센터에 다닐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찬불가를 부르지도 않았고, 염주 등 불교의 상징물들을 지니지도 않았으며 수행 센터에 입장할 때 단 한 차례 불상에 절을 했을 뿐이라는 점이다.

 

지금껏 나는 타력 신앙을 열등하다고 생각해 왔다. 염주나 찬불가 등도 마찬가지이다. 남방 불교권은 타력 신앙에 의지하는 여타의 불교 문화권에 대해 비판의 시각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불교 전파시 실크로드를 다녔던 상인들이 불상, 염주, 불경 같은 것들을 지닌 것은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였다는 글을 읽고 그들의 입장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181 페이지) 그렇다면 현재 상황은 어떤가. 전쟁이나 정치적 격변 말고도 사람들을 타력 신앙에 몰두하게 하는 것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다양한 불교를 경험해야 할 것이다.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는 역사적 근거를 들어 불교 이해의 장을 넓힌 책이다. 이 책은 지금 읽고 있는 <불교학과 불교>와 함께 이해라는 키워드에 따라 분류할 수 있는 책이다. 정치사적 자료를 기반으로 불교 이해의 지평을 넓힌 책(<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과 너무도 방대한 종파가 수놓은 불교사 및 그들이 만들어낸 교리를 바탕으로 불교 이해의 지평을 넓힌 책(<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이 조우하는 지점은 여기이다.

 

역경(譯經)이 바꾼 세상, 위경(僞經)과 의경(疑經), 타력신앙, 불교의 노동, 수많은 불보살들, 동아시아의 종합 정보 문화공간인 사찰, 차문화(茶文化)와 불교, 불교문헌학, 불교와 유교(성리학)의 관계까지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가 다룬 분야는 넓다.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는 쉽게 읽힌다. 역사적 근거에 바탕해 불교사를 정리했기 때문이다. 물론 더 깊은 이해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방대하고 어려운 수많은 종파의 철학적 기반을 탐구하는 데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http://blog.bandinlunis.com/bandi_blog/document/45321298

m******1 2011.10.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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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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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심난하지 않고 무척 편했다. 그것은 이 책이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고 나 또한 이 책속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어찌보면 종교란 인간의 공짜심리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것도 주지않으면서 오로지 뭔가를 받고 위안을 얻으려는 심리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 종교가 아닌가 싶다. 아울러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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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심난하지 않고 무척 편했다. 그것은 이 책이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고 나 또한 이 책속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어찌보면 종교란 인간의 공짜심리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것도 주지않으면서 오로지 뭔가를 받고 위안을 얻으려는 심리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 종교가 아닌가 싶다. 아울러 인간은 강요받기를 싫어한다. 아무리 좋은 종교도 누군가 강요하면 왠지모르게 반발하고 발뺌하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불교에 관한 책이면서 불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종교책이지만 불교에 대해 호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양서임에 틀림없다. 전체를 이야기 하면서 부분적인 불교상식도 갖추고 있어 산과 나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뒷표지에서도 얼핏 나와 있듯이 저자는 "이미 존재했던 동아시아에 불교가 전해진 것이 아니라, 불교가 전해지면서 불교에 의해 동아시아라는 문화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동아시아(한국, 중국, 일본, 대만, 티벳, 동남아시아 일부)에서 불교의 위치는 빼놓을 수없는 중심축에 있으며 바로 문화로 직결되어 있다. 저자는 그런 불교의 화려했던 역사적 위치와 침잠하고 있는 현재의 위치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다.

  상식적인 애기일지 모르나 고대인도에서 발생한 종교는 인도의 북쪽지역을 경유하여 전파된 북방불교(대승불교)와 남쪽지역으로 전파된 남방불교(소승불교)로 크게 대별된다. 이 중 대승불교는 실크로드(비단길)를 거쳐 중국으로 유입되었는데 이때부터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문화적 개념이 정착되었다.

 

  한때 불교에 심취해서 3경3게(천수경,반야심경,금강경,법성게,화엄경약찬게,무상게)를 암송하고 다닌 적이 있다. 비록 능엄경과 천주팔양신주경까지 욕심내다 마군에 무릎꿇고 사도(私道)에 빠져 형편없이 전락(轉落)해 버렸지만 아직도 불교를 생각하면 돌아온 탕자처럼 믿는 구석이 남아있다. 이 책에서도 역경(譯經)의 역사를 소개하며 구마라집과 현장법사 그리고 위경(僞經) 부모은중경과 천주팔양신주경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보통 읽는 한문섞인 금강경이 바로 서역 구자국(龜玆國,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쿠차 현) 출신인 구마라집(344-409)의 한역본이다. 구마라집의 일화가 재미있다. 구마라집이 죽음에 임박하여 대중앞에서 맹세하길 "만약 내가 번역한 것이 잘못됨이 없다면 나를 화장한 후에도 내 혀만은 불에 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오직 그의 혀만은 재가 되지않아서 그의 혀를 모신 사리탑을 장안 초당사에 세웠다고 한다.(33p) 현장법사는 서유기의 삼장 현장법사로 잘 알려졌는데 그가 벌인 역경사업이 너무 방대하고 영향이 커서 현장이전의 번역을 구역(舊譯), 현장의 번역을 신역(新譯)이라고 부를 정도였다.(38p) 여기서 삼장(三藏)이란 경과 율과 논의 삼장에 달통한 자를 지칭한다고 한다.(30p)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바로 원시불교에서 대승불교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쉽게 잘 설명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승경전과 보살에 대한 설명도 역사적 배경을 통해 잘 설명되어 있고, 구족계를 포기하고 노동을 택한 삼계교(三階敎)의 신행(信行540-594)에 대한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출가 승려는 네가지 규칙(四依)을 지켜야 했는데 사의란 분소의(糞掃衣), 수하주(樹下住), 걸식(乞食), 진기약(陳棄藥)을 말한다. 분소의는 시체감싼 천이나 분(똥)을 닦은 천으로 만든 옷이고, 수하주는 집없이 나무아래서 머무는 것이며, 걸식은 재가자의 호의에 의존하여 먹는 것을 말하고, 진기약은 소의 소변으로 만든 약으로 출가자는 이것만 약으로 사용할수 있었다.(105p) 이러한 기본생활 규정에 의하여 일체의 세속적 직업이나 생산노농을 금지했던 구족계를 포기하고, 일체의 비전(悲田,중생)과 경전(敬田, 삼보) 공양하고 중생구제를 위해 노동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것이 인도불교와 다른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특징이라는 구절은 감동스럽기 그지 없었다.. 아울러 마지막 부분에 불국사의 석가탑(무영탑)과 다보답의 이불병좌(二佛竝座)를 거론하며 화엄경의 연화장세계해를 신라인들이 화엄불국으로 재창조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유익했다.

k*****9 2010.09.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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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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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북방으로 전파되니 대승불교가 인도에서 출발하여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 도착하였을 때를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아 동아시아(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불교를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어떻게 변화하고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 왔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동아시아 문화권만이 가진 독창적인 문화현상은 대부분 불교와 동아시아의 만남에서 기인한다. 동아시아 불교문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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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북방으로 전파되니 대승불교가 인도에서 출발하여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 도착하였을 때를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아 동아시아(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불교를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어떻게 변화하고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 왔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동아시아 문화권만이 가진 독창적인 문화현상은 대부분 불교와 동아시아의 만남에서 기인한다.

동아시아 불교문화 네트워크는 당시의 '세계인들'이 만나서 아시아 대국의 동쪽에서 만들어졌고 지금은 진행중인 문화 현상이다.

이 책은 불교적 세계인들이 만들어갔던 불교에 바탕하여 형성되고 확산되었던 동아시아 사회와 사상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책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데는 '번역'의 힘이 크다. 올바르게 번역된 책은 세상을 구원할 수도 있다. 과거 1800여년전 중국 땅에서도 번역이라는 코드를 통해 다른 문화들이 재창조가 '역경'이라는 단어로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체를 뒤흔들었다. 한 두명의 전법승 혹은 불교신도였던 상인들에 의해 서역 통상로, 실크로드라 불리게 되는 길을 따라 불교라는 존재가 처음으로 중국땅에 알려지게 된다. 외부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매개체가 거의 없었던 당시의 불경은 단순히 한 종교의 가르침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도인들의 수천년의 문화와 사상이 담겨져 있었다. 불교가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서역이라는 세계 또한 담겨 있었다. 당시 중국인들에게 불교의 경전이란 한 종교의 성전이자 정보의 대용량저장소였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문화적 종합체라고 한다. 수천 수만의 서역 전법승들과 구법승들은 불경뿐만 아니라 서역이라는 세계를 동아시아에 알렸다. 동아시아 세계는 한자, 불교, 유교 등을 공통 키워드로 하지만 본격적인 확산은 불교에 의한 것이다. 장안은 인도 및 서역의 불교와 중국의 불교가 함께 용해되는 불교사상의 용광로 기능을 했던 불교도시다.

불교번역의 대표적인 번역자로 안세고와 구마라집이 있다. 중국 불교는 구마라집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평해진다. 동아시아 불교는 대승불교를 받아 들였다. 대부분의 불경, 특히 대승경전서 적극 권장하는 공덕 중 하나가 사경이다. 불경을 널리 퍼뜨려서 더 많은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출가자, 승려가 노동을 한다는 것은 인도불교 초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 주변의 가까운 절의 스님들을 보더라도 모두 일을 한다. 부처님은 승려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생활규칙으로 사의를 요구 하셨다고 한다. 출가 승려는 분소의(다 닳아서 해진 천조각을 모아서 꿰매어 만든 옷만 입을 수 있다), 소하주(나무 아래에서만 생활해야 한다), 걸식(탁발해서 얻은 음식물만으로 생활하는 것), 진기약(소의 소변으로 만든 약으로, 이것만 약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을 지켜야 했다. 불교승단이 유지 존속하는 기본적인 방식은 사회의 호희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인도초기 불교 승가에 있어 승려가 세속적인 직업을 가지거나 생산노동에 종사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생활규정은 불교가 동아시아에 이르렀을때 극단적인 변화를 겪게된다.

생산노동을 존중하는 승가공동체가 출현했가 때문이다. 동아시아 승려들의 노동에 대한 관념은 백장스님의 '하루 일하지 않는 자는 하루 먹지도 말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구족계는 출가자의 생활을 규정한 것으로 삼계교는 6세가 말에 발원한 중ㅇ국의 불교종파인데 중국 역사 상 가장 민중적이었던 불교종파로 개조는 신행이다. 신행은 구족계를 지켜서 승려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것보다 일체의 부처님에게 온 정성을 다하여 공양을 올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보았다.

단지 승려로서의 본분 지키기보다는 대승의 실천자로서 중생구제 하기를 더 중요시했다.

승려가 직접 노동에 종사함으로써 맨 아래있는 부처님부터 맨 위에 있는 부처님까지 일체의 부처님을 섬겼다.

그 중생ㅇ구제의 일념으로부터 동아시아 승려들의 노동하는 역사기 시작되었다 한다.

소극적인 입장의 구조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동아시아 불교의 궁극적인 지침이 된 뿌리는 신행같은 이타적인 삶에서 시작된 것이다.

서역에서 들어 온 불교가 동아시아의 환경에 맞게 어떻게 변화하고 특성을 갖추게 되었는지 역사적 , 문화적, 사상적 등 다양한 관점엥서 접근하고 있다.

객관적 역사를 기초로 동아시아만의 독특한 불교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g******a 2010.10.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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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따라 문화의 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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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서역국으로 불경을 얻으러 떠났던 삼장법사의 일행을 그렸던 <서유기>를 생각한다. 여기서 서천서역국은 단순히 중앙아시아권을 말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서역을 알면 불교를 알게 되고 불교를 알면 서역을 알게 되는 순환을 따라 서천서역국은 또 하나의 유토피아였으며 새로운 문화를 향한 우리의 목마름이기도 했었을 것이다. 단순히 무역로로만 알고 있었던 실크로드가 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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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서역국으로 불경을 얻으러 떠났던 삼장법사의 일행을 그렸던 <서유기>를 생각한다. 여기서 서천서역국은 단순히 중앙아시아권을 말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서역을 알면 불교를 알게 되고 불교를 알면 서역을 알게 되는 순환을 따라 서천서역국은 또 하나의 유토피아였으며 새로운 문화를 향한 우리의 목마름이기도 했었을 것이다. 단순히 무역로로만 알고 있었던 실크로드가 또하나의 종교를 품었다는 사실은 미처 챙기지 못했던 중요한 무엇처럼 내게 다가왔다. 원래는 삼장이라는 말이 인도불교에서 경과 율과 논의 삼장에 능통한 자를 칭했던 말이라 한다. 그렇지만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는 번역자, 즉 역경승들을 호칭하였다 하니 법을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자들에게 분명 그곳은 또하나의 새로운 세계였음일 것이다. 불교는 그렇게해서 모든 정보와 문화와 이념세계를 안고 동쪽으로 왔다!

 

수문제에서 시작되어 측천무후 시대에 가장 번성하였던 중국의 불교는 수도인 장안을 발판 삼아 그 위세를 떨쳤다. 수많은 역경승들과 구법자들이 모여들었고 너도나도 듣고 보았던 새로운 정보를 나누었을테니 그 흐름이 대단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다면 그 대표적인 번역자들로는 누가 있었을까? 지금의 이란지방에 있던 나라 파르티아의 왕자였다는 안세고가 전법의 뜻을 품고 한나라로 와 불전을 번역했다. 이로부터 중국은 한문으로 된 불전을 가지게 되었고 중국불교 뿐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두번째로는 중국에서 태어나 아홉살에 인도로 가서 불경을 배웠다는 구마라집이다. 인도어를 소리나는대로 읽은 것으로 '라집' 또는 '집'이라고 부른다는 그의 경론. 그의 번역을 계기로 중국불교는 본격적으로 불교를 이해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북인도 출신의 승려 보리류지, 서인도 출신의 전제가 있었다. 중국에서 번역작업을 하였던 서역 출신의 승려들 대부분은 당시 집권자들의 후원을 받았기에 안정된 환경속에서 번역작업을 할 수가 있었다. 경전을 강의하고 해석하는데 뛰어났다는 현장도 있다. 인도의 서역에서 구법하다가 대,소승의 교학을 배웠다는 그는 불상이나 경전류등 많은 것들을 중국으로 들여오기도 했다. <대당서역기>를 당태종에게 바친 인물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 말을 들여와 내나라 말로 번역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장의 '오종불번'을 보면서 그들이 번역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하였으며, 변질되어지지 않은 제대로 된 뜻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알게 된다. 그러니 역경승이라는 자들이 대단한 학식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대승불교는 자신들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는 방법으로 경전을 택했다. 경전의 내용을 나누는 기본적인 방법이 인연분, 정종분, 유통분이라 한다. 인연분은 경전이 설해지게 된 인연을 설명하고, 정종분은 경전이 말하고자 하는 중심부분이며, 유통분은 경전의 유통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보통은 인연분이나 정종분만으로 충분했지만 대승불교도들은 경전의 내용을 알리고 보증하는 일에 더 큰 공을 들였다 한다. 물론 동아시아의 불교가 받아들인 것도 대승불교였다. 따라서 불교의 흐름이 역경에서 사경으로 변천되어짐을 알 수가 있다. 사경은 경전을 필사한다는 말로 큰 도시의 사원마다 사경소를 설치하여  경전유포에 힘을 썼다. 또한 왕들이 불교를 정치이념으로 쓰기도 했으니 국가차원에서 사경원을 설치하기도 했다. 초기의 불경사경이 새로운 가르침과 문화를 전파하는 도구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이었으니 사경만으로는 전법을 하기에 그다지 능률적이지 못했다. 그런 까닭으로 인쇄문화가 생겨나게 된다. 서로가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이라고 주장하는 우리나라의 <무주정광대다라니경>, 일본의 <백만탑다라니>, 중국의 <묘법연화경>도 모두가 불경의 인쇄본이었다. 불교에 의해 인쇄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불교의 힘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같은 길을 두사람이 가지 말라고 했다던 부처님의 말씀만으로도 전법의식을 대함에 있어서 얼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해인사의 장경판전만이 알려져 있지만 이름난 사찰에 가보면 대개 경판을 보관하는 별도의 판전을 부속건물로 두고 있다고 한다. 그것만 보더라도 사찰이 인쇄문화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인쇄혁명이 동양에서보다 서양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읽고나니 뒷맛이 씁쓸했다.

 

불경을 번역함에 있어서 통일되지 못해 인도불교에서와 같은 경,율,론 삼장의 정형적 분류는 불가능했다. 저마다 제멋대로 번역했으며 번역어조차도 서로가 달랐다. 더구나 언제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번역을 하였는지조차 확실하게 알 길이 없었다. 이런 과정을 문제로 인식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도안이었다. 도안은 번역되어진 경전들에 주석을 붙였고 그 유래를 상세하게 밝혀주었다. 이것을 기점으로 중국인들이 불경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에 표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하니 괄목할 만한 일이다. 위경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세상은 항상 반쪽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니.. 하지만 그 위경조차도 불교의 가르침을 새로운 땅에 정착시키기 위해서였고 그 가르침을 통해 통치의 의도를 달성하려 했다는 목적의식이 있었다 하니 불교가 얼마나 막강한 힘을 과시했는가를 알게 된다. 더구나 혼자만의 유아독존적이 아니라 토속신앙등을 함께 아우르며 상생을 도모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일 테다. 그랬음에도 출가승려가 지켜야 할 '네가지 규칙'은 왠지 생소하다. 그것이 뜻하는 바대로 수행을 하는 스님을 많이 봐오지 못했던 까닭은 아닐까? 하지만 왜 그렇게까지 쉽지않은 규칙을 만들었는가를 따져보지 않을 수가 없다. 사회의 호의에 의존하라! 다시 말한다면 사회와 끝없이 소통하며 세속사회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들 삶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그 '사의 (네가지 규칙)' 를 살펴보자면 이렇다. 분소의 : 다 닳아서 해진 천조각을 모아서 꿰매어 만든 옷만 입을 수 있다. (이 말은 오래전 입적하신 해인사의 성철스님을 떠오르게 한다) 수하주 : 나무 아래에서만 생활해야 한다. (사찰의 대부분이 산중에 있는 이유일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산중을 떠난 사찰내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듯 하다)  걸식 : 탁발해서 얻은 음식물만으로 생활하라.(지금도 탁발은 수행과정의 일부라고 들었다)  진기약 : 소의 오줌으로 만든 약으로 이것만을 약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대목은 살짝 이해를 비켜간다. 소를 우상시하였던 인도에서부터 시작된 때문은 아니었을까?)

 

불상이야기속에서 보게되는 독특한 보살상들이 있다. 낯설지 않은 포대화상의 모습.. 뚱뚱한 몸집에 배는 불룩하지만 그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한.. 지팡이 끝에 커다란 자루를 메고 다녔는데 그 속에서 중생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내주었다는 그를 사람들은 미륵보살의 화현으로 여겨 그 모양을 그린 후 존경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베품의 상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장보살이 바로 신라의 왕자 김교각 스님을 말한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지옥같은 이 현실속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는 대상으로 그려진 그를 일본에서는 참회의 대상으로 더 깊이 신앙한다고 한다.  불교를 통한 문화의 전승과 전파과정이 흥미로웠다. 그리스로마신화와 우리신화속의 주인공들이 갖는 일체감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에로스를 되찾기 위해 저승으로 떠났던 프쉬케의 이야기와 바리데기 공주가 불사약을 구하기 위해 서천서역국으로 떠나는 이야기는 그만큼 오랜시간을 우리 민족의 의식이나 기억속에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불교의 특징적인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다못해 억불숭유 정책을 썼던 조선에서도 불교가 무교와 함께 우리곁에 살아남았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것으로 인해 불교와 무교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기는 했지만 역설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불교와 무교의 정체성은 분명하게 다른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이 한글의 실용화를 테스트하기 위해 첫번째 대상으로 불서를 꼽았다는 것은 우리의 실생활속에서 불교적 언어 생활을 외면하고는 새로운 말과 글의 사용이 불가능 했던 까닭이라고 한다. 그만큼 일상생활속에서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말부터 넋두리까지 불교아닌 것이 없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시껍했네'라는 말이 불교의 '십겁'으로부터 왔으며, '이판사판'이라는 말 또한 공부하는 승려와 잡역에 종사하는 승려를 나누었던 말이라는 것은 몰랐던 사실이다. '찰나'라는 말도 그럴 것이다. 그렇듯 우리의 말길과 뜻길에서도 만날 수 있는 것이 불교였다. 사흘이라는 행사기간동안 마지막 셋째날은 송나라나 여진등 타국의 사신도 참여하여 특산물을 바쳤다는 팔관회.. 단순한 불교행사가 아니라 불교행사라는 명목을 내세워 고려의 입지를 동아시아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는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전래문화를 사이비니 구닥다리니 하면서 남의 문화만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일침이 상당한 아픔을 남기기도 했다.  '전통으로의 복귀', 전통으로의 복귀는 이미 복귀가 아니라 또다른 방식의 나아감이었던 것이다. 역사는 선택을 강요하기 마련이고 가치의 우위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훗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때 우리가 놓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때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하는 것에 대한 냉정한 평가이다. 그것은 선택의 선악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선택의 길목에 서야 할 우리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준비 작업이기 때문이다. (254쪽)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이 글을 다시한번 되새겨본다. 이 책을 통해 단순히 불교라는 이념만을 보게 될 것이라는 짐작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불교길을 따라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고 배웠던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i****9 2010.10.02.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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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전달경로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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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전달경로를 알게 되었다. ‘불교장안’이라는 브랜드를 성립시킨 것이 다름아닌 불전의 번역이었다. 일찍부터 동아시아 세계의 실크로드 관문이었던 장안에 인도와 서역의 전법승들이 도착했고, 거기에서 그들이 가져온 불전의 번역이 진행됐다.   도안은 번역 과정에서 발행하는 문제점을 저 유명한 ‘오실본삼불이’로 정리하고 있다.  인도어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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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전달경로를 알게 되었다.

불교장안이라는 브랜드를 성립시킨 것이 다름아닌 불전의 번역이었다. 일찍부터 동아시아 세계의 실크로드 관문이었던 장안에 인도와 서역의 전법승들이 도착했고, 거기에서 그들이 가져온 불전의 번역이 진행됐다.

 

도안은 번역 과정에서 발행하는 문제점을 저 유명한 오실본삼불이로 정리하고 있다.

 인도어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데는 다섯 가지의 본래 모습을 잃는 것(문화와 풍습이 달라서)이 있다. 그리고 세 가지의 어려움이 있다.(시속에 맞추는 것, 수많은 왕들의 통치를 통해서 말속까지 전달된 것,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부처님 생각에 접근하는 것.)

 

 고려 말에 금속활자를 이용하는 인쇄기술이 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찰의 인쇄사업은 조선 후기에 이르도록 목판인쇄 위주로 진행되었던 사실도 눈길을 끈다.

 

 출가 승려는 그 생활에 있어서 네 가지 규칙을 치켜야 했는데, 분소의(해진 천을 꿰매어 만든 옷), 수하주(나무 아래서만 생활), 걸식(탁발), 진기약(소 오줌으로 만든 약 만 사용)이 그것이다.

 

 

 삼국유사에 기재된 우리 민족 최초의 건국신화인 단국신화는 일연 스님에 의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불교적 윤색을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라 상상할 수도 있다. 특히 천제 곧 하느님으로 등장하는 환인의 명칭에 대해서 학자들은 아마도 그것이 저자인 일연이나 삼국유사에 주석을 덧붙인 무국의 윤색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일연의 엄격한 역사서술 태도를 생각할 때 그 같은 윤색은 상상하기 힘들다. 오히려 불교적 세계관을 자기도 살았던 고려시대 사람들이 단군신화를 불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았던 고려시대 사람들이 단구신화를 불교의 천신들과 일체화시켜 받아들였고, 일연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채록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불국정토를 갈구하는 마음이 이 땅에 왔던 뛰어난 선각자를 단순히 위대했던 고승이 아니라, ‘시실은 우리 옆에 왔던 부처님이라는 형식으로 재창조해 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동아시아인들은 108천 리 서쪽에 있는 부처님을 이 땅에 부처님으로 되살려 냈던 것이다.

 

 세종이 한글 언해본을 만드는 과정을 어디에서 취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세종은 새로운 문자를 적용하는 테스트에서 이미 번역작업에 수많은 경험이 있는 불경 번역의 전문가들을 동원했던 것이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전문가를 고르는 데 있어서 당시 불교 승려들만큼 적격인 임눌, 불교 경전만큼 적격에 해당하는 대상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생활에서의 불교의 생활용어들(십겁,야단법석, 차례, 이판사판 등)을 알게 모르게 알 수 있다.

 

 지금 불교 사찰들이 해야 할 일은 실크로드에 흩어져 있던 석굴사원들이 했던 불전의 재편집 기능, 중국과 백제의 불교 사원들이 수행했던 역경장의 기능을 되살리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동감한다.

 

 대단위의 불교행사는 고려의 입지를 동아시아 세계에 공고히 하고, 더하여 무역과 외교의 양면에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문화행사로서 팔관회를 기획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동감하게 된다.

 

 차는 이땅에서 불교와 함께 호흡을 해 온 대표적인 문화 중의 하나이다.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것을 흔히 티 타임(tea time)이라고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을 흔히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라고 한다. 커피는 긴장이 필요할 때 마시는 것이고, 차는 여유가 필요할 때 마신다는 것이다. 최근 차문화가 되살아나는 것은 불교적 사유가 부흥하는 조짐이란 생각에 동감하게 된다.

 

근대의 불교는 조선왕조의 억불정책, 일본의 불교의 흡수정책,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불교의 천시 문화에서 새롭게 태어나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할 것을 생각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의 전달과정과 불교문화가 우리 생활에 녹아 있던 것들과,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조선왕조의 억불정책으로 인한 불교의 침잠, 일제의 불교 흡수에 의한 잔재,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인한 동양불교의 천시 영향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불교계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약간 알 수 있었다. 약간 부족하게 느낌 점은 첫째, 지명 및 용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듯 느꼈고, 둘째는 역사적 사실과 불교의 연결 사례를 알고 싶었고, 셋째는 불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노력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l*****e 2010.09.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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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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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를 읽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유라시아 대륙 동안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위치에 인접해 있으면서 기후 등 자연환경이 비슷하며, 벼농사 등 기후에 따른 산업도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욱 더 밀접한 관련을 갖게 해준 것은 아마 문화적인 동질성이라고 생각할 때에 가장 먼저 떠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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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를 읽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유라시아 대륙 동안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위치에 인접해 있으면서 기후 등 자연환경이 비슷하며, 벼농사 등 기후에 따른 산업도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욱 더 밀접한 관련을 갖게 해준 것은 아마 문화적인 동질성이라고 생각할 때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문자인 한자이다. 한자가 결국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지금도 3국은 한자를 다 같이 사용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나름대로 독특한 한글을 창시하였고, 일본은 가나라는 문자를 만들어 병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자가 끼친 영향은 같은 문화권으로 만들었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서 불교와 유교, 도교 등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다시 한 번 동질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게 하였는데 그 중에서 불교의 전파로 인한 불교의 영향권이 강력한 하나의 동아시아권을 형성하는데 있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다고 생각을 한다. 인도에서 고타마 싯타르타(석가모니)가 불교를 창시한 이래 오히려 불교의 본토인 인도보다도 가장 활발하게 불교가 번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보통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우리 동부아시아 쪽은 대승불교가, 동남아시아 쪽은 소승불교로 양분하여 발전하고 있다. 물론 이 불교가 다른 지역으로 전해지면서 약간씩 그 국가의 독특함과 맞물려서 약간씩 변형을 초래하기는 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이 동아시아의 불교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에 있어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왜냐 하면 종교는 기본적으로 문화적종합체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종합체가 성공적으로 전파되었을 때는 한 사회를 전반적으로 변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의 동아시아의 전파는 불교를 수용한 국가들의 새로운 문화 창조와 함께 국민들의 사상 통일은 물론이고 일상생활 속에서의 습관으로 만들어 안락함을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나 자신은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집안의 행사나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크거나 작은 일이 있으면 수시로 마을 뒷산에 위치한 조그마한 절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불공을 드리던 그 모습이 나이가 많이 든 지금 생각해보면 최고의 어머님 상이라고 생각이 든다. 지금도 등산이나 명승지에 가게 되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우리의 보물인 불교 유산들을 대할 때면 역시 우리 국가의 흥망을 결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그 위대함을 떠올리곤 한다. 이제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불교문화 네트워크’라는 프로젝트 하에서 하나의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m***3 2010.09.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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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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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동아시아를 문화적 개념으로 정의하고 여기에 불교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다. 저자의 불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은 이미 존재했던 인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사회에 불교가 전해진 것이 아니라, 불교가 전해지면서 그 불교에 의해 동아시아라는 문화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동아시아 문화에서 불교의 역할은 한자와 대등한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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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동아시아를 문화적 개념으로 정의하고 여기에 불교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다. 저자의 불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은 이미 존재했던 인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사회에 불교가 전해진 것이 아니라, 불교가 전해지면서 그 불교에 의해 동아시아라는 문화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동아시아 문화에서 불교의 역할은 한자와 대등한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불교는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문화적 종합체의 성격을 지닌 종교였고,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각 지역은 불교를 수용하면서 왕성한 생명력으로 변화를 거듭했고, 그 변화는 다시 불교의 변형을 촉진시켰다는 부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겠다.

북방으로 전파된 대승불교가 인도에서 출발하여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 도착했을 무렵은 동아시아라는 지역적·문화적 개념이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때였다. 불교가 중국 특히 뤄양(洛陽)과 장안(長安)이라는 도시를 기점으로 동아시아 전 지역에 전파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동아시아라는 지역적·문화적 개념의 정착과 확장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과거 실크로드 문명기행이란 책을 통해 과거 우리나라가 고대시절에도 작은 우리영토에만 국한되었던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혜초 스님이나 여러 고승들이 남긴 자취들을 중국의 영토내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의 근대에서 불교의 재인식 과정은 각기 다른 곡절을 지니고 있다. 각 국의 불교가 처해있는 상황이 달랐기 때문에 근대에 접근하는 구체적인 방법론과 입장에는 차이가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라고 이야기되든, ‘서구’ 혹은 ‘근대’와의 만남을 계기로 불교가 이들 세계에서 새롭게 인식되었다는 것은 공통적이다.

이 책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역사를 통해 살피면서 동아시아의 중요성과 특성을 인구와 지역, 문화 등의 요인을 들며 설명하고 이곳의 불교 문화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점이다.

문화접촉에 있어서 타 문화의 수용과 이어지는 토착화의 과정은 일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불교의 경우 종교라는 특성상 그것은 곧잘 ‘부처님 전기의 재현’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를 이해할 때 그저 종교로서의 신화적 의미랄까 조금은 피상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인식에 어려움이 있었던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적 근거에 바탕해 불교사를 정리한 책이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불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도와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k****7 2010.09.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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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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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린 아이들에게 박물관이나 유물전시관을 방문하라고 강요하며 위인전을 읽으라고 독촉하는 것일까? 정작 본인들의 역사관은 어떻게 형성되어있는지 문틈만한 의문이라도 해본적은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우린 역사에 관한한 작가의 상상을 빌린 미디어나 자극적인 소설에 의존할 뿐이다. 정작 자신의 과거에 대한 뿌리를 찾거나 지나간 시간에 대한 재해석 따위는 전혀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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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린 아이들에게 박물관이나 유물전시관을 방문하라고 강요하며 위인전을 읽으라고 독촉하는 것일까? 정작 본인들의 역사관은 어떻게 형성되어있는지 문틈만한 의문이라도 해본적은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우린 역사에 관한한 작가의 상상을 빌린 미디어나 자극적인 소설에 의존할 뿐이다. 정작 자신의 과거에 대한 뿌리를 찾거나 지나간 시간에 대한 재해석 따위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헌데 유독 아이들에게 역사관을 강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설령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문화의 관습마저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전형적인 동아시아에 속한다. 수천 년 동안 흥망성쇠를 거듭해온 동아시아 국가들에겐 크게 세 가지의 공통된 코드가 존재해 왔는데 바로 한자와, 유교, 그리고 불교문화다. 특히 한자는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국가들에겐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에 필적할만한 코드가 바로 불교, 즉 대승불교다.

 

종교의 절대성에 대해선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 불교가 어떻게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파되어 한국과 일본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되었는지, 또한 그들이 이룩한 사상과 문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동아시아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이에 대한 고찰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들이 사회적 혼란이나 핍박 하에서 절대권자나 스승이라 불리는 자들의 통찰력이나 깨달음에 의해 시작되었듯이 불교 역시 극심한 혼란과 전쟁 속에서 석가모니의 다르마(깨달음)로부터 시작되었다. 석가모니 사후 아소카왕은 전쟁이 가져다주는 피폐를 깨닫고 불교에 귀의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는데 그가 남긴 유산들은 후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는 종교의 자유를 철저하게 보장했고 부처님의 사리를 안장한 사탑을 남겨 호법왕, 전륜성왕으로 불리며 신라의 왕들에게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호법왕을 자칭하는 법흥왕과 진흥왕이 그 대표적인 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아소카왕의 호법은 불교의 부흥을 일으켰고 수많은 전법승들이 목숨을 걸고 실크로드를 횡단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동아시아로 불교가 전파되는 순간이다.

 

당시 인도의 전법승들과 중국의 구법승들을 역경승이라 불렸는데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컸던지 왕과 상인들의 절대적인 호의는 물론이고 역경승들이 지나가는 도시마다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거나 새로운 도시가 건립되었을 정도라고 한다. 이후 불교는 수나라 문제 시절 절정기를 맞이하게 된다. 권력과 어깨를 같이한 불교는 결국 스스로 위기를 초래하는데 측천무후 사후 불교는 폐단이라는 최대의 위기를 맞기도 한다. 이러한 혼란을 틈타 정통과 이단이라는 다양한 불교문화가 동으로 이전하게 되니 한국이나 일본 역시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이 사경과 인쇄기술의 발전이다. 역경을 통한 사경은 불교의 전파를 위한 핵심사항이었지만 인도어로 된 불경을 한자로 번역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불경의 번역이 1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루어지면서 동아시아 문화는 불교의 절대적 영향권에 들게 되었다. 현재 한국 유무형문화재의 85%이상이 불교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 당시의 불교문화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쳤고 발전해왔는지 짐작이나마 할수 있을 것 같다.

 

불교는 한국문화의 핵심 코드 중 하나다. 조선시대 성리학적 사풍이 아직까지 지배적이고 근대화를 통한 서구의 다양한 문화와 종교들이 우리들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우리의 마음 어딘 가엔 불교문화의 원형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 사탑을 돌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고 해마다 자식을 위해 삼천 배나 만 배를 올리는 부모의 고행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불교는 고려시대 이후 찬란한 명맥을 잃어버렸다. 물론 성철스님들을 비롯한 현대 불교의 위대한 스승들이 불교의 꽃을 피우셨으나 최초의 불교가 전하고자했던 문화로서의 불교 즉, 재가자와의 소통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불교가 동아시아를 만난 지 20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이중 1000년은 불교의 최대 부흥기였다. 종교를 선택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종교의 목적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불교의 새로운 탄생을 기대해본다.

k****4 2010.09.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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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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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동아시아는 중국을 위시하여 한국,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를 포함한 지역으로 대승불교, 북방불교로 불린다. 그 중심은 중국이며 불교의 시작은 실크로드를 이용한 역경(譯經)에서 시작하였다. 약 천년 동안 중국에서 번역된 불경은 6,000~7,000권이며 대표 번역자는 약 200명이다. 실크로드는 ‘붓다로드’, ‘다르마로드’라는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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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동아시아는 중국을 위시하여 한국,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를 포함한 지역으로 대승불교, 북방불교로 불린다.

그 중심은 중국이며 불교의 시작은 실크로드를 이용한 역경(譯經)에서 시작하였다.

약 천년 동안 중국에서 번역된 불경은 6,000~7,000권이며 대표 번역자는 약 200명이다.

실크로드는 붓다로드’, ‘다르마로드라는 명칭으로 불려지기도 하며 대표적인 역경으로는 안세고에서 시작하여 중국불교의 시작이라는 구마라집’, ‘보리류지’, ‘진제’, 그리고 유명한 현장을 들게 된다.

현장이전의 번역을 구역, 현장의 번역을 신역이라 지칭한다.

현장은 인도어를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오종불번(五種不飜)을 주장하여 이의 관철이 오늘 날까지 이르게 되는데, 번역을 하면 오히려 뜻을 손상할 가능성이 큰 경우 원전어의 음사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며, 다라니 곧 진언의 경우나 아뇩다라샴막심보리, 지혜라고 하지 않고 반야로 쓰는 경우이다.

 

역경을 통한 경전은 특히 대승불교가 경전을 수지하고 유포하는 공덕을 강조하는 만큼 사경을 중시하게 되고, 이 사경은 인쇄문화를 촉발한다. 사찰은 충분히 인쇄소 역할을 하였으며, 소승불교가 동아시아 불교의 주류가 되었더라면 동아시아에서는 인쇄문화가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한다.

여러 경로를 거치고 여러 역경승을 통한 불전은 종리중경목록이라는 최초의 목록으로 불전의 표준화가 시작되고, ‘개원석교록을 통해 경론(불전)들의 정형화 곧 표준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표준화에는 각 경론의 한 페이지에 들어갈 경문의 행과 글자 수까지 모두 조사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두 권의 목록이 없었다면 약 900년 후 이루어진 고려의 팔만대장경도 존재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역시 동아시아의 불교는 중국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위경(僞經)은 가짜 경전으로 부모은중경, 우란분경, 천지팔양신주경, 인왕경 등이 있는데, 정법을 흐렸다는 점은 당연하지만 중국인들의 불교에 대한 접근으로 이해되면서 이런 위경이 큰 거부감 없이 유통되었다는 자체가 곧 동아시아적인 반증이라고 본다. 또한 육조단경(조사어록)’과 동일시되어 출현하면서 위경은 자연스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동아시아 불교전통인 아미타불의 서방정토신앙에서의 극락정토는 수행하는데 최상의 조건을 제공해주는 곳으로 극락정토에 왕생한다는 자체가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비록 타력 구원이라고 하더라도 절대자의 구원에 의지하는 것과는 성격을 달리한다고 본다.

남전불교에서 북전불교를 비판할 때 아미타불의 서방정토신앙을 반박한다.

북전불교는 간다라 지방(오늘 날 파키스탄의 페사와르)으로 당시 그 지역의 정치적 지형이 이후 동아시아 불교의 성격을 상당 부분 결정하였다. 실크로드의 통상규모가 커지는 만큼 그 이권을 향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전쟁의 와중에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면서 민중들은 고난과 굶주림을 겪었다.

석가모니 붓다는 현재하지 않고 미래불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에서 구원의 신앙이 지역의 불교에게 필요했고, 결국 조로아스터교의 신에 대한 관념들이 아미타불의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고 본다.

아미타불 신앙은 암울한 사회현실에 절망한 민중이 자력으로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느꼈을 때 의지했던 타력구원의 신앙이라는 성격이 강렬하였다.

 

동아시아 불교가 인도불교와 구분되는 점은 승려의 노동문제에도 있다.

대승불교는 수행의 목표를 아라한에 두지 않고 부처에 두었고, 부처가 될 가능성을 출가자에 한정하지 않고 재가자에도 활짝 열어놓았다. 하루 일하지 않는 자는 하루 먹지도 말라는 백장스님의 말씀이 있듯 중생구제의 일념으로부터 동아시아 승려들의 노동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소극적인 입장의 구족계가 아니고 무엇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청규가 동아시아 볼교도의 지침이 된 것이다.

보살상은 방편을 상징화하고 나한상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청나라 말엽 봉안된 운남성 곤명의 공죽사 오백나한에 예수의 모습을 한 상이 봉안된 것이 그렇다.

중국인들이 불보살상의 의복 양식이나 얼굴 모양 등에서 중국적인 모습을 가미했다면 우리나라의 불상 조성은 격식에서 벗어난 자유분방함이 있다고 저자의 견지이다.

동아시아의 독특한 보살상으로 중국의 포대 화상이 있으며 지장보살상에서는 중국인과 한국인은 현세의 구원자로서 참회의 대상으로 지장보살을 그리는데, 일본에서는 지장보살을 참회의 대상으로 더 깊이 보아 사산 낙태로 인한 아기를 보호하는 지장보살로서 턱받침을 한 지장보살상도 있다고 한다.

 

과거 동아시아 불교에서 사찰은 불교도의 신앙공간이자 교육의 중심, 번역센터이면서 도서관이었으며, 외국과 문화예술을 교류하면서 재생산하여 공연하는 공연장이기도 했다. 불교사원은 한마디로 첨단 지식문화정보센터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 중국의 사찰의 위상은 기껏 전통문화의 보고 정도로, 불교인구의 성장세가 주춤한 것이 당연한 것이다. 신행공간의 역할보다 전통문화의 보존공간이자 전시관으로서의 기능이 더 강하기도 하다.

여기서 범위를 좁혀 개인적인 견해, 근래 우리나라 사찰은 산중을 떠나 포교원의 이름을 빌어 도심 속으로 자리잡아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각종 경전강의를 진행하며 민중 속으로 다르마를 전파하는데, 범 불교종단으로 정도의 일관성과 통일성 있는 교재를 개발하고 구체적인 강의기법 등도 연구하여 전파한다면 현대인에게 제대로 친근하게 다가가는 불교인을 양성하는 것이고, 고상하게는 불국토 건설에 기여하는 것 아닐까?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유입된 불교는 한자와 더불어 우리와 일본에 전파되어 동아사아 문화권을 형성하여 왔다. 초기 인도불교나 남방불교와는 상이한 대승불교로서 사경, 인쇄문화, 위경, 아미타불 신앙, 승려의 노동, 불보살상 등을 살펴보았다.

 

오늘 날 대승불교에서 폄하했던 남방불교, 곧 소승불교의 위빠사나 수행법 하나만 보아도 내게 본디 존재한 불성을 일깨우는 무난한 수행법으로 인식한다. 체계적인 불교이론은 우리나 중국보다 일본이 앞선 것이 현실이고, 또한 서양이 우리나 중국보다 앞서기도 하는 현실이다.

a***6 2018.08.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