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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제국인가? 아닌가? 미국의 속성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진보주의 진영에서는 미국이 제국주의로 나아가고 있음을 강력히 주장해 왔고,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이를 부인해왔다. 그런데 이 두 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 하버드대학 니알 퍼거슨 교수이다. 니알 퍼거슨은 미국이 제국임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히 인정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미국이 제국을 이어가기 위해 약화된 제국적 속성을 더 강하게 부각시킬 것을 주장한다. 2004년 출간된 <콜로서스>(2010년, 21세기북스)는 그의 이러한 주장을 아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미국은 강력한 자유주의적 제국이 되어야 한다 먼저, 그의 주장을 요약해 보자. 그는 “오늘날의 세계에는 아무 제국이나 필요한 게 아니다. 지금은 ‘자유주의적’ 제국이 필요한 시대다.”(48쪽)라고 전제를 둔다. 그리고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이 바로 ‘자유주의적 제국’에 가까움을 역설한다. 책의 상당 부분은 미국이 제국이 되어가는 과정을 설명하며 대영 제국과의 유사성과 차별적 방향을 제시한다. 과거 대영 제국은 지배를 위해 제국을 건설했지만 미국은 자유를 위해, 타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의 제국은 질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자유주의적 제국에 가까운 미국이 그에 가장 걸맞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미국이 이러한 제국적 속성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적인 제국의 속성을 강력히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오늘날 글로벌 파워로서의 미국은 아무리 위풍당당하게 보일지라도 그 기반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취약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제국이 되었으나, 미국인은 그에 걸맞은 사고방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 (82쪽)
“미국은 자유주의적 제국으로 활동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미국의 안보를 봐서도 그렇고, 이타주의를 생각해서도 그렇다. 또한 여러 면에서 그런 사명에 필요한 자원을 가장 많이 갖춘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나 그 콜로서스다운 경제력, 군사력, 문화력에도 미국은 아직도 ‘확실히’ 자유주의적 제국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되려면 그 경제구조, 사회적 기질 그리고 정치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452쪽)
알맹이가 빠진 제국주의론 미국이 제국적이든 그렇지 않든 현재 세계적인 영향력을 강력히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니알 퍼거슨이 제국화의 과정을 설명했듯 나는 ‘미국은 제국이다’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의 제국적 속성을 결과적 측면에서만 고찰하고 있다. 제국주의의 본질을 정확히 논하지 않는다. 과거의 제국주의가 식민지 건설을 위주로 한 영토 확장에 있었다면 현재의 제국주의는 영토적인 측면보다는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인 측면에서 고찰해야 한다. 니알 퍼거슨은 이러한 과정을 생략한 채 약소한 민족을 미국이 돕는다는 관점에서 ‘자유주의적 제국’이란 칭호를 붙였다. 그는 설명의 일환으로 한국을 상기시킨다. “세 번째 성공 사례인 한국도 잊지 말아야 한다. 1980년대 후반까지 이 나라는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했고, 그 땅에는 미군이 거의 40년 넘게 주둔 중이다.”(335쪽)라는 말로써 한국에 대한 간섭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1945년 해방정국에 미군정과 소련의 개입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었을까?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미개한 야만인으로 남아 있었을까? 저자는 세계 각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이런 식으로 정당화화며 결과적으로 미국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음을 상기시킨다. 그 이면에 포함된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의도와 각 나라의 주권은 철저히 무시된다.
양의 탈을 쓴 터미네이터 저자의 이러한 관점은 철저히 오리엔탈리즘적이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아시아 각국에 대한 개입은 미국의 이타적이고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한다. 그들이 돕는 약소국은 야만인이고 미개하다. 그러니 한국, 베트남, 소말리아, 이라크 등지에서 일어난 전쟁은 그들을 해방시키고 문명화되도록 돕는 이타적인 전쟁이었다. 그러나 과연 당사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소수의 지배층만이 그렇다고 여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협의하여 환수가 예정된 우리나라의 전작권(전시 작전통제권)은 또다시 연기되고 말았다. 대다수 국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과 미국이 만들어낸 결과다. 도대체 미국이 아니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오히려 미국의 개입이 아니었다면 시간이 더디더라도 더 안정된 국가를 이룰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왜 미국은 오만에 빠져 약소국에 대한 간섭을 멈추려 하지 않는가? 이는 결론 부분에서 미국을 터미네이터와 비유한 장면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미국은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지 이타적인 관점에서 돕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터미네이터와 닮은 마지막 이유를 알려준다. 군사적 대결 상황에서, 미국은 가공할 파괴력을 과시하면서 스스로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북한을 포함해서, 원하기만 한다면 미국이 끝장내지 못할 나라는 없다. 북한을 공격한다면 한국이 초토화될 것이다. 그래도 터미네이터인 미국은 거의 상처 하나 없이 폐허 속에서 우뚝 서 있을 것이다. 터미네이터에게 프로그램되지 않은 행동은 재건이다. 그가 지나가는 길에는 폐허만이 남을 뿐이다.”
니알 퍼거슨은 미국이 터미네이터처럼 움직일 수 있는데도 그러지 못하는 인정 많은 터미네이터로 묘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울고 있는 소녀를 구하기 전까지는 폭탄을 터뜨리지 못하는 영웅처럼 말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한 명의 소녀가 희생되더라도 폭탄을 터뜨리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 강력한 자유주의적 제국이 되라고 종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별로 반가운 이론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시각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시각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지켜봐야 한다. 한국은 절대로 이러한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 미군 문제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by 꽃다지, 2010.0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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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대상을 단 하나의 단어로 규정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그저 어떤 시각에서 그 대상을 관찰하느냐에 따라 그 시각에서 적용되는 하나의 단어를 찾아낼 뿐, 모든 것들을 아울러 단 하나의 단어로 여러 특성을 가진 대상을 규정하는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록 하나의 단어로 대상을 규정하는 일은 어렵다할지언정 그렇다고 하여 그 단어가 무가치하다거나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대상을 규정하는 단어에는 때로는 단 하나의, 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분명히 존재하고, 단어에 존재하는 의미는 분명 누군가가 그 대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 해당대상의 내포된 가치이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당신을 규정하는 하나의 단어를 제시했다면, 헌데 이 단어가 이리보아도, 저리 보아도 현시대에는 긍정적이라 볼 수 없는 단어였다면 당신의 반응은 어떠할까?
![]() 그런 의미에서 한 나라를 규정하는 단어에 제국주의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면 그 나라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는 궁금증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하다. 해당국가는 불쾌해 할 것이며, 그 국가의 국민은 이를 부정할 것이다. 또 자신들이 이 제국주의라는 결코 아름다워보이지 않는 단어의 국가형태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누군가는 연구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을까? 제국주의, 이 단어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았을때 결코 현시대에서는 벌어지지 않아야 할 수 없이 많은 전쟁과 피를 불러온 단어이니까 말이다. 그 누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확장하기 위해 타국을 짓밟고 소유하려 한다는 평을 듣는 것을 달가워하겠는가
![]()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의 흥망사>는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 살고 있는 미국민들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만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책의 내용이 어찌 되었던 간에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의 흥망사>는 일단 미국이 제국이라는 국가의 형태를 띄고 있음을 규정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이 책에서 미국을 제국이라 일컬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그것이 잘못된 이야기임을 요목조목 따질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아닌 101한가지 이유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하여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의 흥망사>가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임을 꼬집고 그 잘못된 행태나 그릇된 국가관을 꼬집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말 그대로 미국은 제국이다. 하지만 제국이 꼭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반론을 달고 시작되고 있으니 말이다.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의 흥망사>는 지금의 미국이 과거의 식민지 지배를 주 목적으로 하여 팽창하던 바로 그 제국주의 국가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국가임을 규정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이러한 거대한 힘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방향을 묻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 누군가 당신은 미국이 제국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단 10초도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미국이 과거의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총칼을 들고 식민지를 개척하며 자신들의 지배권아래 전 세계를 두기 위해 피흘리는 전쟁을 전면전으로 앞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의 흥망사>에서도 언급했듯, 막강한 경제력과 거대한 정치적 힘을 앞세워 엄청난 힘을 세계적으로 발휘하고 있고,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영향 아래서 자유롭지는 못하니, 국경은 나누어져 있고, 정치적으로는 독립되어 있다 하더라도 궁극적 의미에서의 제국주의와 크게 다르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국이 제국이라는 단어에 규정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들이 현재 그들 자신에게 부여된 초국가적 힘을 어덯게 활용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뇌가 아닐까?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의 흥망사>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고 말이다. 제국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좁디좁은 의미에 갇혀 자신들을 부정하려 하지 말고, 제국이라 불리워도 틀리지 않은 그 힘을 그들이 어떻게 펼쳐나갈지,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의 흥망사>는 바로 그 의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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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운다' 집단의 경험을 역사라 한다면 미국은 경험에서도 배우지 못하는 나라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이책은 미국이 어떻게 같은 실수를 반복해왔는가에 대한, 다시 말해 미국의 어리석음에 대한 저자의 한탄이다. 저자는 미국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지금 세계에서 미국은 유일한 패권국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 자리를 대신할 어떤 나라도 없는 유일한 패권국이다. 미국의 쇠퇴를 말하며 다극체제를 말하지만 실제로 가능성이 높은 것은 '무극체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세계는 진공을 싫어한다. 힘의 공백이 생기면 언제든 그 공백은 메워졌다. 공백이 메워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계적 차원의 무정부상태가 되어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문제는 미국을 대신할 마땅한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상 전례가 없는 절대무력과 경제력, 문화적 파워를 자랑하는 미국은 패권국의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힘의 의미를 그 힘의 의무와 권리를 미국이 모른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한탄한다. 그리고 그 무지는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다고 자신에 대한 위선으로 보일 정도인 환상에서 나온다고 저자는 개탄한다. 미국이 저질러온 무지와 실수의 목록은 길고도 길다. 저자가 작성한 목록의 마지막에는 이라크란 재앙이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로 한 것은 옳은 결정이었다. 걸프전 당시 제거되어야 했었던 후세인은 그 후 10여년동안 미국이 이끄는 세계질서를 비웃고 있었다. 후세인을 놔둔다면 질서에 대한 모독이 되고 아무도 질서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후세인은 제거되어야 했다. 아들 부시는 아버지가 마무리하지 못한 문제거리를 청소하기로 한 것이다. 두번의 이라크 전쟁이 석유 때문이라 비아냥하지만 그것은 큰 이유가 아니다. 중동석유에 의존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들이다. 미국이 중동에서 수입하는 석유는 10% 내외에 불과하다. 문제는 아들 부시의 방법이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유일한 패권국으로서 세계질서를 책임지고 있다는 자각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방법은 졸렬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고생하고 있는 이유를 저자는 역사에 대한 무지이며 자신의 위치와 위상에 대한 무식 때문이라 말한다. 부시는 영국이 1차대전 직후 이라크에서 어떻게 했는가에서 배우지 못했다고 말한다. 미국이 배우지 못한 것은 이라크에서의 영국의 경험만이 아니다. 역시 유일한 패권국이었던 영국의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대영제국에서 미국이 배워야 할 것은 유일한 패권국이 무슨 의미인가를 이해했던 영국의 자각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빅토리아 여왕의 영국은 자신이 제국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유일한 패권국이라는 것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책임있게 행동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의 패권은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의 동의를 얻었고 심지어 영국의 식민지들에서도 동의를 얻었다. 제국이든 패권국이든 동의없이 건설되지도 유지되지도 않는다. 미국은 태어날 때부터 제국이었다. 인디언을 학살하면서 영토확장을 한 것 자체가 제국의 행동이다. 미국의 힘은 그렇게 만들어진 방대한 영토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이 제국이라는 자의식이 없었다. 자의식이 없기 때문에 가끔씩 제국주의적 행동을 할 때도 일을 망치기 일수였다. 하와이와 푸에르토리코를 제외하고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부터 바다 밖으로 뻗어가려 할 때마다 실패만 했을 뿐이다. 그리고 현실과 자의식의 불일치는 이제 유일한 패권국이 된 지금 더 심각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클린턴 시절 마지못해 끌려간 소말리아에서의 망신은 패권국이란 의식이 없는데서 오는 유약함과 의지박약이 문제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부시가 용감하게 뛰어든 이라크에서도 선거를 의식할 수 밖에 없기에 단기결전으로 소풍가듯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순진함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미국은 패권국이지만 그 패권국으로서의 책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의지도 없고 그 책임을 다할 희생을 치룰 각오도 없다는 것이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2003년에 쓰여져 2004년에 출판된 이책은 당시 제국을 말하던 미국 지식인들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제국을 부정적으로가 아니라 현실로서 인정하자는 당시의 분위기에서 쓰인 이책의 어조는 지금에 와서보면 낯설 수도 있다. 몇년후 비슷한 주제로 쓰인 '제국의 미래' 같은 책과는 상당히 어조가 다르다. 예를 들어 이책은 미국이 대영제국이나 로마와 같은 제국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하는 것이 미국에게도 세계에게도 유익하다는 주장을 한다. 문제는 미국의 의지라고 저자는 말하고 싶어한다(재정적자의 문제를 지적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뒤에 나온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에선 미국이 제국일 수 있지만 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나라로서 대영제국이나 로마와 같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몇년의 시차를 두고 나온 두 책의 분위기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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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로마 제국은 서양을 지배했고, 19세기 대영 제국은 세계를 정복하고 식민지화 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칭호를 얻었다. 1,2차 세계 대전을 통해 대영 제국은 그 속국들이 모두 독립함으로써 제국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그 빈 자리에 두 개의 제국이 등장하는데 바로 소련(소비에트연방)과 미국이다. 세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역사의 시작과 함께 제국은 언제나 국민국가와 함께 존재했다. 제국은 이웃나라들을 정복하고, 그 나라를 식민지화 하여 정치,문화,경제를 자국으로부터 이식하고, 영향력을 발휘했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난후, 다른 나라의 영토를 정복하여 식민지화 하는 고전적 의미의 제국주의는 사라졌다. 그러나, 제국은 여전히 우리곁에 존재하고 있고, 그 통치 방식은 경제와 문화라는 통로로 탈바꿈 한다. 현재 소련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이 세계의 경찰국가로서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요며칠 전, 미국의 제 7 함대 항공모함인 조지 워싱턴호 선단이 한미서해군사훈련을 위해, 일본의 요코스카 항을 출발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중국은 미항모가 서해에 진입한다면 그건 인민해방군의 훈련용 타켓이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세계의 화약고 가운데 하나인 한반도가 여전히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신생 제국을 꿈꾸는 중국과 세계 패권국 미국이란 제국이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제국들의 광범위한 영향권 내에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대영 제국 시대의 식민지는 이제 아프리카 땅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세계는 제국의 막강한 힘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군통수권자에겐 전시에 작전을 지휘할 통제권이 없다. 2012년 4월 17일에 이양되기로 예정된 전작권이 3년 더 연기된 것은 우리 정부의 간절한 요구에 의해서 였다. 우리의 목숨이 제국 사령관의 명령과 판단에 내맡겨진 꼴이다. 골목마다를 순찰하는 경찰처럼, 세계의 바다엔 미항공모함 전단이 떠다닌다. 그러니, 어찌 제국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미국은 그간 제국이었고, 그러니 솔직히 제국임을 인정하고, 당당히 제국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 오만하면서도 솔직한 주장은 미국인이 아니라 영국인의 입에서 나왔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태어나 옥스포드 대학을 최우수로 졸업하고, 현재 하버드 대학 역사학 교수로 있는 니알 퍼거슨이다. 니알 퍼거슨은 최근의 미국 금융 위기를 진단하는데 능력을 발휘해, 폴 크루그먼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경제 전문가이기도 하다. <타임>지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도 들 정도로 미국 학계에선 그의 인지도가 높다. 그가 조지 부시 정권 때인 2003년에 저술한 <콜로서스>가 최근 번역돼 나왔다. 책이 나온후, 7년 정도가 지나다보니 여러 부분에서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 당시 미국은 911테러와 아프카니스탄 침공, 이라크 전쟁 등을 거치며 조지 부시의 일방주의적 영도력 아래,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콜로서스(거대한 존재,힘)>에서 니알 퍼거슨은 대영 제국과 미 제국을 비교하며, 대영제국처럼 미국이 제국으로서의 역할과 파워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점을 안타까워 한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다. 세계에 필요한 것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제국이며, 그 제국의 통제아래 세계는 평화와 자유를 증진 시킬 수 있는데, 그 제국이 바로 다름 아닌 미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 제국주의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실패와 성공을 회고한다. 한국전은 무승부로, 베트남전은 실패로, 이라크전은 성공으로 묘사한다. 제국주의는 '자국의 정치적·경제적 지배권을 다른 민족·국가의 영토로 확대시키려는 국가의 충동이나 정책'을 말한다는 점에선, 약소국이나 식민지에선 몹시도 부정적인 용어였다. 니알 퍼거슨은 이 제국주의라는 용어에 다른 의미를 덧붙인다. 부정적 제국주의라는 용어에 `자유'라는 옷을 입힌 것이다. 즉, `자유주의적 제국주의'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선 필요하고, 그 역할을 미국이 제대로 소화해 내야 한다고, 그는 이 책에서 줄기차게 주장한다. 과거 제국주의를 통해 수많은 식민지들이 겪은 아픔과 절망을 니알 퍼거슨의 논리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철저히 앵글로섹슨족의 성공한 엘리트적 관점에서 제국주의를 바라보고, 분석하고, 전망한다.
"제국은 질서를 위해 존재할 때가 최상이다. 물론 자유는 더 고귀한 목표다. 하지만 무질서를 경험한 사람은 질서가 자유를 위한 필수 전제 조건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미 제국은 국제적 무정부상태, 더 자세히 말해 종교적 힘이 부재한 상태에 맞서서 탄생했다고 할 수 있겠다." 니알 퍼거슨 <콜로서스> p.44
사실, 그의 `선한 제국주의론'에는 여러가지로 긍정할 요소가 있다. 세계는 10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위험한 세상이 되었다.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내며 2차 대전에 종지부를 찍은 대사건,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단 한번의 폭격으로 일본의 대표 도시 두 곳을 지도상에서 지워버린 위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10년 후, 미국은 원자폭탄의 100배가 넘는 위력을 가진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다. 이후, 소련을 비롯해 주요한 군사강국들은 차례로 핵을 갖게 됐다. 이제 3차 대전은 곧 인류의 멸절이라는 통로로 연결돼 있다.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할 국가는 현재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미국은 911을 통해 특정 국가가 아닌, 소수의 테러집단에게 무자비한 보복과 살상을 당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그러므로, 자유와 평화라는 공공재를 세계에 공급하고,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내는 수호세력 즉 자유주의적 제국으로서 미국은 그 역할을 해내야 한다.
이 논리는 언뜻보아서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그간 미국이 진정 세계 자유와 평화의 수호자였는지는 의문이다. 지금껏, 미국이 개입한 전쟁은 자유와 평화, 라는 대의보단 그 개입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로 판결난 경우가 많다. 미국이 진정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였다면, 득은 없고, 실만 있는 아프리카 내전에는 왜 개입을 꺼려 하는 것인가? 전세계의 흩어진 미군기지는 미국이 지역에서 정의의 수호자의 역할보단, 미국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그 지역에서 발휘하고, 정치,경제적으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 하는 것이 정직한 분석이다. 니알 퍼거슨은 `슬프게도 세상에는 자유를 얻기 전에 지배부터 받아야만 하는 지역이 여전히 남아 있다'라고 언급하는데, 이 시각은 그의 지독한 제국주의적 오만에 다름 아니다. 어떤 체제가 세계 평화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각 나라는 자신의 체제를 정하고, 그 체제 위해서 발전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이를 반대한다면, 국민국가는 부정되고 세계는 거대한 제국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대량학살무기(WMD)로 두고, UN의 승인없이 자의적 판단으로 이라크를 침략 한후, 후세인 정권을 몰아냈다. 전쟁의 명분이랄 수 있는 WMD는 부시의 거짓말로 드러났지만, 니알 퍼거슨은 이 부분에 대해 이라크 침략이 오히려 후세인 정권의 독재를 무너뜨리고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앞당길 수 있었다고, 자평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와 소수의 의견을 통합하고, 조율하는 과정이다. 독단적인 1국가의 판단보다는 다수 국가의 의견을 듣고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 세계 평화를 위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니알 퍼거슨은 `선한 제국주의'를 통한 세계 평화를 논하기에 앞서, 다국적 연합체인 UN을 통한 세계 평화 구상을 먼저 이야기했어야 옳은게 아닌가? 그러나, 그는 이를 논하지 않는다. 철저히 미국의 패권적 시각에 물들어 있는 저자의 편협된 사고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나로서는 9개월 만에 신임 대통령이 9.11의 참화에 직면하고는 내가 당시 주장했던 것과 매우 비슷한 정책을 실행에 옮길 줄은 몰랐다.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이 선포된 후, 용기에 대한 의문은 사라졌다. 이제 문제는 불굴의 정신,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고야 말겠다는 끈기다. 미국에 대한 유럽의 비판과는 달리, 나는 세계에는 효과적인 자유주의적 제국이 필요하며 미국은 그 일을 맡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긴다." p.452
특히 한국전에 대한 분석은 내 눈을 사로잡았는데, 이것은 그간 역사교육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을 넘어선 것이다. 한국전에 대한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사령관의 갈등은 익히 알려졌다. 그렇다면, 미국은 중공군의 개입에 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을까? 맥아더의 적극적인 반격 주장에 왜 미국은 주춤했던걸까? 니알 퍼거슨은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 북한의 파멸을 막은 것은 1950년 11월의 중국의 반격 자체가 아니었다. 중국군 개입의 첫 충격은 컸고 미국이 이끌던 연합군을 일시적으로 `지리멸렬'하게 만들었지만, 미국은 마오쩌둥의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을 격파할 충분한 힘을 갖고 있었다. 세 가지 점 때문에 그것은 실현 되지 않았다. 첫째, 중국에 원폭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었을 때 동맹국들이 강력히 반대했다. 둘째, 트루먼 행정부는 그런 공격이 소련의 서유럽 침공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비록 미국이 소련보다 17배 가량 우세한 핵전력을 갖고 있었지만, 미국의 정책은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셋째, 가장 중요했던 원인인데, 이 두 문제를 극복할 수도 있었을 사람이 정치적으로 발이 묶였다는 것이다.(맥아더)" P.163
201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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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금기와도 같아서 교과서에 쓰여진 모든 것을 나는 진리로 받아들였다. 오직 시험을 잘 보는 것 이상은 바라보지 못했던 그 시절이었기에 정해진 답에 근접하기 위한 경주에 모두가 열을 올렸다. 그 시절 세상은 편평했다. 이라크는 악독한 독재자가 다스리는, 전쟁이나 일으키는 못된 나라였고, 쿠웨이트는 그런 이라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선한 약자였다. 그리고 미국은 전 세계에 발생한 불을 끄는 전천후 소방대원과도 같아서, 미국이 없으면 이 세상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가 걱정될 지경이었다. 언론의 목소리 역시도 이러한 나의 세계관에 힘을 실어주었다. 많은 이슬람 국가들은 테러리스트나 양산하는 불량국가에 지나지 않아 보였으니, 그래도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행운이라며 매일 밤 나는 내 자신을 위로하느라 바빴었다. 그런데 약간 관점을 달리하니 색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것도 온전히 선하거나 전적으로 악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선과 악이 180도 달라져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도 했다. 이제까지 내가 지녀온 견고한 믿음은 대체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란 말인가. 모든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가장 의심스러웠던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역할이었다. 실속이 없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희생을 낳은 베트남 전을 비롯하여, 테러리스트나 독재자보다 일반인 사망자가 훨씬 많았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지에서의 미국의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은 미국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면 좋을 듯하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언제부터 현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본다면, 자연스레 우리는 미국의 역사를 훑게 될 것이다. 익히 알고들 있듯 미국은 유럽이라는 구대륙에 반발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국가이다. 종교적 박해가 싫었고, 경제적, 신분적 예속이 싫어서 사람들은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긴 여행길에 올랐다. 하지만 미대륙으로 떠난 1세대들은 본인들이 좋건 싫건 유럽 대륙의 구질서를 온몸으로 경험해온 사람들이었다. 노력을 한다 하여도 제 자신을 100% 백지 상태로 만들 수는 없을, 그런 그들이 만든 미국은 유럽과 닮은 꼴을 띠게 되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제국주의를 배척하는 듯하면서도 미국은 좇았다. 과거와 같은 노골적 지배가 불가능한 현재에도 미국의 독주(!)는 계속되고 있다. 독재의 탈을 씌워가며 미국이 붕괴시킨 많은 정권들이 알고 보면 민중의 지지에 기반을 둔, 정당성을 갖춘 상태였음을 우리의 언론은 말해주지 않았다. 노암 촘스키를 비롯하여 몇몇 지성들이 이런 미국을 일컬어 ‘불량국가’라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미국은 움켜쥔 패권을 놓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은 과거의 제국과는 다소 다른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군사적인 행동을 함에 있어서 미국은 독자적이기 보다는 UN 등을 끌어들여 함께 하는 다자주의적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 이는 스스로의 움직임에 제약을 가함으로써 막대한 재정 적자 문제 등을 해소하려는 미국의 시도와 맞물려 있을 뿐만 아니라, ‘제국’이 지니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재고를 꿈꾸는 차원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몇몇 정치인들이 이야기하듯 한 나라에서 악독한 정권을 해체한 후 즉각적으로 귀환을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태초의 미국이 품은 의도가 어떤 것인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한 번 땅을 밟은 이상에는 몇 년 혹은 몇 십 년에 달하는 긴 시간을 주둔해야만 한다. 미국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그들이 개입키로 결정했다면 그들은 과거 제국들이 보여준 길을 좇아야만 한다. 보다 긴 시간, 보다 큰 힘을 세계에서 발휘해야만 하는, 제국이 아닌 척하면서 제국의 길을 걸은 미국에게 이는 필수이다. 어마어마한 비용을 군사력에 쏟아부으면서도 결국에는 미국을 닮은 어느 것도 제대로 양산해내진 못해온 미국이 지금과 같은 위축을 계속해댄다면, 제국으로서의 미국은 미래를 꿈꿀 수 없게 된다. 단호하지 못한 미국에 안쓰러워하는 저자? 저자의 논조는 내게 비판이라기 보다는 애정 어린 시선을 닮은 듯해 보였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1820년대에 청 왕조는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으며, 그것은 지금의 중국 영토와 대략 비슷했다. 거기에 한국/인도차이나/시암/버마/네팔이 모두 중국의 속국이었다. –p395’를 읽고 난 후 안타깝지만 더욱 진해졌다. 저자는 제국을 지향하는 것일까? 마치 역사에는 항상 터미네이터나 슈퍼맨의 역할을 자처한 국가가 하나 이상 있었고, 지금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미국이 그 역할을 맡아주어야만 한다는 식의 마음을 이 책으로부터 읽어냈다면 내 오해일까? 그렇다면 미국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제국인가. 혹 제국이 되길 우리 모두는 꿈꾸고 있진 않은가 아니, 우리 시대는 제국을 필요로 하는가? 아무래도 이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아야 할 듯싶다. 꼭 미국이 아니더라도, 제국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지 여부부터 파헤쳐 보아야 할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