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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뛰어 놀던 골목이 생각난다. 아니 어렸을 때의 기억은 없다. 그곳이 골목이었는지, 아니면 대로변 이었는지,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마을 공터 이었는지..
그렇지만 골목 하면 떠오르는 영상이 몇 가지 있다. 방학 때면 놀러 오던 서울 삼양동 정릉언덕길이 생각난다. 마냥 위로 비탈진 조금은 큰길을 사이에 두고 곳곳으로 나있던 골목길, 그 골목길로 들어서면 방향을 잃기 일쑤였다.
술래잡기라도 하는 날, 빙빙 돌다 보면 미처 숨을 사이도 없이 술래와 마주치곤 하던 그 길이 생각나고, 조금은 더 커서 서울에 처음 올라와 한동안 머물던 봉천동 달동네 그 골목길이 생각나곤 한다. 마주 오는 사람이라도 있을라치면 서로 비스듬히 서서 지나가야 했던, 지금은 이리저리 미로처럼 얽혀있었다는 기억뿐이 없지만, 어느 순간 그 길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힘들게 올라가야 했던 계단들, 벽돌담 사이로 고개를 내밀던 이름 모를 꽃들, 골목길로 접해있던 창문들, 길을 걷다 보면 두런두런 들려오던 이야기 소리들, 파란 양철 대문, 낙서 가득한 벽들, 그리고 길가 벽 옆에 쌓여있던 타고 버린 연탄재들.. 당시에는 흔히 볼 수 있던 일상들 이었지만, 어느덧 그것들은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없다. 먹고 살기가 그만큼 좋아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따뜻했던 정들도 그것들과 함께 사라진 것만 같다. 이 책은 저자가 전국에 있는 골목길들을 찾아 다니며 보고 느낀 것을 사진과 함께 꾸며놓은 책이다. 24군데의 골목길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그 골목들에 쓰여있는 우리들의 어릴 적 이야기와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삶의 지도를 보여준다. 저자는 머리말도, 서문이랄 것도 없이 보기만해도 입가에 미소가 맺힐듯한 정다운 골목길 사진 몇 점으로 대체하고, 곧장 골목길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책에 소개된 골목길은 한번쯤 가보았던 길도 있고, 내가 잘아는 길도 몇 군데 눈에 뛴다. 그러나 그 골목길들을 읽으면서, 사진들을 보면서 조금은 마음이 저려온다.
대부분이 이제는 사라져가는, 사라져갈 날을 기다리는 도시의 달동네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탐욕은 어릴 적 기억들이 스며있는 그곳들을 그대로 두지 않고, 재개발이니, 재건축이니 하는 이름으로 포장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또다시 어딘가에 그런 골목길을 만들 수 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아직도 그곳에는 이발소가 있고, 구멍가게가 있고 그리고 살아온 시간들의 조각들이 그대로 쌓여있다. 그대로 있는 것이 반갑고, 또 고맙기도 하지만 그곳들을 보는 마음만은 어릴 적 그대로 일수만은 없을 것 같다. (흑석동 산꼭대기에서 바라본 한강...그리고 그너머) 전국 24곳의 골목길은 바다도 있고, 철로도 있고, 시장도 있고, 그리고 뚝방길도 있고 산비탈에 있는 달동네도 있다. 과거가 그대로 정지되어 있는 마을들이다. 그런가 하면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 같이 과거와 현재가 섞여 있기도 하다. 사진으로 보는 그곳들은 정겨움을 그리고 아련한 향수를 주고 있지만, 무언가 씁쓸함도 더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생각해보게 하는, 그리고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줄 수 있는 그 골목길들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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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히 전해져오는 골목에 대한 추억.. 그리고 밀려드는 애잔함.. 이 책과 함께 골목 산책을 하며 느꼈던 감정이다. 골목에 대한 추억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 이게 내가 겪은 일인지, 아니면 어디에서 본 건지 혼동될만큼 이제는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
지금은 초등학교지만, 내가 다니던 시절까지는 국민학교였다. 오전반/오후반을 다니던 저학년 시절, 학교 앞 동네와 우리 동네 골목은 어린 아이들의 아지트였다. 서로의 나이를 무시하고 모두 친구가 되어 비석치기, 얼음땡 놀이, 소꿉놀이, 땅따먹기, 구슬치기 등 온갖 놀이를 하며 깔깔대던 추억의 공간이었다. 숨바꼭질을 하며 잘 모르는 남의 집 대문 뒤에 숨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붙잡혔지만 즐겁기만 하던 기억도 있다. '골목'이란 단어를 들으면 으레 그 시절로 돌아가 시간이 정지해버린다. 내게 '골목'은 어린 시절의 즐거운 추억이다.
아쉽게도 책에서 소개된 골목 중에 가본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어느 곳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특히 인상적인 골목이 몇 군데 있다.
우선 서울 통의동. 책을 보기 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였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느낌. 서울 도심 속에 그런 한적하고 여유로운 공간이 있다는 것이 이색적이다. 헌책방과 조용한 카페, 미술관 나들이를 꿈꾸곤 했는데 책에서 다시 만나 반가웠다.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낡은 판잣집 사이에 철길이 있는 이 마을은 언젠가 TV에서 본 기억이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두번 실제 기차가 지나갔다고 한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기차가 지나간다고 상상하니 아찔하다. 지금은 적막해진 사진 속의 그 곳, 왠지 쓸쓸해보인다. 서울 홍제동 개미마을. 인왕산 등산로에 자리잡은 이 마을은 열심히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이 개미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빛 그린 어울림 마을"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벽화가 그려진 후로 유명해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화려한 벽화를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하트가 그려진 계단은 무척 사랑스럽다. 통영 동피랑 마을. 지금은 워낙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는데 몇 년 전 통영에 갔을 때만 해도 동피랑 마을이란 곳이 존재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다음에 또 통영에 갈 일이 생긴다면 꼭 들러볼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청주 수암골 벽화마을.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촬영지였고 요즘은 제빵왕 김탁구의 팔봉빵집이 있는 바로 그 동네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책에서 소개된 사진과 인터넷에서 찾아본 사진은 한 편의 동화책을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단색의 칙칙한 벽에 방긋 웃는 아이들이 있고, 아이스께끼를 사고 파는 풍경이 보이고, 예쁜 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 이 책 덕분에 가고 싶은 곳만 늘었는데... 끝까지 읽고 나서는 마냥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것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다.
"이런 달동네에 뭐 찍을 게 있다고 자꾸만 와쌌노."
요즘은 '골목'하면 달동네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오밀조밀 집들이 모여있고 길고 긴 계단이 있고 미로같은 골목이 있다. 게다가 이 곳엔 아직 화장실이 없는 집도 많다고 한다. 골목의 새로운 변화로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이방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주민들이 있는가 하면, 골목이 아닌 생활 공간을 아무 허락없이 찍어대는 이방인들을 반가워하지 않는 주민도 있었다.
나 역시 신기한 구경거리로만 생각했으니...금새 마음이 불편해졌고, 입장을 바꿔보면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일이라 여겨졌다. 일부 주민들의 바람대로 밤늦은 시간은 피하고 최소한 주민들의 생활공간은 양해를 구하고 셔터를 누르는 매너가 필요함을 느꼈다. 책을 통해 추억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볼 수 있어 좋았던 마음이 반, 읽을수록 우울해지는 마음이 반이었다. 안그래도 떠나고 싶은 요즘.. 마음만 더욱 싱숭생숭해지는 통에 쉬이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그래도 읽고 싶었던 책이라는 걸 기억해주시고 선물로 주신 고마운 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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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하다
저자와 함께 여행을 떠난 기분으로 찬찬히 읽어나갔다. 너무 서두르지 않게 둘러보듯이... 책도 '쉼'없이 읽어나가다 보면 지치기 마련인지라 한 숨 돌리는 마냥 종종 여행에세이를 집어들곤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들이 묻어 나 있기에 최대한 스며들어야지만 그곳, 그 모습, 그 느낌을 느낄수가 있기에
# 떠나보다
왜 골목이라는 곳을 여행해야 겠다고 생각했을까 라고 물음표를 던졌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미안함, 없애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안타까움, 주위를 살펴볼 세도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그리고 골목만이 줄 수 있는 그 풍경들에 이끌려 발걸음을 시작했지요 라고 책이 답했다. 골목엔 규칙이 없다. 종잡을 수 없이 통하는 가 싶다가도 막혀버린 길들,담을 살짝 넘어온 나무들, 윽박지르듯 가파르기도 하고 배려를 담아놓기도 한 계단들,어디에선가 날아와 시멘트 블록 사이로 핀 꽃,일정하지 않은 벽의 색깔들과 지붕색들, 규칙이 없다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골목은 부조화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에 저자가 1년여 동안 여행한 24곳의 골목중에 꼭 산책하고픈 골목이 몇군데가 있는데 근사한 카페와 미술관을 골목마다 숨겨두고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서울 통의동&부암동 간판을 정감있게 바꾸고 간판마을이라 불리는 진안 백운면 원촌마을 이제는 중단해버린 철길 양편으로 빼곡히 집이 들어 서 있는 군삼 경암도 철길마을 그때그때 여력에 따라 건물 색을 칠한 거라지만 레고블럭 같이 앙증맞게 집들이 들어 서 있는 부산 감천2동 태극도마을 바다 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끼게끔 해주는 통영 동호동 동피랑 물론 어느 곳 하나 빠질 수 없는 장소였지만 그 중에서 마음이 가는 골목 다섯 곳
# 돌아오다
아쉽다.서글프다.안타깝다. 내가 느낀 감정 골목을 끼고 위치했던 우리 집은 23년만에 탈출했더랬다. (그 전 부터 존재했던 장소였겠지만 내가 태어나고 사라지기 까지 걸린시간 23년) 23년이 무색 할 만큼 3년만에 그 모습은 의식 뒤로 밀려 추억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아쉽고 서글프고 안타까웠던 까닭은 미로같은 골목을 헤집으면 나타나 우리를 유혹하던 오리떼기(_사투리=달고나) 의 달콤함이 없다. 소독기 어깨에 메고 방역하는 아저씨 쫓아 다니며 소리 지르던 즐거움이 없다. 가로등 기둥 벗 삼아 숨바꼭질 하던 친구가 없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골목의 풍경들이 가난의 동의어로 골목을 풍경하는 것이 많아 슬퍼졌었다고나 할까 추억을 여행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라져 가는 것들을 담기 위한 여행이었던 거 같아 조금의 이질감이 들어더랬다.
# 기억하다
눅눅하게 그리고 음침하게 일러졌던 골목들이 반항을 했다. 진정한 모습을 벽으로 담아내면서 사람들을 끌어 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사라지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라며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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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골목을 걷고 있노라면 시간의 회벽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추억의 한 장면을 만나곤 한다. 골목을 따라가면 언제나처럼 작은 공터가 나오고 왁자한 아이들이 그곳에서 숨바꼭질을 하거나, 비석치기를 하거나, 양갈래머리를 한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다. 때로는 무리에 속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이 놀이에 끼이고 싶어 이리저리 기웃대며 놀이를 방해하지만 저녁 어스름이 질 때까지의 골목은 온통 아이들 차지였다. 어둑어둑 해가 지면 아이들은 아쉬움만 한아름 내려 놓고 공터를 떠난다. 호박꽃이 환한 저녁이면 공터 한켠에 놓인 평상으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밤새 모깃불이 타올랐었다. 이따금 어른들의 이야기가 호박 넝쿨처럼 길게 이어지는 날이면 졸음에 겨운 아이들은 제 어미의 무릎을 베고 곤한 잠에 빠져들고 풀벌레 소리만 별처럼 가득했었다.
골목에서는 그때 맡았던 제 어미의 땀내음처럼 아릿한 향수가 밀려오곤 한다. 낮은 담장 넘어 손바닥만한 마당 한켠에선 걸레를 빠는 누이의 모습. 일렁이는 검은 머릿결에 함초롬한 가을 햇살이 소복소복 쌓일 것 같은 오후. 영훈, 종애, 영숙, 정태 같은 낯익은 이름들이 어디선가 들려올 것만 같다. '아무개야! 밥 먹어라!' 하는 메아리가 앞산 머리에 쩌렁쩌렁 울릴 것만 같다. 손을 뻗으면 그 정겨운 풍경이 하마면 잡힐 듯한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골목의 옛 모습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까치발을 뜨면 안마당까지 훤히 보이던 정겨운 풍경도, 깡통을 차며 놀던 작은 공터도, 세월의 더께가 일던 담배가게도 이제는 모두 아슴아슴 멀어지고 있다. 여행작가 최갑수의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는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최갑수 골목산책'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나즈막한 슬레이트 지붕이 골목으로 나란히 펼쳐지는, 골목을 따라 코스모스 여린 데궁이 일렁일 것만 같은 그때의 풍경 속으로 안내한다.
"골목을 다니다보면 순수한 사랑으로만 가득 찬 곳에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바람으로 흔들리는 미루나무의 움직임처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나는 할머니들과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지켜보며 보일러로 따뜻해진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 온통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하다는." (p.240)
서울의 부암동이나 북촌 한옥마을에서부터 통영의 동피랑, 청주의 수암골, 부산의 태극도마을, 대전의 복지관길 등 저자의 발길은 전국을 누비고 있다. 건물의 높이가 1m씩 높아질 때마다 남보다 두세 걸음쯤 앞서 걸어야만 했던 우리는 골목의 여유란 그저 게으름의 상징, 청산해야 할 구태의 하나쯤으로 여기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어미의 시큼한 땀내음이 물씬 풍겨오던 삶의 터전이 사라진 자리에는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도통 찾을 길 없는 콘크리트 건물이 위압적인 자세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렇듯 풍경의 변화는 사람들의 일상을 생경하게, 또는 살풍경하게 만들어 놓았다. 추억은 오직 마음 속의 그리움으로만 존재하는 추상적 개념이 되고 말았다.
"나는 지금 수암골 골목에 서 있다. 주홍빛 불이 들어오고 있는 가로등 아래로 단발머리 여자 아이가 뛰어간다. 먼 지붕 위로 별이 돋고 어디선가 졸리운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모든 것은 익숙하지만 새롭게 다가온다.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곳. 그곳이 바로 골목이다." (p.359)
언젠가 댐 건설로 인해 자신이 살던 고향을 잃고 실향민 아닌 실향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난적이 있다. 그는 호수 어딘가를 가리키며 자신이 살던 곳이라고 말했었다. 그때 나는 느꼈었다. '아, 개발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되는구나!'하고 말이다. 개발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체취는 이제는 더 이상 찾기 어렵다. 새로이 태어나는 자식들에게 제 부모의 흔적을 지우도록 강요하는 사회를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까. 골목을 보존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은가.
뽀얀 가을 햇살 속에 온종일 펄럭였던 이불 홑청처럼 순수한 마음이 흘러가던 곳. 그곳이 바로 골목이었음을 이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모퉁이를 돌면 백구가 컹컹 짖던 내 어릴 적 친구의 집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이제는 몇 남지도 않은 골목이 부디 무사하기를... 그곳에 흐르던 순수의 마음들이 계단을 오르고, 공터를 돌아 고샅고샅 흩어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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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는 말이.. 딱 맞는 경우가 아닐까.. 일년 전 쯤 꿀꿀한 사무실에서 네이버 <골목 비경>을 클릭하며, 최갑수 님의 사진과 글을 통해 작은 위안과 감탄을 내뱉던 당시를 떠올리며.. 두근두근 기대를 안고 책을 펼쳤다. 그런데 분명 그 <골목 비경>과 내용은 비슷한데.. 뭔가 그 때의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웹에서 봤던 최갑수 작가의 골목은 뭔가 남달랐는데, 책으로 나오고 보니 그저 평범해졌다. 사진 배치도 지저분하게 느껴지고, 쫀득쫀득했던 글도 책으로 읽으니 잘 살지 않는다. 아무래도 책에 장식이 과한 것 같다. 최갑수 님 본연의 색깔이 바래졌다.
나 또한 어린 시절 골목 주변에서 자란터라, 지금도 꿈을 꾸면 미로 같은 아기자기한 구성의 골목길이 배경으로 등장할 정도로 뇌리에 박혀 있다. 그땐 골목길이 일상이었다면, 지금은 하나의 특별한 여행이 된 것이 참 아이러니하고 인상 깊다. 사실 책에 나온 숱한 골목길들의 구석구석을 쏘다니고 싶어도, 여자 혼자라는 두려움 때문에 선뜻 내키지 않는다. 나에게 일상이었던 골목길은 사라져가는 애틋함이기도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위험함이기도 하다. 인적 끊긴 어두컴컴한 골목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책을 통해 그나마 대리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언젠가부터 사라져가는 옛 골목들을 다룬 책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이 책은 그 동안 나온 골목 기행 책 중에서는 제일 훌륭하다는 생각이다. 비록 기대치엔 미치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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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았던 시골의 덕지덕지 처마가 길게 이어져 있는 고가의 뱀이 기어가는 좁다란 골목길,대학시절 할머니와 함께 자취하면서 걷던 경사진 시멘트 골목길,비가 오면 흙탕물과 함께 금방이라도 우루루 밀려 내려 올거 같았던 고교시절의 자취집 언저리등이 지나간 추억과 함께 이 도서는 산업화와 개발붐으로 인해 사라져 간 우리네의 정겨움과 일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잔영이다. 어느 나라이든 개발로 인해 서민들의 애환과 어린이들,고양이들,강아지들이 맘껏 얘기하고 뛰놀며 동심과 미래를 꿈꾸었던 휴식처이고 일상의 보금자리였건만 지금은 개발제한이나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그나마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골목길의 모습일 것이다. 24곳의 옛 정취와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여행이라면 삭막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는 요즘의 몰인정한 세태에 견주어 본다면 보다 아늑하고 느린 시간 속에서 자아를 찾고 추억을 곱씹어 보는 재미도 쏠쏠할거라 여겨진다.개발과 도시화로 인해 젊은이들은 도시로 세계로 달려나가고 골목길에는 찌그러진 문짝,재래식 화장실에서 풍겨져 나오는 암모니아 냄새,도배가 덜 된 창문,누구하나 손볼 여력이 없어 넘어져 갈듯한 스레트 지붕위의 폐타이어등이 뒹글고 을씨년스럽게 연출되고 있는 것이 그나마 남아 있는 골목길의 서민들을 만나면서 읽을 수 있는 풍경이다. 골목길은 추억과 정한을 남겨 주었다.객지에서 자취하는게 안스럽고 고생스럽다고 서울까지 올라와 밥을 해주시던 저의 할머님은 늘 골목길 정상에서 다리에 힘이 없으셨는지,한쪽 다리를 비스듬하게 땅에 내딛고는 "열심히 배우고 꼭 챙겨 먹어라"고 하시던 말씀이 어른이 되니 어른의 심정을 이해를 하고 끝없는 자애로움을 느끼게 된다.왜 그랬는지 할머님은 큰 손자인 저를 그리도 애지중지하셨는지 모르겠다.하해와 같은 할머님의 사랑에 고맙고 가끔은 꿈 속에서도 골목길에 흰머리 휘날리며 성치않은 자세로 손을 살랑살랑 흔드신다. 다 쓰러져 가는 골목길의 살풍경을 액막이라도 하려는듯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는 미술학도들을 대동하여 담벽,가정집벽,전봇대등에 이런 것 저런 것등을 그려 놓는다.그나마 살풍경이 진풍경으로 둔갑이라도 한듯 한층 미관이 좋아보이기는 하다.또한 도시화가 진전되기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동네,골목길에 전망이 좋고 사진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 하여 사진을 취미로 하는 분들이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며 앵글을 맞추느라 원주민들과 말씨름을 하기도 한단다.원주민들의 가슴 속에는 귀찮기도 하지만 없이 살다보니 사진으로 그들의 몰골과 추풍경을 남긴다는게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 속에 갖은자에 대한 응어리도 있을 듯하다. 도서 전체가 올 컬러로 치장되어 있어 읽는 내내 지루한줄 몰랐을 뿐만 아니라 24곳의 지명과 유래,원주민들의 삶의 이정표,내가 살았던 길목길을 다시 밟고 가는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특히 '대전 복지관길'의 흰 머리가 성성한 한 할머니가 담배를 한 손에 쥐고 약간 경사길 언덕길을 오르는 모습에서는 학창시절로 다시 돌아간듯 했다. 인류문명의 진화와 발전은 어디까지 향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냄새가 나고 원활하게 소통이 되며 서로가 이웃이고 가족같은 정념을 지닌 골목길의 추억은 단지 기억으로만 남는게 아니고,예나 지금이나 우리네가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는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든다.정부에서도 꼭 개발해서 개발자들의 이익만 챙기고 도시미관이라는 미명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가꾸어 시(視)행복을 더욱 더 추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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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치이는 나날, 가끔씩 느긋한 여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건네어 주고 싶은 책,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제목만 보면 살짝 낯 간지럽지만 연애감정을 논하는 책은 아니라는 거. 그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앞만 보고 내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가끔은 시간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천천히 휴식을 음미하는 법을 살짝 귀뜸해주는 책이랄까.
이 책은 정겨운 옛 기억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혹은 사람냄새가 나는 전국에 자리한 이색적인 골목길에 대한 소개와 풍경을 곁들인 일종의 한국판 골목산책 여행기라 할 수 있다.
"하늘은 높고 맑았고 날씨는 따뜻했으니까 인생에 이런 한 나절 정도는 필요한 법. 조그만 가방을 메고 발에 꼭 맞는 스니커즈를 신고 맘 내려놓고 그냥, 천천히 걷는 게다"
이 책은 서울의 통의동과 부암동, 청파동의 만리시장길을 시작으로 독특한 간판으로 사진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진안의 원촌마을, 철길을 사이로 양옆으로 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이색적인 군산의 철길마을을 지나 부산에서 가장 이쁜 벽화마을로 불리는 무현동과 골목길 끝 바다의 파도가 보이는 통영의 동피랑까지 한나절의 산책으로 느긋함과 설레임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전국 24개 마을을 담았다.
닮은 듯 다른 동네 특유의 개성을 하나하나 글과 사진을 따라 읽어가면서 마치 실제 그 골목을 따라 산책하는 것마냥 시간이 느긋히 흐르고 마음은 한결 여유로워졌다.
이 책을 읽으며 가끔은 낮은 담벼락에 옹기종이 몰려 있는 동네의 대문들 그리고 꾸불꾸불 어디로 향할지 모를 낮선 골목길을 무작정 따라 느긋하게 걷는 일탈이 일상으로 쌓인 탁 막힌 가슴을 턱 하니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골목을 걷는다는 건, 사실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차분한 시간을 되찾는 일인 걸 새삼 느꼈다며...
무언가 잃어버린 듯 가슴 한 켠이 허전한 나날이라면 한 번쯤 낯선,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다감한 이 동네를 한 바퀴 터벅터벅 걸어보는 건 어떨까.. 골목의 끝자락에 닿을 때쯔음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테니 말이다.
삶의 여유가 필요한 누군가 외에도 아기자기한 동네를 산책하며 사진찍기를 즐겨하는 독자라면 솔깃한 정보에 동공이 확장될 만한 알뜰한 책이다.
" 골목은 마치 완벽한 한 세계를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느긋함과 설렘, 친절함, 여유로움, 약간의 무심함...... 우리가 삶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덕목들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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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길 끝자락에 서면 시간도 멈춰 버린다. 햇빛아래 널어 놓은 빨래만 봐도 누구네 집인지 훤히 알 수 있는 곳. 어른들이야 물이 귀해 물동이 져 나르고 겨울이면 한장 한장 연탄을 지고 날라야만 했던 고통과 가난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를지 몰라도, 그 곳은 분명 사람사는 냄새 풍기던 곳이였다. 아름다운 추억의 골목길 사진을 보며 한장 한장 넘기다 보면 그속에 동무의 얼굴이 있고 할머니의 얼굴도 있다.
일본의 산토리니나 유럽의 어느 빈티지풍의 시골마을처럼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라 우리의 골목길은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생활의 터전이며 힘겨운 삶의 흔적이 있으며 또한 따스한 정이 있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옛 것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허물어진 자리엔 모두 같은 모양의 시멘트 상자만이 우뚝 솟아 괴물처럼 한 입에 추억까지 삼켜 버렸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풍요와 경제성장이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온 기억과 흔적을 지워버리고 빈부의 격차만큼이나 커다란 과거와 현대의 단절을 가져왔다. 느리게 사는 여유와 소통의 공간인 골목길을 찾아 다니며 전국을 누빈 작가에 의해 '이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란 예쁜 책이 만들어 졌다. 그가 골목길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게 했던 서울 부암동이나 강경의 황산마을, 군산의 철길마을 등은 옛날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잇어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고, 통영의 동피랑, 청주 수암골, 부산의 태극도마을, 대전의 복지관길처럼 골목을 예술과 삶이 만난 동네는 전보다 활기에 넘치고 칙칙하고 어둡던 골목길이 화사해 졌다. 화분마다 가득한 꽃들이 배시새 웃는 대문옆 담벼락, 게단에 그려진 한폭의 꽃들이 절로 걸어 보고 싶고 가 보고 싶은 곳으로 만든다.
그가 보물 처럼 찾아낸 곳곳에 숨겨진 골목길들을 찬찬히 거닐어 보고 싶다. 담장이 웃는다, 꽃 몇 송이 그렸을 뿐인데 골목길은 화사하고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바꾸어 놓았나 보다. “벽화가 그려지고 난 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홍제동 개미마을의 한 아주머니의 말씀이 한참을 잊혀지지 않는다. 예술의 아름다움을 골목과 나누니 사람들의 마음까지 환해진것 같다. 골목은 뭐든지 나누면 보테서 되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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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작가의 에세이는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이라는 작품을 처음으로 만났었다. 그 때 만났던 책은 사실 엄청난 감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유난히 우울에 빠져있었던 나를 더욱 더 감성적이 되게 만들었지만,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저자가 이번엔 '골목 산책'이라는 에세이로 찾아왔다는 소문을 듣고서도 나중에 도서관에서나 빌려봐야지,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지인의 선물로 인해 품에 안고 대출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사진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여유있게 볼 수 있음에 고마워하며 책을 펼쳤다. 몇 개의 사진을 먼저 선보여주고 '골목 산책 안내'라고 해서 차례가 있는데, '골목 산책'이라는 어감이 좋아서 계속 입 속에서 혀를 굴리며 되뇌었다. '골목'이라는 말을 듣거나 보면 나는 '뒷,골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왔고, 아직도 살고 있는 이 동네는 유난히 다른 곳보다 골목이 많은 편이고, 그로 인해 치뤄지는 많은 나쁜 사건들이 동반되기에 최적의 상태인 곳으로 손꼽히고 있고 , 혹여나 한번 발걸음을 할라치면 그 속에선 아직 젖내음이 나는 어린 아이들이 피는 담배냄새가 코를 박박 긁고 싶게 간지럽히며 내 콧털의 신경을 곧추세우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저자에겐 감성적으로 스며든 '골목'이라는 단어가 이 책을 읽기 전 , 내게는 어두운 면만을 제공하는 곳을 의미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골목을 걸으며 귀가 팔랑팔랑거리는 단어들만을 초이스해서 우리에게 하나의 완성된 문장을 선보이고 있다. 그 아른아른거리는 문장들을 보며 이미 저자가 걸었던 골목들을 그의 발자취를 따라 나도 함께 걷게 된다면, 나 또한 그런 감성적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 계단'은 친절했고 사려 깊고 다정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그 계단'에는 계단을 만든 사람의 마음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골목 여행의 매력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고작 계단 하나에서 마음을 느끼고 감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p51) 계단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체가 신기함을 넘어서 얼렁뚱땅하다고 생각되었다. 어느 곳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동네의 젊은이들도 한번쯤은 쉬었다 가야 할 계단에서 다른 이처럼 쉬기도 하고, 홍제동 개미마을의 높고 가팔라서 아찔했던 계단도 서슴지않고 조심스레 발을 옮기는 저자를 보며, 그 계단을 오르는 나를 상상하니 있는 짜증에 곁들여 없는 짜증까지 만들어내며 오르는 내가 상상되서 나도 모르게 미간을 있는대로 찌푸리게 됐다. 저자가 사소한 골목을 보며 늘어날대로 늘어난 감성을 글로서 쓸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저자는 현재 그런 곳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동네 주민들이 그것으로써 느낄 힘겨움은 생각지않고 그것들에 또 다른 감정을 이입시켜 불어넣는 것은 위험하고 이기적인 처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보게 된다.
주민들은 카메라에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주민들의 이런 태도에 십분 공감이 간다.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 불쑥 들어와 한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고 신기한 구경거리를 대하듯 다짜고짜 카메라부터 들이미는 이방인들의 무례가 달가울 리 없다. 자신들의 고단한 삶을 한낱 구경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냥 친절하게 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p298) 이제 얼마 남지않은 골목들이라서 사진 좀 찍는다 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벗어나 옛 것인 과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자주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에겐 그들은 분명 달가운 손님보다는 무례한 침입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밤골마을이나 태극도마을의 주민들이 특히 그랬다. 그렇다해도 낯선 이방인들에게 시원한 물 한잔, 막걸리 한 잔 대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개발이 되지 않는 동네에서 살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원망하고 있을 뿐이다. "카메라 들고 놀이 삼아 오는 사람들이야 좋지. 하지만 여기서 살아봐. 얼마나 불편한지." (p111) 아직도 현 시대와 동떨어진 곳에서 우리들은 모르는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고 있는 그들을 불쌍히 여길 필요도 없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길 필요도 없다지만, 잠시, 적어도 우리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전에, 가난해서, 과거에 묶여 살아서 문명의 빛을 볼 수 없는 그들의 삶을 존중해주며 예의를 갖추어야하는게 당연지사가 아닐까.
만약 당신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밥이 아니라 사랑받고 혹은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싶다면 철길마을로 가보기를 권한다. 한나절 철길마을을 천천히 거닐어보시라.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햇빛이 들어오는 이 곳에 아침 일찍부터 고추를 내어놓고 빨래를 널어 말리는 것도, 국화를 심어놓은 화분을 문 앞으로 밀어놓는 것도, 벽 한쪽에 자전거를 비스듬이 기대어놓는 것도, 기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철로 위에 자리를 펴고 나물을 말리는 것도, 밤이 되면 가로등 불빛이 켜지는 이유도, 불빛을 받은 철길이 필라멘토처럼 반짝거리는 것도, 창문 너머에서 텔레비전 소리와 아이 울음소리와 냄비 여닫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이 모든 일은 어쩌면 우리가 아직은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p84) 우리는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무엇인가로부터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갈구해서 받아도 받아도 끝이 없는 사막과도 같은 목마름의 근원이다.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주변을 둘러보며 사랑받고 있음을 스스로가 깨닫길 원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고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으나, 물질주의인 우리는 손에 잡히는 것만을 사랑의 징표 혹은 표본이라고 생각할 뿐, 소소한 것들에 대한 행복은 그저 당연한 것이라고만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요근래 내게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그들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기에 그 일을 해결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믿었던 타인들도 나를 도와줄 수 없을거라 생각하니 결국 사람 개개인은 혼자라고 생각했던 요즘, 어쩌면 나는 이 문장들에 많은 것을 위로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매미가 울고 있는 것도, 온도가 30℃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더위에 시원한 얼음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도, 밤에는 시원한 바람이라는 손님이 찾아온다는 것도, 내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내가 보고 맡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들이 된다.
이런 순간이 필요해. 마음에 드는 장소를 만나면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멈춰서는 일. 그저 바라보고, 감각하고, 즐기는 일. 이런 순간을 일주일에 십여 분 정도 만들어주는 것이 생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사는 것이 아닐까. (p224) 좀 더 편하게 살자며 바뀌는 나날이 발전하는 세상의 빠른 변화에 발맞추고 그것을 따라가며 나의 내면이 메말라가는 것도 모른 채 시속 150km/h로 주위를 쳐다볼 겨를도 없이 달리기만 한 것은 아닐까, 때로는 멈춰 서서 주위를 스-윽 둘러볼 때가 필요한 날이 있을텐데, 내 마음의 안식처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줄여가고 있었다. 살면서 어느 순간은 몸을 꼿꼿이 피고 얼굴을 들어서 하늘을 바라볼 때도 필요하고, 허리를 접어서 땅을 굽어볼 때도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잊고 살았던 모양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시골처럼 전부 골목길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집은 골목길을 쭉 따라와야만 들어갈 수 있기에 나는 퇴근길에 항상 골목길을 따라 집을 들어간다. 나는 항상 집에 가는 그 길을 걸으며 길이 도로처럼 아스팔트가 아니라서 구두굽이 빨리 닳는다던지, 바닥에 깔려있는 벽돌들이 화가 난 것마냥 삐족빼족 튀어나와 있어서 자주 넘어진다거나 하는 온갖 핑계란 핑계는 다 붙여서 그 길을 싫어했다. '골목'을 '뒷,골목'으로만 생각했던 내 고정관념을 '우리가 살아온 무시할 수 없는 세계'라고 정정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마음을 안겨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번 책은 하나의 주제를 엮어 만들었을지라도 읽으면서 이곳도 이곳같고, 그곳도 이곳같은 구성이 아닌 독특하진 않더라도 조금은 색다르고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테마를 원했던 나에겐 좀 지루함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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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했던 당시, 제목만 접하고 떠오른 영화 한편이 있었다. 차우(양조위)와 리첸(장만옥)의 아련한 사랑을 그린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치파오가 잘 어울리는 여인 리첸은 느린 걸음으로 밤 골목을 걷는다.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책제목은 리첸의 마음이자 차우의 마음이었을 것만 같았다. 이렇듯 골목은 그 공간은 채우는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이야기를 품는다.
시 ‘밀물여인숙’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 최갑수의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에는 한국의 담백하고 소박한 길과 골목이 담겨 있다. 작가는 서울 평창동의 어느 부촌보다는 바로 옆 동네인 가회동, 부암동 일대를 한적하게 거닐자고 제안한다. 그 곳이 경상도, 전라도 어디든 마찬가지다. 작가는 산토리니 보다 우리네 달동네 벽화를 더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책은 독자와 만나 읽혔을 때 빛을 발하게 된다. 서점에서 만나게 되는 이 책을 만나게 된다면 산뜻한 표지디자인 덕분에 한 번은 눈길을 끌게 된다. 살구색 표지와 발레리나가 벽화로 그려진 어느 골목 계단의 사진만으로도 이 책의 성격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매우 감성적인 글과 사진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라는...
한편, 이 책은 네이버캐스트 [아름다운 한국 ; 골목비경]에 연재됐던 글들을 모아 펴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책의 장단점을 말해 준다. 연재글과 책은 내용이며 구성, 심지어 사진의 쓰임이 거의 동일하다. 애초에 출판을 목표로 연재를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포털과 책에 차별성이 보이지 않아 편집의 안일함이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연재글은 독자에게 한 번은 검증을 받았던 글이라는 믿음을 주고 서울의 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등 지역별로 적절히 안배하고 있으며 책에 소개된 지역을 찾아가고자 했을 때 관련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글에 못지않게 사진의 비중이 큰데 소개된 지역을 방문하게 되면 책에 실린 사진을 참고하거나 포토팁을 활용하면 유용할 듯 하다. 하지만 단순히 독자로 남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벽화, 간판, 야경, 아이들 등의 이미지가 지역마다 공식처럼 활용되어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다.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는 감성적인 책 제목과 표지 디자인을 압도하지 못하는 평이한 내용과 구성이 아쉽지만 어느 동네건 각각의 이야기와 풍경을 담고 있다는 작은 깨달음을 안겨 준다. 그리고 어느덧 이 책에 소개된 지역을 따라 7, 8월 주말 스케줄을 짜고 있을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